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속에 살고 있는 / 이근화
할머니는 이제 없지만 엄마의 몸속에 할머니가 다시 살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낳아 내 몸속에 엄마가 다시 산다면 내 몸속에는 할머니도 있고 엄마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 눈빛은 나만 보는 것이 아니고 내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만은 아닐 것이고 내 팔다리에도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몸속에 살고 있는 수없이 많은 엄마들이 함께 웃고 울고 하는 것 아닐까
외로워도 외로운 게 아니다 혼자이지만 혼자일 수가 없다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 시집 『슬픈 삼각형 웃긴 삼각형』 (창비, 2024.09) ------------------------------------------
* 이근화 시인 1976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학과와 고려대 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차가운 잠』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나의 차가운 발을 덮어줘』 등. 2009년 윤동주문학상, 2010년 김준성문학상, 2012년 현대문학상, 2018년 오장환문학상, 2024년 지훈문학상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
나는 아파도 참을 수 있는데 자식이 아픈 것은 참기 좀 힘들다. 내가 힘든 건 해결할 수 있는데 자식이 힘든 건 방법이 없다. 아프고 힘든 아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엄마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기도가 나의 모든 힘을 끌고 나와서 아이에게 들어갔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내 어머니가 지금의 나와 같았다. 그녀는 내가 잠든 방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딸아이 방문 앞에 엎드릴 때 나는 혼자 있지 않다. 여기 없는 내 어머니가 나와 같이 있다. 아이야, 엄마와 할머니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아이야, 이겨내라. 부디 힘을 내라.
이근화 시인의 시를 보고 한참을 울었다. 이 시가 슬퍼서가 아니라 고마워서 울었다. 혼자이지만 혼자일 수가 없다는 말을 나는 여태 기다렸다. 내 몸속에 나를 도와주는 엄마가 있고, 엄마의 엄마가 있다는 말을 기다렸다. 간절히 기다렸더니, 시인이 알고 보내준 느낌이다. 덕분에 오늘 밤에는 조금 더 오래 엎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모든 힘든 엄마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혼자가 아니라고, 다른 엄마들이 있다고. 같이 사랑하고 있는 엄마들이 있다고. 우리에게는 기도를 바칠 자식이 있다고.
- 나민애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