크렘린 드론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는 4일 수도 키예프(키이우)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향해 미사일 공격과 함께 '자폭 드론'을 띄운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저녁 8시쯤 키예프 도심을 향해 드론이 날아와 이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생생한 드론 격추 영상도 인터넷에 올라왔다.
영상에는 키예프시(市)의 랜드마크 격인 '마이단 광장'(Майдан Незалежности)의 기념탑(높은 기둥 위에 여성이 가막살 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 여성은 동슬라브 신화의 캐릭터인 '베레기니'/편집자 주)을 스쳐 지나가는 드론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 드론을 격추하기 위한 키예프 방공망이 가동됐고, 시민들은 황급히 지하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드론은 집중 포격에 맞아 거대한 불꽃과 함께 폭발한 뒤 추락했다. 그 파편으로 시내 두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몇 시간 뒤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부가 키예프 상공에서 격추된 드론은 러시아가 날린 이란제 '샤헤드'가 아니라, 터키제 '바이락타르(Bayraktar) TB2' 라고 발표한 것.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드론의 격추 장면을 지켜본 일부 시민이 '샤헤드' 드론 같지 않다고 주장했는데,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키예프 도심 상공에 나타난 바이락타르 TB2 드론/사진출처:텔레그램, 스트라나.ru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공군은 페이스북을 통해 "바이락타르 드론이 키예프 상공을 비행하던 중 통제력을 잃었다"며 "이 드론이 어떤 일을 일으킬 지 몰라, 서둘러 파괴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해온 바이락타르 TB2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기술적 오작동에 의해 엉뚱한 목표물(키예프)을 향해 날아갔다는 뜻이다. 자칫하면 키예프 중심가를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폭격할 뻔했다.
키예프 도심 상공을 나는 드론과 드론을 향해 빗발치는 포탄, 드론이 폭발하는 장면이 너무나 또렷하게 잡힌 영상은 이미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키예프 시민들도 한동안 그 충격에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 오늘(4, 5일)의 주요 뉴스 요약
- 삼엄한 보안 속에 네덜란드를 깜짝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4일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다룰 특별재판소의 설치를 촉구했다.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본부를 찾아 "이 범죄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이는 특별재판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별재판소 설치에 39개국이 지지 입장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ICC는 전쟁범죄, 반인도 범죄, 제노사이드 등 국제사회 공통의 관심사이자, 가장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처벌을 목적으로 둔 기관으로,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국가원수의 면책특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장병들이 서방 군사 장비 운영 훈련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훈련장을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네덜란드 방문에 앞서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북유럽 5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4일 크렘린에 대한 드론 공격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했다. 그는 "이번 공격의 배후에는 분명히 미국이 있다"며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한 결정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이 내리는 것을 알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이를 실행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종종 공격 목표물을 지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미국은 우리가 이를 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미국에 대해 어떤 수단으로 보복할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삼간 채 "다양한 옵션을 고려하고 있으며, 러시아 국익에 부합하는 신중하고 균형 잡힌 조처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우크라이나가 공언해온 대반격 작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3일 주장했다. 그는 텔레그램 계정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을 따라 반격을 위한 정찰 활동을 대폭 늘렸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반격은 가까운 미래에 본격적인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며 "이르면 며칠 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반격 작전을 앞둔 우크라이나에 추가 제공하는 미국의 군사지원 보따리에는 공대지 로켓 '히드라-70'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히드라-70 로켓은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GD)사가 만든 직경 70㎜, 최대 사정거리 약 10.5㎞의 무유도 방식 발사체다. 헬기·전투기 등 다양한 전투용 비행체에 장착 가능하다. 그러나 주로 공격용 헬기가 지상군을 지원할 때 사용한다.
3억 달러(약 4천억원) 규모의 추가 지원 목록에는 하이마스(HIMARS) 포탄과 무반동포 AT-4, 칼 구스타프는 물론, 토우(TOW) 대전차 미사일과 다양한 구경의 박격포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군이 구축한 방어진지를 돌파하는 데는 박격포가 가장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친우크라 헤르손 당국은 5일 저녁 8시부터 8일 아침 6시까지 통금을 실시하기로 했다. 전례없이 긴 통금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앞서 최전선으로 예비전력을 투입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헤르손 당국은 더욱 늘어난 러시아군의 포격에 대한 주민 보호 대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 우크라이나는 반격 작전 등을 위해 자원자들을 중심으로 신병들과 경찰관, 러시아군과 전투 경험을 지닌 참전 예비군 등으로 8개 강습여단을 새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2일 "4만명 규모의 강습여단 편성을 마쳤다"면서 그러나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서는 보충 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강습여단들은 서방의 새 군사 장비로 무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강습여단이 격전지 바흐무트 방어에 투입되거나, 조만간 시작될 봄철 대공세에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