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시인의 시집 [억새밭을 태우며]가
2011년 7월, 도서출판토방에서 나왔다.
이용식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문학세계]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였다.
시집 [백운대의 가을], [난간을 스치는 깃털구름]을 냈다.
다음은 '시인의 말'의 일부이다.
"... 진실을 찾아 외곬으로 곧은길만 달려왔던 내 삶의 행간을 더듬으며
삶의 진수를 찾아보려 한다. 더러는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내 정신의 주막집
하나를 마련해 보고 싶다."
다음은 채수영 시인의 해설 '시의 성주(城主), 그리고 정서표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시조는 한국문학의 등뼈, 다시 말해서 척추의 역할을 해왔다. 중심이라는 말은 부족하고
모두라는 말에는 다시 부족한 문학-시조의 위치가 될 것이다. 이는 시조가 태생 이후
800여 년을 지켜온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고 담아온 문학의 그릇일 뿐만 아니라 삶의 애환을 용해하면서 수용된
절대의 이름이었기에 시조에서는 애틋한 연민이 앞장선다. ....
요컨대 민족의 척추 혹은 의식의 등뼈였던 시조가 매력의 맛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많은 손님을 불러들일 수 있는 매력(맛)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인은 시의 집- 성주(城主)가 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나그네의 운명이 대부분이지만 일가(一家)를 이루려는 꿈을
버리지 않을 때, 시의 표정은 밝고 환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다니는 임무에 헌신하게 된다.
어떤 시인이든 자기 시의 모습이 뛰어난 역사의 주인공이기를 소망하지만 여기엔 끈기와 노력이 배가될 때라야
비로소 길을 만들게 된다면, 이용식은 그런 의식을 위해 헌신의 집념을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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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 이용식
유언을 쓰다시피 쓰기는 쓴다마는
공허한 메아리의 벌레소리만도 못해
뜨겁게 영혼을 흔드는 그런 노래 갖고 싶다.
참이슬 방울 찾아 온 산을 헤매지만
한낮의 매미소리 샘물 속에 가득 차고
무더위 여물 들 무렵 땀방울만 익는다.
칡넝쿨 얽힌 틈새 텃새들 들락날락
웃자란 쑥부쟁이 드문드문 웃고 있다
박토에 엉겅퀴 꽃 피우는 그런 힘이 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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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약속 / 이용식
눈 위에 쓴 글자가 눈 녹자 지워진다
약속도 눈을 따라 지워져서 사라진다
선명히 새겼었지만 흔적마저 간 곳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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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雪話) / 이용식
약속 아닌 약속으로
내 키가 자라고 있다
첫 눈 맞는 외로움이
어젯날의 숲을 걸어
분분한 망각 속에서
묵은 약속 헤아린다.
별들이 눈짓 주며
가등이 외면하면
그 긴 둘레의 길
허공 위에 뿌려지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꿈을 피워 올린다.
슬픔을 가꿔가는
끝을 향한 약속이여
눈발에 새긴 자국
눈길을 헤쳐 가며
언약을 죄다 지우면
떠오르는 그 날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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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에서 / 이용식
고향 흔적 싣고 와서
시장 바닥에 부린다
시름에 무딘 가슴
한숨 터져 갈라진다
시골길
되새겨가며
울고 섰는 흑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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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滿月) / 이용식
큰 원 안에 횡으로 앉아 있는 제비 떼
지구 밖 별을 보다 물때를 가슴에 담는
앉은 줄 악보가 된다는 걸 까마득히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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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것들에 짠한 마음일 때 들려오는
벌레소리는 공허하지 않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미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텅 비어서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므로 내가 듣는 벌레소리는
사람의 천마디 만마디 말을 앞설 때도 있다.
'공허한 메아리의 벌레소리만도 못해'라는 구절에서
나의 상념은 전혀 다른 곳으로 달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