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과 크낙새
瓦也 정유순
광릉(光陵)은 조선조 제7대 임금 세조와 그 왕비 정희왕후 윤씨 능으로 숲의 보호를 위해 풀 한포기의 채취도 금지하라는 왕명으로 지금까지 잘 보호되어 왔으며, 산림은 울창하고 크낙새가 서식할 수 있는 노거수(老巨樹)가 많았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많은 전란(戰亂)을 겪으면서 우리 강토가 많은 전화(戰禍)를 입었으나 이곳 광릉은 전쟁 피해가 거의 없이 보존되어 왔고 산림이 풍부해 자생식물만 900여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릉>
광릉 숲은 경기도 포천시와 남양주시, 의정부시가 연접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1468년부터 세조임금 능의 부속림으로 지정되어 약 550여 년간 잘 보존되어 온 온대지역의 대표적 숲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숲에 산림생물의 연구와 보전, 산림문화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수목원을 1983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1987년에 ‘광릉수목원’이 개원하였고, 이후 보다 체계적인 산림생물의 연구와 수목원 관리를 위하여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광릉 숲 안내도 - 2014년 7월>
이렇게 국립수목원은 광릉시험림의 천연림을 이용하여 수목원을 조성하였다. 수목원 내에는 산림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전시한 산림박물관이 있다. 수목원과 박물관 공사는 1985년 10월 25일에 착수하여 1987년 4월 5일 개장하였고, 뒤를 이어 1989년 삼림욕장을 개장하였고, 1991년에는 산림동물원을 개원하였으나, 숲의 보존이 무엇보다 큰 문제로 대두되면서 1997년부터 삼림욕장을 폐쇄하였으며, 주말과 공휴일 입장을 제한하고 5일 전 예약제를 도입하여 1일 입장객을 5,000명 이하로 제한하였다.
<광릉 국립수목원 온실>
국립수목원은 면적이 1,157㏊이며 침엽수원 관상수원 맹인식물원 등 15개의 전문수목원으로 구성되었다. 수목의 종류는 목본류 1,660종, 초본류 1,323종 등 총계 2,983종이 있으며 이 중 도입종이 963종이다. 산림박물관은 동양 최대의 규모로서 면적이 1,400평이며 자연에 순응한 한국의 전통 양식으로 설계하고, 내부와 외부를 모두 국산 목재와 석재로 마감하였다. 수목원은 5개의 전시실과 표본실, 특별전시실, 시청각실로 구성되어 있다.
<시계꽃>
그러나 광릉을 대표하던 ‘광릉크낙새’는 종적을 찾을 수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광릉크낙새는‘딱따구리과’에 속하는 새로 우는소리가 ‘크낙크낙(또는 클락클락)’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기도 광릉에 국한하여 잔존하는 매우 희귀한 품종의 하나이며,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자연’과목의 시험문제로 출제되기도 한 이 새가 1980년대 중반부터 종적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크낙새 - 네이버캡쳐>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때부터 광릉 숲속으로 들어오면 사람에게만 필요한 시설이 자꾸 늘어나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다. 크낙새가 사라진 이유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광릉 숲속에 지금의 ‘국립수목원조성공사’기간과 딱 맞아떨어지는데 참으로 묘한 오비이락(烏飛梨落)이다. 크낙새는 학술상 보호를 요하는 진귀한 새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만 생존하는 진귀한 새로서 한국과 일본의 육속적(陸續的) 관계를 말해 주는 자료가 된다고 한다.
<국립수목원 습지>
이곳에는 광릉을 관리하던 ‘봉선사’라는 원찰(願刹)이 있다. ‘봉선사(奉先寺)’는 조선 제8대 임금 예종이 부왕(父王)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선왕의 위업을 받들고, 능침을 보호’하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름인데, 고려조 제4대 임금 광종 때 운악산 자락에 절을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부른 것이 봉선사의 전신이다.
<봉선사 전경 - 2014년 7월>
언젠가 이곳에 들렸을 때 이곳에서 시무 중인 어느 스님의 안내를 받아 절 뒤편으로 이어지는 숲속을 거닐며 크낙새의 흔적을 찾으려고 요리조리 기웃 거렸으나 아주 귀한 새라 그런지 종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크낙새가 있었을만한 노거수나 고사목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 포장이 잘 된 임도가 숲속을 가로질러 나있고, 캄캄하게 가렸던 하늘은 뻥 뚫린 기분이다.
<크낙새 - 네이버캡쳐>
세상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무시무종 無始無終)’라고 하는데, 산행을 끝내고 법당에 모여 노래공양으로 유명한 그 스님의 노랫소리는 왜 이리 애절한가. 광릉크낙새의 한(恨)이 사랑으로 응축되어 다시 태어나는 양 가슴을 파고들어 뜨거운 눈물로 뚝 떨어진다.
<봉선사 뒤편의 광릉숲 - 2014년 7월>
광릉 숲속을 거닐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아직도 ‘사람들이 금강산을 만들 수 있고, 새들도 마음만 먹으면 불러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세조의 어명(御命)으로 550여년 이상을 지켜온 광릉 숲이 지금에 와서 사람들의 손때가 너무 묻었고 사람 냄새가 너무 난다.
<광릉 후면 - 2014년 7월>
아무리 손재주가 뛰어나도 ‘자연의 조화’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곳 광릉(光陵)에 영면(永眠)해 계시는 세조께서도 ‘클락클락’하며 매일 문안 인사 올리던 크낙새의 울음소리가 멎은 지 오래되어 혼백(魂魄)이나마 편히 지내시는지 의심스럽다.
<광릉 봉선사 연못 - 2014년 7월>
https://blog.naver.com/waya555/222953937058
첫댓글 와야님!
안녕하세요!
와야님 덕분에
역사공부 잘 하고
갑니다
자주 방문하는
봉선사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답니다
기회되면
광릉수목원과
데크길
봉선사
함께 걸으셔야지요
늘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송이님
잘 계셨죠?
저의 졸필 관심 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봉선사와 광릉수목원
그리고 광릉과 연계하여
걸으면 아주 좋은 힐링코스가 될 겁니다.
기회가 되면 기꺼이 참가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미소 가득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와야(瓦也 정유순) 네
꽃피는 봄에
광릉수목원
리딩하겠습니다
그때
와야님도 함께 하셨습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송 이 꼭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