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대로 마옵시고 (사사기 19:27-30, 21:25, 마태복음 26:38-41)
1.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마지막 선택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다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 뜻을 다 알았다 할지라도 결코 죽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33살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함은 우리 모두의 바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나 사양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면, 우리는 죽기 전에,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비결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입니다. 내 뜻이 우선이고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먼저 내 뜻을 포기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사사기의 마지막 성경 구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었다는 뜻은 백성들을 통제할 지도자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는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들의 중심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뜻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겠어요. 옛날에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였지만, 요즘은 사공이 많으면 다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새겨 봅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우리의 입에 담아봅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는 고백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가 먼저입니다.
3. 잠언의 말씀을 두 곳을 읽겠습니다.
잠언 4:22,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살아야 생명이 활기차게 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8: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마음이 상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은 인생의 병과 고통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하면 누가 고치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하면 영혼이 죽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마음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마음을 붙잡는 길이 기도인 것을 보여주십니다.
오늘은 마음이 상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 지를 말씀하겠습니다.
4. 오늘 성경의 한 레위인의 이야기는 성경의 내용 중에 가장 극악한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자기 부인이 죽자 12토막을 냈습니다.
레위인의 이야기입니다.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들 중에는 찬양대원도 있고, 요리사들도 있고, 관리인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둘째 부인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행음을 하고 친정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남편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은 것입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처갓집에 찾아가서 일단 다정하게 말을 하면서 데려오고자 하였습니다. 잘잘못은 집에 가서 따지자는 심사였습니다. 감정이 상했지만 감정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 사정을 모르고 친정 아버지는 계속 더 묵고 가라고 합니다. 5일을 묵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여기고 아내를 데리고 처갓집을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에 사는 노인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들이 사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노인의 집에 손님이 온 것을 알고 동네의 불량배들이 와서 손님을 내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는 것입니다. 앞 뒤 문맥을 볼 때, 여기서 관계란 성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중동지방에서는 자기 집에 온 손님은 주인이 끝까지 보호하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손님을 박대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이 자기 딸도 있고 이 손님의 부인도 있으니 그들에게 욕보이고 내 손님에게는 망령된 짓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운 것을 보자, 레위인이 무슨 속셈인지 자기 부인을 그들에게 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밤새도록 동네 사람들에게 능욕을 당하였습니다.
5. 그리고 동틀 때쯤에 그 집 문 앞에 버렸습니다.
레위인이 자기 부인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문밖을 드나들었다면 부인을 발견하였을 것이고, 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여인은 문밖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레위인이 아침에 일어나 집으로 가려고 문을 여니 아내가 엎드러져있는 것입니다. 흔들면서 집으로 가자고 하였으나 이미 죽은 몸이었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자기 부인을 12토막을 내서 이스라엘 사방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모두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모두 모여서 이 짓을 한 지파와 전쟁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와 그 짓을 한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내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화해시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6. 종종 듣는 말 중에 귀담아 들을 말들이 있습니다. 제가 들은 말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은 말이 있습니다.
동부의 어느 큰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무슨 일로 인하여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좋은 교회가 많은 상처를 입고 교인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1000여명이 모이던 교회가 200여명 남게 되었습니다.
그 후임자가 와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절대로 “지엽전을 전면전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 이것이 불거지기 시작해서 교회 전체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이 이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7. 이스라엘의 내전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 것일까요?
그것은 감정에서부터입니다. 레위인의 부인이 남편의 감정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부인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레위인이 그 감정을 부인에게 화풀이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 불량배들에게 준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하더라도 부인이 언제 돌아오는가 살펴보았다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문 밖을 내다보지 않았습니다.
또 부인이 죽었으면, 어쨌든 죽은 사람이니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면 뒤탈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인이라는 사람이 부인을 12토막을 내서 이스라엘 사방에 보낸 것입니다. 국민 전체의 가슴에 감정의 불을 지른 것입니다. 결국 내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8. 이것이 그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였습니다. 레위인 한 사람의 감정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내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조금이라도 신앙적인 자세를 취하였더라면 그렇게 사건이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여자는 그렇게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한 베냐민 지파는 톡톡히 쓴 맛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의 소견에 옳다고 믿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소견에 옳은 것이 아니라 그의 감정이었던 것입니다.
감정은 2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는 감정이 상하면 마음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 번 상하면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 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성경도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감정은 신앙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도 한이 맺힌 사람은 정한수를 떠 놓고 하늘에 빌고 빌어서 마음을 풀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한다는 것은 기도를 통하여 고쳐야 함을 말합니다.
9.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음이 죽을 지경이니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의 첫번째 자세가 기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내 뜻을 접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도와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의 손길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치유되고 회복되는 내 영혼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기도를 통하여 아픈 내 마음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야지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올해 고난주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문을 닫으라는 것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야기를 닫으라는 것이지요.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오직 하나님의 개입으로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이지요.
10. 어느 미망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남편이 죽은 지 14년이 지나도록 매일 남편의 무덤에 따라 들어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죽기 바로 전에 남편과 싸우고 그가 사고라도 당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남편이 큰 사고를 당해 죽고 만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늘 자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다시 행복을 바라는 것은 죽은 남편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있고 교회를 다닌다 하더라도 마음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크리스천이 비가 오는데 과속으로 자동차를 몰았습니다. 그 결과 동승한 친구가 죽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는 번민하며 자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자기가 운전하던 차를 탔다가 사고가 나서 죽었으니 그 죄책감이 얼마이겠습니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밤에 예배당을 찾았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제단에 걸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내가 어쩔 수 없는 죄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열어주시는 그 빛과 길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1. 한 어머니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생일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예수님의 사진도 넣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께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가 아들의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방도 보고 싶었습니다. 아들의 방에 들어간 어머니는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벽에 예수님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어머니가 선물한 그 사진이었던 것입니다. 전에는 아들의 방 벽에는 온갖 여성들의 비키니 사진이 붙어있었는데 그 사진들은 모두 사라지고 예수님 사진 하나만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예수님 사진을 걸어놓고 보니 여자들의 비키니 사진과 어울리지 않아 다른 사진들은 모두 떼어 버렸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뒤로부터 늘 종잡지 못하던 마음이 차분해 지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종잡지 못하는 마음이 있지요. 누가 우리의 이 마음을 붙잡아 줄까요?
12.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도 그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그 마음을 달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으면 계속 흘러갈 뿐입니다. 흘러가다가 머물 곳이 없으면 그냥 저 넓은 바다 속으로 가버리든지, 아니면 말라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담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 그릇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받아주시고 담아주십니다.
기도하심으로 마음을 잘 지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