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 수졸설(守拙說)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6. 30. 2:06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한국고전 - 수졸설(守拙說) 인기멤버 2024.06.28. 20:53조회 0 댓글 0URL 복사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수졸설(守拙說) 요약 서종태가 지은 설(說)로, 내 본래의 성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작품해설 조선 후기 문신인 서종태가 지은 설(說)이다. 그의 문집인 『만정당집(晩靜堂集)』 권11 잡저조(雜著條)에 실려 있다. 제목 옆에 ‘신해(辛亥)’라고 부기(附記)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작가나이 20세가 되는 1671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설(說)은 한문학의 한 갈래로서, 현실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양식이다. 우화(寓話)와 비슷하나 동물 뿐 아니라 인간의 현실적인 경험을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본래 성품을 지키고 살아가는 게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일반적인 설(說)과 다르게 이 작품은 생각을 촉발시키는 사건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성품이 다른 사람에 비해 민첩하지 않음을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본 결과, 늘 남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내 성품이 졸렬하고, 손재주도 없기 때문이다. 즉,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어떤 일을 하려면 가늠이 잘 되지 않고, 그러니 사태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망쳐버리거나 아니면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나에 대한 생각이 처음에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장자의 가르침을 공부하고는 이런 생각이 없어져버렸다. 스스로 졸렬한 성품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겉보기 좋고, 날랜 행동이나 생각은 대개가 남을 잘 속이도록 꾸미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깨달음을 얻고서는 내 성품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작자는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하려고 했던 일들을 꼭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즉, ‘나는 나’라는 강한 자존감을 드러내고 있다. 남들이 비록 졸렬하다고 하여도 이는 자연적인 내 성품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작자의 태도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연연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행복한 모습이다. 따라서 이 글의 주제는 내 본연의 성품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라고 하겠다.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 줄거리 내 바탕이 아주 어리석지는 않지만, 재주와 성품은 어리석고 꽉 막혔고, 손재주는 더욱 엉망이다. 늘 무척 쉬운 일을 당하여도 오히려 어쩔 줄 몰라 해결하지 못한다. 헛수고만하다가 겨우 여러 번 물어보지만, 끝내 망쳐버리지 않으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어리석다며 비웃고 일을 맡기지 않고 반드시 “이것은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 역시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한편으로는 매우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속으로 몰래 분발해서 말했다. “비둘기는 제 둥지를 잘 틀지 못하므로 졸렬함을 말할 때는 반드시 비둘기를 들먹인다. 하지만 비둘기조차 그래도 자신의 집은 스스로 얽으니 그 졸렬함이 어찌 나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이에 나 또한 졸렬함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애써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언젠가 『장자』를 읽으니 ‘교묘한 재주를 얻는 이는 수고롭고, 지혜로운 자는 근심한다.’는 말이 있었다. 얼마 뒤 또 ‘기계를 쓰는 사람은 기사(機事)가 있고 기사가 있으면 기심(機心)이 있으므로 기계를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홀가분해서 혼자 기뻐했다. 마침내 마음에 해득하여 말하였다. 내 졸렬함이여 좋구나. 내 졸렬함이여. 어찌 일찍이 내 이익이 되지 않았으랴. 내 졸렬함이 심하고 말이 어눌하지만 더듬지는 않으니, 가히 성현들의 책을 읽을 수 있다. 행동이 둔하지만 손발이 오그라든 것은 아니니 어버이를 위해 일할 수 있다. 손과 발이 활달하고 날래지는 않지만, 내 집을 지키고 끼니를 잇는 데 어찌 방해가 되리오. 지감(知鑑)이 비록 예리하고 재빠르지는 않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건사하기에 어찌 해가 되리오. 그러니 내 졸렬함은 좋은 것이구나. 아. 세상은 진실로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그 혀와 뺨에 수를 놓음으로써 때 맞춰 좋은 것을 취하니 이는 문장에 교묘한 것이다. 넓은 수건과 띠를 두르고 도덕을 희롱하는 말을 하고, 치자와 밀랍으로 윤이 나게 꾸미니 이는 행동에 교묘한 것이다. 부드러운 소리와 아름다운 얼굴빛을 하고 기회를 타서 뚫고 찌르니 귀신도 그 모양을 다 살필 수 없다. 이것은 곧 벼슬에 교묘한 것이다. 때를 살피고 사물을 따라 인색하게 내기도 하고 이익을 거두기도 하면서 오히려 그 털끝만한 것도 놓칠까 걱정하며 하루 종일 편안하지 못하니, 이는 경영함으로써 교묘해지는 경우로서, 교묘한 것을 시원스레 행하며 스스로 좋은 계책이라고 여긴다. 만약 졸렬한 자가 아무리 억지로 그렇게 하고자 한들 될 수가 있겠는가? 아하. 나의 졸렬함이여. 어찌 일찍이 나에게 이로움이 되지 않았으리요. 옛적 소동파는 무늬가 아름다운 표범이 껍질을 벗어버리듯 지혜를 버리라 했고 한편으로는 아들에게 우둔하기를 바랐다. 또 유종원은 교묘함을 구하려고 하였다. 정말 지혜롭다면 어찌 꼭 억지로 그 지혜를 없앨 것이며, 정말 졸렬하다면 아무리 구한들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 사람들은 비록 세변(世變)에 관계되어 울컥 하는 것이 있어 그렇게 말한 것이니, 모두 억지로 고치려고 한 것은 면할 수가 없다. 그런즉 또한 너무 수고롭지 않은가? 나는 이와는 다르다. 대개 타고난 성품을 따라 졸렬함을 지킬 뿐이다. 그래서 설(說)을 지어 내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품요약 내 성품은 졸렬하다. 그래서 어떤 일이건 당하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댄다. 그러다가 일을 망치거나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남들이 모두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이런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장자의 책을 읽고 본성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빠르진 않지만 멀쩡한 사지가 있고, 영민하진 않지만 가족을 건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러면 그만인 것 아니겠는가. 이런 내가 민첩하고 예리하게 되려고 해도 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묘해지기 위해 노력들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니 그냥 이대로 내 성품을 지키고 살겠다. 작품 속의 명문장
대개 타고난 성품에 따라서 졸렬함을 지킬 뿐이다. 자신의 성품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타고난 성품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처럼 되기 위해서 애써도 소용없는 일이다. 오히려 괴로움만 늘어갈 뿐이다.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작품읽기 &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수졸설(守拙說)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노영근, 강명관, 위키미디어 커먼즈)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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