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호의 미술여행 Ⅱ』
- ▣폴록▣라우션버그▣라파엘로▣해밀턴▣산디 셔먼▣아이크▣다빈치▣고갱▣호가스▣라모스 무덤벽화▣브랑쿠시▣저드▣로댕▣뉴먼▣피사로▣들로네▣코수스▣마르크▣레이놀즈
20-1.잭슨 폴록의 『가을 리듬』 - 자유의 이미지
잭슨 폴록의 ‘가을 리듬’ Number 30, 1950, The Metropolitan Musem of Art
제2차 세계대전은 예술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의 예술가들이 전쟁 전후에 걸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그에 따라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바뀌었고,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라는 감성적 경향의 미술이 등장했다.
사람들이 과학문명의 발달을 가져온 능력으로 무기도 만들어 인간을 살상했던 비극적 상황을 목격하면서 이성적 합리적 사고에 대한 불신 풍조가 생겨난 탓이었다.
그 시작을 연 예술가가 잭슨 폴록이었다. 폴록은 기하학적 추상의 선명한 윤곽선이나 정형적으로 닫힌 형태, 평면적인 색채 등의 특징에 반발했다. 대신 느슨하면서도 빠른 붓놀림, 끊어진 색채 자국과 리듬, 물감의 불균등한 밀도와 채도를 화면 가득 채운 자유분방한 형태의 작품을 제시했다.
‘가을 리듬’은 거대한 캔버스에 복잡한 미로처럼 얽힌 색과 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폴록이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막대기에 물감을 묻혀 뿌리기도 하고, 물감통을 들고 캔버스 안에 들어가 붓고 쏟아내기도 했다. 속도를 늦추면 색선이 굵어지고, 빠르게 하면 색선이 가늘어지며, 더 빠르게 하면 색선이 뚝뚝 끊어지는 식이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을 연상케 하지만 폴록의 작품에서는 칸딘스키와 달리 그림 그리는 예술가의 행위가 강조된다. 폴록은 예술가의 행위가 그림을 그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예술가의 행위가 작품의 구성요소가 되게 했고, ‘액션 페인팅’이라는 용어도 생겨나게 했다.
그후 미국 정부가 나서서 폴록의 작품을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으로 분열된 유럽을 향해 자유의 이미지라는 미국적 경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전했고, 폴록은 미술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경제적·정치적 성장을 이룬 미국이었지만 예술과 문화에서는 아직 유럽에 비해 변방이라는 의식이 작용한 탓도 있었다. 예술과 문화가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의 성장이나 규모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방증이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0.잭슨 폴록의 『가을 리듬』 - 자유의 이미지 / 세계일보, 2019. 10. 18.
20-2.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 - 저 혼돈 속에 패턴이 있다
폴록의 <가을의 리듬>과 프랙털
미국 오리건대학 물리학자 리처드 테일러 박사는 폴록의 그림에서 숨겨진 패턴을 분석하여, 무질서한 듯한 패턴이 실은 ‘질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질서는 ‘프랙털’이었다.
프랙털은 1975년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가 발견한 ‘질서와 혼돈의 중간 지점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자기 복제 유사성이 있는 도형 패턴’을 말한다. 테일러 박사는 1999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이 결과를 발표하여 예술과 물리학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1950년 작).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1942년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예술계의 주목을 받기 전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 표현주의 예술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그저 평범한 화가였다. 그가 현대 미술의 대가로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전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기법을 착안했기 때문이다.
폴록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는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을 최초로 개발했다. 너무나 유명한 그의 기법은 1943년부터 1952년까지 전성기를 맞는다. 당시 미술계는 즉각적으로 새로운 예술의 범주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의 유명세는 미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올 정도였다. 1956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변덕스러운 천재 예술가로서 수많은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고, 현대 미술과 추상 표현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폴록의 대표작 <가을의 리듬>(Autumn Rhythm)이다. 이 작품은 그의 미술적 기술과 감성이 가장 성숙했던 1950년 10월에 제작됐다.
검은색 페인트가 복잡한 선의 골격을 이루고, 흰색, 갈색, 청록색 선이 복잡한 그물을 구성해 시각적 리듬과 공간적 감각을 부여했다. 수평과 수직의 대조적인 선들이 만드는 혼돈과 조화가 특징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비현실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을 풍경의 경쾌한 리듬처럼 색채와 선이 어울려 자연을 연상하게 한다.①
나는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는 동안 현대미술관(MOCA)을 찾았다. 이곳에서 폴록의 작품 <넘버 1>(Number 1, 1949년 작)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관에는 모두 네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중 단연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넘버 1>이다.
폴록의 작품은 실제로 볼 때 감동이 더 크다. 멀리서 보면 복잡하고 무질서한 패턴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서서 보면 다양하고 독특한 패턴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마치 우주 멀리서 지구를 보면 별로 큰 특징이 없지만 가까이 갈수록 지표의 다양한 모습이 보이는 것과 같다. 작고 다양한 패턴들이 모여 큰 패턴들을 이루며 조화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폴록의 드립 페인팅은 당시 전통적인 화법에는 없던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 그림 작업에 이젤, 팔레트, 브러시를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고급 물감 대신 값싼 공업용 페인트를 사용한다. 셋째,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수평적으로 작업한다. 넷째, 색채의 그물로 관찰자의 시선을 끊임없이 이끌어 구성 요소 전체로 초점을 분산시킨다.②
폴록이 새로운 미술의 양식을 개척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나는 폴록의 성공을 그가 예술가지만 ‘과학자처럼’ 물질과 자연을 탐구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는 그 당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과학을 예술 작업 과정에서 ‘직관적’으로 터득했다. 두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그가 물감을 조합하고 제어할 줄 알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자연의 프랙털을 작품에 추구했다는 것이다.
흩뿌려진 페인트서 발견한 물리법칙
일부 미술사학자와 물리학자들은 폴록의 작품이 그저 우연의 산물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보스턴대학 미술사와 하버드대학 수학자로 이루어진 공동 연구팀은 폴록의 작품을 분석하여 그가 페인트를 캔버스 위에 흩뿌리는 방식에서 물리법칙을 찾아냈다.③
연구팀은 빨간 페인트의 흔들리는 선과 소용돌이 모양이 특징인 작품 <무제>(Untitled, 1948~49년 작)를 분석하여, 두꺼운 유체가 로프의 코일처럼 스스로 접히는 ‘코일링’(Coiling)이라는 유체 불안정성 때문에 독특한 형상이 만들어져 있음을 알아냈다.
유체의 형태는 점도와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점성이 높은 액체는 빠르게 움직일 때 직선으로 떨어지지만 움직이는 평면에 천천히 부으면 구겨지거나 로프 형상을 이룬다. 우리 일상생활에선 꿀을 떨어뜨릴 때 바닥에 꿀의 줄기가 돌돌 말리는 코일링을 볼 수 있다.
이 현상을 다루는 최초의 물리학 논문은 1950년대 후반에 나왔다. 하지만 폴록의 1948~50년 작품을 보면 그가 이미 이 모든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폴록은 여러 종류의 페인트를 잘 섞어서 코일링 효과를 적절히 조절했다. 브러시를 사용하거나 페인트를 붓는 대신, 막대로 페인트를 찍어 올려 연속적인 물줄기를 만들어 캔버스로 흘려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팔을 다른 속도로 움직이며 코일링의 양을 알맞게 조절할 줄도 알았다.
폴록의 작업은 물리학자가 유체역학 실험을 하는 것과 꽤 비슷했다. 물질의 특성에 따라 여러 조합을 고려해 최적의 조건을 찾는 과학 실험 같았다. 그는 깨닫지 못했을 테지만, 유체역학을 어떻게 활용할지 ‘직관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폴록은 드립 페인팅 기법을 고안하면서 결과적으로 물리법칙을 활용한 셈이다.
잭슨 폴록의 <넘버 1>(1949년 작).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소장
자연을 닮은 ‘프랙털’ 패턴
미국 오리건대학 물리학자 리처드 테일러 박사는 폴록의 그림에서 숨겨진 패턴을 분석하여, 무질서한 듯한 패턴이 실은 ‘질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질서는 ‘프랙털’이었다.
프랙털은 1975년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가 발견한 ‘질서와 혼돈의 중간 지점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자기 복제 유사성이 있는 도형 패턴’을 말한다.
폴록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는 망델브로가 프랙털을 발견한 때보다 약 20~30년 앞선다. 폴록의 기법이 성숙할수록 프랙털의 복잡성은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테일러 박사는 1999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이 결과를 발표하여 예술과 물리학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④
프랙털은 정수가 아닌 ‘프랙털 차원’을 가진다. 선은 1차원, 평면은 2차원, 부피는 3차원이다. 종이 위에 그려진 프랙털 선은 1차원과 2차원의 중간 차원을 갖는다. 선의 복잡성이 클수록 선은 2차원에 가까워진다.
1943년 폴록의 초기 작품들은 프랙털 차원이 1에 가까웠다. 이후 10년 동안 폴록의 그림에서 프랙털 도형은 더욱 정교해져 차원이 1.7까지 증가했다. 이 결과는 폴록이 프랙털을 숙달하는 데 오래도록 노력했음을 뜻한다.
인간은 1.4 정도의 프랙털 차원에 익숙하다. 자연에 가장 널리 퍼진 프랙털 도형은 1.3에서 1.5 사이의 프랙털 차원을 가진다. 인간의 뇌는 혼돈과 질서 사이에 있는 자연의 프랙털 패턴을 좋아한다.
테일러 박사 연구에 따르면, 프랙털 도형을 보고 있으면 마음과 신체의 생리적 스트레스가 60%까지 감소될 수 있다고 한다.⑤ 프랙털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약을 쓰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예술과 과학은 자연을 추구한다
프랙털은 구름, 번개, 해안선, 파도, 나뭇잎, 강줄기, 은하계 등과 같이 자연의 형태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인간의 뇌는 자연을 닮은 패턴을 편안하게 느끼며 생리적 공명을 일으켜 안정을 찾는다. 프랙털은 자연의 본질이다. 무질서하게 보이는 폴록의 그림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패턴이 자연을 닮았기 때문이다.
물질과 자연을 탐구했던 폴록의 경우처럼, 과학자가 자연의 비밀을 밝히기 전에 예술가가 먼저 자연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은 인간에게 ‘아름다운’ 미적 대상이며 예술가는 ‘본능적으로’ 예술로 자연을 모방한다.
과학자도 자연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이해하고 활용한다. 자연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그 본래 모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예술과 과학의 본질은 같다.
*참고 자료: ①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978. ② https://www.moca.org/collection/work/number-1. ③ A. Herczynski, et al. Physics Today 64, 32-36 (2011). ④ R. Taylor, et al. Nature 399, 422-422 (1999). ⑤ R. Taylor, Scientific American 287, 116-121 (2003) |
[출처] :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 - 저 혼돈 속에 패턴이 있다> / 한겨레신문, 2018. 3. 15.
21.로버트 라우션버그의 『모노그램』 - 나와 다른 남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라우션버그는 제목인 ‘모노그램’이 첫 글자들을 따서 조합해 놓은 문자인 것처럼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주운 재료들을 모아서 작품에 사용했다. 버려진 박제 염소의 배 위에 폐타이어를 끼워 넣고, 주워 모은 나무판자 위에 색을 칠해서 사물과 회화적 요소가 합쳐진 작품을 만들었다.
잡다한 것들을 모아서 결합했다는 점에서 아상블라주라고 불리고, 사물과 물감자국 같은 회화적 요소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콤바인 페인팅이라고도 불린다.
이것도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뒤샹이 소변기 같은 기성품을 사용해서 예술의 부정이라는 메시지를 나타냈다면, 라우션버그는 폐품들 사이에 관계나 형식을 만들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시하려 했다.
그는 일반 사람이 외면하고 무시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찾아내고 부여하려 했다. 라우션버그의 시도 이후 폐품이나 버려진 사물들을 결합해서 예술적 가치를 찾는 정크 아트도 나타났다.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모노그램’
여기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한 사회의 성격이 그 사회에서 버린 쓰레기들을 보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이 조합된 풍경이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암시하려 했다.
Bens De Raiz
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동등한 가치를 갖게 되는 장소라는 뜻도 나타내려 했다. 여러 인종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뉴욕이 그렇고,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충돌하면서 함께 하는 인간의 내면세계도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너무 극단적인 대립만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자기만 있고, 남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온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 중심으로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 어떨까.
이 작품을 보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나와 다른 남도 보면서 내가 외면하고 무시하려 한 것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보려 하고 찾으려 한다면 좀 더 편안한 연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1.로버트 라우션버그의 『모노그램』 - 나와 다른 남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 세계일보, 2019. 11. 1.
22-1.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 바람직한 과거는 되살려야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부활’을 뜻하는 르네상스란 말에는 종교와 신학을 강조했던 중세 1000년 동안 잊힌 고대 문화를 되살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 고대 그리스 미술 정신을 재생시켜 고대의 권위를 되찾자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그 점이 잘 나타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를 되살리자는 의도에서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 모인 수많은 그리스 학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가운데 백발의 플라톤은 하늘을 가리키며 정신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강조하고, 젊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며 감각적인 지상세계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화면 아래 왼쪽에 무언가를 계산해서 쓰고 있는 피타고라스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지구본을 들고 열심히 설명하는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와 그 아래 컴퍼스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기하학의 거장 유클리드도 있다. 모두 전문 분야에 맞는 포즈와 행동을 취하며 열심인데, 유독 디오게네스만이 그리스 시대 기인답게 계단 위에 걸터앉아 사색에 잠겨 있다.
라파엘로가 그림 구성에서 통일성을 이루었기에 그리스 지성의 힘이 더 크게 느껴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인물을 대칭적으로 배치했고, 벽면과 천장의 패널을 원근법적으로 점점 좁혀가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초점을 이루게 했다.
계단 위 인물들이 이루는 일직선과 천장 위의 정점을 연결하는 삼각형 구도가 안정감을 만들어냈고, 배경의 높고 거대한 천장으로 웅장하고 당당한 아테네 학당의 권위도 살렸다.
수능은 끝났지만 수험생들 앞에는 새로운 고민이 놓여 있다. 각 대학이 제시하는 수많은 전형을 놓고 치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갑작스레 정시를 확대한다는 정부 발표가 학생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한다.
미래의 플라톤이나 프톨레마이오스나 유클리드가 될 친구들도 있을 터인데 정부가 나서서 대학 입시부터 혼란에 빠트리고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바람직한 과거를 되살리는 르네상스 정신은 없고, 과거의 모든 것을 바꾸려고만 하는 것이 안타깝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22.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 바람직한 과거는 되살려야 / 세계일보, 2019. 11. 15.
22-2.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성체논쟁
1.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는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이 추구한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미를 완벽하게 구현한 화가이다.
그는 르네상스 만능인(Uomo Universale)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만큼 독창적이고 혁신적이지 못하였지만 두 사람이 도달한 성과를 집약하여 서정적이고 우아하면서도 동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함으로 19세기 전반까지 고전주의 미술의 규범을 이루었다.
라파엘로, 자화상, c.1506, 패널에 유화, 47,5X33cm,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중부 우르비노에서 몬테펠트로 가문의 궁정화가이며 인문학자였던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궁정의 분위기를 접하였으며 움브리아 파를 이끌던 제단화가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6-1523)의 공방에서 도제수업을 받았다.
경건하고 감미로운 화풍의 페루지노는 콰트로첸토 시기 화가들이 몰두한 자연의 충실한 묘사를 통한 감각적인 미보다도 종교적 감성이 스며있는 고상한 미,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였다.
스승의 영향은 ‘종교적 미술과제를 위한 가장 수준 높은 교회적 감각을 지닌 화가‘(헤겔)로 라파엘로를 성장시킨다. 그는 1504년 피렌체에 와서 레오나르도의 구도와 조형을 통한 회화적인 풍요로움, 미켈란젤로의 웅장함과 역동성을 지닌 조각적인 견고함, 브루넬레스키 건축의 리듬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미술이론과 기하학, 도나텔로 조각의 고결함을 수용한다.
2.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재위 1503-1513)는 아비뇽시기를 극복하고 ‘세계의 머리’(Caput mundi) 로마를 재건하려한 선임자들의 의지를 강력하게 계승하였다. 그는 고전주의 미술과 건축의 장려를 통해 고대의 위용을 갖춤으로 로마제국에 버금가는 영광을 기독교 세계의 수도 로마에 재현하고자 하였다.
그가 르네상스 대가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브라만테에게 성베드로 대성당 재건축(1506)을 위임하고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1508)를 제작하게 하였으며 라파엘로에게 바티칸 집무실을 장식하는 벽화(1509)를 주문한 것은 영원한 로마를 재건하려한 일관된 정책의 예술적 표현이었다.
3. 라파엘로의 대표작 아테네학당과 성체논쟁은 화가의 양식과 주문자의 정책이 일치한 경우로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주의 정신의 정수이다.
작품이 그려진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은 교황처소에 있는 개인도서실과 접견실로 사용된 공간으로 르네상스기 이상적인 군주가 지녀야할 인문주의적 소양을 과시하기 위해 궁정에 설치된 스투디올로(Studiolo)와 같은 곳이었다.
서명의 방 네 벽면과 천장에는 신학, 철학, 시학, 법학 등 당시 학문의 네 영역을 주제로 하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작품에 만족한 교황은 연이어 벽화 연작을 주문하였는데 엘리오도르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에 그려진 작품들은 라파엘로의 회화양식이 베네치아 풍의 색채회화에서 미켈란젤로의 해부학에 기초한 인체구조의 표현으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였음을 알려준다.
라파엘로, 아테네학당, 1509-1511, 프레스코, 500x770cm, 서명의 방, 바티칸 사도궁
아테네학당(Scuola di Athene, 1509-1511)은 웅장한 르네상스양식의 건축공간을 배경으로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고대의 철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대칭적으로 배치된 화면구성을 지닌다.
궁륭과 연속된 아치, 도리아 양식의 건축적인 배경은 브라만테의 성베드로 대성당 설계에서 영감 받은 것으로 라파엘로를 로마에 초대한 동향선배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있다.
화면중앙의 입구에서 걸어 나오며 대화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원근법의 소실점에 배치되어 관람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레오나르도의 모습으로 그려진 플라톤은 왼손에 자연에 대한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us)를 들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킴으로 자연/지식의 근원이 이데아/천상에 있음을 나타낸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왼손에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을 들고 오른손을 펴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킴으로 현실/윤리에 관한 학문이 자신의 영역임을 나타낸다.
라파엘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학당 세부, 1509-1511, 바티칸 사도궁
플라톤의 발아래 화면 제일 앞의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한 헤라클레이토스는 팔을 괘고 앉아 사색중이며 그 왼쪽의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조화에 관해 쓰고 있고 오른쪽의 허리를 숙이고 컴퍼스를 든 유클리드는 브라만테의 모습으로 기하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 뒤에는 지구의를 든 프톨레마이오스, 천계를 들고 있는 조로아스터, 라파엘로가 소도마와 함께 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발아래 계단에 기대앉은 이는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이다.
등장인물 각자가 지닌 모습과 행동, 제스쳐로 영혼의 지향성과 내면의 감정을 나타내는 방식은 레오나르도, 도나텔로의 영향이며 인물들의 역동적인 구성과 표현적인 에너지는 미켈란젤로에게서 터득한 것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철학자들이 한 공간에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색, 강의, 토론, 집필 등의 학문 활동을 하는 모습은 절제된 고요속의 묵상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성스러운 대화’(Sacra Conversazione) 도상과 달리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활기를 나타낸다.
고대 철학자들과 동일시된 동시대 미술가의 모습은 중세의 장인에서 르네상스기 인문학자로 격상된 미술가의 지위를 나타내며 동시에 고대와 현대의 대화, 고대의 부활을 의미한다.
4. 같은 방에 그려진 성체논쟁(Disputa del Sacramento, 1509-1511)은 이상화된 풍경을 배경으로 천상과 지상의 영역을 한 화면에 묘사하고 있다. 바닥의 원근법 선의 소실점에 위치한 지상의 제단에 놓인 성체는 천상의 성부와 성자, 비둘기 형상의 성령과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체 주변에는 과거와 현재의 교황과 주교, 성인, 신학자들이 성체의 의미에 대해 활기차게 지적으로 토론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라파엘로, 성체논쟁, 1509-1511, 프레스코, 500x770cm, 서명의 방, 바티칸 사도궁
하지만 논쟁이라는 제목과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는 라파엘로의 원근법적 구도와 인체, 자연을 재현하는 화풍에 의해 고전주의 미술이 지향한 균형, 조화, 비례 그리고 질서와 안정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서명의 방 네 벽면 중 마주보는 넓은 두 벽면에 그려진 아테네학당과 성체논쟁은 분리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한 쌍을 이루는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도상학적 의미체계를 이룬다.
라파엘로, 아테네학당(철학)과 파르나소스(시학), 1509-1511, 서명의 방, 바티칸
라파엘로, 성체논쟁(신학)과 법학과 세 덕성, 1509-1511, 서명의 방, 바티칸
라파엘로, 서명의 방 천장화, 신학, 법학, 철학, 시학(위에서부터 시계방향), 1509-1511
아테네학당에서 플라톤이 오른 손으로 가리키는 진리의 근원으로서의 천상(이데아)은 아직 비어 있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 성체논쟁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사들로 채워진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구약의 예언자들과 고대의 무녀들이 예언하고, 티치아노의 피에타(Pietà)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구약의 모세와 고대의 무녀(Sibyl)가 예언하듯이 고전 고대 철학이 추구한 진리가 기독교의 예견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로써 서구문명의 원류를 이루는 양대 정신사조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종합을 지향한 르네상스 정신의 시각적 구현이 나타나고 있다. 12세기 이후 가톨릭교회의 주류신학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15세기 후반 피렌체를 중심으로 재발견되었던 신플라톤주의 등 철학과 신학의 종합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서명의 방 벽화는 이 세상 것에 대한 지식인 철학이 신성한 것에 대한 지식인 신학과 대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인문주의와 기독교를 결합하여 ‘다시 태어난 로마’를 재건할 수 있다는 이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16세기는 교황청 주도에 의해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이 구현하려한 고전주의와 이상주의적 유토피아와 달리 북유럽과 남유럽, 개신교와 가톨릭 간에 성체를 둘러싼 진정한 토론과 교회의 현실적 개혁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 시대에 진정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현실세계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개혁이었던 것이다. ‘라파엘로 이후’ 교회사에서는 종교개혁(Reformation, 1517)과 로마의 약탈(Sacco di Roma, 1527)이라는 격변의 시기가 그리고 미술사에서는 매너리즘이 도래함으로 이상과 고전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미학이 해체된다.
[출처]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성체논쟁> / Gospel Today, 2020, 5. 30.
23.리처드 해밀턴의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 대중문화와 예술의 힘
리처드 해밀턴의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대중문화 시대 예술가들이 대중과 호흡하는 방법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대중매체 속에서 익숙하게 접한 사물과 사건, 이미지를 사용해서 대중과 예술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의 생동성을 끌어들여 예술작품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순간적이지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야기나 광고 이미지, 사회 속에 만연한 생각이나 디자인을 끌어들여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을 담고 등장한 미술양식이 팝아트인데, 대중문화 본고장인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됐다.
작가들이 좋은 문화를 특권계급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영국과 달리, 모든 사람이 똑같이 즐기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계급 구분을 벗겨주는 평형 장치가 될 것으로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연 작품이 리처드 해밀턴의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다.
헬스클럽의 보디빌더가 팝이라고 쓰인 막대사탕을 들고 있고, 도색 잡지의 여성 모델이 당시 유행한 전등갓을 쓴 채 소파에 앉아 있다. 벽에는 그림 대신 만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창문 너머로 영화 간판이 걸린 극장이 보인다.
집안 곳곳 자리 잡은 녹음기, 진공청소기, TV 등이 당시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물건과 이미지이며, 해밀턴이 그것들로 가득 찬 가정집 풍경을 표현해서 대중문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의미를 전하려 했다. 그 후 미국에서 팝아트가 유행했고,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팝아트 작가들이 뒤를 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할리우드가 있는 LA에서 영화 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한다.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코미디, 풍자, 호러, 비극 등 다양한 장르 혼합 방식으로 표현한 봉준호식 실험적인 시도가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듯이 내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대중영화 본고장을 다시 후끈 달아오르게 할지 기대된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3.리처드 해밀턴의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 대중문화와 예술의 힘 / 세계일보, 2019. 11. 29.
24.산디 셔먼의 『무제(메릴린)』 -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연말
미술에서 차용은 자신의 작품 창작을 위해 다른 곳에서 사용한 이미지나 내용을 빌려오는 방법이다. 그 이미지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그것을 빌린 작가가 덧붙인 새로운 의미가 서로 부딪치게 되고, 결국 작가가 새롭게 부여한 의미가 본래의 의미를 대신하게 하는 방법이다.
산디 셔먼의 '무제(메릴린)'
신디 셔먼은 영화 속에 등장한 여성의 이미지를 차용해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컬러로 된 사진 작품을 만들어 자신의 모습처럼 제시했다. 이 작품에서는 1960년대 여배우의 우상처럼 여겨진 메릴린 먼로의 유혹적인 모습을 흉내 내고, 마치 자신의 자화상처럼 제시했다.
차용해온 영화 속에서 연출된 여성의 역할과 분위기라는 의미를 나타냈고, 그의 자화상이라는 성격도 갖게 해서 두 가지의 충돌을 통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 했다.
어떤 뜻이 있을까. 그는 다른 곳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빌려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미술에 끊임없이 요구돼 온 독창성을 부정한다는 의도를 나타냈다. 미술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창조는 없으며, 지금까지 등장한 것을 가져다 변형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셔먼은 자화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아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의미도 나타내려 했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 이미지가 여성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대중 매체가 만들고 강요하는 여성의 이미지라는 생각을 표현했고, 만들고 꾸며진 이미지에 영향 받으면서 여성의 정체성 자체가 지워지고 있다는 비판적 관점도 담았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는 이야기나 이미지, 인생관이나 세계관 등에 의해서 우리의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한다는 관점도 같이 제시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금 우리는 꾸며진 현실과 이미지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그것들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 한 해 꾸며진 모습의 사람을 보면서 많은 실망을 했다. 반면교사 삼아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나는 어디까지 왔고 어디쯤에 있는지도 생각해 보게 하는 연말이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4.산디 셔먼의 『무제(메릴린)』 -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연말 / 세계일보, 2019. 12. 13.
25.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 불안과 절규의 순간은 흘려보내자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해질 무렵 붉게 타는 노을을 뒤로한 채,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오면서 절규하고 있다.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신경증에 걸린 과민한 환자를 떠올릴 수 있다. 더 큰 의미로는 해가 지고 다리를 건너는 것이 한 세기가 저물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다는 것의 암시적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위협받고 새로운 가치관은 아직 형성되기 이전인 과도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절규하는 한 사람의 표정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이 그림 안에서 19세기 말이란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졌던 불안한 심리와 위기의식을 표현했다.
그림의 구성적 질서나 형식의 완성 같은 조형적인 문제보다 인간적인 고민이나 갈등을 강조했으며, 가식적인 표현을 멀리하고 갈등과 불안감을 솔직하게 표출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는 그림을 의도했다.
빈센트 반 고흐를 연상케 하는 소용돌이 꼴의 선들이 검정 노랑 빨강 색으로 휘몰아치게 했다. 밝은 색채를 사용했지만,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압도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일부 예술가는 세기말의 위기의식과 혼란을 니체의 초인사상이나 바그너식의 영웅적 민족주의 예술관으로 극복하고 나타내려 했다.
하지만 뭉크를 포함한 표현주의자들은 그 위기와 혼란이 인간 스스로에 의해서 초래된 것임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나 비극적 느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려 했다.
한 해의 마지막 주말을 맞았다. 올 한 해 보람찬 일이 있었던 사람, 절규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사람, 새로 일을 시작했지만 만족할 만큼 성과가 없어 불안했던 사람 등 그 모두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제는 불안과 절규의 지난 순간을 흘려보내고 잊어야 할 때다.
지는 해와 함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감정을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태워버리자. 그리고 더 좋은 결과가 있고, 절규가 환호로 바뀌고 불안이 희망으로 바뀌는 새해를 기대해 보는 거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4.산디 셔먼의 『무제(메릴린)』 -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연말 / 세계일보, 2019. 12. 27.
25.얀 반 아이크의『지오반비 아르놀피니 부부의 혼인 서약』
- 새로운 출발과 희망찬 새해가 되길
얀 반 아이크 ‘지오반비 아르놀피니 부부의 혼인 서약’
한 쌍의 남녀가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얀 반 아이크가 메디치 은행원인 아르놀피니의 뒤늦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린 작품이다. 아르놀피니가 왼손으로 신부의 손을 잡고, 오른손을 들어 혼인서약을 하고 있다. 성직자 앞에서 혼인서약을 하는 관습이 만들어지기 전에 치러진 예식행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얀 반 아이크가 그림 가운데의 거울 안에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그 위에 ‘얀 반 아이크 여기에 있다’라는 글도 써놓아 이들의 결혼을 증명하려 한 것 같다. 그림 아래에는 강아지를 그려 놓았는데, 강아지가 충직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결혼서약이 성실하게 지켜질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유화물감 발명자로도 알려진 얀 반 아이크는 북유럽 미술이 중세 고딕 미술의 종교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현실에 충실한 묘사로 향하게 했다. 그래서 종교적 주제가 아닌 일상적인 결혼 장면을 그렸고, 방법에서도 현실감이 돋보이는 사실적인 세밀묘사를 강조했다.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라피엘로가 활동한 피렌체의 방법과는 달랐는데, 전체 구도보다 그림의 세부적 요소에 초점을 두고 정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터럭 하나하나부터 신부의 옷 주름 장식과 천장의 샹들리에까지 모든 부분을 자세히 나타낸 것이 그런 특징을 대변한다.
이런 세밀묘사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현실세계에 충실하려는 생각이 지배했던 북유럽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고, 북유럽의 인쇄술 발달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지금 인쇄술 발달이 낯선 말이 될 만큼 컴퓨터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약속을 하고 지키면서 살아간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약속도 있고, 이해관계가 있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의 약속도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약속은 역시 자신과 약속인 결심이다. 새해가 시작됐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다짐을 한다. 모든 이에게 희망찬 새해가 펼쳐지길 바라며.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5.얀 반 아이크의『지오반비 아르놀피니 부부의 혼인 서약』 - 새로운 출발과 희망찬 새해가 되길 / 세계일보, 2020. 1. 10.
26.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삶 속의 ‘스푸마토’가 그리운 아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파리에 가면 많은 사람이 들르는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고, 꼭 한번씩 보고 오는 그림이 ‘모나리자’이다. 그림 앞에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있어 때로는 그림 구경을 하는 건지 사람 구경을 하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 그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이탈리아가 아니고 프랑스에 있는 것은 천재로서 주변의 질투와 경계를 받았던 그가 말년을 프랑스에서 보냈고, 이곳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그림을 그토록 극찬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림 앞에 서면 그 여인이 실제로 우리를 쳐다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림을 볼 때마다 달라지는 인상과 다양한 해석을 낳기 때문이다.
얼굴의 반쪽을 가리고 왼쪽 모습만을 보면 냉소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한다. 반쪽을 가린 오른쪽 얼굴에 집중하면 온화한 미소를 띤 부드러운 인상이 우리 앞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다빈치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인상을 한 얼굴에 합쳐 놓았기에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에 따라 다른 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효과를 내는 방법 중 하나가 다빈치가 창안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다.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또는 한 색채에서 다른 색채로 이어지는 부분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처리해서 딱딱한 느낌을 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친밀하며 온화한 느낌을 주고, 경계가 명확한 현실의 모습을 넘어 시적인 환상도 불러일으킨다. 화면 안의 빛과 어둠의 변화도 경계를 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결합해서 화면 전체에 흐르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으로 마음이 위축되는 2월의 첫날이다. 다른 한편 다가오는 4월 총선을 향해 벌써부터 대립된 견해들이 달아오르고 있다. 서로 다른 이해타산만 있고, 우리 삶의 향상을 위해서 경계를 넘어서는 부드러운 화해는 보이지 않아 더욱 답답하다.
색채나 형태가 조화를 이루면서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듯이, 경계를 넘어서고 타협하는 삶과 정치의 스푸마토는 볼 수 없는 것일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6.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삶 속의 ‘스푸마토’가 그리운 아침 / 세계일보, 2020. 1. 31.
27.폴 고갱의『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우리는 누구인가?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 봄의 환희를 기다리며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폴 고갱의 화가 인생은 뒤늦게 시작됐다. 증권 중개인으로 인상주의 그림을 수집하며 화가들과 알게 되면서 32살 때 증권 중개인 생활을 접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갱은 처음에는 인상주의 영향으로 화려하고 밝은색을 짧은 붓 자국으로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곧 인상주의 그림이 감각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자연에 봉사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상징주의 경향으로 돌아섰다. 그림이 눈에 보이는 세계를 나타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이념이나 사상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까지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는 이런 경향의 대표적 작품이다. 정신적 가치의 상징과 표현을 추구하면서 고민에 빠졌던 고갱이 자살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다.
타히티 섬에서 보고 신비롭게 느꼈던 원시적인 정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고, 그 안에 삶에 관한 물음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가운데 있는 남자는 삶의 지혜를 제공해 줄 열매를 따려 한다. 그 남자 왼쪽에는 원시종교의 도상이 보이고, 주변에 비탄에 잠긴 표정의 사람들이 있다. 그곳 색채는 조금 어둡게 칠해져 절망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
그 반대편 화면 오른쪽에 있는 여인들의 표정은 상대적으로 밝고 색채도 화사하게 칠해졌다. 어둡고 절망적인 과거의 상황에서 출발해서 인간존재와 삶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하는 현재의 우리가 있고,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환희에 찬 미래로 향해야 한다는 고갱의 생각을 철학적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오늘을 사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한 때다. 마스크를 써야 하고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는 말까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럼에도 치사율이 당초 알려진 4%보다 훨씬 낮은 0.3~0.4%라는 연구결과를 믿고 싶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수가 주춤하고 있다는 소식도 반갑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만 위축된 마음이 풀리는 봄의 환희를 기대한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7.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 봄의 환희를 기다리며 / 세계일보, 2020. 2. 14.
28.윌리엄 호가스의 『난잡한 술자리』
윌리엄 호가스의 ‘난잡한 술자리’
18세기 런던은 더럽고 도둑과 부랑아들로 들끓었다. 영국이 명예혁명에서 시작된 민주사회로 전환기의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미술은 이런 사회에 교훈을 주려 했는데, 당시를 대변한 작가가 윌리엄 호가스였다. 그는 혼란에 빠진 영국 대중을 계몽하기 위해서 교훈을 주는 그림을 그렸다.
대표적인 작품은 연작 형태로 그린 ‘탕아의 일생’이다. 여기서 호가스는 방탕하고 나태한 생활에 빠진 탕아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8장의 그림으로 나타내서 청교도적인 교육을 강조했다.
구두쇠였던 아버지가 죽고 나자 상속자인 아들이 아버지가 모아둔 재산을 쓰면서 다른 삶을 살아가려 한다. 벽난로에 땔감들을 가득 채우고, 양복장이를 불러 새 옷도 맞추며, 사교계에 진출해서 춤과 펜싱도 배운다. 뿐만 아니라 탕아는 건달들과 어울리며 술과 여자에 파묻혀 물려받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다.
‘난잡한 술자리’는 호가스가 그때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술에 취한 탕아가 반쯤 누워 있는 자세로 두 여자에 둘러싸여 있다. 여기저기서 음탕한 남녀의 괴성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그들 모두 화려한 의상을 입고, 퇴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즐기려 한다.
양식적으로는 호가스가 인물들의 다양한 자세를 다채로운 색상과 명암 대비로 담아내서 난잡하고 퇴폐적인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인물들의 성격을 얼굴뿐만 아니라 의상과 행동을 통해서 표현했고, 빛과 색의 배합이나 인물들의 배치도 강조한 점에서 수준 높은 질적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가 물러가고 봄의 환희를 맞을 줄 알았는데 사태가 거꾸로 가고 있다. 전국 어디 한 군데 안전한 곳은 없지만, 특히 대구·경북의 피해가 막심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시대 탕아인 정치인과 요설가들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며 날뛰고 있다.
다른 나라 일처럼 말하는 장관들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반면 아픔을 함께하려는 전국의 의료인들과 성원이 답지한다는 미담도 들려온다. 이 난국이 슬기롭게 빨리 매듭지어지질 바라며 대구 경북 파이팅!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8.윌리엄 호가스의 ‘난잡한 술자리’ / 세계일보, 2020. 2. 28.
29.『라모스 왕 무덤 벽화』 - 이집트 미술과 기하학
라모스 왕 무덤 벽화
고대 이집트 시대 풍요로운 시기를 이룬 한 명, ‘라모스 왕의 무덤 벽화’다. 위는 그가 싸워서 이긴 전투장면을, 아래는 그의 장례 행렬을 담고 있다. 중간은 왕에 대한 기록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전투 승리 장면으로 왕이 죽은 후에도 적들이 침범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고, 장례 행렬에 침대와 의자 등을 그려 넣어 죽은 왕이 영원히 자신들 곁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인물 묘사 방식이 좀 이상하다. 머리와 팔과 다리는 옆에서 본 모습으로, 눈과 어깨와 가슴은 앞에서 본 모습으로 나타낸 점이 낯설다. 사실적 묘사 능력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렇진 않았고, 미술의 기능이나 역할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집트 미술은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형태보다 묘사한 사건과 인물의 형상에 영원성을 담으려 했다. 이를 위해 형태를 되도록이면 명확하게 나타내려 했고, 사물이나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각도로 표현했다. 머리와 팔과 다리의 옆모습과 눈과 가슴의 앞모습이 혼합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혹자는 이런 점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집트 미술이 너무 단순하고 유치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이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려본다면 쉽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비례관계나 균형이 철저히 지켜졌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제작에서 보인 기하학적 질서 감각이 인체 묘사에도 적용됐고, 이런 특징이 지중해를 건너서 그리스 미술에 영향을 주었다.
한 통계학자가 전염병 확산에 대한 통계함수를 근거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내놓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조심스러운 예측이 눈길을 끈다. 확진자가 처음 나온 날짜가 2월 19일,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 3월 초, 그래프상으로 3월 23일부터는 확진자 수가 10명 이하가 되고 잠복기를 고려하면 4월 5일 경 일상을 찾을 거란다. 물론 돌발변수가 없다는 전제에서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9.『라모스 왕 무덤 벽화』 - 이집트 미술과 기하학 / 세계일보, 2020. 3. 13.
30.콘스탄틴 브랑쿠시의 『뮤즈』 - 추상조각, 전통과의 거리 두기
거리두기라는 말이 유행이다. 친구들과 만남이 줄고, 외식보다 배달음식을 먹으며, 강의도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등 익숙지 않은 삶의 패턴이 다소 당황스럽다. 미술에서는 전시대 양식과 거리두기로 새로운 미술이 나타났다.
추상미술도 마찬가지인데, 삶의 내용의 사실적 재현에서 생략과 축약의 과정을 거쳐 추상회화가 나타났다. 조각에서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평생을 보냈던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추상조각의 길을 열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뮤즈’
그의 작품 ‘뮤즈’는 대리석으로 만든 예술의 여신 뮤즈의 얼굴 모습이다. 사실적인 얼굴 형태보다 대리석 덩어리의 양감이나 흰 표면 질감과 색감이 두드러진다. 브랑쿠시는 얼굴과 상반신 일부분으로 짐작되는 흔적만을 나타내서 새로운 조각의 개념을 제시했다.
하나는 전통적인 조각이 부분들을 결합해서 긴장과 대비 같은 갈등의 요소를 보였다면 그것을 제거하려 한 점이다. 브랑쿠시는 구분되지 않는 단일한 형태로 모든 물체의 근원적인 형태를 보이려 했고, 그 안에 생명성과 정신성을 표현하려 했다. 뮤즈의 계란형 형태, 단일체로 된 인간의 몸통, 새나 물고기의 움직임을 단순화한 유선형 형태 등을 강조했다.
다른 하나는 사용하는 재료 자체에 비중을 두고, 내용보다 작품 자체의 형식을 강조하려 한 점이다. 돌은 돌답게, 나무는 나무답게, 쇠는 쇠답게 나타내고 그렇게 보이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이 브랑쿠시의 생각이었다.
전통적인 조각이 재료 자체 이상의 무엇으로 보이기 위해서 꾸미고 다듬어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켰다고 보았다. 조각의 목적은 각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브랑쿠시는 주장했다.
기교에 물든 과거의 조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재료 자체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표면을 고르게 갈아서 매끄러운 질감과 반짝이며 반사되는 빛의 효과도 덧붙였다.
브랑쿠시의 거리두기가 새로운 조각의 길을 만든 것처럼 우리의 거리두기로 잃는 것도 많지만 지금까지 무심했던 새로운 삶의 패턴이 나타날 수 있을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0.콘스탄틴 브랑쿠시의 『뮤즈』 - 추상조각, 전통과의 거리 두기 / 세계일보, 2020. 3. 27.
31.도널드 저드의 『무제』 -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도널드 저드의 『무제』
미니멀 아트는 예술가의 개인적 의도를 최소화한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대표적 조각가 도널드 저드는 이 작품에서 똑같은 크기의 단순한 육면체들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벽면에 설치했다.
기하학적인 육면체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을 뿐 조각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적 관계 구성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예술의 특성을 조금이라고 갖고 있는 걸까? 일상적인 사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많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저드가 미술작품의 모든 의미를 부정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작품의 의미가 너무 예술가의 개인적 의도에 의해 지배받았던 점을 부정하려 했다. 작품의 의미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자체와 관람자 사이에 만들어진 공적 공간에서 나타나는 의미여야 한다는 뜻에서다. 작품 속에 작가의 개인적 의도에 의한 신비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의미란 무엇일까. 저드를 포함한 미니멀 아티스트들은 조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에 대한 체험을 들었다. 단순한 육면체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반복했지만 그것이 놓인 위치, 조명조건, 그리고 관람자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나 각도 등이 달라짐에 따라 형태의 다양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미니멀 아트에 의해서 위치나 조명조건이 작품의 새로운 구성요소가 됐고, 관람자의 참여가 주목받게 됐다. 지금까지 작품 감상에서 관람자가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렀다면,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단순한 작품으로부터 다양한 형태 변화를 체험한다는 점이 부각됐다. 이 점이 작가 중심의 작품에서 작가와 관람자의 상호작용에 의한 작품으로 향하는 미술 경향들로 이어졌다.
다음 주 수요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우리가 나랏일의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는 날이다. 예술에서 참여가 삶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면 선거에서 참여는 우리 삶과 직접 관련되는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 새로운 4년이 우리에게 달렸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1.도널드 저드의 『무제』 - 관람자에서 참여자로기 / 세계일보, 2020. 4. 10.
32.오귀스트 로댕의 『지옥문』 - ‘고뇌의 시간이 잘 지나가겠지…’
오귀스트 로댕 ‘지옥문’
클로드 모네와 인상주의에 의해서 새로운 회화의 길이 열린 것처럼 이 시대의 조각에서도 새로운 움직임과 방향성이 제시됐다. 천재적인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네가 사진 같은 기계적인 묘사나 입체감으로부터 회화를 해방시켰듯이, 로댕은 조각을 기계적인 사실성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를 위해서 로댕은 전통적인 조각의 원리를 부정했는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매끄러운 표면처리를 거부하고 표면에 자국을 남기거나 주름을 잡는 수법을 사용한 점이다.
거친 표면을 그대로 남겨서 미완성이며 생성되어가는 상태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조각의 형태란 무한히 변화할 수 있는 돌 속의 잠재적인 형태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고, 예술가의 영감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는 것임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렇듯 로댕은 돌이나 청동 같은 죽은 물체가 미술가의 손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을 나타내려 했다. 미의 본질은 생명이라는 그의 생각에서였다. 생명을 가장 고귀하고 실감나게 나타내는 방법은 무얼까.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자세나 표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댕은 ‘지옥문’의 인물상들에 인간이 운명적으로 맞이하는 고뇌, 절망, 소외와 죽음 등을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나타냈다. 1879년 파리 공예미술관의 문을 만들기 위해서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착상을 얻어 제작했는데, 완성하지는 못했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나중에 만든 독립적인 작품들의 모체 역할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생각하는 사람’인데, ‘지옥문’에 묘사된 인물들을 대변하듯 인간의 삶과 운명, 절망에 관해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자세로 표현됐다. 사색하는 자세와 근육의 움직임은 삶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역동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고뇌에 찬 표정과 웅크린 자세가 거친 표면처리나 근육 묘사 형식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삶과 운명에 대해 고뇌하는 이 인물상이 작품 중앙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모두 힘든 시기인 지금이기에 새삼 뜻깊게 보인다. 이 시간이 잘 지나가겠지.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2.오귀스트 로댕의 『지옥문』 - ‘고뇌의 시간이 잘 지나가겠지…’ / 세계일보, 2020. 4. 24.
33.바넷 뉴먼의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 - 그래도 조심해야지
바넷 뉴먼의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
바넷 뉴먼은 세로 242센티미터, 가로 543센티미터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화면 위에 붉은색 물감을 고른 밀도로 칠했다. 그 위에 흰색, 검은색, 좀 옅은 붉은 색선을 사용해서 그 색면을 구분해 놓았는데, 단순하고 무의미해 보이며 공허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어떤 주제나 대상에 대한 암시도 없고, 화면 구성을 위한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극도로 단순화한 형태로 회화 평면 자체를 강조했으며, 붉은색 면이 끝없이 펼쳐지는 색채공간의 자유스런 흐름이나 무한성의 공간을 암시하려 한 듯하다. 제목은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이다.
숭고가 무얼까? 18세기 미학에서 미가 아닌 자연과 예술의 다른 가치로 새롭게 주목한 개념이 ‘숭고’였다. 자연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가 화사하고 평온한 자연풍경을 보면서 친화감을 갖고 조화를 느낄 때 쾌의 감정을 갖게 되며, 그 대상을 아름답다고 한다.
다른 경우로 거친 파도에 휩싸인 망망대해나 거대한 산 앞에서 처음엔 위협적인 힘과 크기로 인해서 부조화와 공포의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할 수 있을 때 생명감이나 삶의 의지가 고양되면서 처음의 공포가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찬탄과 감동으로 바뀌는 것도 경험한다. 이때 나타나는 가치가 숭고다.
칸트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찬탄으로 이어지는 이 숭고를 특정 형식이나 이미지로 가둘 수 없다는 점에서 무형식과 무한성의 이미지라고 했다. 그러면 뉴먼 그림의 거대한 크기가 우리 시야의 통제를 벗어나게 하고, 붉은색 면이 무한히 펼쳐질 것 같다는 무한성의 이미지가 숭고와 닮았다는 점이 이해될 것 같다.
살다 보면 공포심과 한계를 느끼는 일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그랬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데서 비롯됐고, 자연이 주는 인간의 한계 각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찾아온 셈이다. 사태가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생활방역이라는 다소 약화된 방식이 얘기된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자연의 위협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니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3.바넷 뉴먼의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 - 그래도 조심해야지 / 세계일보, 2020. 5. 8.
34.카미유 피사로의 『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 긴장과 자유로움의 조화
카미유 피사로의 ‘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
이 그림은 카미유 피사로가 파리의 한 호텔에서 내려다본 ‘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의 모습이다. 차도에는 마차들이 가득하고, 인도에는 사람들이 넘쳐흐른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각자가 다시 바쁜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 서두르는 부산한 모습이다. 싱그러운 가로수의 녹색으로 보아 지금 같은 초여름의 거리 풍경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피사로는 이 모든 것을 나타내는데 어떤 윤곽선이나 원근법적 구도도 사용하지 않았다. 몽마르트르 거리임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들도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형태조차도 구분되지 않는다.
해가 질 때 볼 수 있는 빛과 색의 변화와 그때의 분위기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입체감은 사라졌고, 색 조절로 어렴풋이 나타낸 거리감과 색 간의 뉘앙스가 그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왜 이런 효과가 나타난 걸까.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에 가담했던 피사로는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순색 물감의 붓 자국들이 화면 위에서 동등한 가치를 갖도록 사용했다. 가까이서 보면 색 점들을 나열한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색 점들이 혼합해서 형태감을 만들어 내는 ‘색채분할법’이라는 표현방법이다.
이 방법 때문에 그림에서 윤곽선과 형태보다 색채의 효과가 강조됐고, 평평한 표면의 느낌도 가져왔다. 이전 그림들이 입체감을 위해서 어느 부분은 강조하고 다른 부분은 위축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피사로는 시각적 인상을 담기 위해 모든 부분의 색들을 동등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랑, 녹색, 주황, 빨강 계통의 색들이 중심을 이루며 색 간의 조화와 뉘앙스가 두드러졌다.
화사한 날씨와 생명이 움트는 자연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봄날은 지나간다. 이번 주부터 고등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했다. 집에만 있으면서 답답해했던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각자 바쁜 학교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오래 묶인 생활 속의 긴장과 다시 맞은 자유로움이 조화를 이루며 피사로의 그림처럼 생기 있는 삶의 뉘앙스가 만들어졌으면.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4.카미유 피사로의 『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 긴장과 자유로움의 조화 / 세계일보, 2020. 5. 22.
35.로베르 들로네의 『블레리오에 대한 경배』 - 정말 ‘화성시대’가 올까?
에디슨이 축음기와 백열등을 발명했고, 디젤엔진과 공기타이어가 발명되면서 포드자동차가 대량으로 생산됐다.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지 10년도 안 돼 루이 블레리오가 프랑스 칼레에서 영국 도버까지 영국해협을 건너는 비행에 성공했다.
기술자인 에펠이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하늘을 향해 310여 미터나 뻗은 에펠탑을 건설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산업 자본과 기계시대의 산물이며, 과거에 대한 현재의 승리로 칭송했다.
로베르 들로네의 ‘블레리오에 대한 경배’.
지금부터 100여년 전 과학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급변하는 모습이다. 미술도 변했는데, 예술가들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변화된 사람들의 감성과 의식에 맞는 미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베르 들로네도 그런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에펠탑을 30번 이상 그렸는데, 산업기술의 결정체인 에펠탑이 현대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블레리오에 대한 경배’에서 들로네는 그런 의도를 나타냈다. 에펠탑 주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와 프로펠러와 프로펠러가 그리는 원반을 입체파 방식으로 재현했다. 당시 현대성의 또 다른 이미지는 프로펠러 비행기였는데, 블레리오의 영국해협 비행이 미래의 희망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도 ‘블레리오에 대한 경배’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의해 미래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고, 새로운 사회가 건설된다는 생각이 그림 안에 낙관주의적으로 담겼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에서 착안한 형형색색의 원반들은 모든 사물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암시하는 이미지였다.
블레리오의 비행에 경탄했던 일이 불과 100년 전인데, 일론 머스크가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려 국제우주정거장에 안착했다는 소식이 화제다. 그는 언젠가는 화성에 사람이 사는 식민지를 설립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2년 전 죽은 스티븐 호킹은 인류가 직면한 위협의 하나로 전염병의 유행을 들었고, 인류가 멸종을 피하려면 100년 이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아침! 정말 화성시대가 올까 상상하며 코로나19를 잠시 잊는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5.로베르 들로네의 『블레리오에 대한 경배』 - 정말 ‘화성시대’가 올까? / 세계일보, 2020. 6. 5.
36.조지프 코수스의 『하나 그리고 세 의자』 - 이미지나 언어적 틀 대신 현실을
조지프 코수스의 ‘하나 그리고 세 의자’.
알쏭달쏭한 미술 양식 중 하나가 개념미술이다. 미술작품의 이미지나 형태 구성보다 아이디어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양식이다. 예술가가 어떤 대상을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어떻게 나타내느냐보다 작품을 창작하면서 가졌던 생각이 더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감상자도 작품의 외형적 형태보다 그 이면에 있는 예술가의 생각을 읽어내야만 한다.
그렇다고 작품 제작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의 아이디어만 읽힌다면 어떤 재료나 방식이든 상관없고, 시각적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완성된 것과 똑같다는 창작 이론에 의한 것이다. 지금까지 미술작품이 감각적 형태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면, 이제부터는 비물질적 속성도 주목하자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조지프 코수스를 들 수 있다. ‘하나 그리고 세 의자’에서 코수스는 실제 의자를 바닥에 놓고, 한쪽 벽에는 의자 이미지를 붙였으며, 그 옆에 사전에 있는 의자의 언어적 정의를 붙였다.
이 작품에서 그가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이미지와 사물이라는 형태로 의자를 설명하려 했다고 이해한다면, 너무 소박한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런 시각적인 형태에서 떠난 미술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코수스는 우리가 의자라고 생각하는 실체가 과연 무엇에 의한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실제 사물에 의한 것인지, 의자 이미지에 의한 것인지, 의자의 언어적 설명에 의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나아가 의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실체에 대한 생각을 이런 방식으로 해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금년의 절반에 다가가는 주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답답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지금 우리 삶의 중심은 어디에 놓였을까? 현실을 이미지처럼 대하고 만들어진 이미지로 현실을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만의 언어적 틀에 갇혀 사고하면서 주변과 한치 앞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중간 점검이 필요한 때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6.조지프 코수스의 『하나 그리고 세 의자』 - 이미지나 언어적 틀 대신 현실을 / 세계일보, 2020. 6. 19.
37.프란츠 마르크의 『작은 노란 말들』 - 과학기술의 양면성
프란츠 마르크의 ‘작은 노란 말들’
노란색으로 칠한 이상한 말 세 마리가 있다. 머리는 셋인데 몸과 엉덩이가 잘 구분되지 않고, 곡선 형태로 서로 뒤섞여 일체감을 이루고 있다. 배경의 구름이나 산과 마을도 신비로운 느낌의 색채로 표현되어 현실세계를 초월한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청기사파 표현주의자인 프란츠 마르크의 작품이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표현주의는 19세기 말 사람들 사이에 퍼진 사회적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그 위기가 인간 스스로에 의해서 초래된 것임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겪는 고통이나 비극적 느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려 했다.
표현주의는 두 단계로 진행됐는데, 다리파 표현주의는 독일 시골 작은 도시인 드레스덴의 투박한 성격과 유사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색채와 형태들을 거칠게 표현했다.
이에 비해 청기사파는 그 중심지인 뮌헨의 국제도시 분위기 영향으로 보다 세련된 형식의 추상적 표현주의 경향으로 향해 나갔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 눈에 보이는 세계 이면의 힘을 신비적으로 나타내려 했다. 마르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마르크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과 자연세계 너머 불가사의하고 원초적인 힘을 표현하려 했다. 인위적이며 합리적으로 구분되고 이성을 통해 정리된 형태를 피하려 했고, 그렇게 구분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형태로 나타내려 했다.
그래서 세 마리 말들이 서로 뒤섞여 일체감을 이루게 했고, 색채에서도 자연에서 볼 수 없는 신비스런 느낌을 강조했다. 자연의 불가사의함을 암시하기 위해서 구성과 색의 선택에서 상상력을 발휘했다.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지금도 많지만 양면성이 있는 듯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가 하면 다시 번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과학의 한계를 생각하게 한다.
반면 온라인으로 한 학기 수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 덕택이다. 일회로 그치는 현장수업보다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표정을 보면서 갖는 인간적 교감이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과학기술의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7.프란츠 마르크의 『작은 노란 말들』 - 과학기술의 양면성 / 세계일보, 2020. 6. 19.
38.조슈아 레이놀즈의 『비극의 뮤즈로 분장한 시돈즈 부인』
- 두려움, 미움, 그 후의 연민
조슈아 레이놀즈의 ‘비극의 뮤즈로 분장한 시돈즈 부인’
이 그림은 조슈아 레이놀즈의 후기 작품으로 초기의 고전주의 원칙이 다소 완화됐다. 그가 네덜란드를 방문하면서 바로크 풍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후에 그렸다. 여인의 뒤 배경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중요한 요소로 본 공포와 연민을 상징하는 인물을 오른쪽 왼쪽으로 나누어 그려 넣었다.
시돈즈 부인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술의 신 뮤즈에 비유해서 표현했고, 그녀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여인의 모습을 고대 그리스 규범을 참조해서 나타낸 점이 고전주의적이지만, 시돈즈 부인의 동적인 자세와 강한 명암대비는 바로크 풍의 극적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색조 구성에 있어서 갈색 톤을 차분하게 전개시키며, 시돈즈 부인의 얼굴 표정, 팔 동작, 옷깃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점도 마찬가지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여인의 모습 위에 명암대비를 강조한 렘브란트 풍 바로크 미술 경향을 결합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레이놀즈는 영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18세기 영국 상류계급의 귀족적 취미를 만족시킨 화가로 평가된다. 영국 왕립미술원의 초대 회장이 되어 아카데믹한 이론들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주제를 숭고하고 엄숙하게 나타내는 미술만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 화가는 손재주 이상의 학식과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그림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이론을 끌어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작품이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관객들이 처음에는 공포나 증오처럼 불편하고 고통스런 감정을 갖다가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그런 감정에서 해방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 연민의 감정은 일종의 쾌의 감정과 통한다는 주장이다.
두려움과 미움의 감정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측은해하는 연민으로 바뀌고, 불편함과 고통에서 벗어나 후련한 해방감에 이른다는 것이다. 비극작품만 그럴까, 우리 현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8.조슈아 레이놀즈의 『비극의 뮤즈로 분장한 시돈즈 부인』 - 두려움, 미움, 그 후의 연민 / 세계일보, 2020. 7. 31.
[출처] 『박일호의 미술여행 Ⅱ』 - ▣폴록▣라우션버그▣라파엘로▣해밀턴▣산디 셔먼▣아이크▣다빈치▣고갱▣호가스▣라모스 무덤벽화▣브랑쿠시▣저드▣로댕▣뉴먼▣피사로▣들로네▣코수스▣마르크▣레이놀즈|작성자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