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칭하는 용어들
흔히 책이란 '사람의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낸 글이나 그림을 인쇄한 종이를 겹쳐 맨 물건의 총칭'을 의미한다. 또, 어떤 사전에는 '문자 또는 그림의 수단으로 표현된 정신적 소산을 체계 있게 담은 물리적 형체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물리적 형체가 초기에는 대·나무·깁·잎·가죽 등의 재료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지만, 그 뒤 점차로 종이가 사용되었으며 그것을 일정한 차례로 잇거나 겹쳐 꿰매고 철하여 책을 만들어 냈다. 상고시대에는 상호간의 믿음 또는 약속의 부호로 의사를 소통해오다가, 문자가 생긴 이후 그 글자를 적어놓을 대상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대상물이 초기에는 생활 주위의 모든 것, 이를테면 종·솔·제기·쇠붙이·돌·기와·갑골·댓조각·나뭇조각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낱개의 기물에 글자와 그림을 새기거나 쓴 것을 가지고 책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이것들이 체계있게 엮어져야 비로소 책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에 있어 책의 기원은 죽간(竹簡)과 목독(木牘)을 체계있게 편철하여 사용하였던 책(策)이라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죽간은 대를 켜서 불에 쬐어 대땀[汗簡]을 빼고 퍼런 껍질을 긁어내어[殺靑] 글씨 쓰기 쉽게 한 댓조각을 말하며, 목독은 나무를 켜서 넓고 큰 판을 만들어 말려 표면을 곱게 하여 글씨 쓰기 쉽게 한 나뭇조각을 말한다. 여기에 글 내용을 써서 체계있게 편철하는 방법으로 횡련식(橫連式)과 중적식(重積式)이 있었다. 횡련식은 가볍고 작은 대와 나뭇조각의 위 아래를 마치 댓발 엮듯이 끈으로 잇달아 엮어 수록된 문장을 체계 있게 한 것을 말하고, 중적식은 크고 무거운 나뭇조각인 경우, 위쪽에 한 개의 구멍을 뚫고 끈으로 꿰뚫어 중적의 상태로 체계 있게 엮은 것을 말한다. 그 끈은 노와 실 같은 재료를 사용하였으나, 중적식과 같이 크고 무거운 책(策)인 경우는 부드럽게 다룬 가죽끈을 사용하였다.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책(冊)의 형태를 보고 만든 상형문자인 점에서도 책의 기원이 고대의 책(策)에서 비롯하였음을 알 수 있다.
책의 명칭은 예로부터 다양하게 사용되어왔다. 그 용어로는 책(冊)·전(典)·죽백(竹帛)·지(志)·기(記)·전(傳)·서(書)·본(本)·서적(書籍)·전적(典籍)·도서(圖書)·문헌(文獻) 등이 있고, 그밖에도 많은 합성어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책(冊)'은 대와 나무의 조각을 엮은 책(策)의 모양을 보고 만든 글자로 일찍부터 쓰여진 명칭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명칭이다. 이 글자가 만들어진 이후에 나온 합성어에는 '간책(簡冊)·죽책(竹冊)·전책(典冊)·엽책(葉冊)·서책(書冊)·첩책(帖冊)·접책(摺冊)·보책(譜冊)·책자(冊子)' 등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서책의 용어가 많이 쓰여지고 있다.
'전(典)'은 책상 위에 책(冊)을 소중하게 꽂아 놓은 모양을 보고 만든 글자임을 『說文解字』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그 뜻을 미루어 보아 '여러 책, 귀중한 책'을 의미한다. 장도(莊都)는 이를 '큰 책'이라 부연하였다. 합성어에는 '전책(典冊)·전적(典籍)·고전(古典)·원전(原典)·경전(經典)·불전(佛典)·법전(法典)' 등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전적과 고전은 옛 책의 일반 칭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죽백(竹帛)'은 고대의 책의 명칭으로서, '죽(竹)'은 죽간(竹簡)을 말하고, '백(帛)'은 견직물을 뜻하며, 이는 의복을 만들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다. 다만 죽(竹)만을 말할 때에는 간책(簡冊)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므로 옛 사람들은 죽백(竹帛) 두 자를 합쳐서 말해 왔던 것이다.
'지(志)'와 '기(記)'는 기록(記錄)을 의미한다. 고인(古人)들은 이것을 항상 책의 통칭으로 써왔다.
'전(傳)'은 경(經)을 해석한 것을 의미하며, 행실을 기술한 글도 또한 전(傳)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한(奏漢)이래의 개념이고, 그 이전에는 '전(傳)'자로서 책을 통칭하였다.
'서(書)'는 그 소전자(小篆字)를 보면 율(聿)과 자(者)로 구성된 글자이다. 聿은 글씨 쓰는 붓[筆]을 뜻하고, 者는 저(箸)의 옛 글자로서 쓰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서의 글자는 바른 손으로 붓을 잡고 죽백 등에 글씨 쓰는 것을 뜻한다. 처음에는 서사(書寫)한다는 동사로 쓰여졌으나, 죽백에 쓴 것을 書라고 한 이후 명사로도 쓰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書字가 책의 범칭으로 된 것은 늦어도 戰國초엽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후대의 서적·서책의 용어를 낳게 하였으며, 그 합성어는 그밖에도 '죽서(竹書)·간서(簡書)·백서(帛書)·지서(紙書)·경서(經書)·불서(佛書)·사서(史書)·고서(古書)·동서(東書)·장서(藏書)'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본(本)'도 일찍부터 책의 뜻으로 쓰여졌다. 오늘날 이 글자를 책의 명칭으로 주용(主用)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한편, 우리나라와 중국에 있어서의 용례는 주로 합성어에서 볼 수 있는데, '간본(刊本)·각본(刻本)·침본( 本)·참본( 本)·인본(印本)·사본(寫本)·고려본(高麗本)·조선본(朝鮮本)·송본(宋本)·원본(元本)·관본(官本)·방본(坊本)·귀중본(貴重本)·희구본(稀 本)·진본(珍本)·지본(紙本)·견본(絹本)' 등이 그것이다.
'서적(書籍)'의 합성어는 고전자료를 조사해 볼 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 고려시대에 있어서는 책의 간행 유통을 맡아 본 기관의 명칭까지 <書籍店>, <書籍院> 등이라 일컬었듯이 서적의 용어를 범칭하였다. 그것은 조선시대에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적(典籍)'은 서적 다음으로 많이 쓰인 용어이다. '전(典)'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매우 소중한 큰 책을 뜻하므로 典籍이란 늠름하고 품위있게 만든 옛적의 귀중한 서적을 의미한다. 그 밖에 일컬어지고 있는 '전책(典冊)·전서(典書)·전지(典志)·전전(典傳)'등은 그 동의어라 할 수 있다.
'도서(圖書)'는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유래된 말이다. 본래 그림과 글씨가 담겨진 것을 일컬은 데에서 비롯한 것인데, 그 뜻이 다양하여져서 '전적 또는 서적, 지도(地圖)인 도적(圖籍), 지도와 장부인 기록문서(記錄文書), 그림과 글씨인 서화(書畵), 도장(圖章) 또는 인장(印章)' 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도서가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어오다가 한말에 서양의 'library'를 '서적고(書籍庫)'·'서적관(書籍館)'·'서적종람소(書籍縱覽所)' 등으로 번역, 소개해 오다가, 1906년에 처음으로 설립을 발기하고, '대한도서관(大韓圖書館)'이라는 명칭을 붙인 이후 책의 뜻으로 도서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이 도서는 현대적 도서관이 생겨 그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이후로부터 주용되었다.
'문헌(文獻)'은 책과 유사한 뜻을 지닌 용어이다. 문(文)은 서적 또는 전적을 뜻하고, 헌(獻)은 현(賢)의 가차(假借)로서 현인(賢人)을 뜻한다. 『논어』의 팔일(八佾)에서 주희(朱憙)가 주해한 것에 의하면, 지식·사항·예속 따위를 후세에 가르쳐 끼치는 방법으로는 글 또는 그림으로 표현된 기록자료에 의한 것과, 지식을 익혀 머리에 담고 그 지식을 실천, 체험한 이들, 즉 학덕이 있는 이들의 구수(口授)에 의한 것이 쌍벽을 이루는 데에서 쓰이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후세에 내려옴에 따라 학덕이 있는 현자(賢者)의 구술보다는 기록자료인 서적 또는 전적에 의한 것이 신빙성이 있고 보편타당성을 지니게 되자 후자의 뜻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언어학에서는 고대의 언어로 쓴 글이 담겨진 고전자료를 문헌이라 하며, 그 원문을 해석·비평·고증하는 것을 문헌학(philology)이라 일컫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문장에 나타나는 과거의 용례는 주로 서적 또는 전적을 뜻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서적 또는 전적 이외에 전거가 될 수 있는 고문서류는 물론 인쇄물과 필사물의 속성을 벗어난 전자자료까지 포괄한 일체의 시청각자료에로 확산, 적용되고 있다.
한편 옛날에는 편(編)·권(卷)·축(軸)·엽(葉)·본(本)·규( )·박(縛) 등도 책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규장총목(奎章總目)의 서문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릇 대쪽[簡]을 차례로 엮은 것을 編이라 하고, 그 編을 길게 연결한 것을 冊이라 함은 옛날이었고, 폈다 말았다함을 卷이라 하고, 두루마리를 軸이라 함은 中古의 말이요, 몇장의 종이로 된 것을 葉이라 하고, 葉을 가지런히 하여 製冊한 것을 本이라 함은 지금에 쓰이는 말이다. 道家에서는 이라 하고, 佛家에서는 縛이라 하는 것이 道이기 때문이다. … 중략 … 이 冊에서는 一種을 一部라 하고, 一冊을 一本이라 하고, 一編을 一卷이라 하니 이는 옛것에 참고하는 한편 현대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책을 칭하는 수많은 용어들에 대해 몇몇 자료를 참고삼아 정리해 보았다. '책(冊)·전(典)·죽백(竹帛)·지(志)·기(記)·전(傳)·서(書)·본(本)·서적(書籍)·전적(典籍)·도서(圖書)·문헌(文獻)…'이라는 개개의 단어들은 각각 다른 배경과 근거를 통해 출현하여 그 모양과 쓰임새에 있어 조금의 차이점은 있지만, 결국 '문자 또는 그림의 수단으로 표현된 정신적 소산을 체계 있게 담은 물리적 형체'라는 한가지 뜻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용어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는 단어를 나는 '자료(資料)'라고 본다. 자료라 함은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일의 바탕이 될 재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21C에는 앞서 언급한 책의 정의에 부합되는 '인쇄자료', '전자자료(전자문서)',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또다른 매체를 통한 '특수자료'들이 출현한다고 보는바, 이 모두를 한꺼번에 어우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자료(資料)'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諸洪圭, 韓國書誌學辭典, 景仁文化社, 1989.
정필모, 문헌정보학원론, 구미무역, 1990.
한국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 1992.
이희재, 書誌學新論, 韓國圖書館協會,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