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를 쉬어서 나도 덕분에 같이 가을여행을 가게 되었다. 원래는 수요일부터 2박3일간의 여행을 계획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아 설악산 행은 목요일 하루로 정했다.
수요일은 먼저 아이들과 전주소리축제에 다녀왔다. 그리고 목요일은 강원도의 설악산, 금요일은 대둔산... 음, 사실 오늘과 내일은 진안행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곳을 가게 되었다.
이번 여행의 가장 멋진 날은 역시 목요일의 강원도행이었다.
강원도는 많이 갔다고 했는데도 가만 생각해보니 겨울방학때 찾은 것이 가장 많아서 사실 산세를 기억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겨울에 가서 묵었던 곳은 미시령 넘어가는 곳에 있는 켄싱턴 호텔과 일성콘도였는데 다들 그곳에서 눈구경을 실컷하고 지냈던 기억이 있다. 늘 강원도에 갈 때마다 대설주의보가 내려 꼼짝 않고 눈에 파묻혀 지냈던 기억인데 아무래도 그런 휴식이 있었기에 강원도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는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폭설의 눈잔치 속에서 맘껏 눈썰매에 스키에... 거기에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난 강원도에 대한 기억을 이리도 행복하게 갖고 있다.
그런 기억 속에 떠난 이번 가을의 강원도행은 특별했다.
새벽 12시 40분에 출발했다. 그 시간에 집을 나서자 남편 하는 말이
"이 시간에 떠나는 사람이나 붙잡지 않고 보내는 사람이나 똑같다... "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너무 무리한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은 좀 마음 한 구석이 찔리긴 했지만 야간여행에 대한 기대와 해돋이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있는 아이들을 떠올리고는 남편에게 늦은 시간 떠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출발했다.
밤에 떠나는 여행이란 어둠에서의 고독함과 밤하늘의 보이지 않는 별들과의 대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내내 이야기를 하였다. 내 마음 속의 그 무엇과 하지 못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했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러 두어시간 잠도 잤다. 아이들은 물론 차 안에서 편히 잠을 잘도 잤다. 자동차에 딸아이 둘만 데리고 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하나는 뒤에서 하나는 앞에서 잠을 잤다. 어린이 보호매트를 깔고 이불까지 마련하였더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휴게소에서 새벽 3시쯤 한 번 쉴 때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갔는데 밤하늘의 별과 새벽달을 보았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참 좋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과 나누는 이야기란 사람을 내면의 편안함에 잠기게 하였다.
대관령고개에서 또 한 번 쉬었다. 아이들도 조금씩 어둠이 걷혀가는 새벽을 바라보며 감탄스러워했다. 나 역시 먼 숲에서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에 탄성을 질렀다. 부지런히 대관령 고개를 내려와 강릉의 경포대로 향했다. 새벽시간에 완전한 일출은 조금 늦어서 보지 못 하고 거의 떠오른 태양을 맞이했다. 가을날 맞은 일출의 기쁨이란 새로웠다. 모두들 떠나고 이별을 준비하는 계절에 무언가 새로이 맞을 수 있는 기쁨이란 참으로 컸다.
아침 식사를 아이들과 간단히 하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속초로 향했다. 미시령을 통과해서 한계령으로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설악산 갈 때마다 숙소를 미시령쪽으로 정해 늘 그곳에 먼저 갔던 기억때문인지 저절로 미시령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바다는 곁에서 넘실대며 날 따라왔다. 아.... 바다를 곁에 두고 먼 산을 향하는 길은 그래도 나를 붙잡았다. 곁에 있어 달라는 바다를 멀리 하고 미시령 고개를 향했다. 켄싱턴 호텔에 묵으며 그 근방은 예전에 많이 보았던 기억이 있어 그냥 미시령으로 올랐다. 올라가는 내내 그 붉어진 숲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나 역시 전라도의 푸른 숲에서 만나지 못 한 가을을 미리 맞이하러 간 듯한 기분에 참 좋았다. 미시령휴게소에서 그 찬란한 가을볕을 맞으며 한참을 해바라기도 했다.(그러는 동안에도 난 나의 새카만 얼굴 걱정을 했으니 아무래도 그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미시령고개를 내려와 백담사로 향했다. 백담사는 사실 한 번도 가보지 못 했다. 아이들도 백담사 이야기만 듣다가 처음 간다도 좋아하였다. 대구에서 왔다는 수학여행단들이 있었다. 그 학생들과 백담사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탔는데 버스에서 아이들의 감탄사가 어찌나 인상에 깊던지 난 지금도 그 감탄사가 귀에 울리는 것만 같다.
"이~야~" (아이구.... 그런데 그 억양의 멋진 감탄을 어떻게 표현한담.)
그 이~야~ 란 소리는 어찌나 듣기에 감칠맛 나던지 한참을 다시 떠올려본다.
버스에서 내려 3키로 정도를 걸어 올라갔다. 아이들은 힘들텐데도 한 번도 쉬지 않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절대며 계속 즐거워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힘든 일도 불평하지 않고 참아낼 수 있는 아이들이 참 자랑스러웠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했는지 모르겠다. 백담사에 도착해보니 백담사의 너른 경내가 가을빛에 휩싸여 있었다. 올라가는 길목 내내 흐르는 계곡물은 그 맑음에 푸른빛을 더하고 있었고 가을산을 담고서 맑은 정취를 한껏 더하고 있었다.
백담사는 지금 절을 새로이 건축하고 있었다. 절이란 늘 오래된 모습들로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곤 했는데 이렇게 새로이 건설되는 절들을 만나는 것도 또한 좋은 것이었다. 백담사란 백번째의 담에 건설된 절이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하였는데 백담사 곁으로 흐르는 계곡물의 그 맑음에 접할 때면 백담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을 알 것 같았다. 백담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이었는데 11시부터 국수공양을 한사는 것이었다. 배고 고프던 터에 아이들과 함께 국수 한 그릇씩을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과 백담사를 내려와 이번엔 한계령 쪽으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먼저 오색약수터에 있는 주전골로 가기로 하였다. 한계령 쪽은 단풍이 많이 졌으나 주전골의 단풍은 천하일색이라 하였으니 안 들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 난 단풍에 대한 기대는 별로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가을산이 궁금하다는 호기심이 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었다. 그러나 용소폭포에 주차를 하고(여기서도 주차비를 받았다. 밑에 있는 오색약수터는 주차비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입장권을 끊고 용소폭포 쪽으로 내려갔다.
숲은 가을빛을 온전히 담고서 그 화려한 자태를 숨기고 있었다.
아.... 그 감동이란...
그 숲그늘 아래 흐르는 계곡물이란 더욱 가관이었다. 힘차게 흐르는 물살이며 폭포를 이루는 작은 물줄기들은 사람들을 더욱 감동스럽게 하였다. 화강암 너럭바위로만 이루어진 계곡의 그 맑은 물은 손을 담그지 않고는 못 지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다들 계곡 아래로 내려가 손을 담그고 그 맑은 물에 속세의 때묻은 것들을 씻어내려는 듯이 손을 씻고 또 씻고 하늘 한 번 보고 그랬다.
곁으로 졸참나무는 더욱 노오랗게 물들고 있었고 단풍나무는 제 붉은 빛에 겨워 빨강물이 뚝뚝 떨어질 듯 했다. 그 화려한 단풍의 세계 속에서 나는 아.... 이런 것이 단풍구경이란 것이구나.... 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 시간 가량을 내려가면서 용소폭포랑 오색약수터를 구경했다. 오색약수는 탄산을 많이 함유하여 그 맛이 톡 쏘는 사이다 맛이라고 하였다. 바위 아래서 조금씩 솟아올라오는 물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마시고 있었는데 나와 아이들은 맛있을거라는 기대로 한 모금씩 벌컥.....마셨으나 사실 그 맛은 그냥 삼키기엔 역겨운 맛이었다. 몸에 좋다니 어른들은 맛이 좋다고 자꾸 마시는 것 같았지만 우리들은 그저 인상만 찌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쓴 것이 몸에 좋다고 하는 속담이 있기야 하지만 우리들은 미련없이 일어나 온천으로 향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사실 온천같은 곳은 들른 적이 없다. 가끔은 숙소에 딸려있는 수영장에 들러 수영한 적은 있지만 온천을 들른 일은 없는데 아이들이 온천 이야기를 했더니 가자고 졸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전날 밤부터 한 번도 쉬지 않았던 여행길이 피곤한 것도 같아 저녁을 먹고 온천으로 향했다. 오색그린야드 호텔에 딸린 온천장이었다. 온천이라고는 가본 곳이 부곡온천 뿐이었는데 그곳은 시설이 참 좋았다. 그리고 물론 물도 좋은 듯 했다. 아이들과 두어시간 그곳에서 머물며 피로를 풀었다.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했다. 더불어 나도 많이 쉴 수 있었다. 다시 설악산을 찾는다면 꼭 그 온천에 다시 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단풍구경과 온천욕....
나이 든 분들의 여행코스라는 생각을 하며 풋... 하며 실없는 웃음을 자아보기도 하지만 참 편안한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이름으로 늘 아이들과 견학코스로만 다니던 때와는 다른 편안한 여행이 주는 기쁨이란 또 어디에 비길 수가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다시 밤은 찾아왔고 나는 아이들과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많은 산행과 온천욕으로 피곤했는지 새벽시간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나는 몇 번 휴게소에서 쉬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역시 돌아오는 길은 멀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운전은 해도 해도 끝없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멀기도 했다.
역시 돌아온 나의 집은 편안하기가 그지 없었다.
잠이 들고 다시 금요일에 아이들과 대둔산에 갔다. 대둔산 축제에 아이들가 내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대둔산은 아직 가을을 들여놓지 않고 있었다. 벚나무만 가을빛으로 바뀌었을 뿐 아직 여름의 모습이었다. 다만 가는 길 양옆으로 늘어져 있는 감나무의 붉은 빛이 가을임을 느끼게 하였을 뿐이었다.
대둔산의 가을은 아무래도 한참 후에나 해야 할 것 같다.
다시 토요일이다.
많은 여행으로 피로가 쌓여있긴 하지만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스러워 욕심이 끝이 없다. 지금의 소원을 말하자면....
배 깔고 엎드려 책과 하루종일 뒹굴뒹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