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본 다시 읽기
묵주기도에 ‘구원송’이 꼭 포함되어야만 하나요?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 서울 Se. 전담사제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이는 이른바 ‘구원송’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정확히 말하면 파티마(Fatima)의 ‘구원을 비는 기도’ 혹은 ‘구원의 기도’이다. 흔히 묵주기도 안에 포함되어 함께 바쳐지는 짧은 기도문인 것이다.
필자가 2년 전에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의 영적 지도자직을 맡은 이후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다음의 질문이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매 신비를 묵상하는 한 단(성모송 열 번과 영광송)을 마치고 나서 파티마의 ‘구원을 비는 기도’를 꼭 바쳐야만 하나요? 아니면 하지 않아도 되나요?”
레지오 마리애 교본에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도 없다. 교본에서는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쳐야 한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으며, 방법론적으로는 제18장 4번(165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뿐이다.
“1단, 3단, 5단은 영적 지도자가 선창하고, 2단과 4단은 단원들이 선창한다. 묵주기도를 소리 내지 않고 바치는 단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성모상이 놓인 그 자리에 성모님이 은총을 내려 주시는 모습으로 실제 서 계시는 것과 같이 여겨, 엄숙하고 존경하는 마음가짐으로 묵주기도를 바쳐야 한다. 성모송을 바칠 때, 전반부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후반부를 시작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은 경건히 불러야 한다.”
그리고 교본 제22장에 “레지오의 기도문”이 나와 있지만, 1번 “시작 기도” 중에 “묵주기도 5단을 바친다”(203쪽)라고만 간단히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 교본 자체적으로는 파티마 ‘구원의 기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사실, 레지오 마리애의 관례와 전 세계적 일치를 위해서 레지오 모든 회합의 묵주기도 중에는 파티마 ‘구원의 기도’를 바치지 않는다는 것이 레지오 세계 본부인 콘칠리움 레지오니스(Concilium Legionis)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지역 특성이나 관습에 따라 묵주기도 중에 짧은 호칭 기도를 추가할 수 있어
한편, 교황청(바티칸)의 온라인 홈페이지에는 “묵주기도의 신비들”(The Mysteries of Rosary)이라는 제목하에 “묵주기도를 어떻게 하는가”(How to pray the Rosary)가 잘 설명되어 있다. 여기에서, “성모송 10번(영광송 1번까지 포함)을 매번 마친 후에는 적당한 호칭 기도를 추가해 바칠 수도 있다”(An invocation may be added after each decades)라고 설명되어 있다. 즉, 바티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는, 각 지역적인 특성이나 관습 혹은 상황의 필요에 따라 묵주기도 중에 적당하고 짧은 호칭 기도를 자유로이 추가해 바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의 2002년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 35항에 나오는 다음 내용이다.
“오늘날의 묵주기도에서는, 영광송 다음에 짧은 마침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 마침 기도는 지역 관습에 따라 다양합니다. […] 그러한 마무리 기도는 당연히 다양성을 지닐 수 있으며, 이미 그렇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묵주기도는 다양한 영성 전통과 여러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더 잘 적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기도 형태를 사목적으로 충분히 식별하고, 가능하면 묵주기도에 특별히 봉헌된 장소와 순례지 등에서 실험적으로 사용한 다음에, 널리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교회의 최근 역사 안에서는 파티마의 ‘구원을 비는 기도’가 묵주기도 안에 추가되어 바쳐졌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도 1970년대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칠 때면 항상 이 ‘구원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한국 교회 안에서 파티마 성모 신심이 널리 퍼져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파티마 ‘구원의 기도’는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이루어진 성모 발현 중 세 번째인 7월 13일 발현 때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시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매 신비가 끝난 다음에 이 기도를 바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이 기도문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2017년의 일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가 제출한 『가톨릭 기도서』(개정안)를 승인하면서, 한국 교회가 전통적으로 바쳐 온 ‘구원을 비는 기도’를 기도서 안에 그대로 싣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묵주기도를 할 때 반드시 이 기도를 의무적으로 함께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단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 교회 안에서 묵주기도 중 바칠 수 있는 짧은 마침 기도의 대표적인 예시로서 이 기도문이 『가톨릭 기도서』 안에 실리게 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그래서 묵주기도 중 성모송 10번 후에 반드시 이 기도를 바쳐야만 한다는 지침은 『가톨릭 기도서』에 나와 있지 않다.
‘구원의 기도’는 레지오 공식 모임의 묵주기도에는 포함하지 않아
한국 레지오 마리애 안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평의회의 제226차(1997년 11월)와 제229차(1998년 2월) 월례회의 회의록을 찾아보면, 파티마 ‘구원의 기도’를 한국 레지오 공식 모임의 묵주기도 안에 포함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결정은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적 결정이 파티마 ‘구원의 기도’ 가치를 평가절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에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유롭게 이 기도를 묵주기도 중에 바칠 수 있다고 회의록에 적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선임 평의원들의 결정을 지금 갑자기 뒤집어야 할 명백한 이유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공식 차원에서는 이 결정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본당이나 교구 단위의 모임에서는 영적 지도자의 충고나 판단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생각된다.
정작 이 기도문과 관련하여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이 기도문 원문의 한국어 번역(현재의 기도서에 실린)의 부정확성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신학적 문제에 관해서는, 지면 관계상 다음 호의 연재에서 계속 설명해 논하도록 하겠다.
일단 그 기도문 원문(포르투갈어)의 정확한 영문 번역을 소개한다. “O my Jesus, forgive us our sins,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lead all souls (라틴어: omnes animas) to Heaven,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Thy mercy.”
이 원문을 정확히 직역한다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번역문이 나와야 할 것이다. “오, 저의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의 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을 하늘나라로 이끄시면서 특히 당신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