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이미지는 로맨틱 코미디 '프라임 러브'에 나오는 장면인데 우마서먼이 앉은 자리 너머로 마크 로스코 그림이
보이죠? 데이브(브라이언 그린버그)가 14살 연상의 애인 라피(우마 서먼)에게 저녁 초대를 했는데 데이브가 그림
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며 자신의 그림을 이렇게 모아둔 창고랍니다.
이렇게 영화속에서 마크 로스크의 그림을 만나며 웃음이 나왔는데요.
보름 전 격주를 간격으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67)의 색면그림을 만났습니다.
마크 로스코를 두고 숭고, 심연이란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명상적 분위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붉은 색을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거 같은, 그것이 바다였다면 아마도 빠져버릴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정말 소름이 절로 돋는 감명을 받는다고 할까요.
커다란 사각 캔버스 전체가 색면으로만 가득한 색채 덩어리를 만나는데 그 색채에서 뿜어 나오는 힘은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을 갖게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의 위치를 관람객의 눈높이에 걸도록 했으며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마주하며 보는 캔버스는 붓질한 흔적이나 최초의 색감마저 볼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사각형의 색채 덩어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붉은 색상은 점점 더 붉게 타오르는듯 하고 검은 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 마치 어떤 공간에 들어온듯 합니다.오로지 이런 느낌은 제 개인적인 느낌일 뿐 입니다.
그는 캔버스위에 색채를 칠한후 계란을 바르고 마르면 물감을 또 칠하고 그위에 오일을 바른후 색채를 덧입히는
행위를 10번이나 하면서 나오는 색채마다 붓질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각형의 색면은 빛을 발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면을 표현해 낸것을 관람자의 눈으로 만나게 됩니다.
마크 로스코는 색상에서 이런 신비감이 나오는 체험을 겪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와 실험을 했을까요...
그는 또 그림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제목으로 인해 감상자를 방해한다며 제목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로스코는 말하기를 회화는 체험 그 자체라고 했다지요?
전시는 비교적 그의 초기 그림에서 부터 중기, 말기까지 볼수 있는데 리움이 소장한 3점과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27점으로 로스코의 1920년대와 30년대의 풍경, 인물화로부터 그림의 형태가 변해가는 과정을 볼수가 있고
재료도 볼 수가 있는데요.. 종이에서 타블로로 다시 종이로,,에서 타블로로 돌아갔으며 물감도 수채로부터 오일로
오일에서 과슈, 수채로 다시 오일과 아크릴로 매번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줍니다.
그가 죽기전 완성하지 못하고 두고간 그림 'Untitled 1970 캔버스에 아크릴'이란 붉은색의 작품도 만납니다.
이게뭐니?
색만 가득하게 칠해져 있는데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대가의 그림이란 말인가? 라고 말하기를
로스코는 기분 좋게 기다릴지도 모르죠..
그는 색에 취해 스스로 죽어간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로스코는 감상자가 자기식으로 작품과 교감하고 반응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하지요?. "정신과 열망이 모두 있다면 진정한 교류가 있기 마련" 이라는 스스로의 믿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암튼 유명한 그림을 돌아보았죠. 그의 그림이 회고전 형식으로 전시된것은 한국에선 처음일 거예요.
2003년 호암아트홀에서 전시한 '마인드 스페이스전'에서 그의 색면그림 3점을 보며 빨려 들어가는
기묘한 체험을 한후... 그가 누구란 말인가라며 그의 그림들을 뒤져 보고 책도 뒤지며 알고 싶어 했습니다.
로스코는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되기도 했는데 음악과 같이 '보편적이고 가슴에 사무치는'
예술을 하기를 갈망했습니다.
찬란한 색면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이 시점에 서 있는 여러 개인적 체험들이 스치고 지나가 눈물을 훔쳤습니다.
스스로 보여졌던 일상이나 아니면 일상이 아닌 자신의 삶을 가로로 붓질하고 세로로 붓질하고 계란을 바른위에
칠하고 그위에 오일을 바르고 칠하고 이런 칠을하기를 10번이나 하면서 만족한 색상이 나올때 까지 칠했던 그의
행위를 머리속에 상상하면서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함께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는 20세기 전후추상화가중 색면추상의 대표적 화가 였습니다.
1903년 소련의 라트비아 드빈스크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로스코는 10년 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건너
갔습니다. 이듬해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엔지니어나 법률가를 꿈꾸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화가가 됐다는 신화적 이력의 소유자 이기도 합니다만,
니체의 사상을 깊게 받아 들였으며, 예일대학교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였던 로스코는 1923년 학업을 중단
하고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 섰습니다.
그는 앎이 풍부한 지성적인 작가였습니다.
초기에는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초현실주의에 심취했으나 색면회화라는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켰죠.
그러나 말년으로 갈수록 화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1970년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붓 대신 스펀지를 사용하기도 한 그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는것이 일반적인 평가 입니다.
거대하고 둥둥 떠다니는 듯한 색면회화로 관객들을 압도하고 모든 것을 초월한 저편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해석을 하기도 하죠. 유화 900여점, 파악된 종이작품만 2천500여점이라는 엄청난 량과 질의 작품을 남겼죠.
저는 붐비는 방학기간을 지나 늦게서야 두번 "마크로스코-숭고의 미학전"을 보러 리움 전시장을 찾았습니다만
마크 로스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된 기사를 참조 하시기를..
한바퀴 전시장을 다 돈 다음 다시 돌아 보길 권합니다.
마크 로스코의 1920년에서 30년대는 표현적인 터치로 풍경과 인물을 주로 그렸습니다...
Untitled , 풍경 1920 30초반 종이 수채
Untitled 모자를 쓴 여인의 초상 1932
로스코의 인본주의적 관심은 초기 그림인 인물에서도 볼수 있다는
워싱톤 DC의 '루스 파인'의 설명이 있군요..
1940년대는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을 그렸고...
Untitled 지하철 환타지 1940
무표정한 사람들이 길쭉하죠..이 작품은 로스코가 고립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고 하나
이 당시 로스코는 프랑스의 조각가 쟈코메티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Untitled 수중 드라마 1946
Untitled No. 9 [Multiform] 1948
로스코는 47년도부터 작품번호와 더불어 멀티폼이라고 명명하는데
이것은 캔버스 작품으로 1949년까지 지속하죠. 이 시기의 로스코의
표현양식으로 보여지는 멀티즘은 이시기를 지나면서 사라지고 색면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950년대는 로스코의 모든 회화가 색면으로 표현하는 절대 변화기 입니다.....
Untitled, 1950 캔버스에 유채
50년대는 로스코의 절대 변화기 입니다.
Untitled 1953, 캔버스에 유채
Untitled 붉은색 띠 1955년 캔버스 유채
Untitled 1956 캔버스에 유채2
Untitled 1957 갠버스에 유채
1960년대..................
비극과 환희, 파멸 등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색채로 표현했던 로스코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암울하고 사색적인, 그리고 절제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로스코의 회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실존의 비극과 이것을 이겨내는 숭고한 정신
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죠.
마크 로스코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할때입니다.
Untitled 1962 유채
이작품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죠
Untitled [No.4]1964 유채
rothko_Untitled 1968 종이에 수채
이 즈음의 로스코는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등
심한 우울증까지 겹쳐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저런 상황이어선지 대작 위주의 작품에서 중간정도로 작품의
크기도 달라지고 종이와 수채로 그림의 재료도 바꾸는 시기입니다..
Rothko_Untitled black Grey 블랙과 그레이 1970
Untitled 1970 캔버스 아크릴
이 작품이 미완으로 남겨둔 작품으로 붓질의 형태나 색상을
선명하게 볼수 있죠. 그는 57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
마티스에 대한 경의 1954
로스코 생전에 마티스의 붉은방이라는 작품을 보고무척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마티스를 무척 좋아하게 된 경외감에 이러한 작품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200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240만 달러(235억원)에 팔렸는데 전후 사상
최고가의 그림으로 그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제목이 붙은 그림이라 더욱 화제를 남긴 그림입니다.
"마티스에 대한 경의"는 붉고 노랗고 푸른 색면으로 된 1954년 작품으로 로스코는 자신의
결혼식 때 이 작품을 결혼식장 장식 배경으로 선택했을 정도였습니다.
마크 로스코는 바그너를 좋아했으나
저는 그의 그림을 본후 쇼팽의 녹턴 20번을 듣고 싶더군요...
Aug.29.06 JeeJeon
출처: 꿈꾸는 섬 원문보기 글쓴이: lib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