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석에 빠졌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이렇게 한번씩 몰아치는 감정은 이런저런 취미생활로 촛점이 모입니다.
이번엔 무엇때문에 돌에 꽂혔는지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미세하나마 그 시작점이 기억나는데 이번엔 그 시발점을 모르겠습니다.
아직 탐석을 많이 다녀 눈이 밝아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런저런 경로로 제곁으로 온 돌들을 들여다 보면서 무한히 행복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돌의 그 묵직한 느낌은 직접 들어보지 않아도 편안한 마음의 무게입니다.
수마로 맨들맨들해진 돌 표면은 마음을 한없이 너그럽게 합니다.
또한 들어가고 나오고 튀어나오고 말려들어간 겉표면은 아득한 시간을 느끼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과거에 빛으로 폭파하며 생겨난 것들입니다.
이렇게 이 모습으로 갖춰온 수백만 아니 수억년의 세월이 내 눈과 손 안에 모입니다.
나이가 많은 빛이 없고 늙어버린 세월도 없듯이 돌은 제게 늘 청년입니다.
우리를 통과하며 앞으로도 세월은 흐르겠지만 제 돌 앞뒤로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세월과 시간은 경쟁하며 내 앞을 스치고 갑니다.
그러나 시간은 결코 바닥나지 않는거라서 늘 새롭게 세상을 드러냅니다.
갓 태어난 시간이고 앳된 햇살이며 방금 틔어진 공간 말입니다.
내가 있어서 생겨난 것들이 너무나 좋습니다.
보다보니 저는 남한강의 검은 청오석이 특히 좋아집니다.
검정은 모든 색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새까만 반짝이 오석을 들여다보면 밤하늘에 돌아눕는 별자리가 된 느낌입니다.
갖가지 기묘한 형상석도 우주와 내 마음이 공명하여 폭발하는 느낌으로 모입니다.
상상되는 물형과 이해되지 않는 상징의 간극으로 아늑한 몽상에 빠지는 느낌도 참 좋습니다.
여기에 돌에 새겨진 현란한 문양석은 로르샤흐 그림과 같습니다.
그 수많은 기억과 성향과 무의식의 결합으로 떠오르는 이름을 타인과 공감하는 경험도 참 재미있습니다.
돌은 그렇게 제게 매순간 임사의 꽃으로 안으로부터 채워지고 기억됩니다.
돌에 물들여진 붉고 푸르고 노랗고 흰색의 조합도 참 재미있습니다.
폭포석, 노을석, 진달래석 등등으로 재미있게 이름지어 있지만 오밀조밀한 색감과 형상과 질감이 어우러진 내 상상력의 조합으로 나는 순간과 영원에 닿는 체험도 합니다.
돌구경도 재미있지만 제가 더 몰입하는 것은 수석좌대를 만드는 일입니다.
수반에 올리지 않고 돌엉덩이 모양에 맞춰 나무 웅덩이를 깎는 작업입니다.
조각도로 나무를 사각사각 파내는 소리와 질감은 참으로 상쾌합니다.
여러차례 돌리고 앉히는 가봉의 과정을 거쳐 돌형태에 제대로 짜맞춤된 좌대목은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줍니다.
일상의 늘 아쉽고 부적절하고 부족한 나의 생각과 행동은 그렇게 보상을 받습니다.
대체로 저는 결과보다 과정을 즐깁니다.
다 이뤄진 좌대받침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궁리하고 생각으로 다듬는 일 하나하나가 다 순간의 완성인 것을 체감합니다.
작업 하나를 다 이루기위해 도구를 갖추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좌대하나 깎는 걸 누구에게 맡긴다면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출입니다.
사실 제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내 소소한 취미생활을 위해 지불하는 금전적인 비용은 늘 누군가를 향하는 부끄러운 부분입니다.
화려한 오락거리인가 늘 돌아보게하는 자책의 원인입니다.
누군가에겐 큰 생활비인 것을 내 이런 시덥잖은 덕질로 낭비하는 것같아 늘 죄스럽습니다.
인터넷 쇼핑에 중독된 모습을 보이는 것같아 직원들에게 늘 눈치가 보입니다.
함부로 낭비하는 듯하여 하늘에게도 이런 모습 감추고 싶습니다.
지름신이 늘 제곁에 머무는 것 같아 어떤 큰 그늘 뒤로 몸과 마음을 숨기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 그림자에게 하소연합니다.
내 행위의 정당성을 변명하고 싶습니다.
나의 취미가 내 삶의 젖줄이라고 강변하기까지 합니다.
나의 취미에 중독되었기에 이나마 이곳까지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이라고, 식물 속에서 햇빛으로 광합성이 일어난 것과 같은 거라고 나의 과소비를 항변합니다.
한 문제를 가지고 풀어낸 방정식은 늘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중심으로 휘몰아친 실속없는 취미짓거리에 우리집사람도, 저희 직원들도 이젠 적응합니다.
또 올해는 저카는갑다, 저 헛뚝딱거리는 요번엔 몇년가려나 하고 말입니다.
한 평생을 한가지로 파서 그 부분에서 전문가로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왜 주기적으로 몇년사이 이렇게 관심거리가 바뀌는지 모르겠습니다.
꾸준히 한다면 그 분야의 정점을 찍을지도 모르는데 조금 맛보고나면 금새 시들해지는가 말이지요.
돌이켜 봐도 식물 들여다 보기, 꽃나무 키우기, 촬영, 새 기르기, 낚시, 물고기 기르기, 개미 키우기 등에서 어느 일가견도 없습니다.
누가 물어도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그 몰입 시간은 어디로 다 녹아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직업인 의사노릇도 제대로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다듬는 것도 엉터리 투성이입니다.
참 헛되이 시간과 돈을 낭비했습니다.
잠깐! 이상하게 생각과 글이 이렇게 흘러버렸네요.
이렇게 자기비하 하는 건 도움되지 않습니다.
겸손도 정도가 지나치면 오만입니다.
이제 정리하고 오류를 고쳐봅니다.
나는 잘하고 있습니다.
생활인으로 나는 내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도 훌륭합니다.
오는 환자는 만족하고 거기에 따른 보수도 적당합니다.
아버지와 지애비로서도 마, 이정도면 잘 했습니다.
별다른 스캔들없이 지금까지 소명을 다했고 아이들도 나름 역할하며 잘 있습니다.
그리 튼튼하진 않지만 큰 병없이 장애없이 지금까지 해왔고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이루지 못한 것이 엄청 많습니다.
아쉬움을 따라들면 몇 천 생애를 살아도 부족할겁니다.
그림자가 몸에 붙어다니듯 늘 사건은 일어나고 거기에 내가 따라다니며 생채기가 생겼지만 모두 지나갔습니다.
상처는 영혼을 켜는 발전소일겁니다.
그러니 이만큼 혜택받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같이 복많은 사람 어디 있을까요.
소소한 취미를 설득하려고 온오프 스위치가 없는 온 우주의 논리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나를 파내면 온 세상이 나를 메꿔줍니다.
나의 행위에 온 우주가 동반합니다.
나의 기쁨, 나의 슬픔, 죄책감, 고통, 근심엔 이유도 있고 다 설명도 됩니다.
인생 안내서의 모든 글귀와 행간을 나는 훑고 지나고 있습니다.
맞춤법은 자동으로 교정됩니다.
새로운 쉼표가 찍히고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뀝니다.
갈수록 얇아지고 간단해지는 인생교과서는 강을 건너면 필요없는 뗏목일겁니다.
앞으로 건너야할 산과 강이 남아 있겠지만 나는 또 슬기롭고 재미있게 넘어갈 것이기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수석좌대를 만들며 강을 건널 뗏목을 완성했고 탐석을 하면서 계곡을 돌아 산에 올랐습니다.
되집어보면 강을 건너는 것은 순간을 이어붙인 뗏목이었고 산을 오르는 것은 그저 이쁜 돌하나 따라간 여정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가져온 돌에 맞는 좌대를 깎으면서 이 삶도 끝날겁니다.
업경대는 그렇게 완성될겁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 나대신 가치를 부여하지 않지만 지금 행복하고 몰입하면서 삶은 살아질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