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사진들은 플레이톡의 이세훈(playtalk.net/lenanjes)형님께서 올려주셨습니다.
형님, 정말로 감사해요..^^
* * * * * *
그러니까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의 일로 기억한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좋아하는 책 대신 당신꼐서 좋아하시는 실용서적 더미로 책장을 꽉꽉 채워놓아
서서히 어머니의 삶의 방식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점점 다름을 깨닫을 즈음,
그 답답한 실용서적의 숲들 사이에서, 마치 거미줄처럼 걸려 있는 "황금비늘" 상, 하 권을 발견하게 된 것은,
참 묘하게 모순적인 기분이었달까.
더군다나 처음 알게된 작가 이외수란, 그 동안 읽어왔던 책의 작가들과는 몹시 달랐다.
끝에 물음표를 쓰지 않는 의문종결형 문장이라든지,
무엇이든 숨을 쉬듯 평온하게 써내려가는, 담담한 문체라든지,
아니 무엇보다 참 독특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고,
그러한 호기심 덕에 찾아 읽게 된 황금비늘 이전의 "들개" 혹은 "벽오금학도" 와
이후에도 꾸준히 구매하여 읽은 신작 "괴물" 과 "장외인간" 등.
또한 중간중간 이외수 라는 작가 본인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읽게 된
소설가 김성동 선생의 이외수 작가에 대한 촌평이라든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설책 앞날개에서 보게 된 장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그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아, 역시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그런 짧은 충격 같은 느낌.
어린 나이에 품었을 법한 꿈의 현실적인 완성형 같은,
작가 이외수의 풍모와 호감은, 어느 틈에 동경과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어
이후로 꽤 오랫동안, 작가로서의 내 롤 모델(Roll-Model)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이를 좀 먹어가면서,
부모님과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이 서로 완전히 어긋났다는 것을 꺠닫고,
그에 대한 진통이 몇 번 이어진 다음에,
그 진통의 파편 중 하나가
"가수 배철수처럼 콧수염 기르고 머리나 기르고 씻지도 않은 걸인 같은 작가" 따위나 존경하는,
나 였음을 깨닫고, 한동안 피곤한 생각에 그의 책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으며,
또한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접한 이외수의 신작이 예전보다 힘이 많이 떨어진 듯한 기분을,
어쩐지 지우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04년도,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때, 나도 모르게 꽤 그런 말을 자주 입에 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저 이외수란 작가를 나는 이렇게 평한다.
황금비늘 이전의 그의 글은 자유로움과 야성적인 힘이 넘치지만, 틀이 없어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고,
황금비늘 이후의 글은 깔끔하고 대중의 입맛을 잘 맞추지만, 道를 상업적으로 팔아먹는 기분이다.
그는 예전의 실험정신과 파격성을 잃고, 대중의 주머니를 노리는 작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참 뭐랄까,
남들 듣기엔 "어린 놈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혀만 참 지랄같군." 이라는 소릴 들을 법한
골빈 헛소리를 찍찍 해대고 다녔었다.
뭐, 하긴 스무살 들끓을 혈기에, 대학생 되었답시고 어깨에 힘들어갈 소리 좀 하고 싶었을,
치기어린 나날이었달까.
여하튼, 나는 그렇게 살았다.
이외수 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저 몇 줄의 글과 몇 번의 방송출연으로,
그저 그런 모습이 전부인 줄, 그렇게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았었다.
그리고 후에 후에-
06년도에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여 생각지도 못하게 전경으로 차출되고,
다시 생각지도 못하게 강원도 강릉에 홀홀단신 동기도 없이 혼자 떨어져,
한동안 호된 군대 맛, 사회 맛을 보다가, 비로소 여유를 좀 찾을 즈음에,
문득 생각이 났다.
강원도 어드메에 살고 있다는, 기인 작가 이외수.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길고 긴 인연의 끈이 그 다음해,
나를 끌 어 당 겼 다.
* * * * * *
07년도 10월 초순쯤이었었나.
사회에서나 군대에서,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나였다.
사회에서 그렇게 빈둥대고, 혀만 가지고 살았으면 군대에서 조용히 자중하며
나를 좀 채우는 법을 알았어야 했을텐데,
답답함과 분방함을 핑계삼아, 또다시 플레이톡이라는,
그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연계가 아주 중요한 사이트에 기어들어가,
헛된 혀놀림과 타자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다녔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몇몇 날카로운 분들은 그 것을 알아채시고,
나에게 뜨거운 일침을 놓으시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넓고 인정많은 분들이
이 어리석은 소년을 따뜻하게 품어주시기도 했던,
여하튼, 여전히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근무 나와 신고 전화 받고, 근무 들어가 잠들고,
사이사이 운동 조금 깔짝거리다가, 글 좀 깔짝거리다가,
이것저것 찝적찝적, 마치 어린아이 젓가락으로 밥상 분탕질치듯
그 때에도 필생을 걸만한 무언가를 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내가 몸담고 있었던 플레이톡의 운영자인 HAN님이
화천 감성마을의 이외수 선생님을 보러 가자는 정모 공지를 띄워왔다.
그 공지를 보던 내 기분이란, 아직도 "춘천의 기인" 으로만 알고 있었던
작가 이외수가 새삼 무거운 실체로 내 곁에 다시금 다가오는 듯 했달까.
생각해보니, 서울에 있으면서, 춘천의 격외선당(格外禪堂)을 그리워만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기왕 가까운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처럼 좋은 기회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부모님의 손길도 미치지 않는 곳이고,
무엇보다 한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람을 직접 대해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외박과 휴가마다 꼭 후임들이 한 명씩 아파 병가를 가버리는 바람에,
하염없이 밀려버린 외박과 휴가를 기다리며, 벙어리 냉가슴 앓는 듯한 징크스도 없이,
10월 20일, 후임에게 빌린 옷과 돈과 배낭을 챙겨서,
당시 막 인기를 끌고 있었던 태왕사신기 덕분에 다들 한번씩
"대화천회 말입니까?" 라고 반문했었던....(-_-)
머나먼 산골 강원도 화천으로 그렇게 겁없는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가을이 스쳐지나간 화천의 풍경. 디카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답다.
가는 길은 무척 순조로웠다.
겨울을 예고하는 강원도의 가을답게 칼바람은 조금 있었지만,
유명한 작가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추운지도 몰랐던 것 같다.
(뭐, 물론 사회에서부터 앓아오던 선천성 어리버리 증후군 덕분에
강릉에서 화천까지 같은 강원도 도시끼리의 이동이,
강릉에서 서울 가는 것보다 훨씬 멀다는 것조차 멀었다는 점과
버스를 두 번이나 놓쳐서 그렇잖아도 늦은 약속 시간에 더욱 늦었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강원도에서 나름 손꼽히는 도시인 강릉도 참 한적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화천은 정말 인근 군부대를 상대로 장사하는, 아주 소박한 시골 마을이었다.
적막하고 한적한 화천 시내. 나름 정감가는 도시다. :)
마치 7,80년대의 회색빛 바랜 번화가를 연상시키는 시내에는
알록달록한 개구리 전투복의 군인들과 팔짱을 낀 연인들만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따름이었고,
나는 늦은 시간에 조바심치며 서둘러 덜컹거리는 시내 버스를 타고,
깊은 산골로 들어가 물어물어 마침내 감성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감성마을 찾아가는 길목. 새와 물고기가 방향을 알려주고 있는 깜찍함^^
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날씨도 다소 변덕스러웠던걸까?
워낙 머리숱이 없어 훤한 이마에 햇살은 따가운데, 칼바람이 정면으로 맞부딪혀 눈까지 매웠던,
험한 산자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30분쯤 걸었던 것 같다.
마셔도 될 듯한 화천 계곡의 물.
중간중간 만나게 되는 등산객들과 밭 가는 할머니께 방향을 물어 길을 들고,
또 시내와 계곡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어설픈 로드워크 흉내도 내어보는 찰나,
비탈길을 덜컹거리며 회색빛 승합차가 쿵쾅쿵쾅 위태하게 내려오는데,
운전자가 어디서 많이 본 분이다 싶더니,
시간이 너무 늦어져 행여나 오는 사람들을 태우러 온 운영자 HAN님과 먼저 도착해 있던 형님들이었다.
감성마을의 길은 보이는 곳, 밟히는 곳이 모두 그림 같은 절경이었다.
7월 뜨거웠던 여름날 밤 함께 했었던 이후 보지 못했던 반가운 얼굴들을 기억하기도 전에,
나는 그야말로 승합차에 "적재되었다."
우리가 감성마을에서 모이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
그때는 벌써 1시간 남짓 지각을 한뒤였던 것이다.
적당히 탔으면 꽤 넓었을 승합차였지만, 이미 차 안은 포화 상태.
덩치가 작다는 이유로 나는, 반대로 꽤 큰 덩치 때문에 맨 앞자리를 차지했던
T.Robin 형님에게 안겨 타야 했다...(.....)
그다지 쾌적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HAN님과의 광속 드라이브를 마친 뒤,
우리는 겨우 구겨졌던 몸을 펴고 이외수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신 모월당(慕月堂) 앞에 모였다.
이외수 선생님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모월당(慕月堂).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끼워맞추는, 전통 방식으로 지어졌단다.
모월당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말 소설책 앞날개에서 그대로 뛰쳐나오신 듯한 모습으로
오독오독 과자를 씹어가며 우리를 기다리시던, 작가 이외수가,
아니, 이외수 선생님께서 걸걸한 목소리로 첫 마디.
"거기 맨 앞에 오는 사람이 이니 군인가?"
그야말로 헉, 하고 숨이 멎을 듯한 기분.
항상 짓까불고 놀기 좋아하던 내가 아닌가.
나도 모르게 쪼르르 달려가서 마치 오래토록 함께 하던 친할아버지 뵙듯 덥썩...(....)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그래그래, 이니 군. 보는 건 처음이지? 사진 그대로구만 그래."
2007. 10. 20. 작가 이외수가 아닌 이외수 선생님과의 역사적인 한 컷. 우리 부모님이 이걸 아시면 날 죽이려 하실 것이다...(...)
화천이 생각보다 먼 곳이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고,
몇 명이 올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사와 한담을 나누며 다른 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모월당에서 대책없이 놀고 있는 원더걸스 형님과 세훈이 형님과 나. 후에 우리들은 사모님께 엄청난 폭탄을 맞게 된다...(...)
왼쪽은 훈훈하기 짝이 없는 나잇&박하소녀 님 커플- 가운데의 운영자 HAN님은 이들을 외면함으로써 겨우 목숨을 보존했지만, 그때까지도 솔로를 면치 못한 이니 군은 유체이탈 직전..(...)
넓은 실내에는 사모님과, 두어 분의 문하생과
그리고 이외수 선생님을 촬영하고 있던 옛 경인방송, 현 OBS의 방송팀이 와 있었다.
이외수 선생님은 마치 그 것이 일상이신 듯 오독오독
준비되어있던 다과를 드시며 말없이 기다리시고 계셨고-
우리 외수 옵하(!!)는 핑크색도 잘 받는다. 옆에는 문하생 2호기 누나. 김민희 닮으신 자태가 넘 이뻤다..//ㅁ// 하악~~~
한 30분쯤 지났나.
한 구석에서 문하생들과 한담을 나누고 계시던 사모님께서 돌연 불호령.
"아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갑작스러운 사모님의 한 말씀에 그러니까 전문 용어로 모두들 깜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간밤에도 한숨 못 주무시고 글쓰시다가
여러분들 온다고 여지껏 깨어계신거예요.
아니 근데 2시에 오면 온다 3시에 오면 온다, 이거지.
2시에 온다던 사람들이 아직도 다 안왔다고 하면 어떡해?
뭔 결단을 내려서 빨리 이야기를 하든가 해야지. 운영자, 정말 이런 식으로 일할꺼예요?"
....백번 지당하신 말씀....-_-
그 동안 우리 뭐한 거냐?!!
그제서야 우리는 몸둘 바를 모르며 황급히 자세를 고쳐 앉았고,
마침내 무려 방송국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이외수 선생님과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2007. 10. 20. 플레이톡 가을 정모는 이외수 선생님과의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이외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서
사모님이 달여주시는 백련차(白蓮茶)의 과정을 보기로 했다.
백련차(白蓮茶)를 달이고 계시는 사모님. 소싯적에 미스 강원으로 뽑히실만큼 미녀셨다고. 지금도 그 자태가 그대로 남아계시다..^^
향이 가득한 백련잎에 녹찻잎을 채워 오므려서 얼린 것을 보관하다가
귀한 손님이 올 때에만 특별히 제작한 다구(茶具)에 더운 물을 부어 대접하신다는데.
정동영 의원이 와도 주시지 않은 상등품을, 특별히 우리들을 위해 꺼냈다고 하셨다.
녹차 잎을 가득 품은 예쁜 연잎이 더운물에 점점 풀어져
다소곳이 입을 내미는 모습에 과연 눈을 뗄 수 없는데다가
사모님께서 어찌나 말씀을 재미나게 하시는지
백련차가 완성되는 짧지 않은 시간이 참 순식간에 지나간 듯 했다.
그러니까 녹찻잎을 가득 채운 얼린 백련잎에...
요렇게 더운 물을 자꾸자꾸 조심스럽게 부어주면....
요렇게 다소곳이 입을 벌린다는 사실....^^
그리하여 완성된 백련차란,
흔히 말하는 살짝 가을이 지나가는 듯한 맛이라든가 향기라든가,
혹은 작은 호수 같다는 틀에 박힌 미사여구는 다 그만두고,
그저 입 안에 가득 머금어봐야 그 진미를 알 수 있달까.
그리하여 완성된 백련차의 모습. (1)
그리하여 완성된 백련차의 모습. (2)
차를 계속해서 마시면서 우리는 이외수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 연잎 우린 물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고와져요. 나중에 어떤 년이 이 연을 가져갈까?" 라는 사모님의 말에 모두들 대폭소..ㅋㅋㅋ
작가답게 글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시대의 여인네들 이야기라든가,
백련차를 비롯한 우리 나라 전통 차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또한 소소하게 앞으로 플레이톡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든가,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즐기고 생각하는 사이에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가운데 계시는 분은 우리에게 달인 차를 부지런히 부어주셨던 문하생 1호기 형님. 수염도 간지났지만, 너무 멋있는 형님이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라면,
이외수 선생님 역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환상소설을 몹시 긍정적으로 평가하신다는 것과,
당신의 책에는 언제나 독자가 결말을 지을 수 있도록 여운을 남겨두신다는 말씀.
(덕분에 道를 상업적으로 팔아먹는다는 내 어린 날의 오해를 깨끗하게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외수 선생님 홀로 살고 계신 감성마을에는
온갖 종류의 생명체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혼자 계신게 아니라는,
그래서 감성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귀중한 말씀을 들었다.
글을 쓰며 하룻밤을 새셨음에도 말씀에 원기가 넘치신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고 즐기다보니,
어느 새 밖은 어두컴컴해져 있었고, 우리는 배고픔을 느꼈으며,
또한 사모님께서 "이렇게 차 잘 마시는 손님들은 처음 본다" 며 혀를 내두르시고.
"그러니까 책 한 권씩 가져오라니까. 그건 예의예요, 예의." 라는 사모님의 꾸지람을 달게 들으며
각자 급한대로 준비한 수첩이라든가, 혹은 선생님의 원고지에 사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집에 있는 괴물과 벽오금학도가 너무 그리웠던 순간. 문하생 2호기 누나는 가까이서 보니 더욱 이뻤다..//ㅁ// 하악~~
즐거운 기념 촬영- 나만 뺴고 다들 선남선녀들일세 그려.. 아, 플톡 정모를 축하해주기 위해 특별히 코미디언 고혜성 씨 혹은 고이즈미 총리가 함께..(뻥이요~!) ㅋㅋ
그리고 방송국 촬영팀의 요청으로 각자 이외수 선생님을 뵈었던 소감도 이야기하고
난생 처음 공중파 방송 인터뷰를 해보는 이니 군. 아니, 저 머리 숱 어쩔꺼야...(...)
볼은 왜 내밀고 있니...?? -_-a
그리고 밖에 나오니 생각보다 어느 새 훨씬 어두워져 있었고, 밤바람은 더욱 싸늘해져 있었다.
모월당 바깥에서 밤바람 맞으며 찰칵. 얼굴이 갸름하게 나와서 나름 맘에 드는 사진.
말씀을 듣다보니 점심도 거른 채 다들 저녁 먹을 시간이 넘어 있었기에
서둘러 민박을 겸하는 식당 및 숙소로 출발했다.
그렇잖아도 고기를 탐하는 우리들 앞에 놓여진 삼겹살과 맛깔스러운 밑반찬과
또한 선생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맥주들....+ㅁ+
남자들만 있는 칙칙한 술자리..ㅋ 남자들만 있는 술자리가 답답하신지 담배를 피우고 있는 HAN님과 마치 할복할 자세로 앉아 있는 듯한 고이즈미 형님..ㅋ 그래서 잽싸게 여자들 있는 술자리로 옮긴 초 얍쌉 껄떡커 이니 군. 아니 근데 고이즈미 형님은 언제 오신거..? (...) ㅋㅋ
선생님께서는 사모님과 함께 방송팀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식사를 하시고,
우리는 우리끼리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술자리...^^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쉼터에서, 우리가 그날 10만원어치를 더 초과해서 먹었다던가..ㅋ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하는 남자 늑대들..ㅋ
하여간 말 많은 이니 군. 어디서든 썰을 푼다!!! ㅋㅋㅋ
이니 군 졸고 있니? ㅋㅋㅋ
"이니 군 대머리 되겠어요.." "저도 알거든요?? ㅡㅡ^"
한편 남자들간의 암울한 술자리는 끝내 유체이탈로 결론이 나고..ㅋㅋ
밤이 깊어지면서, 그 전날밤도 뜬눈으로 새우셨다는 선생님께서는
멋들어진 노래와 함께 우리의 자리를 축복하시며 퇴장하시고
노래를 부르신 후 스스로의 가창력에 매우 만족하신 이외수 선생님과 원더걸스 형님..ㅎ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방송국 촬영팀과 연합하여 그 다음 날의 일정을 계획했다.
OBS 방송국 팀과의 즐거운 술자리. OBS, 구 경인방송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또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니 군 웃음 작렬!! 머리 숱도 없는게 입은 디게 크네...ㅋ
방송 촬영팀에서는 그 다음 날 하루 촬영이 더 잡혀 있다면서
오늘 플톡커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으니 몇 명만 자신들의 방송을 도와줄 것을 청했고,
뒤늦게 선생님께 드릴 금붕어까지 사온 션플라워 누나와
어차피 그 다음날까지도 할 일이 없는 이니 군이 선생님을 하루 더 뵙기로 결정.
겸사겸사 방송국 촬영팀을 돕기로 하고 그날의 자리를 마쳤다.
약간 흐린, 화천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의 아침.
다음 날 아침, 우리 일행은 두 편으로 갈렸다.
HAN님을 따라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는 일행과 화천에 남는 일행으로.
즐거운 추억을 품고 화천을 떠나는 일행들.
나와 션플라워 누나는 방송팀을 따라서 무려 이외수 선생님의 자택에까지 들어가
선생님을 하루 더 뵙고 귀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
선생님 자택 앞의 개들. 검은 녀석이 어찌나 사나운지..1박 2일에도 나왔더라. ㅋ
산에서 내려다보면 분단된 한반도의 모습과 꼭 같다는 선생님의 자택과
또한 사모님과 문하생 1,2호기 형 누나들이 맛있게 지어주신 저녁까지 대접받고
올 때는 무려 前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선수였던 형님의 차까지 타고 수원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던
그 날을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 오랫만의 긴 글이었고,
또한 벌써 서너 달 전의 일이라 기억이 많이 가물가물한다.
다만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일이 있다면,
작가 이외수가 아닌 이외수 선생님은
글에 대해 타협치 않는 정열을 가진 문단 일세(一世)의 거목이었으며,
또한 그 거목을 내 미욱한 깜냥으로 헤아려보려 함이 얼마나 어설픈 일이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월당과 선생님 자택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선생님의 편안한 분위기가 깊이깊이 가슴에 남았었다.
언젠가 선생님이 인터넷상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선생님, 너무나 보고 싶은 이가 있는데 보지 못할 때에
선생님은 그 타는 가슴을 어찌 다스리시나요." 라고 여쭈었던 때,
그 때 선생님께서는
"이니 군, 나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면, 보고픈 이 그림자라도 몰래 보고 오는 습성을 가졌습니다."
라고 답하셨었다.
보는 이에 따라 해석하는 바도, 느끼는 바도 다르겠지만,
나는 그 말만으로도 가슴 안의 무거운 무언가가 후련하게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헤어지는 순간, 나를 바라보시며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이니 군은 이제 그만 말을 줄이고, 그걸 글로 풀어써봐."
많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글의 길이란 너무 어렵다.
아무리 원고지를 파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서, 작가들이 굶어죽는 거라고 웃음 섞어 말씀하시던 그 모습.
이외수 선생님은, 현실을 노니는 진정한 나의 꿈이었노라고,
이 어줍잖은 여행기의 끝에, 나는 그렇게 덧붙이고 싶다. :-)
언젠가 다시 뵐 수 있는 그 날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