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도 온도가 있을까?
측정하긴 어렵겠지만 느껴지는 온도는 있다. 들을 때 시원한 심상이 전해지는 음악이 있는 반면, 따듯한 심상이 느껴지는 음악도 있다. 이런 온도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시원한 음악은 북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가 대표적이다. 그의 음악에는 드넓게 펼쳐진 장대하고 시원한 북유럽의 정취가 담겨 있다. 반면 뜨거운 음악도 있다. 스페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작품을 들어 보면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정취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작열하는 태양이 고스란히 음표로 바뀐 것이다. 차이는 작곡가들을 둘러싼 자연 환경에서 비롯된다. 타고나는 천성보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오선지 위 음표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 내니. 심지어 앞선 두 작곡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다. 사실 이런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유럽 주택들이 유독 빨간 이유는 지질 환경 때문이다. 동유럽은 대개 붉은 벽돌과 기와의 재료인 적색의 '라테라이트'를 함유한 점토질 토양으로 이뤄져 있다. 바꿔 말하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에 빈번히 쓰인 것이다. 음악의 재료가 되는 심상들도 모두 작곡가들 주변에 놓여 있었다. 핀란드에 살던 시벨리우스와 스페인에 살던 그라나도스가 서로 다른 온도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