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85-1)앙리 마티스 부인의 초상-녹색선이 있는 초상화- Henri Matisse,(1869-1954) Portrait of Madame Matisse (Green Stripe), 1905
20세기의 미술은 파리에서 혁명에 가까운 개혁을 시작했다. 후기 인상파의 세잔과 반 고흐 그리고 고갱이 시작한 미술 개혁은 마티스, 드랭, 피카소와 브라크가 선봉장이 된 야수파와 입체파로 이어졌다. 이들은 색채와 형상과 주제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미술을 현실을 모방에서 분리시켜 추상적인 개념속에 내포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색채와 형태 그리고새로운 생각 자체 속에서 미술 고유의 특성을 찾았다.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1868-1954)와 드랭, 루오는 격렬한 색채와 생생한 형태로 입체감이나 환영을 자아내지 않은 야하고 거친 그림들을 1905년 가을 살롱전 Salon d" Automne에 출품 전시하였다. 그들은 화려하지만 극히 부자연스러운 색채, 세련되지 못한 형태감각, 그리고 길들여 지지않은 거친 표현방식의 그림들을 고전적인 경향의 조각들과 함께 전시했다. 그래서 평론가 루이 보셀르 Louis Vauxcelles는 "야수적 분위기 속의 돈자텔로 같다."고 논평하였다. 이런 농담 섞인 비평으로부터 야수파Les Fauves 혹은 포비즘Fauvisme이란 새로운 양식의 명칭이 자리잡게 되었다.
가을전에 출품된 마티스의 <마담 마티스>는 자기 부인을 모델로 그렸는데, 전시회에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 부인한테도 충격을 준 그림이었다. 부인의 머리는 쪽빛남색이고 녹색과 검정이 섞였다. 라일락 색 얼굴은 왼쪽은 노랑이고 오른쪽은 분홍의 파레트를 찍어 바른것 같다. 이마와 코는 청록색, 눈섭은 검은 남색,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 자국이 빨리 칠한 느낌을 준다. 특히 화면 배경은 붓에 남은 물감을 닦아버리려는 듯 여러색을 캔버스에 문질러버린 인상이다. 전체 색들간에 조화도 없다.
여자가 거칠고 예쁘지않다는 비평에 마티스는 "무엇보다 나는 여자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했다. 마티스는 색과 형태도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마티스는 그림에서 자기 부인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색감과 장식성을 사랑했다.
(그림85-2)앙리 마티스의 [붉은 방] Harmony in Red (The Red Room), 1908,
야수파 운동은 단명으로 끝났지만 색의 자유로운 구사는 아직도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다. 마티스의 붉은 방은 낯설고 세련되지못한 초기 야수파 양식을 탈피한 부드럽고 감미로운 색과 장식의 성공적인 작품이다. 방과 붉은 색에 마티스는 꼭 같은 정성을 기울였다. 그림의 모든 부분이 중요하다. 배경과 가구, 식탁 위의 과일이나 여인이 마티스 그림에서는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다. 붉은 색 식탁보와 붉은색 벽은 노랑 머리에 검정옷과 흰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에 과일을 준비하는 여인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준다. 식탁에서 불분명한 공간이 노란 의자와 창문을 통해서 확실해진다. <붉은 방>에서 마티스는 그가 추구하던 것을 성취했다.
"내가 미술에서 원하는 것은 불안하고 불쾌한 주제에서 해방된 순수하고 평온한 균형의 미술이다. 그것은 두뇌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과 사업하는 사람, 그리고 예술가들과 작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면 마음이 가라앉는, 마치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일종의 신경안정제 같이 신장을 풀어주는 그림이다."
(그림 85-3)앙리 마티스의 [춤 1]
1910년 가을전에 전시한 (춤1)조(그림 85-3)과 (음악)(그림85-4)은 마티스의 새로운 주제다. (춤1)과 (음악)에서의 누드 인물의 강렬한 기본 색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춤 I) 은 나체 여인들이 푸른 하늘 아래 녹색 대지에서 정열적으로 춤추는 그림이다. 여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둥그런 원으로 빠르게 돌아가면서도 뒤로 내밀어진 손을 놓친 여인을 위해 잠시 그자리에서 리듬을 맞추며 다이내믹한 춤의 무아경에 빠져 있다. 마티스는 인체의 모습과 대지의 형상과 넓은 하늘의 광활함을 세 가지 색채로 포착하는 것을 즐긴다.
(그림 85-4)앙리 마티스의 [음악] Music, 1910br>
(음악)(그림 85-4)도 붉은 색의 아이들이 악보처럼 여기저기 자리잡고 젊음과 자유와음악을 자유롭게 만끽하고 있다. 마티스는 어떤 특정한 운동이나 양식을 떠나서 인간 영혼에 항상 떠 있는 밝은 색상의 그림들을 그렸다. 피카소는 마티스의 뱃속에는 불은 태양이 있다고 빈정대곤 했다. 마티스는 명랑한 주제와 신선한 색상을 찾아 1910년 가을에는 남부 스페인으로, 1911년에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로, 1912년에는 모로코로 갔다.
모로코는 화가 마티스에게는 지상의 낙원이었다. 작열하는 태양광선과 푸른 나무와 야채, 원색을 내뿜는 꽃들, 낯선 토착민들의 의복 색상, 고색 창연한 회교의 성당과 궁전, 이끼 낀 옛 성곽들은 마티스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모로코에서 선배 화가 들라크루아가 표현한 몸 파는 여자들이나, 사막의 말 탄 사냥꾼 같은 낭만적 주제는 마티스에게는 흥미가 없었다. 그는 다채롭고 이국적인 열대"11계의 안일과 사치스러운 풍물과 색채를 사랑했다. 모로코의 탄지에르에서 그린 (아이리스), (모로코의 정원), (오렌지 광주리), (창에서 본 탄지에르 시내), (차스바 정문)은 마티스의 모로코 방문이 가져온 남방의 열매들이다.
첫댓글 고등학교 때..미술 책에서 봤던 화가네요..*^^* 가만,,뭐였더라,,,파란 색종이를 오려 붙인 거 거같은..말을 탄 사나이?? 뭐더라...하여간,,자신있는 저 하나의 선과 텃취들...삶의 그림도 저러할 수 있을지..부럽기만 합니다..
정말 좋은 작품 들입니다,마티스의 간결한 선은 거의 환상적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