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부치는 노래...
"엄마..." 제가 갓난쟁이였을때 부터 수없이 불렀을 이 호칭이 오늘따라 왜 그리 큰 느낌으로 다가오는지요.
부르기만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 당신께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슴을
열고 풀어내면 하 많은 말들이 쏟아질 것 같아 벼르고 벼르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득한 것이 무엇을 써내려가야 할지요...
오늘, 제게 매를 맞고 울다가 지쳐잠이 든 큰아이의 머리맡에서
왜그리 마음이 아픈지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엄마도 잘 아시죠? 하평이가 얼마나 밥먹기를 싫어하는지. 밥먹을 때마다 하는 전쟁이지만 오늘은 더 화가나 감정을 실어 녀석을 때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인내심 없는 엄마인가... 얼마나 부족한 엄마인가... 그러다 엄마, 당신 생각이 나 더 울고 말았습니다.
뇌종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둘째오빠, 그 오빠의 죽음을 언제나 당신 탓인것만 같다고 하셨지요.
비가 마구 쏟아지던 날, 외출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가겠다고 떼를 쓰는 오빠를 화가 나 때린 것이 기절을 했고, 그 후로 아프기
시작했다구요.
어찌 병이 그런 걸로 올 수 있겠냐만은 그렇게생각하게 되는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런 생각 속에서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지요...
엄마, 하지만 이제 저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화가나면 심하게 매도 댈 수 있다는 걸 알겠어요.
더 이상 맘에 두지 마세요. 엄마니까 때릴 수 있고 엄마니까 때린 것 보다 더 마음 아파하잖아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것만도 아픈데 거기에 자책까지 하시면...
그래서 늘 위가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겝니다.
'죽음'. 그러고 보니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도 일찍
잃었네요. 아주 어렸을 때 두분 부모님을 다 여의었고, 힘들게
어렵게 함께 자란 단 하나, 핏줄, 남동생.
제겐 한분이셨던 외삼촌. 그분조차 일년 전에 먼저 보내셔야 했지요. 막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생이 안스러워 어떻게든
돌봐주고 싶어하셨었는데...
얼마전 그 동생이 생각나 어디 하소연 할데도 없고 철없는이 딸을 붙잡고 우시던 당신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납니다.
2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8남매 맏이에게 시집와 시부모님 수발에, 어린 동생들 시집장가 보내기에, 한시도 쉼없이 농사일을 감당해야 했던 당신.
험한 일에 지치고 지쳐도, 온 몸이 부서져라 아파도 '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평생을 사신 당신...
이제사 무릎 관절이 쑤시고 마디마디가 아프다고 한 두 마디 이야기 하시는 당신을 보며, 그렇게 혹사한 몸 어디는 안 아플까
싶습니다.
이젠 모든 일 좀 그만 내려놓고 남은 여생 쉬엄쉬엄 사셨으면 싶은데...
아직도 당신 손에 놓여 있는 생활고는 그렇게 쉬운 삶을 허락하지 않나봅니다. 이 딸이 넉넉히 벌어 용돈도 드리고 부채도 갚아
드리고 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아직도 당신의 쌈지돈을 이래저래 쓰는 철없는 딸이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충주는 5일장, 원주는 7일장. 달력에 5,0,2,7 자가 들어간 날이면 엄마가 장에 가셨겠구나 싶어 점심은 드셨는지, 장사는 잘되는지 궁금해집니다.
날이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 오이 천원, 시금치 천원, 사과 이천원...
한푼 한푼 그렇게 버시는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은 안입고 안드시면서 그렇게 피땀흘려 번 돈 이 자식에게 쓰시기는 아까워하시지 않으니... 어찌다 갚습니까...
그렇게 장날을 보내고 들어오시면 무릎이며 온 몸이 아프고 쑤시는데도 저 애낳고 조리할때나 가끔씩 내려가 있을때면 어깨며
다리며 할일도 없이 아프다는 딸의 몸을 오히려 주물러 주시곤
하시죠.
엄마, 때로는 그런 엄마가 너무 속상하기도 해요. 오히려 야단도
치시며 '이 엄마 좀 주물러 봐라' 하실 일이지... 아니예요. 엄마,
이젠 제가 알아서 많이 주물러 드릴께요...
사랑하는 엄마. 엄마 손이 얼마나 거친지는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금방 끓던 솥 냄비도 맨손으로 번쩍 들어 옮길 수 있는 건 굳은 살 촘촘히 당신 손에 박혀있기 때문이란 것을요.
그리고 또하나, 아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당신 손의 비밀.
갓난쟁이때 데인 손을 미련한 어른들이 주먹을 쥔 채로 묶어놔서 오른손이 손가락이 굽어진채로 아물어 마디가 다 붙어 있게
되었지요.
그래도 무엇하나 못하는 일없이 다 하고 살아온 당신인데 그것을 펼 수 있다는 소식에 제가 중학교 2학년땐가 여수로 수술을
하러 다녀오셨죠.
기억나요. 엄마 손가락에 박혀있던 커다란 쇠못들. 그땐 엄마느
ㄴ왜 저렇게 못을 박는 아픔을 감수하시면서까지 굳이 손가락을
펴려 하시는 걸까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수술덕에 엄마 손가락은 어느 정도 펴지게 되었죠. 그런데 얼마전 제게 그 손을 보여주며 "한번만 수술을 더하면 마저 펼수
있다던데... 수술해보고 싶어."라고 하셨죠.
그 말씀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제가 별스럽게 생각지
않았던 엄마의 그 굽어진 손가락이 엄마에겐 자유롭게 펼쳐보고
싶은 소원이 되었다는 걸...
그날, 엄마의 그 거칠고 굽은 손을 주무르며 마디마디 서려있는
삶의 질곡들을 보았습니다.
그손 온전히 펴는 것이 엄마에게 기쁨이 될 수있다면 이제 딸이
그 손을 펴드리고 싶습니다.
눈물보다는 기쁨이, 웃음이, 엄마 얼굴에 가득 피어나도록, 이제
남은 여생,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 많이 누리실 수 있도록,
이만큼 키워주신 것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도록 노력할 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자식이 될 수는 없겠지만 엄마, 기억해주세요.
엄마의 사랑과 수고 조금이나마 이딸이 알게 되었다는 걸... 그래서 엄마의 남은 여생, 친구같은 딸이 되고 싶다는거요...
엄마, 사랑합니다.
-당신의 딸, 종숙드림-
: 박종숙은 장아람의 홍보편집 간사로 장아람 창립초부터 장아람의 소식지를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