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87]살아서 한글편지, 죽어서 한글편지
조선조 두 부부(유희춘-송덕봉, 김삼의당-하립)가 주고받은 한시와 편지 이야기를 본 지인이 살풋 감동을 받았다며 그런 사례가 또 있느냐고 댓글을 보내왔습니다. 유희춘과 삼의당 김씨는 유명짜한 문인이지만, 오늘 소개하는 나신걸과 원이엄마는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 나신걸(1461-1524)은 조선초 하급 무관武官이었답니다. 1490년경 함경도(당시 영안도) 경성 임지로 부임하면서, 아내 맹씨에게 썼던 편지 두 통이 2011년 대전의 한 무덤(맹씨)에서 발견됐습니다. 당시에도 크게 화제가 되었던 이 편지는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친필 원본의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군요. 대전시립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올해 3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돼 기념전시를 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상사의 위압으로 보고 싶은 어머니와 아내, 자녀들을 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떠난다며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며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무관들의 공식의복인 ‘철릭’을 한 벌 보내달라, 그리고 농사일을 비롯하여 세세한 가정사를 잘 살펴보라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아내를 생각하며 분(화장품)과 바늘 6개를 사보낸다는 내용인데, 아내에게 ‘하오’체를 쓴 것도 이색적입니다. 530여년 전 일이지요.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5여년이 지난 시점에 변방의 하급 관리까지 훈민정음을 익숙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시 백성들의 삶과 가정생활, 국어사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지 않겠어요.
# 1998년 경북 안동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굴된 이응태의 묘에서 그의 아내 ‘워느(원이)엄마’가 남편에게 보낸 한글편지가 발견됐습니다. 때는 1586년. 지금으로부터 437년 전.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최초의 한글편지이나, 살아 있는 남편이 아니고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절절한 사부곡思夫曲입니다. 떠듬떠듬(우리글이지만 전문가가 번역하지 않으면 읽거나 이해하기가 힘들다) 손가락을 짚어가면서 읽어가다보면, 감동이 물결을 칩니다. 31세 병으로 요절한 남편을 그리는 지어미의 순수한 사랑. 호칭이 ‘자내’인 것도 이채롭지 않나요?(요즘 쓰는 ‘자네’라는 호칭은 편한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사용하지요). 편지 옆에는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한 켤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편지와 신발은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안동시에서는 동상과 편지석각石刻을 비롯해 아담한‘원이엄마 공원’을 만들어놓았답니다(아직 직접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시지요). 감동의 물결이라니 과장한다고 할 것같지만, 내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자내(남편에 대한 호칭),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했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 자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자내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자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자내를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됴. 빨리 자내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자내를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중략) 아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주세요.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자내는 한갓 그곳에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 적습니다. 내 꿈에 와서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 자내를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읽은 소감이 어떠하신지요? 절절하지요. 애틋하지요? 왜 아니겠습니까? 한국판 <사랑과 영혼>에 다름없지요.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어도 이런 감동을 줍니다. 이게 부부간의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일까요? 잠자리 때마다 팔베개를 해주며 말했다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라고 말이지요. 눈물이 납니다.
제가 이 편지의 사본을 액자표구된 채로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을 15년전쯤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원이엄마 편지구나’대번에 알아봤지요. 그 슬픈 사랑의 편지에 대해 알고 있었거든요. 유리를 깨 꺼내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데, 대학생 30여명 앞에서 이 편지를 보여주면서 “사랑을 하려거든 이렇게 하자”는 말을 하며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이 종이편지가 440여년 동안 썩지 않고, 우리 앞에 나타나 감동을 주는 것이겠지요. 천년이 지난들 썩을 수 없는 편지라 하겠지요.‘뭣 눈에는 뭣만 보인다’는 말이 맞지요. 흐흐. KBS에서 언젠가 다큐멘터리로 방영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조두진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 <능소화>을 읽었습니다. 이응태와 원이엄마의 애절한 부부애를 아주 밀도있게 그린 수작秀作이었습니다. 아무튼, 부박浮薄하고 천박淺薄하기 이를 데 없는(이혼율이 OECE국가에서 최고이고 출산율이 최저라는 뜻에서 말하는 것이니까 오해 없으시길) 요즘의 연애, 사랑, 결혼생활 등과 견주어보면 ‘하늘같은 사랑’ endless love앞에 숙연해질 만한 아름다운 스캔들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