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운동 신경이 지지리도 모자라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만
왼 쪽 손목을 세 번이나 부러 뜨려 보자기 헝겊 같은 팔걸이를
늘 걸고 다닐 정도였다.
그 때마다 그 전차종점 가는 길에 모퉁이 뼈 접골원(국사관)에서 치료하곤 했는데
그곳은 무슨 태권도 같은 무술을 가르치는 도장을 하다 아예 그 시절에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정형외과병원을 대신하여
뼈 접골원을 차려 이웃의 초등학교에서 다친 아이들의 치료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당연히 불법치료였지만 1969년도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여름날 체육시간에
뜀틀을 하던 나는 처음에는 구름판을 딛고 공중으로 붕 뜨는 생소한 기분이 너무 좋았고
자주 학교에 오시던 어머니의 입김인지는 몰라도 선생님께서 너무 잘한다고
북돋아 주는 칭찬에 그만 하늘을 붕 날다 중심을 잃고 와지끈 왼쪽 손목을 짚으며
모래사장에 나동그라졌다.
그 전에 두 번이나 손목뼈를 다친 경험이 있던 터라 직감적으로 부러진 것을 알았지만
그 통증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아파서 선생님이 나를 업고 뼈 접골원에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릴 정도였다.
경험해보신 분은 다 알겠지만 뼈가 부러진 느낌은 정말 뿌지직하는 소리마저 특이하여서
뼈가 으깨진다는 느낌과 함께 골막이 찢어지는 통증이 한꺼번에 엄습한다.
마치 초보운전 시절에 접촉사고가 나면 그 특유의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로 느껴지는
사고의 심각도와 유사하다.
검은 커튼이 쳐진 암실 같은 음산한 접골원에서 아무런 마취나 사전 치료 없이
이름도 모르는 관장님과 조수가 몇 번이나 나의 손목을 당기고 주물렀는지,
나는 까무러치고 깨길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곤 뒤늦게 연락받고 오신 어머니께 무언가 약간은 덜 맞았는데 별 문제는 없을 거라는
설명을 하는 소리가 멀리서 벌이 웅웅 되는 소리같이 들려오며 나의 가엾은 손목뼈를
꺾고 비틀던 일은 끝이 났다. 지금의 석고가 아닌 마분지인지 골판지인지를
팔에 대고 붕대를 감고 기브스 아닌 기브스를 해주었다.
매일 치료하러 가면 애써 맞추어 놓은 골판지를 다시 다 풀고
무슨 하얀 밀가루 같은 것을 뿌린 뒤 알콜 솜으로 닦아내는 데 처음에는 많이 아팠지만
날이 갈수록 그 과정이 시원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을 왜 하는지를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알콜이 기화되면서 부종을 덜어주는 ‘에어파스’같은 효과가 있는 지도 몰랐다.
그 시절에 그 분들 나름대로의 경험으로 나의 왼쪽 손목을 그렇게 큰 변형 없이
낫게 해준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소아 골절이 워낙 리모델링이 잘 된 탓도 있겠지만...
여러 번 왼쪽 손목만 다쳐서 그런 지 판 마다 이기던 중 고등학교 때의 팔씨름 시합에서의
오른 손과는 달리 왼 손 팔씨름은 거의 전멸이었다.
지금도 한 번 씩 외래에서 병원 출입문부터 아우성 소리와 함께 손목뼈가 꺾어져
눈물범벅이 되어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그 음산하던 접골원 구석방이 생각난다.
첫댓글 그래 기억난다. 기브스 자주했었다. 그때도 도수가 높았던 뿔테안경 한쪽다리에는 항상 반창고로 기브스가 되있었고....운동신경이 모자랐다기보다는 좀 별났던거 아닌가???
그래 나두 한두번 간곳이다이가. ㅋㅋㅋㅋ
국사관은 유도장 하던데 아이가? 유도도 가르치고 뼈접골도 해줬던 것 같은데..
정우민 아이가 ? 내 누구겠노 난 니잘안다. 난 0 9 † 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