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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고3) 학교 온실 앞]
교련(敎鍊) 70년대부터 80년대를 살아 온, 흔히 말하는 7080세대에게 교련(敎鍊)은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자 인생의 커다란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처음 접하게 된 교련과목의 선생님은 6.25 전쟁 당시 육군 8사단 소대장 출신의 호랑이 선생님이었습니다. 회색 바탕에 검정색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종아리에 각반(脚絆)을 찹니다. 우향우, 좌향좌 방향 전환에서부터 좌 향 앞으로 가, 우 향 앞으로 가, 뒤로 돌아 가, 걸음 바꿔 가, 뛰어 가를 비롯하여 큰 걸음으로 가, 작은 걸음으로 가 등 걸음걸이와 뜀박질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것을 처음 알게 된 제식훈련으로 시작하여 열병, 분열은 기본이고 시간이 더해 가며 M-1소총이론에서 분해, 조립은 물론 총검술 16개 기본동작에서부터 찔러, 길게 찔러로 시작되는 총검술과 각개전투, 분대전투까지 우리는 숨 쉴 틈 없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총검술 16개 기본 동작의 구호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유신과업 완수하여 평화통일 이룩하자.’ 남학생의 총검술과 각개전투 시간이면 운동장 한 쪽에서는 삼각건과 부목을 이용한 구급처치 법에서 부터 들것을 이용한 환자 수송까지 여학생들의 교련 실습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교련 수업은 수업이라기보다는 훈련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졸업하던 해인 1976년에 북한의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발생으로 교련은 더욱 강화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여튼 수업 시간에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6.25 전쟁 이야기로 시작되는 선생님의 잔소리로부터 M-1소총 들고 쪼그려 뛰기, 오리걸음, PT체조 등 우리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끊임없는 기합이 가해지곤 했습니다. 여름방학이면 인근 육군부대에 1박2일 입소하여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그대로 반복하며 현역 조교들에게 숙달 훈련을 받고 야간 경계근무에서 이튿날 M-1소총 사격까지 경험해야 했으며, 가을이면 3~40리 길은 족히 되는 ‘용하 초등학교’, ‘웅진 초등학교’ 등으로 야간 행군을 해야만 했습니다. 야간 행군은 저녁을 먹고 어두워질 무렵에 교장선생님께 행군 보고를 하고 무거운 M-1소총을 메고 학교를 출발합니다. 특히 지금은 학생이 없어 분교가 되어버린 ‘웅진 초등학교’까지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 한 굽이 돌고나면 또 한 굽이 시작되는 굽이굽이 산길로 깜박 잠이 들어 길옆 배수로에 빠지기도 하고 앞 사람 발뒤꿈치를 수없이 밟으며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면서 캄캄한 밤길을 그렇게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목적지인 ‘웅진 초등학교’에 도착하고 나서 야간행군을 무사히 마쳤다는 성취감에 내일 아침이면 다시 걸어가야 할 그 지겨운 굽잇길도 잊은 채 밤새 재잘댔으며 몇 몇 친구들은 운동장 한구석에 모여 소주병을 따기도 했습니다. 고교시절 경험한 야간행군은 그 후로 군에서조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군에 들어와 학창시절 교련훈련보다도 허술한 기본군사훈련에 ‘공군은 역시 편한 군대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군의 유격훈련장은 코흘리개 시절부터 총싸움 하며 뛰놀던 육군 산악훈련장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야간 행군을 마치면 드디어 교련 검열을 받게 됩니다. 도(道)교육청에서 전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1년에 한번 가을에 검열을 실시합니다. 만일 불합격을 하게 되면 재 검열을 받기 위해 또 그 훈련을 반복해야 하므로 우리는 기를 쓰고 이 검열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시식회에 국화 전시회, 그리고 가을 체육대회까지 그렇게 가을을 만끽하고 편안한 겨울방학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추석 성묫길, 양구 가는 길에 춘천 샘밭을 지나 배후령을 넘어 화천 오음리의 월남 파병용사 훈련장을 지나면서, 파랗게 펼쳐진 소양호를 따라 굽이굽이 돌던 길이 터널과 다리로 연결되어 곧게 뻗은 웅진리 길을 달리면서 그 아래 펼쳐진 웅진리 낚시터와 이제는 옛길이 되어버린 굽잇길을 멀리 바라보며 문득 30년이 훨씬 넘은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힘들었지만 추억이 되어 그리움으로 살아났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입니다. 2009. 10. 5 . 갑규니 |
첫댓글 교련 검열 마치고 가을 체육회 돼지 잡는 날도 잊지 못하지 무넣고 돼지 고기로 끓인 국 한 사발씩 먹던 날...
그래 맞아 그런것도 있었지 ㅎㅎㅎ
오래전에 올린 글이네. 교련 그것 참 지겨운 시간이었지. 똑같은 일은 반복하느라. 그 넘의 검열인가ㅎㅎㅎ 웅진 초등학교 행군은 너무 심했던것 같고. 옛 추억이 새록새록나네. 정말 옛날 같아. 그 만큼세월 갔다는 야기지.
구목사가 계란 삶아서 이영호 선생님과 막걸에 한잔 먹던것도 기억이 나네.....계란에 병아리가 들어있던것도....
ㅋㅋ, 그려 무정란...첨엔 무섭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