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화요일 강론>(2024. 10. 8. 화)(루카 10,38-42)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 말씀을 잘 듣고 실행하는 것이 잘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38-42)”
1)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르타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마르타만 바라보다가, 또는 마르타가 한 일만
바라보다가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먹이려고 오신 분, 목자이신 분입니다.
목자가 양들을 먹입니다. 양들이 목자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10).”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ㄴ-38)”
<목자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아먹는 양들이,
즉 ‘말씀’이든지 ‘성체’든지 간에,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아먹는 사람들이 ‘착한 양들’이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이고, 주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2) 마르타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이고, 예수님께
드릴 음식을 준비하려고 애쓴 일은 훌륭한 일입니다.
마르타는 순수하게, 아무런 사심 없이, 예수님을 좀 더 잘
섬기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분명히 그랬는데,
나중에는 ‘일’만 생각하느라고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라는 말은,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분주하였다.’ 라는 말은, 마르타의 마음속에 ‘일’만 있고
예수님은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라는
말도, 마음속에 ‘일’만 있고 예수님은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마리아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 말은, 도와주지 않는 동생과 모든 것을 ‘보고만 계시는’
주님을 함께 비난하는 말입니다.
<마르타는 자기가 모셔 들이고 잘 접대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바로 그 주님을 비난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3)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라는 말씀에서,
‘많은 일’은 ‘너무 많은 음식’을 뜻할 수도 있고, ‘물질적인
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일’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라는 말씀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가리키고, 이 말은 예수님,
또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뜻합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당신이 주시는 것을 잘 받는 것이 곧
당신을 잘 섬기는 일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라는 말씀은, 마리아는
주님을 잘 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
영원한 것, 가장 고귀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중단하고 너도 여기 와서 내 말을 들어라.” 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하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도
아니고, 먼저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4) 주님께 무엇인가를 잘 바쳐야만 주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2사무 7,2)”
다윗은 성전을 지어서 바치는 것이 하느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가 성전을 짓는 것을
막으셨습니다(2사무 7,4-17).
하느님께서 바라신 것은 성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충실한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은 나중에 솔로몬이 짓게 되는데,
솔로몬은 성전 봉헌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1열왕 8,27)”
하느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위해서
지었다는 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1열왕 8,28-30).
주님께 무엇인가를 잘 바치는 것이 주님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들은 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주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1열왕 9,4-9).
[출처]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당신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은,
영원한 것, 가장 고귀한 것이라는 뜻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