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죄인에게 벌을 내리시고 의인에게 상을 주십니다. 또한 죄인을 벌하시기 전에 반드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에 회개하면 무슨 죄든지 용서하시고,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선택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때에 회개하는 것이 바른 선택입니다. 예수께서 유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하도록 주신 기회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의미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차례로 말하기를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 마음에 찔리는 그 무엇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제자들의 양심을 자극할 때, 이때가 바로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마음과 생각을 환하게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얼마나 간절히 유다가 할 말을 기다렸겠습니까??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네가 그렇게 말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회개의 기회는 이로써 지나갔습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로 우리의 삶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밝은 빛을 비추실 때에 순종하는?것입니다.
지금이 회개의 때입니다. 유다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고 지금 회개를 요청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소금항아리에서)
2.축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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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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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축구협회 홈페이지 | 문제는 토티가 아니었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심판만이 유일하게 그를 제지할 수 있었는데 토티는 그 한순간의 과장된 몸짓으로 자멸하고 말았다. 오히려 문제는 이탈리아의 명장 트라파토니 감독에게 있었다. 이탈리아 수비축구의 대명사 트라파토니는 토티로 하여금 자멸의 액션을 연출하게 하고 말았다.
축구의 생명은 빠르기. 그러나 '100미터 11초에 주파' 식의 단순 속도는 필요 없다. 축구는 목표 지점에 제일 빨리 도착한 선수가 골을 넣은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경기가 아니다. 축구에서 빠르기는 복잡한 함수를 갖고 있다.
주변 동료의 움직임, 상대 수비수들의 위치, 건네받은 공의 탄성과 회전력, 공세적 상황과 수세적 상황, 치고 나갈 공간의 길이와 너비, 여기에 능동적인 공격수와 수동적인 수비수의 역관계가 결합해 빠르기의 파괴력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국에 저작권이 있는 '킥 앤 러시(kick & ruch)'나 80년대의 '원터치(one touch) 종패스'는 결국 90년대 이후의 '컴팩트 사커(compact soccer)'에 밀려난 것이다.
견고한 샅바싸움의 빈틈을 헤집고 쏜살같이 오버래핑하는 동료의 빠르기를 극대화하여 유효공간을 창출해내는 미드필드의 사령관들, 곧 플레이메이커가 현대 축구의 빠르기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 플레이메이커는 언제나 10번을 단다.
이탈리아 축구 하면 카테나치오(Catenaccio), 즉 빗장수비를 떠올린다. 물샐 틈 없다. 좌우 공간이 허약한 스리백을 구사하면서도 견고한 수비를 자랑한다. 백전노장 말디니가 수비라인을 책임진다.
극명한 예가 지난 유로 2000 준결승전. 막강화력 네덜란드의 수십 차례 융단폭격을 이탈리아는 연장전까지 치르면서 막아냈다. 승부차기로 결승에 오른 다음에도 프랑스의 십자포화를 견뎌냈다. 비록 우승컵은 양보했지만 빗장수비의 명성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들이었다.
그들의 빗장수비는 그저 '불굴의 투혼'으로 온몸으로 막아내는 수동적 수비가 아니다. 슛을 하는 상대 선수 앞으로 데굴데굴 몸을 던지는 육탄 방어도 아니다. 지역 방어와 개인 방어를 적절히 배합하면서 결코 득점할 수 있는 지점을 양보하지 않는다. 공간 창출에 실패한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거한들이 중거리슛을 쏘아댔지만, 멋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무의미한 남발이었다.
그러나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 수비만 잘한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역시 빗장만 잘 질렀다고 언제나 세계 4강인 것이 아니라 공격 또한 특급의 수준. 이탈리아의 공격은 능동적 수비수들의 절묘한 공수 전환에서 시작한다.
철저하게 중원의 허점을 향해 공을 차내면 탄력 넘치는 한 사나이가 공의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은 채 순간적으로 중원을 장악하고는 공격을 진두지휘한다. 델 피에로, 비에리, 인자기 등이 골 뒤풀이를 즐길 때 이윽고 다가와 얼싸안는 예의 플레이메이커. 그의 이름이 프란체스코 토티다.
토티를 설명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플레이메이커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을 나열한 후 이를 완전히 충족시킨 선수가 토티라고 선언하면 그만이다. 가령 폭넓은 시야, 탄탄한 체력, 정교한 패스, 두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개인기, 예측불허의 공간 창조력 등에서 토티는 지단, 피구, 베론과 더불어 특급이다.
한국이 16강을 넘어 8강에 선착하는 데 제물이 되고 말았지만 냉철하게 그 경기를 되새겨보면 토티와 이탈리아 선수들이 좀더 능란한 경기력을 보였음은 확실하다. 문제는 역시 트라파토니. 그는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 등의 사령탑을 맡아 일곱 번 우승을 기록했으며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로 평가받는다.
그는 월드컵 직전 이탈리아의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대표선수가 되어 푸른 셔츠를 입는다는 것은 포뮬라 1경주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항상 시속 300킬로미터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브레이크를 건 것은 정작 감독 자신이었다.
'인기'를 먹고 사는 이탈리아 선수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들의 훈련용 유니폼은 수많은 스폰서 기업들의 로고로 뒤범벅되어 있다. 광고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로고들이었다. 그렇게 돈과 인기와 팬들과 여자 사이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훈련했다.
그들은 조별 리그를 일본에서 치렀는데 이탈리아의 숙소와 훈련장은 고대 로마의 대리석상만큼이나 완벽한 선수들을 보기 위한 수많은 팬의 공격 장소가 되었다. 선수들은 그것을 즐겼다.
그런데 16강을 위해 한국으로 와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저 먼 이탈리아에서 찾아온 팬도 있었지만 한국의 이탈리아 팬은 일단 한국부터 응원하는 상황이었다. 일본에서는 도심지에 머물렀지만 한국에서는 천안과 유성의 숲 속에 머물렀다. 삼엄한 경호 때문에 기자들조차 출입하기 어려웠다.
이탈리아 선수단은 이채롭게도 경비를 느슨하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제발 자기들을 좋아하는 팬을 막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렇게 조치했으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숲 속의 요새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들은 지치고 말았다. 신경이 곤두섰다. 기자회견장에서 비에리는 "이기기 위해서는 한 골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단과 팬은 화가 났다. 16강을 달성한 한국 축구를 모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측의 오버 센스. 경기를 앞둔 상대들은 얼마든지 호연지기의 답변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 골이면 충분하다'는 것은 이탈리아 선수들이 수십 년 써온 전통적인 관용구로서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승리를 확신하느냐"는 질문이 있을 때 한국 선수들이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꼭……"이라고 말한다면 이탈리아 선수들은 "한 골이면 충분하다. 다음 질문?"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한 골이면 충분하다'며 자신을 독려했던 이탈리아는 그 '악명 높은' 붉은 악마의 카드 섹션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AGAIN 1966.' 경기 전날 훈련을 위해 대전 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선수단은 이 '충격적인' 문구를 치워 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1966년, 박두익의 북한 선수단이 이탈리아를 '한 골'로 누르고 8강에 오른 기억은 이탈리아 축구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이후 최대의 재앙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그것을 'AGAIN'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정말 '자극적인 구호'였다.
FIFA 감독관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홈팬들의 열기를 억제할 수 없다고 잘랐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자신들이 제왕이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자국 팬의 일부가 '국가 가사도 모르는 선수들'이라고 비난하자 아예 조별 리그에서 국가를 따라부르지도 않았다. 첫 경기 에콰도르전에서 골키퍼 부폰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불렀고 미드필더 도니와 트라파토니 감독이 약간 입술을 움직였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조별 리그에서 이미 이탈리아는 모든 명성을 잃어버렸다. 간신히 16강에는 올랐지만 이탈리아의 냉철한 분석가들은 더 이상 '빗장수비의 미래는 없다'고 단정했다. 카테나치오, 즉 빗장수비에 집착하여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활개치고 다닐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고 만 '전통'은 버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왜 공격수들을 벤치에 앉혀 의자만 데우게 했는가?', '언제쯤 이탈리아는 이기기 위해 상대를 공격할 것인가?'라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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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파토니 전 이탈리아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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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축구협회 | 그러한 이탈리아를 한국은 치밀하게 대응했다. 16강을 이뤘지만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는 명언을 남기며 아예 경기 전날 수원 경기장으로 가서 스페인 대 아일랜드의 16강전을 관전했다. 8강 상대들의 전력을 미리 탐색하겠다는 '굶주림'의 표현이었다.
나는 실제로 배가 고팠다. 서울 상암경기장 다음으로 접근성이 뛰어나고 단정한 매력을 지닌 대전 월드컵경기장을 나는 너무 늦게 찾았던 것이다. 경기장 내 매점 음식들은 벌써 동이 나기 시작해서 오징어포와 자극적인 음료수들뿐이었다. 게다가 서쪽 스탠드 맨 왼쪽 2층 상단이라니.
입장권에는 분명히 1등석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대전 경기장의 '어떤' 일등석은 2등석보다 더 열악한 사각지대에 있다. 그러나 그곳은 정녕 꿈의 자리였다. 연장전의 골든골. 안정환은 서쪽 모서리 코너 플래그 쪽으로 달려와 쓰러졌다. 수많은 선수가 그 위를 덮쳤다. 8강의 골뒤풀이가 내 바로 아래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그들은 산을 옮겼다. 처음에는 무리한 일이었다. 격려는 하겠지만 힘겨운 시도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김주성…….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했던 선배들도 거친 항해 끝에 겨우 좌초를 면하고 귀항했을 뿐, 그 아쉬웠던 과거사가 모든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삽씩 떠서 날랐다. 히딩크가 있었고 홍명보가 있었다.
그들은 관록이란 이름의 게으름과 권위를 사절했다. 오히려 먼저 삽을 들었다. 거칠고 힘든 나날이었지만, 조금씩 산이 움직였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보던 사람들까지 천지의 변화를 꿈꾸며 모여들었다. 아, 마침내 산이 옮겨졌다. 밤하늘 아래 희미하게 새로운 대지가 펼쳐졌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한 거지?' 꿈인 듯 믿기 어려운 파란만장의 나날을 이겨낸 그들은 뚜벅뚜벅 큰 걸음으로 대지를 향해 걸어갔다.
황선홍이 있었다. 그는 한없는 그리움으로 공을 찼다. 불우했던 소년기, 고독하고 우울한 성장기를 보내면서 그는 오로지 공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삶의 허기가 그를 아름다운 맹수로 단련시켰다. 십자인대가 두 번이나 끊기는 치명적인 부상을 이겨낸 그는 A매치 100회 출장을 앞둔 위업과 경륜으로 이날의 역사를 견인했다.
후반전 30분을 남기고 잔디를 밟은 황선홍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에 생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바늘을 꽂기도 어려울 만큼 밀집된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교란하였고 마침내 숨어 있던 2인치를 찾아내 그 진공 상태 속으로 섬세하고 우아한 패스를 올렸다. 그러자 산이 움직였다. 설기현은 대선배 황선홍이 이날 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될 수 있도록 침착하게 골네트를 흔들었다.
안정환이 뒤를 따랐다. 그가 노려본 산은 차라리 거대한 산맥이었다. '빗장수비'는 단순한 수사학이 아니었다. 골짜기를 파고들고 능선을 뛰어넘어도 이탈리아는 좀처럼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산허리를 잘라 버릴 듯한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지만 안정환의 발은 중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탈리아 선수들과 1 대 1 상황에서 단 한 번도 그들을 제치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의 신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부여했다. 연장전의 드라마를 배려함으로써 안정환은 이날, 전 지구의 미디어가 자신의 이름으로 찬란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운재. 그가 배후의 모든 것을 책임졌기 때문에 최전방의 전사들은 앞만 노려볼 수 있었다. 유능한 화가가 정교하게 그려낸 듯한 이탈리아의 파상공세를 이운재는 긴장할수록 더욱 차분해지는 얼음 같은 침착성으로 끊어 버렸다. 아쉬운 한 골을 허용했지만 그것은 축구의 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만큼 역부족의 상황. 이후, 그는 저 멀리 마주 선 유럽 최고의 골키퍼 부폰을 압도할 만큼 능란하고 침착했다.
이미 그들은 전설의 주인공. 그것으로 한국 축구는 너무 황홀했다. 첫 승과 16강만으로도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등재되었다. 그런데 신화의 서막까지 써낸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이 되었다. 이젠 더 이상 꿈꾸고 싶은 것조차 없어졌다. 그러나 에너지는 더욱 충만했고 눈빛은 지구 반대편까지 노려볼 만큼 예리해졌다.
8강의 '굶주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8강이 좌절되자 이탈리아는 수모와 자책과 원성으로 들끓었다. 일단 그들은 패인을 심판과 한국에 돌렸다. 조별 리그에서 이탈리아가 에콰도르에 이기자 에콰도르 출신의 이 '뚱뚱한' 심판이 복수를 했다는 것이다. 음모론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에 질질 끌려다닐 때부터 빗장수비의 운명이 다했다는 것을. 맞수 이탈리아의 패배를 고소해하는 유럽의 축구팬들은 '가장 지겨운 우승후보가 탈락'했다며 반겼다. "정당한 골을 뺏긴 벨기에도 경기 후 패배를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탈리아 선수들은 경기 후 늑대처럼 울기만 했다"고 힐난하는 주장도 있었다. 자책의 목소리는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그 잘난 율리아노와 말디니가 이끄는 튼튼한 수비진에 의존하는 경기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커에이지닷컴>에 축구 칼럼을 기고하는 이탈리아의 로셀리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대부분의 비난은 트라파토니 감독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가 델 피에로 대신 가투소를 넣고, 그리고 잠브로타 대신 디리비오를 넣었을 때, 내 두 살짜리 조카조차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해왔던 것을 반복했다. 그는 이기고 있을 때마다 늘 하던 대로 교체를 했다. 스트라이커 대신 미드필더, 그리고 조금 후 미드필더 대신 수비수. 그렇게 해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게임의 결과가 아니라 정신력이며 태도이다. 솔직히 이탈리아인으로서 나는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일단 그의 소원대로 이탈리아 수비 축구는 이번 대회에서는 '다행히'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이 8강에 진출한 것이다 | |
첫댓글 틱 장애를 앓고 있는 어떤 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기에도 힘이 들면서 남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사람들마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만으로도 눈물나게 행복했습니다.
웃는 얼굴은 무한한 보석이며, 찡그린 얼굴은 정신적인 오염 물질이다. 평판이 좋고 남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은 멋진 미소의 소유자이다. 찡그린 얼굴의 무례한 의사는 싱글벙글 웃는 상냥한 의사보다 두 배 더 많은 의료사고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자식의 탈선으로 힘들어하는 부모의 80%는 습관적으로 웃지 않는 부모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