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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에서 하룻밤 (천장암 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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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도로명 주소 논란과 진돗개 같은 종교
천장암 추천 0 조회 114 11.07.16 17:5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도로명 주소 논란과 진돗개 같은 종교

 

 

 

우리나라가 기독교일색으로 변한다면 어떤 상황이 초래될까. 불교인이라면 상상도 하기 싫겠지만 아마도 유럽의 중세시대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런 경험을 겪고 있는 곳도 있다. 소위 미션스쿨(mission school)’이라 불리우는 사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강요행위이다.

 

희귀하고 드믄 일

 

중학교시절은 불교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시절에는 기독교학교에 다녔다. 모두 본인의의사와 관계없이 배정 받아서 들어간 학교들이다. 그래서 두 종교에 대하여 청소년시절 부터 알게 되었다.

 

그런데 불교학교에 다녔다라는 사실은 매우 희유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음의 표가 잘 증명해 준다.

 

 

종교사학에 배정될 확률

종 교

초등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

대학교

전체학교

5,646

2,935

2,095

158

191

불교

1

11(0.37%)

10(0.47%)

-

2

개신교

10

123(4.2%)

165(7.8%)

17

34

천주교

6

27(0.91%)

38(1.8%)

2

9

원불교

6(0.2%)

7(0.3%)

2

3

 

 

 

위 표는 2006년도 교육통계연보 자료에 따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학교는 2,935개이다. 그 중 불교학교는 11개소이다. 따라서 불교학교에 배정 받을 비율은 0.37%가 되는 것이다. 이 정도의 비율이니 불교학교에 배정받은 것이 희귀하고 드믄일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개신교 학교에 배정 받을 비율은 이 보다 훨씬 더 높다. 중학교의 경우 4.2%이고, 고등학교의 경우 무려 7.8%나 된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를 개신교학교에 배정받아 다니게 되었다.

 

세상은 불타고 있다

 

불교중학교에서도 종교교육이 있었다. 하지만 1주일에 한 번 있는 불교시간이 전부이었다. 그 시간에 배운 것은 1학년 때부처님의 일생이었는데, 지금도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 강한 인상을 주었던 문구가 세상은 불타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삽화와 함께 설명된 그 내용을 그 때 당시에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최근 초기경전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딧따빠리야야경(Adittapariyaya Sutta: The Fire Sermon, SN 35.28 , PTS: S iv 19, 불타오름 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가야에서 가야시사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비구들이여라고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세상이 불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세상이 불타오르고 있는가?”

눈이 불타오르고 있다.

형색이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이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이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고 있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는 염오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 그 비구 승가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고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상윳따니까야, 아딧따빠리야야경, Adittapariyaya Sutta: The Fire Sermon,불타오름 경,  SN 35.28)

 

 

부처님의 초기 전법시절이야기이다. 부처님이 1,0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우루웰라 산상에서 산아래를 바라보았을 때 마침 산아래의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시고 부처님은 세상이 불타고 있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타고 있다는 것일까.

 

경에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것은 윤회의 원인이 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불타고 있다고 하였다. 그 결과는 항상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이어질 것이라 한다.

 

따라서 눈, , 코등 감각기관과 형상, 소리, 냄새등 감각대상이 만 났을 때 필연적으로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이 발생 되는데, 이에 대한 갈애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모든 번뇌로 부터 해방되어 해탈과 열반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우루웰라 산상수훈이다.

 

볼 것 못 볼 것을 다 보고

 

이처럼 불교중학교에서 고도의 철학적인 내용도 가르치고 있었다. 이는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으면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진학한 고등학교는 미국의 선교사가 세운 학교이었다. 그런 역사와 전통이 있어서일까 학교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연히 학교 분위기는 기독교적인 것으로 가득하였다.

 

일주일에 두번 바이블시간이 있고, 매주 2번 방송예배, 1회 전체예배가 있었다. 특히 1년에 3일은 모든 수업을 전폐하고 교회에서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배운 기독교교리를 보면 중학교 때 배운 것과 너무 차이가 났다.

 

기독교의 교리는 한 마디로 유치원 동화(童話)’를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모든 예배나 찬송이 허위와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차 보였다.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하여 기도한다거나 , 마치 애원하고 아부하는 듯한 설교를 보면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꼼짝없이 3년을 보냈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의 볼 것과 못 볼 것을 다 본 것이다.

 

 

고교시절 3년의 기억은 끔찍한 것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종교를 강요하고, 이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저항하는 3년을 보냈다는 것은 청소년기에 있어서 커다란 불행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요즘 또 다시 그와 같은 끔찍한 시대가 도래하려 한다는 것이다. 장로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제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낸 본격적인 기독교화가 그것이다.

 

탈레반보다 더한 무형유산의 파괴

 

최근 장로정권은 불교흔적지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새 도로명주소의 시행에 따라 불교식지명을 모조리 없애 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 절이름이나 교회이름이 들어간 길이름은 싣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명백히 불교를 겨냥한 것임에 틀림 없다. 종교와 관련된 대부분의 지명이 불교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이런 지침을 어기고 불교지명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기면 공무원 생명이 끝날 뿐만 아니라 각종 연금혜택등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정부의 지침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안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긴 장로정권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뀐 길이름에 대하여 정정하려면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서울과 수도권과 같이 기독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글 (MB정권은‘탈레반’인가, 도로명주소로 불교흔적지우기)을 올렸는데, 이에 대한 답글을 어느 스님이 다음과 같이 올려 주셨다.

 

 

옛 지명을 지키는 일은 200억원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옛지명은 우리의 역사요, 문화요,정신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단절 시키려는 ...이러한 무식한 일을 정부에서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한심스럽습니다.
무형유산의 파괴는 텔레반보다 심각합니다.

 

 

지명은 무형문화유산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명을 없앤다는 것은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탈레반이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유형문화유산을 파괴한 것 보다 더 악의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장로정권은 무형문화유산을 파괴하여 불교인들로 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꾸 불교흔적을 지우려 하는 것일까.

 

한 번 물면 절대 놓아 주지 않는 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기독교는 좀 특이하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좀처럼 볼 수 없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독교는 누가 전달해 주었을까. 다름 아닌 미국이다.

 

구 한말 미국의 선교사들이 그 때 당시 근본주의적 성격의 기독교를 전달해 주었는데, 그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근본주의를 전달해 준 미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어느 진보적 신학자는 개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미국에서 매우 사납고 한 번 물면 절대 놓아 주지 않는 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한국에 와서 종자가 많이 퍼져 종의 특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종의 개는 미국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라는 것이다. 오로지 한국에서 만 볼 수 있는 그 개의 종이 오늘 날 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독교근본주의와 같다는 것이다.

 

미신우상도 깨부수고, 불교도 깨부수고...

 

그래서일까 종종 매스컴에 알려진 근본주의자들의 행태에 대하여 보도가 된다. 문제가 되는 목사들의 발언을 보면 다음과 같다.

 

 

230개 나라 중에서 불교믿는 나라 보세요. 다 가난해요어느정도 가난한 지 아세요. 뚱구녕이 찢어지게 가난해요. 부처님이 살아있으며는요. 아멘. 자기가 믿는 신도들에게 복을 줘야지 복준 게 없어요. 그러니깐 230개 나라 중에 불교믿는 나라 보세요. 지도 펴놓고. 전부다 거지같이 가난해요. 오늘밤에 집에 가서 애들시켜서 세계지도 펴놓고 하나님 믿는 나라 동그라미치면서 못사는 나라 있음 한나라만 이야기 해봐요. 내가 현찰로 10만원 줄테니까. 다 잘살아요. 다 잘살아.

(신일수 목사)

 

 

북극가면 얼음깨는 배가 얼음을 깨고 나가면 그 뒤에 쪽배고 뭐고 따라오는 배가 많다. 공산당도 깨부수고, 부정부패도 깨부수고, 미신우상도 깨부수고, 불교도 깨부수고... 막 깨부수고 나가면 큰배 작은배가 졸졸졸졸 따라온다. 앞장서서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김성광목사)

 

“예수님 나라 만들기 간단하다. 국회를 1백프로 점령하고 299명 다 채워서 예수 안 믿는 놈은 감방에서 5. 얼마나 좋아. 내가 군사독재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생각이 보통 독재가 아니다. 끝까지 (예수) 믿으라고 해서 안 믿으면 섬을 하나 정해놓고 중들을 집어넣고 헬리콥터로 컵라면만 떨어뜨리자. 예수도 안 믿는 인간들이 왜 살어

(전병훈목사)

 

 

이들은 일부 특별난 목사들이 아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목사들의 전형일 뿐이다. 그런 그들의 입에서 튀어 나온 이야기를 들으면 섬뜩하기까지 한다. 부수고 깨자는 것이 바로 불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까지 점령하여 기독교공화국을 만들자고 한다. 이에 대하여 신자들은 아멘!” 할렐루야!” 로 응답한다.

 

더욱 노골화된 성시화(聖市化)운동

 

이뿐만이 아니다. 공직사회마저 기독교국가 만들기의 온상이 되었다. 이제까지 은밀하게 추진되던 성시화(聖市化)운동이 장로정권이 들어서면서 노골화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제되었던 기독교출신 공직자의 발언을 들면 다음과 같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시 하나님께 봉헌’ 발언

문봉주 뉴욕총영사의 교민 상대 공개 성경 강좌

서찬교 성북구청장의 ‘교동협의회’ 추진 및 선교행위

주대준 청와대 경호처 차장의 “정부 부처 복음화가 나의 꿈” 발언

어청수 경찰청장의 ‘경찰 복음화’ 광고 포스터에 조용기 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 게재

오현섭 여수시장의 “복음박람회, 하나님 선물” 언급

박승숙 인천 중구청장의 거듭된 종교편향 발언

공정택 교육감의 교육청 전자문서 시스템을 이용한 기도회 홍보 및 참석

김성이, 김하중 등 공직자의 부적절한 종교 언급

황우여 한나라당 모든 대법관의 기독교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냄

정장식 전 포항시장(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의 시 예산 1% 성시화운동 사용 계획

 

 

이처럼 공직자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할 공직자들이 자신들의 우월적지위를 남용하여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독교근본주의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불교는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그런 근본주의의 특징은 타종교와의 공존을 거부한다. 타종교는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미신행위나 하고 우상숭배나 하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딱지를 붙이고 청산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불교도 부수어야할 하나의 대상일뿐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와 정반대이다. 고려대 조성택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의 불교는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의 불교는 위기에 놓여있다고 성철스님 100주년 기념 포럼에서 발언하였다.

 

한국에서 불교는 위기이지만 전세계적으로 불교가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불교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 오르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문화적 인류학적 전통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기독교인들이라면 믿기지 않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유럽의 경우 이미 기독교는 한 물 간 용도폐기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데아론으로 날개를 단 야훼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였다. 전지전능한 신은 왜 죽었을까. 그리고 왜 죽어야만 했을까. 그런데 신은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죽여 버렸다고 한다. 그들은 어떻게 신을 죽여 버렸을까. 불교tv에서 김종욱 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이는 인종적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기독교는 중동의 사막지대에서 셈족으로 부터 발생되었다. 그런데 유럽민족들은 아리안족계통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종족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되면서 유럽의 아리안족은 셈족의 종교를 믿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들어 오기 전에는 무엇을 믿었을까.

 

문명이 가장 발달하였다는 고대 그리스의 경우 다신교를 믿었다. 이는 셈족의 유일신교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사막의 부족종교인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비약하게 된 동기는 그리스철학과 만나고 나서 부터이다.

 

야훼라는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고 자신의 부족밖에 모르는 사막의 유일신이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결합되면서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중세신학의 출발로서 천년왕국을 지탱하게 해 준 버팀목이 된 것이다.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하지만 이런 신 중심의 기독교는 르네상스와 종교혁명을 맞아 위기를 맞게 된다. 유럽에 있어서 근대는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옮겨간 것이다. 그런 인간중심도 현대에 들어와 무신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한 표는 다음과 같다.

 

 

유럽의 시대구분

  

    

 

 

과거~4세기

로마 멸망까지

다신(多神)

 

5~14세기

로만 가톨릭시대

신중심

공백기

문예부흥시대

15세기

Renaissance

우회공격

종교개혁시대

16세기

Reformation

직접공격

근대

 

(Modern)

17~19세기

인간중심

 

(Post-mordern)

20세기~현대

무신(無神)

 

 

 

이처럼 유럽에 있어서 신 중심시대는 오로지 중세 1,000년 밖에 없었다. 그런 신 중심시대는 르네상스시대에 우회공격을 당하고, 종교개혁시대에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여 신의 자리에 인간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럽의 근대시기(17~19 )이다.

 

오늘 날 불교가 유럽에서 자연스러운 이유

 

그런데 유럽의 현대철학에서 더 이상 신은 언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현재 서양의 현대철학에서 신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이전에 문예부흥시대와 종교개혁, 그리고 근대를 거치면서 철저히 비판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근대철학과 현대철학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 하였다. 이때 니체가 죽었다고 말한 신은 셈족의 유일신을 말한다.

 

유일신이 죽었다면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온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고대그리스의 다신(多神)이다. 다시 중세이전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문명사적으로 보았을 때 셈족과 아리안족의 대결과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셈족과 아리안족

종족

지역

명칭

 

셈족

(Semites)

메소포타미아

(IL)

IL을 공통어로 하는

유일신

유태교

엘로힘(Elohim)

기독교

야훼(Yahweh)

이슬람

알라(Alilah)

아리안족

(Aryan)

그리스

디오니소스(Dionysus)

니체가 선호

페르시아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

페르시아 아리안의 대표

인도

붓다 (Buddha)

인도 아리안의 대표

 

 

 

셈족과 아리안족은 종족도 다를 뿐만 아니라 언어도 다르다. 하지만 아리안족은민족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셈족의 종교가 천년을 지배 하고 물러간 자리에 다시 고대그리스의 다신을 올려 놓은 것이다.

 

특히 아리안족은 유럽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인도로 갈라졌기 때문에 민족적 원형은 같은 것으로 본다. 이는 오늘 날 왜 유럽에서 불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비웃음으로 죽여 버린 유일신

 

그렇다면 중세천년을 지배하였던 셈족의 유일신은 어떻게 죽었을까. 김종욱 교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신들이 신을 죽인 케이스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다신이 셈족의 유일신을 죽인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십계명 중에 “나 이외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첫 번째 항목이 있다. 이는 오로지 야훼만을 믿으라는 강압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러 인간중심시대가 되었을 때 이런 주장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스의 다신들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한 마디로 웃기고 있네라고 말할 것이다.

 

또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개그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유일신의 행태는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의 다신들은 비웃음으로 죽여 버린 것이다.

 

둘째, 인간이 신을 죽인 케이스이다. 근대 서양인들이 너무 천박하게 살다보니, 그 천박한 존재도 모두 신의 피조물이어서 창조자의 존재이유가 없어서 신을 죽여 버린 것이다.

 

셋째, 초인이 신을 죽인 케이스이다. 니체는 신을 죽인이유가 초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초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때 초인은 그리스적 다신을 말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유럽의 근대철학은 셈족의 유일신을 죽여 버리고, 그 자리에 본래 자신들의 종족이 신봉하였던 그리스의 다신을 그 위치에 올려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신대륙으로 이민간 유일신

 

현대철학에서 신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면 유럽에서 죽은 신은 어디로 갔을까.

 

니체의 안티크리스트에 따르면신이 애들처럼 길을 잃었나? 화장실 갔거나 숨었나? 이민 갔나?”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에서 이민 갔나?”라는 표현은 신대륙을 말한다.

 

유럽의 근대시기에 신은 몰락하여 죽었다고 볼 수 있는데, 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곳은 그 때 당시 신대륙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대륙에서 북미는 청교도가, 중남미는 가톨릭이 번성하고 있어서 유일신은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미국으로 이민간 신은 청교도(Puritan)의 신인데. 청교도는 어떤 종교일까.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영국의 칼뱅주의계열의 개신교를 일컫는 말이라 한다. 이들은 도덕적 순수성을 추구하고 성서에 철저하고자 하는 성서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판 문화대혁명?

 

미국으로 이민간 신은 다시 배를 타고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지독한 근본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근본주의를 물려준 미국에서 조차 볼 수 없는 한국적 근본주의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강제종교교육, 땅 밟기, 영적전쟁, 예천불지, 기도세레모니, 성시화운동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선교행위는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한 마디로 이 나라를 기독교국가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걸리적거리는 대상은 무엇일까.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불교이다. 불교를 박멸하지 않고서는 복음화가 완성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일까 끊임없이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불교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멸절의 대상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중의 하나가 바로 새 도로명 주소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여 우월한 지위을 이용한 지침 같은 것이다.

 

이런 지침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공무원들은 불교고유지명을 거의 대부분 없애 버렸다. 이는 민족고유의 무형문화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마치 60년대 중국에서의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킨다. 이를 일러 한국판 문화대혁명이라고 해야 할까.

 

십자가로 기독교 흔적남기기

 

새 도로명 주소는 불교흔적지우기라는 비판이 우세하다. 이미 이와 같은 현상은 몇 년 전에도 있었다. 지도에서 사찰을 모두 누락시켜 버린 것이다. 그 대신 교회는 아무리 작아도 정확하게 표시하여 놓았다. 그런 지도를 보면 온통 십자가 천지이었던 것이다.

 

이 땅에 독선적 교리와 배타적 구원관으로 무장한 기독교는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아 줄 것 같지 않은 불독을 연상시킨다. 그런 그들이 불교를 지워버리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할 때, 한편으로 그들은 기독교 흔적남기기에도 열심이었다. 안양시의 시마크와 로고를 보면 기독교흔적 남기기가 엿보인다. 

 

 

 

 

 

 

안양시의 시마크와 시로고

 

 

 

 

안양시의 마크와 로고를 보면 십자가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안양시의 마크를 보면 틀림 없는 십자가의 형상이다. 시청의 홈페이지의 구구절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보아도 십자가를 형상화 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로고는 시의 브랜드마크라고 소개 되어 있는데, 이는 영문으로 안양(Anyang)이라는 문구앞에 A+를 부착하여 ‘A+Anyang’이 된다. 이 로고에 대한 시의 설명 역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십자가를 심어 놓으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안양이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유래한다. 부근에 천년고찰 안양사에서 유래하였다고도 알려진 안양이라는 이름은 극락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은 십자가형상의 시마크와 로고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성시화를 주도한 전임시장에서 기인한다. 보수정당의 후보로 3선에 성공하여 장기집권한 S전시장은 비리로 불명예 퇴진 하였지만, 그가 남긴 최대의 업적은 성시화의 상징으로서 십자가를시의 마크와 시의 브랜드에 고스란히 남겨 놓고 있어서 지금 이 순간도 언제 어디서나 수 많은 십자가를 볼 수 있다.

 

성시화를 넘어 성국화(聖國化)’

 

한국의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특이한 종교집단이라고 한다. 장경동 목사의 말처럼전도를 하려면 진도개처럼 해야 한다며 한 번 물면 예수를 믿을 때 까지 놓아 주지 않는 진도개와 같은 근성을 가진 집단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믿는 신은 배타고 미국에서 건너 왔다.

 

미국에서 온 신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신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신은 더 이상 유럽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철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내려 용도폐기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을 믿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 기독교는 우리나라에서 항상 사회갈등의 원인이었다.

 

이번 새 도로명주소로 인한 불교흔적 지우기역시 장로정권의 작품이다. 임기내에무언가를 보여 주려는 듯 이제 성시화를 넘어 성국화(聖國化)’로 가는 것 같다.

 

또한 성시화 과정에서 십자가 형상을 시의 로고로 사용함으로서 곳곳에 십자가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한편에서는 불교흔적지우기를 하고, 또 한편으로 지도나 시마크에 기독교흔적남기기를 하는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에서 불교와 불교인들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호전적이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한 번 물면 놓아 주지 않는 진돗개같은 기독교와 함께 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2011-07-1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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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16 22:09

    첫댓글 기독교의 아집과 독선,물욕이 교회를 사업화하고 정치화하는 실상은 결코 오래갈수없습니다.
    예수의 청소년기삶과 죽지않고 프랑스로 망명한 사실들을 유럽사람들은 이미 알고있고
    이로인하여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불교나 참선등이 선불교가 유럽과 미국에 확장되는데
    한국교회만 예수님의 사랑을 팔아서 사업화,사유화,성전을 만들고,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기독교목사의 손에 놀아나게 하는 것은 타락한 기독교의 최후 발악입니다.
    제가 단언하건데 기독교는 2012년을 싯점으로 쇠퇴의 길을 가게될것입니다.
    모든사람이 종교를 떠나 자비와 사랑으로 전쟁없고 자유롭게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독선적인 기독교는 이제 끝날것입니다.

  • 11.07.16 22:17

    이사회의 지식인과 종교인은 보편타당한 진리를 알리고 국가과 세계평화를 만드는데 노력해야하고
    특히 불교는 가장 보편 타당한 가름침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어린이, 학생, 대학생, 청년, 중장년층들이 생활속에서 행복할수있도록
    쉬운 가르침으로 이사회를 아집과 독선, 이기주에서 해방시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생활에 적용,생활하고 한생각 바꿈으로 내가 행복해질수있는
    생활불교를 만들어 캠페인을 해야하고,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일또한 해야된다고 봅니다.
    저부터 한방울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 작성자 11.07.18 18:42

    저도 노력을 해야 겠네요. 연꽃님이 이렇게 좋은 글을 써주셔서 이런 대화도 나누게 됩니다.
    다른 노력보다 이렇게 인터넷에 좋은 글, 사실을 알리는 글을 쓰는 공덕이 무지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계가 가지고 있는 국민일보나 세계일보 같은 일간지를 불교계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도 불교기사는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블로그에 좋은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옳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 11.07.17 22:07

    오늘 헬스장에(교회가 옆에 붙어있음)갔다가 쓰레기줍고있는 아줌마 한분이 전도하려고 저한테 접근하는데 성경구절을 거침없이 외우면서 이야기하는데 놀랐습니다.우리 불교신자도 경전이나 게송암기를 그 정도는 해야되지않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또 하나 교회가면 자리 안내도 해주고 성경책이나 찬송가도 펴주는데 절에가면(제가 해인사갔을때임) 예불시나 기도한다고 좋은자리 싸움하는거 보면은 저희 불교신자도 반성좀 해야겠습니다.

  • 작성자 11.07.18 18:47

    불교를 쉽고 정확하게 알아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필요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장사에서는 [부처님의 생애]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가려뽑은 앙굿따라니까야] 같은 책을 교재로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입식 공부가 아닌 토론식 공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제하면 시작하려고 하는데....시간이나 방법등에서 좋은 아니디어 있으면 누구든지 서슴치 마시고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11.07.17 22:14

    그렇지요. 우리 불교가 생활불교가 되기위해 누군가 깃발을 들어야 하는데...
    작은 물방울 역활은 하도록 하겠음. 다음에 반갑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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