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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지만원 박사가 저술한‘솔로몬 앞에선 5.18’및 다수의 동영상등과 편저자 이홍직 박사가 집필한 ‘한국사대사전’등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임
[5.18과 6.25]
<서론>
☐ 우리나라 전쟁역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전쟁 및 변란 등이 매 40-50년 마다 발발하고 있는바(교련선생님의 수업중 강의내용)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및 국민들은 이러한 사항을 인식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임
☐ 6.25의 경우 발발이후 65년이 지났는데 사상자가 수백만명에 달하였고 현재까지도 적대국가로서 북괴의 침략행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만나서 면담을 하기에 이르렀음
☐ 5.18의 경우 발발이후 35년이 지났으며 사망자가 193명 정도에 달하였고 현재까지도 추모식이 이어지고 있음
o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돌아가신 영령들을 잊지 않고 추모하되 여태까지 5.18을 이용하는 행위가 잔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사라져야 할 것임
□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합리적 진보와 양심적 보수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철학이 내재된 정책 대결의 장을 펼쳐야 하는바, 진정한 정치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이며, 갈등의 조정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임
⇒ 이제는 지역구도 및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영․호남등 모든 지역의 국민과 정치인 모두가 정책대안을 합리적으로 숙고, 평가 및 참여하는 정치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임
<우리나라의 당면과제>
□ 우리나라는 기존 선진국에 비해 훨씬 짧은 기간에 선진국 못지 않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냄으로써 세계가 놀라고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
o 이제는 경제성장률 증가, 고용창출, 물가안정, 무역수지 흑자폭 확대 등 거시변수 뿐만 아니라 미시변수인 저소득층 및 노령층에 대한 복지를 가능한 범위내에서 늘려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할 것임
□ 21세기 들어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을 하였으나, 필연적 속성인 빈부격차의 심화, 경제적 약자의 퇴장 및 강자의 독식 등은 한국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중산층의 퇴조와 함께 빠르게 진행되었는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인, 관료, 기업인, 가계 등 모든 국민이 중지를 모아 대처하여야 할 것임
* 세계화에는 이른바 글로벌스탠더드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음. 글로벌스탠더드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의 삶을 규율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을 마련하고자 하는바, 즉, 투명한 경영, 공정한 경쟁, 규제완화(금리자유화, 무역자유화, 외환자유화, 자본자유화), 민영화 등이 세계화가 추구하는 가치들임
[5.18관련 사안]
<광주사람들의 정서와 관련한 사안>
□ 미 헤리티지재단 아시아 연구센터가 발표한 '남한의 광주사건 재조명'이라는 보고서(1985년 9월 16일 발간)의 내용
o 5.18이 악화된 데는 지역감정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이는 데 광주사람들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 등에 따라 수백년 동안 중앙정권에 의해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함
* 훈요십조(訓要十條); 고려 태조가 그의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유훈으로서, 국가의 대업이 제불(諸佛)의 호위와 지덕(地德)에 힘입은 것임을 말하고, 사사(寺社)의 쟁탈 및 남조(濫造)를 금하며, 연등(燃燈)과 팔관(八關)의 주신(主神)을 함부로 가감치 말며, 왕위는 적자적손(嫡子嫡孫)의 계승을 원칙으로 하되 원자(元子)가 불초(不肖)할 때엔 그 형제중에서 인망이 있는 자를 택하고, 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본받지 말며,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대업만대(大業萬代)의 땅이니 중시하되 차현(車峴 : 車嶺) 이남 공주강(公州江 : 錦江) 외의 산형지세(山形地勢)는 배역(背逆)하여 인심도 그와 같으므로 등용치 말라는 내용임
o 특히 다수의 전라도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전라도를 차별하고 경상도에만 혜택을 주었다고 말함
o 이어서 격돌이 발생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체포*하는 등 계엄확대가 처음부터 전라도를 표적으로 한 조치였다는 오해가 퍼져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됨
* 5월 15일 10만 이상이 모인 서울역 집회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재야세력들은 제2차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하면서, 5월 22일을 기해 전국 봉기**를 일으켜 국가를 전복시키겠다는 최후통첩인 선전포고를 공개적으로 함에 따른 것임
** 경찰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국민들을 향해서 5월 22일을 기해 검은 리본을 달고 전국적으로 봉기하여 정부를 전복할 것과 군인들을 향해서는 명령에 복종하지 말 것을 선동
o 소요 첫날부터 루머가 돌았는바,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을 죽이러 왔다는 것이었음. 첫날에는 사망자가 전혀 없었지만 이날 소문은 40명이 죽었다고 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처형됐다는 소문도 돌았는바, 시민들은 이 뜬소문을 믿고 시위에 동참했음
- 2007년 개봉된 영화인‘화려한 휴가’에서 공수부대가 수송기에서 내릴때 지휘관이 전라도 사람들을 70% 죽여도 좋다고 지시하는 것이 나오는 데 전혀 그렇지가 않은바, 전남대에 파견된 공수부대는 전북 금마에 있던 7공수여단의 1개대대(220여명 정도)였고 그 40%가 호남출신들로 구성
- 한편, 광주시민들은 차량 번호판을 보고 경상도 차량이면 방화를 하고 운전자를 타살하였으며 경상도 사람들이 운영하는 상점을 불태우기도 한 것으로 알려짐
o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은 군인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난사한 것에 의해 일방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쌍방의 중무장한 무력집단간의 격돌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였음
□ 광주의 한풀이 측면
o 황oo 저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에는 '전라도에는 동학농민전쟁에서 의병으로 또한 광주학생반체제운동등으로 이어지는 민중운동의 전통과 맥락이 혈연적으로 실존하고 있었다......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이루어진 매판정책 추진과 불균등개발로 인하여 호남푸대접이라는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의식이 만연했다.....가난하고 불우한 집에서 법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내 고장에서도 인물이 하나 나와야 한다는 민중적 열망이 간절하던 차에 전남의 대중적인 영웅인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출마하여 좌절당하고 고난을 받은 데 대한 반작용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음
o 5공시절 직선제 개헌이 발의된 이래 정권의 선순환을 거쳐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본인의 한풀이를 한 동시에 다른 광주사람들도 한풀이를 한 측면이 있다고 사료됨
<광주와 전두환 대통령> - 상생의 길(win-win) 추구
□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바, 5.18 이후 35년이 되었음. 그사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10년간 정권을 잡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였는바, 이제는 광주사람들도 승자로서의 인식과 안목을 가지고 그 역할을 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함
□ 우리나라는 무었보다도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하는바, 지역감정을 없애고 건설적인 비판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및 국민 모두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끌어 나아가는데 기여하여야 할 것임. 국민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임
□ 특히 국민통합을 위하여 정치 지도자들의 공과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인바, 광주사람들도 전두환 대통령의 치적과 관련하여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우리나라 역사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기여한다면 국민통합을 통하여 서로 잘사는 상생(win-win)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함.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영광을 우리나라의 모든 후손에게 물려 주었으면 좋겠음
* 중국의 경우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오쩌둥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역사적 과오만 들춰내지 않았다. 그는 집권과정에서‘마오쩌둥의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명예를 지키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부로 옹립하는 역할을 수행
<전두환 대통령을 국부로 추대하기 위한 제언>
□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달성
o 원유가격이 급상승하여 물가가 상승하자 장바구니 물가를 매일매일 점검토록 하여 물가를 엄정하게 잡으셨습니다. 또한 연평균 약 10%의 고도의 경제성장(GNP 기준 180억 달러에서 600억 달러로 성장)을 구가토록 하였으며 사상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시현토록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음
o 그리고 1세기에 한번 열릴까 말까하는 올림픽을 유치하심으로써 우리나라의 명성을 세계 만방에 떨치셨는바, 특히 종전과 달리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모두 참여하는 지구촌 전체의 축제의 장을 마련하심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 속으로 웅비하기 위한 중차대한 발판을 마련하셨음
o 특히 전두환 대통령께서 단임정신에 입각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후 6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음. 5년마다 대통령을 선출함에 따라 정권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국력의 신장과 민생의 안정을 이룩하셨음
o 우리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크나 큰 치적과 공덕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칭송하며 받들어야 하겠음
⇒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를 향하여 우리들은 우리들의 후손을 위하여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아가 강대국으로 약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두환 대통령을 국부로 추대하여야 하겠음
※ 이 글은 ‘한국사 개념 사전’과 6.25전쟁 60주년 사업위원회가 인터넷에 올린 ‘6.25전쟁 인명피해 현황’등의 내용을 발췌 ․ 요약 한 것임
[6.25관련 사안]
<배경>
□ 남북간의 적대감 고조
o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38선을 경계로 한 민족에 두 개의 국가가 세워지면서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바, 남북은 서로 경쟁하며, 같은 민족이라기보다는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음
□ 소련 및 중국이 북한의 남침을 도와주기로 약속
o 1949년 3월, 김일성 및 박헌영 등 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평양을 떠나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의 지도자들과 만났는데 이때 소련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는 것에 동의하고, 긴밀한 협력을 약속
o 김일성은 이어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과 만나 남침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는바, 중국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인 부대를 귀국시키고 보급품을 공급하겠다고 약속
o 1948년 12월, 소련은 북한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미국에게도 남한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는바 1949년 6월, 미군이 철수하자 북한의 전쟁 준비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음
<경과>
□ 북한군의 진격 (1950.6.25)
o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38선 전 지역에서 총공격을 개시하였는데 그 전에도 38선 부근에서 종종 크고 작은 군사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 시민들은 38선에서 또 전투가 벌어졌나 보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바, 그 사이 북한군은 서울을 향해 밀고 내려왔고 전투가 시작된 지 사흘 만에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되었음
□ 유엔군의 참전 (1950.7.17)
o 마음이 다급해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여 미국은 빠르게 남한에 군대를 보냈고, 유엔을 움직여 유엔군도 파견하였는바 미군이 개입했지만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까지 밀렸음
o 그러다 9월 15일 새벽, 미군이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면서 9월 28일에는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음. 서울을 되찾은 이후 1950년 10월 1일 북진을 시작한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하고, 10월 26일 압록강에 당도
□ 중공군의 개입 (1950.10.25)
o 압록강까지 밀린 북한군이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자, 중국은 18만명의 중공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섰는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음
o 1950년 12월 10일 평양이 다시 중공군의 손에 들어갔고, 1951년 1월에는 서울이 다시 북한군의 손에 들어 갔음
o 그러나 국군과 미군은 우월한 무기를 앞세워 다시 북한군을 몰아붙였고, 3월 5일에 서울을 재탈환
□ 치열한 전투와 휴전 (1951.3 ~ 53.7.27)
o 1951년 3월, 38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는데 전쟁 1년 만에 전선은 다시 최초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임
o 남북한은 물론 미군이나 중공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휴전의 필요성을 느꼈는바 2년 동안 계속 휴전 회담이 이뤄지고 있는 동안에도 산봉우리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계속되었음
o 그 전의 전투에 비해 이 시기의 전투가 가장 치열해서 사망자도 많았는데 결국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맺어졌고, 맞서 싸우던 전선은 휴전선이 되었음
<사상자수>
□ 국군 및 유엔군 사상자등
o 전사/사망 178,569명(유엔군 40,670명)
o 부상 555,022명(유엔군 104,280명)
o 실종 28,611명, 포로 14,158명(유엔군 실종 및 포로 9,931명)
⇒ 총계 776,360명(국군 621,479명, 유엔군 154,881명)
□ 군인 및 민간인 사상자 수백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
□ 이산가족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
* 무명용사의 절규(1)
내가 못 이룬 소원
내가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조국을 위해
대신 물리쳐 다오
(이는 1980년 전우신문에 게재된 6.25때 전사한 한 무명용사의 글임)
* 무명용사의 절규(2)
길가에 민들레도 노랑저고리
첫돌맞이 우리아가도 노랑저고리
아가야 방실방실 웃어보아라
민들레야 방실방실 웃어보아라
(이는 우리나라 동요가 되었는데 무명용사가 전장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갓 돌을 맞이한 아기가 죽자 슬픔에 젖어 절규한 내용임)
* 애창 군가 ‘용사의 다짐’게시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바쳐 / 충성을 다하리라 다짐했노라 / 눈보라 몰아치는 참호속에서 / 한 목숨 바칠 것을 다짐했노라 / 전우여 이제는 승리만이 / 우리의 사명이요 갈 길이다
<결론>
□ 6.25발발 이후 60여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북한측의 전략 및 전술과 태도 및 대응은 전혀 변한 것이 없는바, 서해교전, 연평해전, 천안함 피폭 및 연평도 포격등을 일삼고 핵무기 개발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으며 뻑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등의 협박을 일삼고 있음
□ 이에 우리들은 온 국민이 합심하여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여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안보라는 점을 잊지말고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드높여야 할 것인바 안보 없는 경제는 모래위에 쌓은 성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임
* 끝으로 한 기도문을 보고 적어 봅니다.
주님!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시여
당신앞에 드리는 제 입의 말씀과
제 마음의 생각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은 맑아서 눈에 빛을 주네.
당신의 종도 이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뜻 아니한 허물을 누가 알겠습니다?
숨겨진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해 주소서.
주님,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시여
당신앞에 드리는 제입의 말씀과
제 마음의 생각이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첫댓글 지만원박사님은 대한민국 에 최고의 애국자입니다. 안타까운 대한민국앞날이걱정됩니다.좋은글잘읽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