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른들은 왜 상투를 하였을까? - '상투'의 어원
관례(冠禮)는 유교사회에서 관혼상제(冠婚喪祭) 그 중대한 4례의 하나로서, 나이 스무 살에 치루는 성인식(成人式)이다. 남자는 머리에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는 의식(儀式)으로, 각자가 독립적인 인격체 곧 자아가 태어나는 의식과 다름없다. 관명(冠名)과 자(字)를 받는 날임이 그 방증이다. 관명은 오늘날의 정식 이름인데, 옛날에는 평생을 두고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더불어 함부로 불리는 것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字)를 함께 지어 주며 이름을 대신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름이란 자신의 정체성으로 존중되었다. 하여 관례는 어엿한 어른(성인)이 되었음을 세상에 알리는 독립선언식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중대한 의식에 왜 갓을 쓰고 쪽을 찌는 것으로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冠)은 멱(冖)·원(元)·촌(寸)의 회의자이고, 멱(冖)은 '모자(를 쓴다)'의 뜻, 원(元)은 머리를 뜻하며, 촌(寸)은 손을 뜻하는 우(又)와 같으므로, '손으로 모자를 머리에 쓴다'는 의미라서 모자의 총칭으로 의미가 발전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원(元)은 위[상(上)]를 뜻하는 二와 儿(=人)으로 이루어져 머리를 뜻하는 회의자라는 학설과 '二'는 머리 부분을 가리키는 표시이므로 지사자라는 학설이 있고, '으뜸, 우두머리/ 처음, 시초/ 근본'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한말 '으뜸'은 어떤 얼개이기에 '가장 중요한 첫째'를 뜻할까? 으뜸의 먼저말은 '읏듬, 우둠, 우담(아래 아)'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같은 의미의 '우두머리'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홍윤표 교수는 "18세기 말에 ‘위두다’가 사라지면서 여기에 대치되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읏듬다’였다. ‘읏듬’ 또는 ‘읏듬다’는 15세기부터 ‘위두다’와 같이 사용되었는데, ‘위두하다’가 사라지면서 ‘읏듬하다’로 대치되게 되었다. 그리고 ‘위두’란 명사는 ‘우두’로 변화하면서 마치 고유어처럼 인식되게 되었다." 더불어 나타낸 근거 자료에는 '백(伯), 장(長), 상(上)' 등의 언해(諺解)로써 '위두'와 '爲頭'의 한자어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결국 '爲頭'의 한자어에서 '위두>우두' 나아가 다시 '머리'를 덧붙인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두(頭)는 '두(豆)' 글말의 형성자이고, 두(豆)는 굽이 높은 제기(祭器)를 그린 상형자이다. 그러면 '높은 제기 같고 콩 같이[豆] 두드러진[두] 머리[혈(頁)]'의 얼개이다. 말머리처럼 기다란 머리 아니면 뿔 달린 머리를 나타낸 말일까? 시각을 달리하면, 머리 위에 높은 제기 같고 콩(껍질) 같이 두드러진 것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콩껍질처럼 두툴하고 뿔 같이 달린 '상투머리'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각으로 '위두하다'를 보면, '위로 두드러지게 하다' 또는 '우그리어 두드러지게 하다'의 준말로 볼 수 있다. 즉, '으뜸 되게 하다'와 '상투를 틀다'의 뜻이다. 거꾸로 뒤집으면, 상투머리가 사람의 가장 중대한 첫째를 상징하는 의미로 비유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읏듬'과 '으뜸하다' 역시 같은 시각으로 보면, '으그러 세워[읏] 드린(끈이나 줄을 땋거나 꼰/ 댕기를 단) 머리[듬]를 하다'는 준말임을 알 수 있다. 곧 '위두한 머리(우두머리/상투머리)'의 준말이 '으뜸'이다. '위두하다'가 '읏듬하다'로 대체되며 '우두머리'만 남기고 사라진 이유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으뜸/원(元)을 보면, '위로[상(二=上)] 일으켜(세워)[인(人)] 우그러뜨려 놓다[원]'의 얼개로 '상투(머리)'를 나타낸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첫째를 상징하면서 '처음, 근본'의 뜻도 유추되었거나 '워낙(본디부터, 원래가/ 두드러지게 아주, 원체)'의 준말 '원'에 따라 가차되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글말 '원'을 '우러나오다(생각이나 느낌이 마음속에서 절로 생겨나다/ 눈물이나 소리 따위가 솟아나듯이 절로 나오다)'의 준말로 보면, '위로 우러나와 세워진' 것으로 '볏'를 나타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볏의 상징으로 상투머리를 했다는 뜻이다. 볏의 상징에서 '으뜸(최상)'과 가차에 의한 '처음, 근본'의 뜻으로만 쓰이게 되자, 두(頭)를 만들어 '상투머리'로 구분하였으나 어원의식이 희미해지면서 두(頭) 역시 원(元)과 수(首) 등과 거의 비슷한 의미로 혼용되어 쓰이면서 다시 관(冠)으로서 구분 지었다고 볼 수 있다.
관(冠)의 글말 '관'은 '관솔(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에서 보듯, '옹이가 진' 뜻이고, '과녁, 과판(여자의 머리에 꽂는, 국화 모양의 장식이 달린 꽂이)'와 견주면, '꼬아 놓다' 또는 '꼬자 넣다'의 준말이다. 그러면 관(冠)은 '상투를[원(元)] 마디지어[촌(寸)] 비녀, 옥고(상투를 고정시키는 원통 모양의 장신구) 등을 꽂아 넣어[관] 미어지게(꽉 차서 터질 듯하게) 감싸[멱(冖)]'는 얼개로서, 완전한 상투머리의 전 과정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옥고'의 형태가 점차 '상투관'처럼 커지면서 모자의 총칭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관례(冠禮)에 의해 '어른, 어른 될' 뜻이 유추되고, '갓, 볏, 으뜸' 등의 뜻으로만 쓰이게 되면서 다시 상투(머리)를 뜻하는 계(髻) 곧 '긴 머리칼을[髟] 길하게/ 가지런히 길을 내어[길(吉)] 기어(껴) 니스취다(잇대다)[계]'의 얼개로 나타내어 구분 지었다. 원(元)은 갑골문도 존재하고, 두(頭)는 금문부터 나타나며, 관(冠)과 계(髻)는 소전에서 나타나고 있음이 그 반증이다. 즉, 상투의 역사는 그 유물 - 비녀, 옥고, 벽화(복희와 여와의 그림) 등 - 으로 보면, 갑골문 이전 시대부터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말 '상투'는 본래 '상두(上頭)'의 한자어로 사전은 설명한다. 혹자는 '상두(上斗)'로서 (북두)칠성 신앙의 유속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거나 '솟아 올려[상] 틀어 두드러지게 하다[투]'의 준말로서, 순수 한말 '상투'일 수도 있고, '위두(머리)'를 이두식으로 나타낸 말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