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로켓스토브 적정기술 공방 기획특집_ 1. ROCKET STOVE WORKSHOP월간 전원속의 내집 |취재 이세정 사진 변종석 일러스트 라윤희 입력 15.08.07.
터닝포인트를 돌아, 새로운 인생을 찾다 FUN & SLOW LIFE
바야흐로 백세시대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다면 행복한 거고, 그렇지 않다면 두 번째 직업을 빨리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직업이라 부를 것도 없다.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는 순간, 일상에서 그 시간만 조금씩 늘려간다면 괜찮은 인생이다.
스스로를 도시형 인간으로 칭하던 이 부부. 지리산 하동에 와서 그들도 몰랐던 적성 찾기를 시작했다. 철을 두드리고 수를 놓으며 지내는 나날, 배움의 시간 끝에 찾은 두 번째 인생이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박홍순 씨가 직접 제작한 로켓스토브 방식의 이동형 요리 난로. 투입구 크기의 장작 양으로 2시간 연소가 가능하다. 그는 새롭게 난로를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who 박홍순(60세), 정회옥(57세) 씨 부부 before 남편은 서울 여의도로 출근하는 관공서 중역, 아내는 전업주부 when 남편 정년 퇴직 후 2009년 가을 어귀쯤 where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대촌마을, 박경리作『토지』의 주무대가 되었던 최참판댁이 자리한 마을 now 남편 - 500평 감나무 농사 / 목공예 / 난로 제작 / 베이킹 아내 - 야생화 자수 / 퀼트 / 손뜨개 / 베틀 / 골동품 수집 / 가드닝 contact http://blog.naver.com/hongsoon3205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연장 같은 걸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어요. 농사일도 회사에서 단체로 했던 모내기 봉사가 전부였죠."
한 직장을 29년하고도 8개월 꼬박 다니고, 55살이 되는 날 퇴직을 맞이한 박홍순 씨. 아내와의 여행길에 무작정 마음을 뺏겨 이곳 하동으로 귀촌했지만, 처음 해본 시골 생활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2년차 때는 마음 속으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기도 했지만, 부부는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지리산 자락을 지켜냈다.
도시가 그립고 서울의 친구들이 보고플 때마다, 부부는 약초를 공부하고 나무와 풀을 배우러 하동과 광양, 멀리 산청까지 찾아다녔다. 시골살이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섭렵한 뒤 남편은 목공과 용접, 아내는 야생화 자수와 퀼트 분야에서 몰랐던 적성을 찾았다. 인생의 두번째 장이 펼쳐진 순간이었다.
박홍순 씨는 난로 만들기를 시작하고 시골살이가 더 신이 났다. 그가 만드는 난로는 적정기술의 하나인 '로켓스토브' 방식인데, 최소한의 장작으로 고효율의 성능을 낸다. 광양에서 용접기술을 배우고 국가자격증까지 딴 실력 덕분에, 집에 두려고 만든 자작난로를 보고 먼 곳에서도 찾아와 주문을 하곤 한다.
"남의 도면과 기술을 단순히 베끼기만 하면 발전이 없어요. 먼저 불의 원리를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그리고 난로 제작 기술이 담긴 유튜브나핀터레스트에서 자료를 찾아보며 나만의 난로를 구상하는 게 즐거운 시간이죠."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집에서 내려다본 공방과 평사리 마을 전경. 집터와 과수원은 마을에서 손꼽히는 남향의 명당 자리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단순한 난로가 최고의 난로다. 소금 간만 한 담백한 빵이 제일 먹기 좋은 빵인 것처럼.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박홍순 씨는 짬이 날 때마다 자투리 나무로 새 집을 만든다. 색색의 새 집들은 재미있는 볼거리가 된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아내가 수놓은 패브릭으로 꾸민 거실. 창가에 앉아도 데크에 앉아도 자연과 한몸이 된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ALC블록으로 지은 집. 풍수상 정남향으로는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집도 동쪽으로 3도 정도 틀어져 있다.
Look at here!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박달나무로 직접 만든 난로 제작 도구. 철을 접거나 구부리는 작업을 할 때 쓴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부부는 심심할 때마다 이런저런 놀이를 한다. 야외화덕으로 쓰려고 공수한 드럼통을 반으로 뚝 잘라 장작을 보관하고 있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캠핑용 난로는 장작 몇 가지로 센 화력을 낼 수 있도록 제작했다. 분리해 이동할 수 있고 물을 올려도 금방 끓는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목공을 배우던 초창기 직접 만든 찻상. 마당에 흐드러지게 여문 사과를 유리볼에 담아 장식했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쿡스토브는 원형 투입구 위에 솥을 걸어도 좋고, 뚜껑을 닫고 그릴을 올려 바로 고기를 구울 수 있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공방 1층은 남편의 작업실. 마당의 감을 수확하는 계절이면 곶감 건조장으로 변신한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최근 취미는 하동 우리밀로 빵 굽기. 시카고피자부터 치아바타까지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Oh My Favorite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박홍순 씨가 생애 처음 만든 난로. 2층집 오픈천장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겨울, 별도의 난방 없이 난로 하나로 겨울을 보냈다. 집과 공방에 두 개의 난로가 있는데, 장작 20만원어치로 겨울을 다 나고도 남았다.
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아내의 바느질 작업실은 공방 2층에 있다. 야생화 자수, 퀼트, 손뜨개, 최근에는 베틀도 짜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느질, 꽃들과 놀다'라는 주제로 집 정원에서 두 번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리산 산골에 무려 5백여 명이 찾았다는 후문이다.
요즘 그는 새로운 취미이자 목표가 생겼다. 마당에 화덕을 만들어 직접 빵을 굽는 일이다. 내화벽돌을 쌓고 미장하는 기술을 배우러 일주일에 한 번씩 강진의 도예촌을 오가고, 여러 베이킹레시피를 참고해 비율과 발효법을 연구하며 나름의 빵을 만든다. "서울 살 때 목표는 단지 '잘 먹고 잘 살자'였어요. 그런데 시골살이를 하며 새로 생긴 목표가 있어요. '보기만 하면 만든다, 그리고 나만의 것으로 창조한다'죠." 사람은 모두 재주 하나씩은 타고난다.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고, 인생 중반에 발견하는 횡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노력과 열정 없이는 이룰 수 없는 행복이다. 저녁이면 내외가 작은 등을 켜고, 각자의 자리에서 공부하고 집중했던 시간들. 쓸모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겨왔기에 지금의 이들이 있다. 언젠가 감나무 가득한 마당에서 자작난로 전시가 열리는 날, 그는 아마 직접 구운 빵을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부부를 다시 만난다면, 인생의 후배로서 존경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월간 <전원속의 내집>의 기사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복사, 배포는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홈&리빙 기사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