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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고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들을 가르켜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고 한다. 밴댕이 속이 보잘 것 없을 정도로 작은 데서 생겨난 말이다. 이처럼 별로 좋지 않은 표현에 인용되는 밴댕이니 그 맛이 오죽할까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기껏 커봐야 어른 손바닥 크기밖에 안 되는 밴댕이는 생김새도 못났다. 희멀건 눈, 있는 듯 마는 듯한 주둥이, 형편없는 몸매 등 영 밉상이다. 팔등신 미녀 같은 농어, 귀족의 풍모가 느껴지는 감성돔에 비하면 생선도 아니다. 그러나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밴댕이다. 특히 오뉴월 들판의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갈 무렵의 밴댕이 맛은 농어나 도미 회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진정한 식도락가라면 오뉴월 밴댕이회를 한수 위로 쳐줄 정도다.
밴댕이는 청어과의 작은 생선이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나는데 그중에서도 강화도 밴댕이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왜 그럴까.
어류가 대부분 그렇듯이 밴댕이도 산란기에 기름기가 많이 올라 맛이 가장 좋다. 여름철 산란기가 다가오면 밴댕이들이 강화 앞바다로 떼지어 몰려든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점에 알을 낳는 밴댕이들에게 강화도는 최적의 산란장이다. 이 무렵 강화 앞바다에서 잡히는 밴댕이는 보드랍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밴댕이회는 뱃사람들이나 먹었을 뿐 보편화되지 않았다. 밴댕이는 그 소갈머리대로 성질이 급해 그물만 닿으면 팔팔 뛰다 곧 죽어버리기 때문에 살려서 가져올 방법이 없는데다 살이 워낙 물러 쉽게 부패해 횟감으로 사용키 어려웠던 것. 그러나 냉동·냉장 기술이 발달하고 뭔가 별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밴댕이는 횟감 반열에 오르게 됐다. 젓갈이나 구이 정도로 취급받던 밴댕이로서는 엄청난 신분 상승을 한 셈이다.
밴댕이가 가장 맛있을 때는 4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고소하고 달보드레한 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깻잎에 된장을 살짝 바르고 와사비간장을 묻힌 밴댕이를 싸서 입안에 넣어보라. 깻잎 향과 밴댕이의 고소한 맛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맘때면 괜히 값비싼 회를 시켜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밴댕이회가 너무 보드라워 씹는 맛이 없다고 투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건 좀 ‘촌스러운’ 소리다. 회라면 질겅질겅 씹어야 제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짜 회맛을 모르는 이들이다.
밴댕이는 머리와 내장(내장이라 부를 것도 없을 정도로 작다)을 도려내고 통째로 먹는다. 워낙 작아 회 뜨고 말고 할 게 없다.
강화나 인천 등지의 횟집에서는 사시사철 밴댕이회를 취급하지만 한여름에는 먹지 않는 게 좋다. 7월15일부터는 밴댕이 금어기라 생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때는 얼렸던 밴댕이를 횟감으로 내놓는데 맛도 떨어지고 자칫 잘못하면 배탈이 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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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이는 물이 가면 비린내가 많이 나므로 싱싱한 것만 먹어야 한다. 잡아온 지 12시간 정도까지는 횟감으로 쓸 수 있으나 그 이상 지나면 젓갈용으로 사용한다. 물 좋은 밴댕이는 회로 내놓았을 때 살색이 하얗다. 붉은색이 감돌면 싱싱하지 않다는 증거니 조심하도록. 일부 횟집에서는 별미라며 밴댕이무침을 내놓기도 한다. 이건 가급적 손대지 않는 게 좋다. 무침으로 쓰는 밴댕이는 대부분 물이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밴댕이는 구이로도 괜찮다. 노릿노릿하게 구워 뜨거운 밥에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뼈째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 여간 고소한 게 아니다. 밴댕이 젓갈도 맛볼 만한 먹거리. 남도에서는 송애젓이라고도 하는데 알맞게 익었을 때 숭숭 썰어 양념을 해놓으면 아주 괜찮은 밑반찬이 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는 여름날 보리밥 한 숟가락에 밴댕이 젓갈을 곁들여보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테니까….
강화도는 역사의 고장이다. 고려 때는 몽고의 침입을 피해 이 작은 섬으로 왕실이 옮겨왔고, 구한말에는 두터운 쇄국의 빗장을 열어젖히려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함선에 맞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유적이 많아 아이들에게 역사공부를 시키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섬 동남단의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 역사의 현장과 전등사 정수사 마니산 등이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석모도에 도착하는데(문의 : 삼보해운 032-932-6007) 차를 싣고 갈 수도 있다(승용차 왕복요금 1만4000원). 석모도의 경치는 ‘끝내준다’. 특히 보문사 일대에서 보는 서해 일몰은 압권이다. 멀리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뒤편으로 홍시 같은 발간 해가 넘어가는 광경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볼 거리.
석모도 일주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강화도에서는 전등사-화도면-선수포구-장화리-동막유원지-분오리로 한 바퀴 도는 348번 지방도로가 경치 좋은 코스. 부슬부슬 안개비라도 오는 날이면 더욱 운치가 있다.
강화도 간 길에 인삼을 사오면 기름값 정도는 벌충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때가 아니다. 여름에는 인삼값이 가장 비싸고 약효도 떨어진다. 추석 열흘 후부터 물량이 많이 나와 가격이 내려간다니 잘 기억해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