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뉴저지주 프린스턴 [8]
아이는 어쩌면 엄마의 친척으로 우리를 따라 태평양을 건너온 영혼이거나,아니면 엄마가 길가에서 본 죽은 사람 혹은 죽어가던 사람이 아니였을까, 그러자 그특이한 외모는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였다. 문득 나는 그 영가를 머리엔 총상을 입고 썩어가는 살갗엔 곰팡이가 슬기 시작한 어린아일 보게 됐다, 연구 자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였다
어린 영가를 다시 마음속에 그려보며, 나는 대중문화에서 다른 사람이 지각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아이가 육감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처럼 묘사되는 반면, 어른들이 이런 경험을 하면 미쳤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전쟁하면 뭐가 생각 기억나냐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엄마는 텅 빈 눈빛으로 대답했다."산속에서 군인을 보았던 기억이 나. 여자 아이들 군인 여자 아이 무서웠어, 여자가 총을 든다는 건 생각도 못 해봤거든."
엄마는 그 기억에 무척 힘들어하는 듯 했지만, 그게 당신이 목격한 것 중 가장 끔찍한 일은 아니었으리라,아마 다른 일들은 극심한 트라우마로 기억에서 지워져버렸기 때문에, 그 기억이 엄마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게 아닐까.
박사 논문의 한 장으로 나는 기지촌 성노동자라는 존재가 디아스포라 한인 문화예술에 유령처럼 출몰하는 방식에 대해 쓰면서, 노라 옥자 켈러의 소설 『여우소녀』를 읽었다. 196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미국 제국주의 전쟁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두 10대 소녀 현진과 숙희의 이야기다.
숙희는 현진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미군을 상대하는 성매매로 현진을 이끌고 가 거기서 자기를 분리시키는 법을 가르친다, 해야 되는 거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쉬워, 하면 할수록 그게 너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진짜 너는 날아가버리는 거야. 숙희는 현진의 꿈속에 출몰하는 유령이자,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이며, 트라우마의 흔적이다, 우리 엄마에게도 숙희가 있었을까? 그 이름은 옥희인 걸까?
『여우 소녀』에서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는데. 세 명의 혼혈 아이가 미군에게 들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아이들이 이해하는 몇 안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는 "whore[갈보]"다. 그건 자기 엄마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가에서 갈보를 보았네
두꺼비처럼 죽어 있다는 걸 바로 알지.
배에서 머리까지 피부가 다 없어졌어.
그래도 그 여자한테 씹했어, 죽어 있는데도 씹했어.
켈러의 책은 허구적 소설이지만, 내가 학술 연구에서 발견한 내용과 다르지 않아 이 노래가 더 끔찍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엄마일 수도 있는 여성이 살해당하고 강간당한 걸 신나게 노래하는 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또한 나는일본군에 징집된 '위안부'의 비슷한 증언을 읽고 미군과 일분군의 군사화된 성노동 체계의 연속성을 볼 수 있었다. 한 증언에서 옥분이라는 이름의 여성은 열두 살 나이에 납치되어 타이완 ''위안소'에 보내졌다고 했다.
평일 저녁에 우리한테 노래하고 춤추고 바이올린을 켜라고 했어..... 연주를 못하면 매을 맞았어..... 위안소에서의 삶을 노래한 군가가 있었는데 "한여름에 버려져 썩어가는 호박 같은 내 몸" 그런 노래였지.
제국의 군대에 유흥을 제공하려고 데려간 여성이 썩어가는 시체가 군가에서 반복되는 주제라는 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는 날 밤, 기지촌 폭력에 대해 논문을 쓰다가 엄마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는데,연구에서 본 참혹한 이미지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객에게 살해되고 시신까지 훼손되어 허름한 집 방바닥에 놓여 있던 윤금이의 시신 기지촌 노동자 한 명은 미군 병사가 여성의 시신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불을 붙인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슬린 머리카락과 타는 살 냄새.
엄마 방은 천장에 있는 화재경보기의 작은 불빛을 제외 하고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지는 듯 했고, 내 눈을 붉게 불태웠다.
마침애 잠이 들었고, 나는 어두운 방에 갇혀 나갈 문을 찾는 꿈을 꾸었다. 괴로움에 울먹이며 소리치는 내 얼굴이 보였다. "제발! 누가 날 좀 여기서 좀 꺼내줘요!" 그곳이 어디인지 처음엔 몰랐지만, 곧 사창가 업소라는 걸 깨달았고, 정신이 달아난 지 한참이지난 뒤에도, 밖에 있는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때까지, 몸은 그렇게 그곳에 남겨져 있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부가 다 없어졌어.
목소리는 내 머릿속까지 침범했다.
해야 되는 거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들은 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몸에 다시 살을 붙여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그 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