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대백제가
망하고 나서 많은 백제의 유민들이
가시밭길의 인생을 살았다.
(꼬치 맛있고도 아프다)
그 중 한명이 백제장군 흑치상치이다.
그의 묘비명이 하남성 낙양에서 발견되었고
현재는 강소성 남경박물관에 있다.
그는 백제부흥군으로 혁혁한 공로를 세워 중국의
사서인 신당서에 그의 행적이 자세히 나와 있는 인물이다.
어제 갑짜기 백제부흥 운동이 생각이 났다.
어제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세탁기와 tv가 필요하니 가져 가겠다는 것이다.
불과 1시간 전에 통보였다.
미리 정신을 차리기 전에 일꾼 3명이 오고
그의 잘생긴 기사와 그분 이? 오셨다.
키 155cm, 오목조목한 몸매,째진 눈
그녀완 임대료 인상건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서로 불편한 적으로 대치 중이다.
(능금,작고 귀엽고 아름답다)
나는 칭다오시 이창취 리츈에 산다.
조금 지저분하지만 대륙의 70년대를 풍미하는
삶의 흔적이 있어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생각이다.
그녀는 냉정하다.
이촌의 변화의 바람을 타고 사정없이 임대료를
월700위앤이상 인상을 요구하더니
얼마 전에는 계약시 비치된 식탁과 tv와 옷장을 요구하여
나는 단칼에 거절하였다.
그러나 여편네가 독기를 품으면 8,9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밤새 나의 집기를 탐내더니 드디어 오늘 2010년9월6일 16시
하이힐을 신고 점령군처럼 마구 들어와 그녀가 원하는데로
그것을 가져갔다.
물론 원안이 아니라 차선책으로 쓰지 않은 것을 가져갔다.
외국인이 여러 명이 있었지만 그년은 안하무인이었다.
참 난간한 일이었다.
이것을 어쩌나 남의 집에 마구 신발을 신고 들어와
설치는 폼이란 마치 문화대혁명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강청과 홍위병
모택동의 부인 강청
신중국건설의 미명아래
대륙조선의 모든 문화를 박살을 내었다.
불교,유교,도교사원등 대륙에 있는 모든 조선의 흔적을
없애고 신중국의 건설의 토대를 만들었다.
신중국에 반대하는 모든이를 숙청하고 모든 서적은 불살라지고
모든 비석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부서진채로 들판에 버려지거나
중요한 비석은 여기저기 박물관 수장고에 쳐박혀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채운후에도 나의 짐을 떠나지 않았고
계속 두리번거리면 씩씩거렸다.
마치 그 놈처럼
인웨이 메이여우 야오콩(리모콘)
이 놈이 사람 잡을 놈이다.
아마도 이사갈 때 사람 잡을 놈이다.
조그만 트집을 잡아 야진을 야금야금 빼먹을 놈 이다.
중국과 제1교역국가 대한민국~~
G20세계정상회의 개최국가의 국민치고는
참 대접이 형펀없다.
우리에게도 중국이 만만하지만
중국인에게도 우리가 참 만만하게 보이나 보다
중국에 체류하면 체류할수록 부닥치는
한국인의 위상은 참으로 가볍기 그지없다.
그 찬란한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은
우리가 가장 친하고 익숙하다는
산동지방에서도 그 이름 값을 못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헐값으로 만들었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다시금
흑치상치장군의
벡제부흥운동이 생각이 난다.
과연 대백제는 부활 할 수있을까?
훈민정음 중국어-제공
첫댓글 이런.. 나쁜........................ 어쩐대요
어쩐대요~~, 미국의 한인사회 흑인폭동이후 교민의 지위향상 노력이
있었듯이 칭다오 한인사회도 스스로 교민지위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 할 듯합니다.~~
부활 할겁니다,,,,,화 많이 나셨겠네요,,,,,
어떡해야,,,,저런 몰상식을 떨쳐 버릴수가 있을까요,,,아마 30~~~40년후에나 가능 할겁니다,,
어떡해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ㅠㅠㅠ
감사합니다. 마침 집에 장군검이 없어서 다행히도 면~~했습니다.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 할 듯~~
화 많이 나셨겠습니다. 저도 중국인 집 살면서 야금야금 마련한 책상이며 집기, 의자, 옷장 하나도 못 가져 나오고 쫒겨 나다시피 나왔습니다. 야진은 물론 못 찾았구요. 한국인 아주 봉입니다. 경찰까지 불러도 보란듯이 큰소리치며 막무가내 입니다. 경찰 역시 "내가 왜 외국인 권리를 보장해 주냐?"란듯이 먼산 뒷짐으로 일관 하더군요. 죽창이 왜 값싼 병기이며, 효과적인 살인무기인지를 그때 실감 했습니다. 낫 한자루로 그렇게 효과적인 무기를 만들수 있다니.....우리 조상들은 참 대단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중국인들이 계속 변하지 말고 그렇게 쭈욱 살기를 바라는 1인입니다. 개 짐승처럼........
감사합니다. 어제 참느라고 욕보았습니다. 어느 분 말대로 우리가 예의와
서비스를 이곳 대륙에 비싼 값으로 보급할 때가 된 듯합니다.~~
ㅎㅎㅎ... ^^*
화 많이 나셨겠는데요.
그런데... 위의 꼬치와 능금을 본 순간 피식~~ ^,.^ ;;; 웃음이 나오네요.
그런일 어디... 한두번이여야죠. 정말... 깝깝합니다.
언제쯤이며... 지대로 하고 대접받고 살런지....;;;;
아마... 이생활 청산하지 않으며..... ;;; 절대루~~!!! 없겠죠.
역시 삐죽새^^ 꼬치가 참 필요 할 때에 능금을 생각하며 한바뀌 돌고 돌아
버리고~~ 그러니까 정화장군이 이곳 칭다오 양산박을 만들어 칭다오
지역사회에 기여하려고~~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중국이랍니다. 상식이 통하다가도 돈이 조금만 개입이 되면... 좌우지간 조심하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2002년 한중수교이후 18년~~
그런 년을 참았으면 한국인이 제대로 대접받는 칭다오 사회를 만들어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도시로~~
참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의식수준이 아직 그정도이니 우리가 살 길이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뚜이,뚜이,우리의 찬란한 조선의 문화" 동방예의지국" 인간의 도리와
예의를 칭다오 시민과 공유하여 한중이 명실상부한 문명국으로 다시
부흥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