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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대교를 지나 해금강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니 거제시 둔덕면이다. 어두운 밤길에도‘청마의 고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거제도가 고향인 청마 유치환 시인은 바다를 많이 노래하였다. 고향 바다를 그리는 마음은 늘 그의 시에 내재되어 나타났다. 향수, 풍일, 바위, 바다, 깃발 등이 그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의 하나인‘그리움’도 바다를 떠나지는 못한다.
그리움(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2006년 12월 31일 저녁 10시 일출맞이 산행에 나섰다. 남해 바다의 끝자락에 위치한 거제도 망산으로 출발하였다. 버스에 올라보니 러쎌산악회의 단골 회원들이 대거 출동하였다. 청아님 바우님 디자이너님 캐러반님에 오산 산악 동지회 회원들도 발길이 가볍다.
산악회 버스가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만의 명사해수욕장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경이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이 하나도 새지 않는다. 옅은 구름이 깔린 흐린 날씨였다. 바람 한 점 없어 하얀 파도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벽 5시경, 아침 식사로 따끈한 육개장이 준비되었다. 차량 3대로 밤길을 달려온 130명의 해장국을 준비하자니 산악회 주방장님의 노고가 보통 일이 아니다.
새벽 6시경, 일행은 망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어서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걸었다. 해발 375M의 망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제법 가파랐다. 외길인데다 여타 산악회의 등산객도 있어 등산길이 지체되었다.
아침 7시경, 망산에 오르니 발아래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무공해 청정지역의 남쪽 바다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군청색의 빛깔로 다가왔다. 발아래 반달형의 해안선에 놓인 마을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마을의 이름이 무지개마을이란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망산 전망대에서는 대병대도, 성문도, 매물도, 소매물도, 가왕도, 대덕도, 소덕도, 장사도, 욕지도, 비진도,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른 바 한려수도閑麗水道와 쌍벽을 이루는 적파수도赤波水道의 장관이다. 망산의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의 뒷면을 보니 천하일경天下一景이라 쓰여 있다. 그야 말로 쪽빛 바다의 풍경은 천하 절경이다.
이른 새벽, 쪽빛 바다에 하얀 금을 긋고 달려 나가는 배들이 있었다. 부지런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러 나가는가 여겼더니 그게 아니었다. 좀 더 멋진 일출을 바다위에서 맞으려고 어선을 빌려 타고 나가는 찍새들의 날개 짓이었다. 극성스런 모습이었지만 그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카메라 앵글에 점점이 놓인 섬들을 소품으로 넣고 일출 장면을 담는 것이다.
일출 맞이 산행에 나선 손님들은 저마다 전망 좋은 자리를 잡느라고 부산하다. 마치 비좁은 바위틈에 알둥지를 트는 바닷새의 종종거림과도 흡사하다. 해맞이를 하는 마음은 아기 새의 부화를 기다리는 어미새나 아해의 탄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일행은 적파수도를 조망하며 어서 새해의 붉은 해가 솟기를 기다렸다
새해의 붉은 해는 해맞이 손님들의 희망대로 불끈 솟아오르지는 않았다. 수평선에 드리운 구름에 가려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7시 40분경이 되어서야 수줍은 모습을 띄고 잠깐 솟았다.
“우와!”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었다. 환호의 신호를 내지 않았는데도 일제히 함성을 내지른다.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해는 이내 또 다른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8시경, 거제지맥으로 불리는 가라산, 노자산을 향해 떠난 일행의 뒤를 추격하여 나섰다. 여차등에 이르러 산 아래를 굽어보니 여차몽돌해수욕장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해수욕장 끄트머리에 원뿔 모형으로 솟은 해발 271M의 천장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9시 30분경, 망산을 한 바퀴 빙 돌아 저구리만과 다대만을 가르는 저구고개에 다다랐다. 일출 맞이 산행에 나선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곳에서 산행을 끝마쳤다.
저구고개에서 가라산을 향해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가파른 능선이 이어지고 장딴지가 팽팽하게 긴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무박 산행은 야간 이동이기 때문에 신체 리듬이 깨어진다. 시차와 잠자리에 민감한 사람들은 왕왕 단잠을 설치는 것이다. 전날의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쌓이기에 당일 산행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 것이다.
10시 30분경, 가라산을 향해 가는 길에 오래된 성터를 만났다. 다대산성이라 하였다. 통일 신라 시대의 석성으로 알려진다. 가라산 중허리에 자리 잡은 이 성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거제삼속현중(巨濟三屬縣中) 송변현(松邊縣)의 진성(鎭城)으로 쌓았다한다. 둘레의 길이 395m, 석성의 높이 3.3m이라고 한다. 이 성은 대당 무역선과 대일 무역선의 길목에 위치한 석성으로 뱃길 안전 운항의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완도의 청해진, 남양의 당성진, 강화의 혈구진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다대산성의 특이한 점은 성터 안에 자생하는 푸른 활엽수들이다. 엄동설한의 계절이 분명한데도 이곳에는 푸른 활엽수들이 즐비하다. 동백나무, 꽝꽝나무 이외에 키 작은 관목이 발밑을 푸르게 덮고 있다. 나무들만 보아서는 계절의 정체를 실감할 수 없다.
성 아래에 위치한 다대만의 다포항이 아늑하다. 가끔 뱃고동 소리가 새해를 알리는 파루 소리로 들린다. 그 아래로 동해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간 갈곶리 해금강의 용머리가 기운차다.
다대산성을 지나 얼마간 내림길과 오름길을 오르내려 학동재에 도착하였다. 이윽고 학동재를 지나 망등에 다다랐다. 망등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 풍경 또한 시원하다.
12시 30분경, 가라산 정상에 다다랐다. 해발 585m의 가라산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한다. 그러나 주위가 평평하고 잡목이 우거져 있어 전망은 좋지 않다. 본래 가라산의 명칭은 이곳이 가야의 남쪽 국경이어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6가야 또는 7가야로도 불리운 가야는 북으로는 해인사를 품은 합천의 가야산, 남으로는 한려수도를 품은 거제도의 가라산이 그 영토였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왕후 허황옥의 아들 7형제가 성불하였다는 가야산 칠불봉七佛峰이 바로 영토의 북단이요, 본디 아유타국의 왕녀로 상제의 게시를 받아 붉은 돛을 단 배를 타고 남해 바다를 건너온 가라산이 바로 영토의 남단이다. 그러기에 일본서기 속의 가야 7국은 가야 왕자 7형제의 잃어버린 왕국의 영토로 보이는 것이다.
삼국사기보다 더 자세하고 한국적인 고대 일본서기를 살펴보면 가야 7국은 가라, 비사벌, 안라, 다라, 녹국, 탁순, 남가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가야 7국을 합천(가라), 창녕(비사벌), 창원(다라), 함안(안라), 경산(녹국), 거제(탁순), 김해(남가라)에 비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는 그 흔적도 없는 탁순이라는 가야 7국의 지명이 재미있다. 이는 우리말 그대로 닭섬을 그렇게 표기한 것은 아닐까? 우리말 닭섬이 탁섬-탁순으로 변형되어 한자로 표기된 것은 아닐까? 거제도의 이름이 크제도의 큰섬이요, 거제도의 지형이 큰 닭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것에서 탁섬은 아니겠는가?
우리말의 고어로 시라는 곧 백마(白馬)이다. 구라는 똥마(銅馬)이며 가라는 흑마(黑馬)이다. 이미 신라의 마스코트는 자작나무 숲 위의 하늘을 나는 백마白馬가 아니던가? 기실 가라의 마스코트는 흑마(黑馬)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라산 정상에서 진마이재까지는 제법 가파른 능선길이었다. 진마이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천연기념물 동백숲 보호구역이 있다. 그 아래로 학동해수욕장과 몽돌해안이 유명한 관광 명소이다. 파도가 치는 대로 따라 구르며‘자갈자갈’논개구리 우는 소리를 내는 몽돌밭에서 한두 시간 머무는 것도 좋은 추억일 것이다.
오후 1시 30분 경, 뫼 바위와 마늘 바위를 지나 노자산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일망무제의 다도해의 풍경이 아름답다. 왼쪽 율포만의 아늑한 포구(浦口)와 죽도. 그리고 가라산을 향해 몰려드는 올망졸망한 섬들이 살아있다. 어떤 것은 아기 거북이를 닮았고 어떤 것은 수달피를 닮아 앙증맞다. 노자산 정상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천연 아열대 식물원인 거제도 자연 휴양림이다.
오후 2시경,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된 우뚝한 노자산 봉우리에 다다랐다. 해발 559m의 노자산은 거제도에서 가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봄과 여름에는 야생화군락지로 각광을 받고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그리고 보니 오래된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그러나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것은 산행 중에 항시 바라볼 수 있는 다도해의 풍경이다. 이곳 바닷가의 풍경은 사시사철 무청의 청청함을 잃지 않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그러나 산행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칫 고단한 행보일 수도 있겠다.
거제자연휴양림에는 거제도의 대표적인 아열대식물이 자라고 있다. 자작나무, 박달나무, 동백나무 등 600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숲은 마치 남국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또한 동백나무 숲속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팔색조가 서식하고 있어 신비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그런 까닭에 신선이 살만한 산이라 하여 노자산(老子山)이라 불린다고한다. 노자산 정상에는 가뭄에 하늘에 제사하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 그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노자산 정상에서 헬기장까지는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30분쯤 내려서자 혜양사에 도착하였다. 사찰이 들어 선 골짜기에 물이 있어 반가웠다. 거제도는 물이 귀한 섬이다. 그런데 이곳 혜양사의 너른 뜨락에는 약수정이 있었다. 일제 침략기에 구국의 의병들이 모여 훈련을 하면서 마시던 물이라고 한다. 헤양사의 너른 뜨락에는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사찰을 나오다 뒤돌아보니 혜양사가 위치한 자리는 노자산의 정기가 붕긋이 뭉친 명당이었다. 태아를 잉태한 어머니의 아랫배처럼 둥글고 편안한 모습의 명당이었다. 장차 노자를 닮은 걸출한 사상가를 배출할 대학원이나 연수원으로 자리 잡을 곳이었다.
오후 2시 30분경, 산 아래 마을에 들어서니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점심으로 새해의 떡국을 받아 들었다. 그제서야 비로서 오늘이 2007년 1월 1일이라는 날짜가 실감났다. 소주 서너 잔을 반주로 떡국을 먹고 나니 캐러반님이 체리로 담근 빛깔 좋은 술을 권하였다. 맛이 달큼하고 빛과 향이 깨끗하니 제대로 담근 술이라고 여겨졌다.
부춘리 마을에는 서너 동의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두 동은 상추, 쑥갓 등의 채소를 기르는 비닐하우스였고, 두 동은 한라봉으로 이름 난 황귤을 기르는 비닐하우스 온실 귤밭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이만저만 정성이 담긴 비닐하우스가 아니었다. 가지 하나하나에 보조 자일이 매어져 있고 과실 하나하나에 안전 고리가 걸려 있다.
어! 거제도에 한라봉이? 제주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꼭지 있는 황귤 한라봉이 이제 막 거제도의 새로운 특산물로 부상하고 있었다. 거제도 서정리를 비롯한 부춘리의 비닐하우스에는 1월 중순의 출하시기를 앞둔 한라봉이 마지막 당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 보다 연간 일조량이 600시간 정도 많아 평균 13~15 브릭스의 고당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바람도 적어 풍수해도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거제도는 지금 눈부시게 도약하고 있다. 도약하는 정도가 아니라 비상하고 있다. 큰 닭섬 거제도의 명성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바꾸어 가고 있다. 거제도의 진산 계룡산이 북극성을 향해 날아오르듯 거제 삼성 조선소가 세계적인 조선소로 부상하고 있다. 동아지중해를 누비던 해적을 소탕하고 열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섰던 망산과 망등의 이미지는 이미 탈피하였다. 거제도와 가덕도를 잇는 세계적인 다리 거가교를 남해 바다에 놓아 21세기 새 시대 새 희망의 전초기지로 발돋움을 하고 있다. 황금빛의 희망산, 희망등의 이미지로 거제도를 가득 채워가고 있다. 명심보감에 일년지계一年之計 재어춘在於春이라고 하였다. 새해 새 희망을 거제도의 황귤처럼 탱글탱글하게 세워야겠다.
첫댓글 글..그저 잘 읽고 갑니다..산행 하시느라 글 쓰시느라 수고가 정말 많았습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소망 꼭 이루시는 한해 되세요...
오랜만에 보는 산행기 감사합니다. 맛있는 글 올해도 부탁드리며, 건강하십시요
새해 소망이 담긴 일출을 보고...산행길에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 드리고,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늘~당당한 한해가 되소서.
새해 일출과 더불어 거제의 비상 ! 또한 님의 비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늘~건강하시고 종종뵙길 바랍니다.
새해 가내 더욱 화목하시고 하시는 일 뜻 대로 이루시고 즐거운 산행 많이 하시길 기원합니다.
정해년 새해에 구수한 덕담과도 같은 선생님의 "산행후기" 오랫만에 잘 보았습니다 ! 올해도 "변함없는 좋은글" 기대하며 늘 ! 건강 하시길 .....
나도 위 글과 같은생각
당신들은 왜 그리 마음에 꼭 드는거여요. 내 마음 싱숭생숭하게 스리....
얼굴도 한번 못뵜 지만 정말 멋진분 같아요 늘 건강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마워요. 고맙고요. 고맙지요. 감사ㅎㅎㅎㅎ
임선생님의 새해산행기 감동깊게 잘읽었읍니다.거제도에서 귤을본것도 새로운 볼거리였던거 같습니다.올한해도 아름다운 산행기 한 백여편 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새해더욱 강건하십시요.
육계장에서부터 ~~~ 떡꾹까지 ~~ 생생한 일출 산행기 잘읽고 박수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