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저녁놀 / 김선영
타는 노을 속으로 지나가는 새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나는 검게 탄 숯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다 마악 하늘이 손을 내밀어 불가마에서 꺼낸 화상 하나도 없는 흰 살의 백자 항아리 고이 서편으로 모셔가고 있다
- 시집 『그림 속 나무』 (서정시학, 2024.09) ------------------------------ * 김선영 시인 1938년 개성 출생, 1957년 1회에서 1962년 3회 추천까지 미당 서정주 선생 추천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라일락 나무에 사시는 하느님』 『밤에 쓴 말』 『환상의 문지기』 『풀꽃제사』 『허무의 신발가게』 『사가』 등 시선집 『그리움의 식물성』 『누구네 이중섭 그림』 『달빛 해일』『달을 빚는 남자』 수필집 『순결한 예술가의 초상』 『사랑은 마주 울리는 메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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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의 타는 듯한 저녁놀에서 시인은 항아리를 굽는 가마를 상상한다. 타는 노을 속으로 새가 지나가듯이 시인도 그 가마를 드나들다 숯처럼 정화되었다. 이 정도의 상상은 노을을 보면서 한 번쯤 할 만하다. 이때 시인의 상상력은 한 번 비약하여 그 가마에서 하늘이 손을 내밀어 백 항아리를 꺼내는 장면을 본다. 저물녘에 보이는 낮달일 것이다. 시는 이로써 짧으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완결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 운용과 간결한 형식이 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특성은 더 많은 언어를 동원한 시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산문화되기 쉬운 일화를 시적 소재로 다룰 때도 이 간결함의 미덕은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 박현수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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