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남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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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했던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한남금북정맥 마지막 연재 이후 벌써 6주가 지났다.
계속해서 한남정맥으로 이어가는 일을 그렇게 많이 훼방놓은
주범에 대한 언급을 하고 가야겠다.
그의 이름은 <팔꿈치머리윤활낭염>
오른 팔꿈치에 돋아난 커다란 혹을 제거하고 재발을 막으려면
일정 기간 팔을 꾸부려선 안되므로 고정 깁스를 해야 한다는 것.
결국 유감스럽게도 key-board를 임의로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연재를 중단하게 되었다.
삼복 염천에 고통이 여간 아니었다.
다만 사지(四肢)중 한 팔의 기능이 일시 정지를 당했을 뿐인데
몸 전체가 해체된 듯 무력감에 시달리는 고통이 더욱 컸다.
왼손잡이(south-paw)가 부러웠다.
양손잡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야구의 양손잡이(switch-hitter)야 말로 위대한 선수리라.
평소에 왼손 위주, 혹은 양손 생활 습관을 들였더라면 이런 경우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이름도 희한한 이 병의 근인(近因)은 밧줄에 매달리다가 바위와
심히 충돌한 것이라지만 누적된 상처의 결과란다.
산에서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인 걸 어쩌겠나.
그런데 당초에는 깁스 3주면 되리라더니 6주로 늘어나 상심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달리 대책이 없으니 감수할 수 밖에 없는데 점검때마다 의사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되레 미안해 한 것은 작전이었나.
자기 병원(강북연세정형외과) 개원 이래 최초의 멋장이 어르신
모범환자라고 추켜올리며 늙은 이를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투정이 가당한가.
꾸욱꾹 참을 수 밖에.
의사의 매너(manner)를 생각해 보게 하는 사람이다.
환자의 신뢰를 끌어내는 힘은 제압하려는 권위(authority)보다
격의 없는 친근감이 아닐까.
환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표현, 알아볼 수 없는 암호
같은 글(처방전)이 명의의 바로미터(barometer)는 아니니까.
(요즘에는 정형 양식에 컴퓨터 출력이라 한결 나아졌다)
엔터테이너(entertainer) 기질이 있는 이 젊은 의사에 대한 늙은
이의 호감이 더욱 고분고분하게 했을 것이다.
문제는 완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리하면 도지기를 잘 한다니 대책 없는 놈 아닌가.
다시 깁스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며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도 아닌데 차라리 혹을 달고 사는 게
나을 거니까.
그러니까 이런 일로 다시는 글쓰기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겐 한 믿음이 있다.
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산에서 가장 잘 풀린다는 것.
즉 여하한 상처도 산타는 동안에 가장 잘 치유된다는 사실이다.
육체건 정신이건 산 아래에서 발병한 것 까지 모두.
내가 산을 최고로 신통한 병원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남정맥, 문수산에서 시작하다
<새 해 들어 동장군에 밀려 주춤거리던 한남정맥 종주를 위해
대충 준비를 마쳤다.
특별한 준비랄 건 없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처음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매번 시작은 긴장된다.
무엇이, 어떤 모습을 하고 날 기다리며, 어떤 방식으로 나를
압박해 올까.
역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자의 두려움인가.
또 착각이구나.
어머니, 내 어머니가 계시는데 내가 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맞설 것이다.
2004년 1월 31일 새벽에>
이 메모를 남겨놓고 차가운 칠흑을 열었다.
난동(暖冬)이라 하나 겨울 한 중심의 새벽 걸음은 심란했다.
지하철과 강화행 시외버스를 번갈아서 도착한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문수산의 들머리에서는 무슨 작전이 전개되고 있는가.
겨우 먼동이 트고 있는 이 시각에 나 말고 행인이 몇이나 된다고
저리 요란한 검문일까.
아뿔싸.
여기는 전방이다.
육군에게는 적(?)과 대치중인 휴전선이 최전방이겠으나 해병의
전방은 바닷가라는 걸 잠시 잊었나 보다.
월곶, 대곶 등 '곶'이 붙은 지명이 의미하지 않는가.
바다로 뽀족하게 내민 땅이라는 '곶'(岬)이 많은 지역인걸.
조금만 나아가면 옛 나루터다.
김포뭍과 강화섬을 잇는 교량이 건설되기 전엔 마니산과 전등사,
병인과 신미 두 양요의 전적지 등을 답사하기 위해 이 나루에서
타고 온 버스와 함께 배로 건넜는데.
산성 입구에서 방향을 잡느라 잠시 배회하고 있었을 뿐인데 늙은
겨울山나그네의 이런 꼴이 한 촌로의 눈엔 아주 가련해 보였던가.
지근의 문수사를 가리키며
"저기 가면 공양을 받을 수 있는데..."
친절하고 인정도 많으셔라.
무슨 심란한 일이라도 있는가.
이른 겨울 아침에 산성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에게
"아침 담배가 건강에 가장 해롭다는데요"
나의 답례였다.
초입에서 잠시 밟아 본 문수산성은 사적 제 139호다.
이조 숙종때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축성했다는 포곡산성이다.
병인양요(1866)때 소실됐다는 문과 성곽을 복원중인 듯.
신라 고찰 문수사와 문수산 휴양림 산림욕장은 어색한 대비다.
휴양림을 우측에 끼고 오르는 산비탈 응달이 꽤 미끄러웠으나
어렵잖게 문수산(文殊)에 올랐다.
376m에 불과하나 서해를 기준으로 하면 아주 낮은 산도 아니다.
이른 겨울 아침 탓인지 김포의 금강산이라며 잘 정비한 등산로에
비해 오른 이가 드물었다.
차단한 철문의 인터폰으로 도움을 받아야 정상부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정상에는 군이 주둔해 있고 정상석 위치는 한 단 아래다.
얼마 전까지는 이렇게라도 오르지 못했다니 다행이라 할까.
정맥은 대간에서 분기했다.
그러니까 한남정맥 종주는 속리산 천황봉에서 분기한 한남금북
정맥을 타고 내려오다가 한남과 금북의 분기점인 칠장산을 거쳐
여기 문수산에서 마감하는 것이 순리리라.
그러나 호남정맥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남금북정맥도 이미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던가.
새삼스레 들-날머리 가릴 계제도 아니기에 문수산으로 오른 것일
뿐인데 정상을 밟았으니 말이다.
상 / 문수산 정상 직전의 중봉
하 / 정상
첫 날부터 인내심 테스트하려는 것인가
정상석 앞에서 동남으로 뻗어가는 정맥을 어림해 보았다.
얼마나 많이 낙담하고 좌절해야 할지 불을 보듯 훤했다.
2004년 1월 31일 토요일 아침 9시 30분,
문수산 정상에서 단 한 가지만 간절히 빌었다.
인내심!, 이 인내심을 끝까지 잃지 않고 초지 일관하게 해달라고.
사라지고, 동강나고, 갈기갈기 찢겨 나간 정맥, 지금도 간단 없이
그리 돼가고 있는 정맥 잇기를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는 뜻이다.
그런데 첫 날부터 늙은 이의 인내심 테스트에 돌입했나.
수 없이 많은 군의 막사와 철조망을 끼고 우회해야 하는 국가적
현실은 감수할 수 밖에 없지만 올가미 앞에서는 충천하는 분기를
억제할 수 없었다.
어느 잔혹한 자가 설치해 놓은 가느다란 와이어 올가미 철거에
정맥 타기를 제쳐야 했으니 분노가 낙동과 호남 양 정맥 때의
것까지 뭉쳐 폭발 직전이었다.
올가미(올무)
동물에게는 덫보다 더 잔학한 살생 도구다.
덫에 걸리면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고, 그러다가 어느 한 부분은
불구가 될망정 살아나는 요행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올가미에 걸리는 순간 소리 한 마디 지르지 못하고 버둥
거리다가 숨을 거두고 말게 하는 잔악한 무기다.
이런 끔찍한 현장을 한 두번 목도한 게 아니다.
이 점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다르다.
사람은 이성적이어서 부러 자살을 꾀하지 않는 한 목이 올무에
걸리면 스스로 그것을 풀고 안전하게 빠져 나올 수 있지만 덫에
치일 경우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예외에 해당하는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창의 동그라미황토집 소정님네 진도견 이야기다.
어느 날 사라진 개를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끝내 허사였단다.
체념한 며칠 후 좀 떨어진 산에 나무하러 올랐던 주인이 귀로에
잃어버린 바로 그 개를 발견했다는 것.
어느 못된 놈의 고약한 심술이었을까.
목이 올가미에 묶인 채 다소곳이 앉아 있더란다.
버둥거리면 옥죄어 질식사하고 말 것을 알기에 허기를 참으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아! 이 영특함이어.....
<마룻금을 찾지 못해 헤맬 때나 길 없는 된비알을 오르내릴 때,
안타깝게도 밤길을 더듬을 때 가장 심각한 공포의 장해물이 바로
이들이 매설해 놓은 지뢰(덫)인데요.
온 힘을 다 쏟아부으며 길을 헤쳐나가도 부친 판에 이것들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다니.
어느 날, 자승자박한 그들이 뉴스거리로 등장한다면 이보다 더한
통쾌 무비는 없을 텐데요.
자기가 설치한 덫에 자기 팔 다리가 물리고 잘려 몹시 고통스러워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면 제가 너무 잔인한가요?>
다시 주인을 따라 산에 올랐던 진도견이 덫에 걸리는 사건을 겪은
소정님에게 보낸 내 e-mail의 일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