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내역>
날짜!
2029년 6월 1일, 실제 달력을 보니 금요일이네요. 그래서 6월 4일 월요일이 서린의 입사일입니다.
-10.
2주가 지났다.
그 2주 동안 서린은 강혁과 비서의 식사에 나름 신경을 썼다. 점심시간에 집에 있을 수 있는 날은 도시락을 싸서 직접 회사로 갖고 가고, 현장에 나가게 되는 날에는 도시락 가게에 배달을 부탁했다.
거즈를 갈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강혁과 비서의 얼굴은 다친 지 12일 만에 호전되었고, 둘의 얼굴이 깔끔해지는 순간 서린의 도시락 싸기 운동(?)도 막을 내렸다.
6월 18일 월요일.
공동명의로 된 2층 주택.
2층 화장실에서 머리 감고 세면을 끝낸 강혁. 그는 수건에 얼굴을 닦으며 머리 위의 거울을 힐끔 올려다보다,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얼굴이 말끔해졌다. 멍과 붓기, 그리고 머리 위의 혹도 모두 사라져 있다. 자신의 뺨을 손으로 툭툭 쳐보던 강혁은 이내 히죽 웃었다.
“형, 나 다 나았어요!”
“응?”
여태까지 퍼 자고 있던 비서는 강혁의 외침에 놀라 깼다. 그는 눈을 비비며 방을 나왔다.
“뭔 일이야.”
집이라서 말 편히 놓는 비서다. 그건 강혁도 마찬가지.
“형,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자고 있어?”
“그럼 어제 술 퍼먹고 12시가 넘어서 들어왔는데, 7시에 일어나는 게 가능하냐?”
“난 일어났거든? 그리고.”
“응?”
“잠복근무한다고 밖에서 잠 못 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차 형사 서린은 오늘부로 7일째 집에 안 들어오고 있다.
강혁의 말에 비서는 딴 짓하듯 하품을 하던 중에, 강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어? 너 얼굴!”
“그래~! 다 나았다니깐. 형도 다 나았고.”
“차 형사한테 고마워해야겠다.”
“어째서? 원래 댕기머리가 때려서…….”
강혁의 말을 비서가 얼른 자른다.
“우리 잘못이라니깐?”
“쳇.”
강혁은 입술을 삐죽였다.
덜컥.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서린이 잠복근무를 끝내고 들어오는 길이다.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던 비서는 냉큼 1층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서린은 이미 자기 방 침대 위에 뻗은 후다. 뒤통수를 긁적인 비서는 2층으로 다시 올라왔다.
“요 며칠 잠복근무하더니 이제 들어오네.”
비서의 말에 강혁은 혀를 내두른다.
“히야~ 자그마치 6일이다! 여자 몸으로 6일씩이나 밤을 새고, 살아있는 게 용해보이지 않아, 형?”
“그러게요. 잠이 쏟아질 텐데 집을 찾아오는 걸 보니 대단하네.”
“우리끼리 밥 먹어야겠다.”
“나 좀 씻고.”
“응.”
둘은 아침 먹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는 차가 한 대다. 그 차가 자신의 차량이라는 것을 아는 비서, 그는 원격조정기를 눌러 차문을 열고서 말했다.
“어? 차 형사님 차가 없어.”
“정말 그렇다. 그럼 어떻게 온 거지?”
“졸음운전을 피하기 위해 누가 태워줬겠지.”
“누가?”
강혁은 차에 오르며 되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경찰청에서 데려다줬지 않을까?”
“그 인간 성격에, 운전석에 사람을 잘도 태웠겠다.”
“운전석이라니? 차 형사님 차가 없는데?”
“그러니까. 어쨌거나 스스로 왔을 거야.”
얼떨결에 정답을 내놓고 있는 사장과 직속 비서지만, 택시를 까먹고 있는 이유는 뭘까.
서린이 경찰청에 입사한 지 2주가 지나고 3주째에 접어드는 오늘, 이곳은 경찰청 중앙본부의 경찰청장실.
노크와 함께 웬 묘령의 여인이 들어왔고, 여인을 경찰청장은 반갑게 맞이한다.
“그래, 왔느냐.”
“예. 부르셨습니까, 큰아버지.”
“관리반은 정리 잘 한 거지?”
“예! 저는 감시만 하면 되는 거죠?”
청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음. 과거의 상처가 깊어서 남자만 보면 두드려 패서 난리다. 옆에서 사고치지 않게 네가 경호를 좀 해줘야겠다. 너만 믿으마.”
“맡겨만 주세요, 큰아버지. 아니, 청장님.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강력계로 가면 되죠?”
“그래. 잘 부탁한다.”
“그리고-.”
…….
청장은 몇 개의 지시사항을 내린다.
10분 후, 여인은 미소로 회답한 뒤 경찰청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강력계 제 1강력수사반 사무실.
“…….”
서린은 잠시 넋을 잃었다. 오늘부터 비번인데 오 반장의 호출 받고 본부로 왔더니 웬 여인이 있는 게 아닌가.
6일로 마무리된 잠복근무를 끝내고 잠깐 자고 일어난 지라 잠이 쏟아지는 그녀다. 하지만 그건 오 반장도 마찬가지라서, 서린은 함부로 졸린 티를 못 내고 있다.
제 1강력수사반에 여자는 자신뿐이라는 것을 아는 서린은 고개를 갸웃댔다.
“누구에요, 오 반장님?”
입을 염과 동시에 하품에 올라온 탓에 혀가 꼬인다.
“음, 소개하지! 이쪽은 정유리 순경. 청장님의 조카분이야. 정보관리반의 일반 순경인데, 청장님께서 자네 감시하려고 특별히 불러 올린 거야. 정 순경, 이쪽이 정 순경이 감시해야 하는 차서린 형사라네. 인사하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아, 예.”
정 순경이 먼저 인서를 건넸다. 서린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로 답례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런던에서도 옆에 감시관을 붙였었다. 근데 그 감시관이 딱 하루 버텨보고는 못 하겠다며 떠났다. 이후 한 달간 반복된 감시관 붙이기는, 한 달 뒤 경찰청장이 두 손 들고 포기하면서 끝났다.
런던에서 그 내역서도 빠지지 않고 날아왔으나 청장이 보지 못 한 게 실수다.
만약 봤다면 감시관 붙이는 건 당연히 안 했을 테니까.
또 감시관이냐며, 질린다며 속으로 오만 욕 다 하던 서린의 얼굴이 확 펴졌다.
“어느 부서에 있었다고요?”
“정보관리반 소속입니다만.”
정 순경의 대답을 들은 서린은 아무 말 없이 씩 웃었다. 오 반장과 정 순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왜 웃는 거지?
힐끔 오 반장의 눈치를 살핀 서린은 그녀를 데리고 오 반장으로부터 조금 멀어졌다.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사례 필요하면 할게요!”
“무슨 부탁이신데 그러세요?”
“1998년부터 2028년까지의 30년 동안, 미제사건 및 살인사건 좀 모아주세요.”
“1998년?”
정 순경의 눈이 커진다.
“무려 30년 전이잖아요!”
“응, 30년 전부터의 자료가 좀 필요해요.”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요…….”
정 순경은 고개를 갸웃대며 자신 없는 듯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례 필요하면 얘기해요.”
“그럼 나 배고픈데, 돈가스 먹고 싶어요.”
안 그래도 곧 1시. 점심시간이다.
하지만.
“졸린데…….”
서린은 눈을 비비며 중얼댔다.
“같이 밥 먹으러 가지 않겠나? 잠도 오지만 난 배도 고프군.”
오 반장이 이렇게 나오니 별 수 있나.
서린은 눈을 비비면서 그를 따랐다. 감시원으로 붙은 정 순경도 당연히 붙는다.
돈가스 점심을 다 먹은 서린은 차에 올랐다. 그 시간차에 맞춰 정 순경도 조수석에 훌쩍 올랐다. 아까는 너무 졸려서 차를 경찰청에 놔두고, 경찰청의 순경에게 부탁해 집에까지 데려다달라고 했었던 것이다.
화들짝 놀란 댕기머리의 서린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 왜, 왜요!”
“감시원이니까 옆에 따라다녀야죠.”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투의 정 순경.
“나 오늘 비번이거든요? 사흘 휴무 받았거든요?”
“그래서요.”
순간 서린은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1분의 정적 후 서린은 받아치기 시작한다. 일종의 저항이자 반항이다.
“그래서는 뭔 그래서 에요, 내리세요. 사흘 후에 보자고요.”
“출발하세요, 집으로.”
“제 집을 댁이 왜 가는 건데요?”
“감시원이니까.”
서린은 머리를 뒤로 젖힌 뒤, 차량의 천장을 향해 한숨을 뿜었다.
짜증 지대로다~! 아, 아니다. 안 그래도 지금도 잠이 모자란 차에, 졸음운전을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리세요.”
짧게 내뱉은 서린은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향했다.
“뭐하는 거예요?”
“나 좀 태워줘요. 잠복근무 6일 했거든요? 지금 졸려서 쓰러지기 직전이니까, 내가 사는 집까지 좀 바래다줘요. 운전, 할 줄 알죠?”
“예, 알아요.”
고개를 끄덕인 정 순경은 순순히 조수석에서 내려 운전석에 올랐다.
엔진가동단추를 눌러서 시동을 켠 정 순경은 PDA를 단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입술 모양의 단추를 눌러 음성 센서를 가동시킨다.
“내비게이션.”
[내비게이션을 조작합니다.]
PDA에 지도가 떴다.
“차 형사님, 집 주소……!”
정 순경은 얼굴을 돌리자마자 확 굳어졌다.
서린은 이미 안전벨트를 매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자는 중이다.
난처하게 됐다. 무엇보다 이 사람, 운전대를 전혀 모르는 여자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자고 있으니, 이 무슨 태평인지 모르겠다. 때문에 주소를 알아내는 방도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비게이션 취소.”
[내비게이션을 취소합니다.]
PDA의 지도가 사라졌다.
“통화.”
[통화를 조작합니다. 연결하실 곳을 말씀하십시오.]
“경찰청 중앙본부 관할 정보관리반.”
[경찰청 중앙본부 관할 정보관리반을 연결합니다.]
신호음이 가고 잠시 후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네, 서울경찰청 중앙본부 관할의 정보관리반……. 정 순경? 청장님의 지시 받고 사라지더니 왜, 무슨 일이야?”
“강력계 제 1강력수사반의 차서린 형사님, 집 주소 좀 알아봐주세요.”
“엉? 차 형사님?”
“일이 좀 있어서 그러니까 알아봐주세요.”
“어, 알았어.”
정보관리반에서 같은 경찰청 소속 사람의 주소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주소는 곧 나왔고, 정 순경은 차를 몰았다.
정 순경은 집 앞에 차를 세운 뒤 서린을 깨웠다.
“차 형사님, 차 형사님.”
“으음~!”
“차 형사님, 도착했어요. 집 앞이에요.”
“아, 그래요? 으음~! 고마워요. 조심해서 가요.”
졸린 눈 겨우 비벼서 뜬 서린은 안전벨트를 풀고 비척비척 차에서 내렸다.
졸린 탓인지 차에 붙다시피 한 서린. 그녀를 보다 못 한 정 순경은 얼른 내려서 서린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아니.”
정 순경의 품에 안긴 서린은 그녀의 어깨에 묻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댕기머리의 차 형사님, 예측불허의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 정 순경이 아는 건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