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늦었으니 이야기 하나 하자.
실지 이야기기 때문에 실명을 안 밝힐 수도 있음을 우선 양해들 하시고.
영주 귀내에 전우익씨라고 있는데, 근년에는 몇권의 책을 내서 유명인이 되었지만
한때는 좌익으로 수년 간 영오의 몸이 되기도 하였다.
책 중에는 '혼자 살면 무슨 재민겨' 도 있다. 현암사 발간.
그 전우익씨보고 안동의 유도회장 경북향교 이사장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한 어느 한 분이
모.. : 이 사람아, 자네는 평생을 좌익으로 살았으면서도 왜 이름은 우익인고
전우익옹 : 흥. 별일 다볼세. 자네는 유도는 하나도 할 줄 모르면서 유림관계 자리는
다 차지하지. 유도회장은 무슨 말인고.
그건 그렇고 이제 풍기이야기를 잠깐 하자.
풍기라는 명칭은 豊木鎭(신라), 基州(고려) 로 하다가 1413년 조선조 태종때, 바로 옆의
殷豊과 基州를 합해서 풍기로 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속은 고려때까지는 안동부에 속해 있었다.
은풍은 지금의 풍기 일부하고 예천의 상리, 하리면의 일부다.
유명한 곳은 부석사인데 고리타분하고 머리 복잡하게 누가 언제 지었는지는
꼭 알 일도 아니고 아쉬운 것은 6.25 때 월인석보와 훈민정음 목판이 불타 없어진 사실이다.
수백년 내려오던 것이 잠깐의 실수로 없어졌다.
한 가정의 가보도 없어져도 억울한데 나라의 특급보물이 이렇게 허무하게 없어졌으니
조상한테 뭐라고 얘기할까
풍기는 죽령에서 내려오는 바람, 인조공장의 처녀(옛날 통학하던 아이들 마음이 떠꿈한 사람
손들어 눈 지긋이 감고 생각해 봐라.), 돌, 황씨(히여골의 창원황씨와 우금의 평해황씨) 가
많다. 그래서 황풍석여 라 한다.
지금은 인삼, 사과, 산나물정도가 아니겠나 싶다.
특히 인삼은 경작지는 제일 적어도(개성, 금산, 풍기) 품질은 제일 좋단다.
그런데 요사이는 소백산 산나물과 사과가 더 유명하지. 그러나 저러나 풍기하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게 인삼 다음에 정감록 십승지다
십승지 중에서 첫 번째로 풍기읍 금계동으로 믿거나 말거나 구한말, 당시의 평안도 사람들이
삼재를 피한다고 가족 전체가 많이 내려와서 아직도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직물을 처음
시작했단다.
십승지 중, 경북에는 봉화 춘양, 예천 금당실, 성주 만수동 네곳이 있다. 열군데 중에서.
풍기와 연관이 있는 역사적 인물은 주세붕과 황섬을 들 수 있다.
주세붕은 이곳 태생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나중에 소수서원)을
풍기군수때 개설하였고 인삼도 이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풍기읍 사무소에는
선정비가 많다. (안동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정비가 하나도 없음)
일제 때는 독립운동도 활발하여 (전국 9400명의 포상자 중에서 영주가 60여명, 안동은
260여명) 현재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현대 인물은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국회의원 박용만, 음악평론가 박용구, 작가 송지영,
강경식 장관, 김영준 장관, 한학자 송지향씨 정도다. 이정도로 하지. 더 상세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잘 몰다만.
- 다음에 계속 -
첫댓글 일곤아, 전우익 옹이 쓴 그 책을 영주출신 우리안고친구 김광옥이가 한권 줘서 참 재미나게 읽었다. 그리고 니덕에 새삼 좋은 고향정보를 알게되는구나. 일곤아, 니캉 안고때 같이 사진찍었던 장성욱이가 오늘 가입했다. 반갑지?
일곤아. 풍기라는 동네가 워낙 유명한 곳이지. 바람도 많고 돌도 많고 여자도 많고(인조공장 여공) 그런데 그 여공 중에 한사람 사귈뿐 하다 그만 뒀다. 옛날에 . 니때문에 총각추억 되살았다 잘 읽었다. 우리 회원들 모두 좋아 할 것 같다 또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