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1999년에 방영됐던 드라마 허준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허준이 명의로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했을 때 그의 무덤에 예진아씨가 조그마한 꼬마아이 하나와 찾아옵니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무덤을 바라보고, 무덤을 쓰다듬으며,
허준과의 오랜 인연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회한에 찬 얼굴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산등성이의 꾸불꾸불한 산길을 걷는 대목에서 꼬마아이가 이렇게 묻습니다.
“누구의 무덤이냐? 뭐하셨던 분입니까?”라는 물음에 “내가 평생을 가슴에 두고 존경한 분이란다.
그분은 땅속을 흐르는 물같은 분이셨지.”라고 답변을 합니다.
“그분도 내의녀님을 사랑하셨습니까?”라는 물음에 “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내가 죽어 땅속에 묻히고 흐르는 물이 되어 만난다면 그땐 꼭 여쭈어 봐야겠다..
”라고 대답합니다.
허준과 예진아씨의 그 애틋한 영적인 사랑을 생각하며 종종 떠올리곤 합니다.
복음에서 치유 이야기는 대개 예수님께서 환자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거나
환자의 강한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을 때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온 중풍병자의 치유 사건은 이례적으로 병자 자신이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행위가 예수님을 감동시킵니다.
그 결과 수동적인 역할에만 머물고 있던 중풍병자가 치유의 은혜를 입습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 아닐까요?
비록 누군가의 믿음이 약해도 교회 공동체 안에만 머물면 다른 이들의 믿음 덕에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에 매인다는 것은 대단히 불편하고 자신의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도 없지만 결국 그런 불편함이 자기를 구원합니다.
힘 있을 때 교회공동체레 열심히 봉사합시다.
그래야 내가 약해졌을 때, 오늘 복음의 중풍병자 처럼 다른 사람이 나를 들것에 태워 구원으로 인도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치유의 은총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사랑합니다!
첫댓글 중풍환자의 친구들의 깊은 우정과 예수님께만 데리고 가면 치유되리라는 감한 믿음에 감동하시는
주님의 자비심에 감사드립니다. 차츰 개인주의, 나 홀로 세상이 되어가는 위험한 세상에서 이웃과 교회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소속되는 행복을 모두가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