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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는 2012년 4월 19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유자효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의 사회로 제2회 이설주문학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시조집 『세월이 무엇입니까』『시암(詩菴)의 봄』을 출간하여 수상자로 선정된 정완영(94) 시조시인을 모시고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정종명 문협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주식회사가 후원하는 상으로 상금은 2천만 원과 시상식비용 등 이런 문화 적인데에 출연해준 것에 대하여 사조산업 주진우 회장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하였다.
유족대표 사조산업 주진우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설주 선생은 4월에 태어나 4월에 가셨다. ‘떠나려면 4월에 떠나라고 하고 바위가 되기보다 조약돌이 되기를 원하셨다. 항상 맑은 문학을 사랑하시고 시심에 젖어 사시던 분이다. 2주년이 되는 오늘 구순이 넘은 정완영 선생님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선생님 120세까지 누리시기를 기원하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선발해주신 정종명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님께 감사드린다고 하였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심사경위를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시조 자체의 격조를 결코 상하는 법이 없다고 이근배 선생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의 시조는 초, 중, 종장을 엄격히 하여 시조 완결의 미학을 확립하셨습니다.
『세월이 무엇입니까.』는 사물을 바라보는 너그러운 관조의 자세가 시조라는 그릇에 넉넉하게 담겨있습니다. 시적 형식의 긴장 속에서도 아주 감각적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시조문학을 확립하신 분입니다.
수상자 정완영 시조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자작시 낭송을 하였다.
꽃 좀 보소
정완영
힘겨운 세상살이 하루해도 지겹지만
그래도 봄이 석 달 가지마다 꽃이로세
목련꽃 이마 좀 보소 환히 웃는 꽃 좀 보소.
이설주문학상 1회 수상자이며 예술원회원 김종길 시인의 축사에서 백수 선생은 포은 정몽주의 혈손으로 선생이 시조를 쓰는 것은 포은 선생의 어머니의 시조 <까마귀 싸우는 골에 가지 마라> 등을 생각하면 유구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이설주 선생의 작품『수의(壽衣)』는 굉장하다 할 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하였다.
이근배 시인은 축사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백수 정완영 선생은 한국의 시조를 잇게 한 위인이시다. 지난 한 세기 우리시대는 역경의 시대였지만 우리 시문학사는 참 찬란히 꽃을 피웠다. 지난 한 세기 역사 속에서 시조시인은 한 분 이설주 선생과 또 한 분 정완영 선생을 꼽을 수 있다.
우리 문학사 100년이라 하지만 많은 문인이 요절하고 북으로 가고 해서 문학사가 반 토막이 되었는데 그 한 세기를 통과하신 분이 이설주 선생과 정완영 선생이시다.
이설주 선생은 젊어서부터 또 돌아가시는 날까지 시를 많이 쓰신 분이다. 그럼에도 시단에서 자신을 내세우려하지 않고 묵묵히 드러내지 않고 시를 쓰셨다.
시조는 50, 60년대를 거치면서 자유시에 밀려서 시조시인은 다 모아야 스무 분도 안 될 정도였다.
스무 분이라고 해야 노쇠해서 (가람 이병기 등) 시를 쓰지 않는 상태였는데 설주 선생은 계속 시를 지키셨다. 시조정신을 가르치셨다. 선생의 작품은 오랜 정신사, 우리나라 역사와 생활을 구슬을 꿰듯이 이어주셨다.
《월간문학》4월호에 정완영 선생과의 대담기사가 있는데 정완영 선생의 시조와 ‘시인은 왜 이 땅에 왔는가’‘사람 만나러 왔다’는 말씀이 있다.
백수 정완영 선생은 구순이 넘었음에도 여기 젊은 시인들 못지않게 아주 열심히 쓰신 분이다. 백수 선생의 시조야말로 오늘날 우리 한국시가 방황하는데 큰 등불이 된다고 생각한다. 백수 선생, 100수, 200수라도 사시고 더 많은 작품 내시기 바랍니다.
고두석 시조시인이 이설주 선생의 작품「순이의 가족」과「몽당연필」을 낭송하고 민병도 문협 시조분과회장이 백수 정완영 선생의 시조 「시암(詩菴)의 봄」을 낭송하였다.
순이의 가족
이설주
순이는 혼자다
차에 오르내리는 아무도
순이의 때 묻은 치맛자락 속에
한 그루 애닯게 숨어 핀
열아홉 꽃 시절을 모르는 채
순이는 섧다
낡은 짚신에 해어진 맨발이
비바람 치는 음습한 토막
거적자리에 지쳐 누운 아버지와
배고파 졸라대는 어린 동생들이
그러나 순이는
지는 해가 구름을 곱게 태우는 하늘 아래
식은 밥을 빌러 갔던 동생이
장밋빛 얼굴로 밤톨이처럼 달려오면
능라금의 아가씨를 부러울 것도 없었다
순이의 남매는
떡을 팔던 함지박에다
식은 밥이랑 비지찌개 같은 것을 담아 이고
어머니의 발자욱을 어루만지며
말똥 내 풍기는 칠성리 모롱이로 돌아간다
순이의 가족은
이윽고 흙 한줌 없는 고향이
언제나 남의 땅 같이 슬퍼
저녁 하늘을 등지고
오늘도 조국에서 헤매야 하는 나그네.
몽당연필
이설주
갓 사온 새 연필!
꿈 많은 소년이다
처음 깎은 연필은 10대
식민지에서 빼앗긴 눈물의 사춘기
두 번 깎은 연필은 어두운 시대였다
내 모국어를 숨어서 쓴 절치의 20대
반을 써버린 30대는 천애풍진 방랑아로
만주 중국대륙을 내일이 없는 운수행각
호적(胡笛)이 우는 동토에 저문 향수를 부축
구름 같은 청춘의 고독을 허무와 절망
쓰고 깎고 깎고는 쓰고 또 깎아서 쓴
굴욕의 세월을 원수의 피에 절은
해방이 이글이글 타는 횃불을 들고
뜨거운 감격을 울었던 40대 장년기에서
50대는 동족상잔 남북양단을 통곡
60대는 가난에 묻힌 상한 조국을
70엔 남루를 걸친 찌든 인생을 살았지
연륜이 쌓일수록 줄곧 작아진 연필
이제 한 치 쯤이나 남았을 저승 길목에서
아! 아쉬운 그래도 조금은 미련이 있어
버리긴 아까운 이 만장의 한이 맺힌
더 쓸 수 없는 어엿〔憐〕븐 몽당연필!
시암(詩菴)의 봄
정완영
내가 사는 초초시암(艸艸詩菴)은 감나무가 일곱 그루
여릿 녀릿 피는 속잎이 청(淸)이 속눈물이라면
햇살은 공양미 삼백 석, 지천으로 쏟아진다.
옷고름 풀어놓은 강물, 열 두 대문 열고 선 산
세월은 뺑덕어미라 날 속이고 달아나고
심봉사 지팡이 더듬듯 더듬더듬 봄이 또 온다.
이 시상식에는 문단의 원로 중진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에 이길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의 건배로 만찬이 시작되었다.
* 이설주 약력
이설주(1908.4.12~2001.4.19) 선생 본명은 용수(龍壽)이며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 만주와 중국에서 생활하다 광복 후 귀국, 대구에서 교사로 있었다.
1932년 『신일본민요』에 시「고소」를 발표하고 활발한 창작활동은 귀국 후 부터였다.
1950년대 중반이후 『문학예술』『현대문학』등에 작품을 발표하고 시집으로 첫 시집 『들국화』를 비롯해 『방랑기』『잠자리』『미륵』『불모의 영토』『풍우의 조국』『삽십육년』『사랑의 기도』『이승과 저승 사이』『음악실 소녀』『순이의 가족』『백발의 나목』등 20여 권이 있다.
한국문인협회에서는 2011년 3월25일 임헌영 문학평론가의 주제발표로 이설주 선생을 재조명하는 ‘작품토론회’를 가진바 있고, 그 내용은 《월간문학》2011.5월호에 실려 있다.
* 정완영 약력
1919년 경북 금릉 출생
1941년 처녀작 「북풍」등의 시조작품과 관련 일경에 고문받다
1947시문하구락부동인지 『梧桐』창간
1948「조국」등 시조 창작 350여편
국제신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신춘 문예 당선 및 현대문학 추천 문단데뷔
한국문학상, 가람 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육당 문학상, 만해 시문학상, 이육사 시문학상 등 은관 문화훈장을 받음
시조집 『채춘보.採春譜』 『묵로도默鷺圖』 『산이 나를 따라와서』
시선집,『꽃 가지를 흔들듯이』 『백수시선 』『蓮과바람 』『구름 山房』『蘭보다 푸른 돌』 『오동잎 그늘에 서서 』『고희 기념문집 』『엄마 목소리』『동 시조집』 『세월이 무엇입니까 』『시조100인선』등이 있으며
『산문집』 나비야 청산 가자』, 『차 한 잔의 갈증』
수상집, 『시조창작법』 『고시조감상』『시조산책』 『백수산고』 『기러기 엽신』등의 저서가 있음
2005 직지사 경내에서 백수 전국 시조백일장대회
2007 유심특별상 수상
2008고향 김천에 백수문학관건립됨
2009. 8.8 제1회백수문학제 직지사에서 열림
민문자 실버넷문화예술관장 munhak@silvernetnews.com
첫댓글 정완영선생님의 조국이란 명시는 읽을 때마다 감동이지요 구순이 훨씬 지나신 연세에도 정정하시니 그 역시 감동입니다 선생님의 상세한 보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