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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이사야(78)/새일
제목 :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성경 : 사 43:14~28
찬송 : 242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0809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43: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사 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사 43: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사 43: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사 43: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사 43: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사 43: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사 43: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
오늘 본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시는 회복과 구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패망과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입니다. 이미 그는 홍해를 순종시켜 길을 내셨고 강력한 애굽의 군대와 병거를 진멸하심으로써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께서 그 능력으로 영원할 것 같은 바벨론의 패권을 꺾으시겠다고 나서십니다. 그런데 이번에 행하시는 ‘새 일’은 너무 엄청나서 출애굽 사건조차 잊으라고 하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서 안전히 인도하시겠다고 하시고, 사막에 강을 내서 자기 백성으로 마시게 한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백성 삼으신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고후 5:17). 이사야는 이미 오래전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새 일로 예언한 바 있습니다(19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새 일은 무엇일까요?
백성을 돌보십니다!
사 43: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사 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본문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14~15절은 교차대칭 구조를 이루는데, 여호와의 호칭이 시작과 끝에 위치하고 중심부에 바벨론의 패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심부에서는 1인칭 주어의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바벨론의 패망이 여호와께서 주도하시는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바벨론의 상황 역전은 ‘도망자의 신세’에서 강조됩니다. ‘너희를 위하여’라는 표현은 바벨론의 패망이 자기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할 즈음 바벨론 사람들을 쫓아 버려서 유다 백성을 건져 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하나님이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서 무슨 말씀을 하실 터인데 갈대아 사람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허겁지겁 배를 집어타고 도망간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를 들면, 깡패와 악당들이 거창하게 파티를 열고 즐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달려와서 지금 경찰이 그들을 체포하려고 출동 중이라는 말을 전해 준다면 아마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다 허겁지겁 자기들이 타고 온 차를 타고 줄행랑을 놓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사왕 고레스였습니다. 천하무적 바벨론도 망할 즈음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놀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레스의 부대가 들이 닥치니까 모두 기겁을 하고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리라’는 것은 멸망으로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는 ‘구속자’입니다.
구속자는 인질이나 포로로 잡혀 있는 자를 몸값을 주고 구출해 오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포로 된 이스라엘을 찾아와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 또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데 있어서 다른 신들이나 다른 왕들과는 구별된 능력을 지니신 분입니다.
셋째는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부부는 서로 언약을 맺고 하나가 되었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부부라는 관계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상 어느 곳에 잡혀 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15절에서도 바벨론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여호와는 어떤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까?
먼저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거룩한 자’라고 자신을 밝히십니다. 이것은 모든 민족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만 선택하심으로써 다른 이방들로부터 거룩하게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창조자’라고 자신을 밝히고 계시는데 여기서 ‘창조자’는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창조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너희의 왕’이라고 일러주셨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므로 영원히 그들을 통치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스라엘로 부름 받은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의 ‘거룩한 자’, ‘창조자’, ‘왕’으로 모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 43: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사 43: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바벨론 패망의 근거는 출애굽에서 드러내신 여호와의 능력입니다. 여호와가 상대하신 대상들, 즉 ‘큰 물’, ‘군대’, ‘용사들’ 같은 권능의 존재들은 출애굽에서 펼치신 여호와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엎드러지다’와 ‘일어나다’에 사용된 분사형 동사들은 과거의 사건인 출애굽을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소멸하여 심지처럼 꺼져 버렸다’는 완료형으로 쓰이면서 홍해에 빠진 애굽 군대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강조합니다. 강력한 ‘군대’와 ‘용사들’의 운명이 불 꺼진 ‘심지’에 비유되는 것은 아이러니 기법으로, 여호와 앞에서 어느 누구도 능력을 자랑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이와 같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이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류 구속이라는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구원자 되심을 기억합시다.
새 일을 행하십니다!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8절에 이르면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전 일’에 대한 이해는 여호와께서 앞으로 이루실 일을 확신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여기에서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18절의 ‘이전 일’과 ‘옛적 일’이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이사야의 저작을 부인하는 학자들은 이를 제 1 이사야가 예언했던 심판의 메시지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40-55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과거에 예견되고 성취된 사건들을 가리키며, 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16~17절에 언급된 출애굽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존재하게 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출애굽을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지금 행하실 ‘새 일’이 출애굽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새 일’이 임박했음은 ‘지금’이라는 표현과 싹이 돋아 자라는 것을 가리는 동사 ‘타츠마흐’의 사용으로 강조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제 행하실 ‘새 출애굽’은 초자연적인 변화를 동반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광야에 내신 길을 따라 바벨론에서 돌아올 것이며, 그가 사막에 내신 강을 마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사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흥미로운 점은 승냥이와 타조의 반응입니다. 사막이나 폐허가 된 마을에 거하는 들짐승들에게는 광야와 사막에 강이 생기는 것은 서식지의 상실을 의미하는데도, 그들이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언급됩니다. 이것은 부정한 들짐승들조차 여호와를 찬양하는 대열에 참여할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지음 받은 이스라엘이 그들을 위해(참조, 14절) 일하시는 여호와를 찬송하고 영화롭게 함이 얼마나 마땅한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제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애굽의 구원 사건을 그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새로운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새 일’이란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이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속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메마른 사막에 강을 만드십니다. 장차 택한 백성의 구원으로 들짐승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택한 백성의 구속은 피조물들에게도 기쁨이 됩니다(롬 8:21-22).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은 장차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영광의 찬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의 찬양을 올려 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 43: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사 43: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사 43: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2절은 여호와께서 원고 겸 재판장으로 등장하는 재판 장면입니다. 놀랍게도 여기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이 피고로 소환됩니다(참조, 43:10,12).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여호와를 부르지도 않고 오히려 괴롭게 했다고 고발당합니다. 번제와 제물과 소제와 유향, 창포와 희생의 기름으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죄짐’과 ‘죄악’으로 그분을 괴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죄악과 불경에도 여호와는 사죄의 선고를 내리십니다(참조, 40:2; 44:22). ‘나, 나는 그니라’와 ‘나를 위하여’로 표시하시듯, 죄의 용서는 여호와의 비교 불가한 존재와 성품에 근거합니다.
사 43: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사 43: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사 43: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시지만(참조, 1:18) 그들에게는 의로움이 없습니다. 그들의 ‘시조’도 범죄 했고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의 ‘중보자들’, 즉 제사장들, 선지자들, 왕조차 여호와를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시조’를 아브라함으로 볼 수도 있으나 야곱으로 봐도 의미는 동일합니다. 즉 이스라엘 중 의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참조, 창 18:22~33). 따라서 야곱을 ‘진멸’(헤렘)에 내어 주었다는 표현이 나타내듯이 그들은 완전히 멸망 받아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처참한 상황에 처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 죄 사함을 선언하시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죄는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결과입니다. 인간에게 용서 받을 공로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는 부패했고 종교 지도자들도 함께 타락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십니다. 백성을 돌보시고, 놀라운 새 일을 행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우리는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괴로움을 드린 것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과 사랑의 은혜로 우리들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