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끝물인 88 학번으로 대학에 들어왔을 때 대자보에서 처음으로 김근태 후보를 만났을때를 기억합니다. 너덜너덜 바람에 휘날리는 그 대자보에는 조악하게 복사해 붙인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전기고문 물고문 칠성판 통닭구이....듣기에도 끔찍한 80년대의 폭압 앞에 그가 있었습니다. 고문 경관 이근안.. 그를 지휘한 정형근...
그러나 저는 그때 그걸 몰랐습니다.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갓 스물이었고 그 기간 만큼의 제도 교육의 억압된 알을 깨고 첫 자유의 시간을 미팅과 고고장과 음주로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봄볕이 진분분 난분분 날리는 캠퍼스에는 파릇파릇한 청춘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대학에서 처음 만났던 5월은 참혹했습니다.. 중앙도서관 식당앞에 광주 사진전이 열렸었지요..햇살이 따뜻했던 5월 그 어느날.. 쇠못도 소화를 시킨다는 스무살의 식욕 앞에서 누군가는 밥 먹는데 저런 재수 없는 사진을 붙여 놓았다고 투덜댔고 소심하기 짝이 없었던 저는 머리가 절반이나 날아간 그 사진이 내내 꿈에 나타나 잠자리가 뒤숭숭했습니다.
대학시절 내내 광주에서의 그 참혹한 시신들이 내 의식을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큼 두려웠던 것은 1980년 그들이 짊어 졌던 십자가를 김근태라는 사람이 짊어지고 있었고..저도 언젠가는 그와 같은 십자가를 지게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대구 수성경찰서 대공과에 처음으로 끌려갔을때..무서웠습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날아오는 발길질과 주먹질에 정신이 아뜩했습니다. 아마 알고 있는 것이 많았다면 다 불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이건 고백이 아닙니다...비겁한 고백입니다..사실을 이야기하자면 몇 대 맞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공포감에 젖어 아는 선배들 이름을 다 불었습니다.
김근태가 겪었다던 전기고문 물고문 칠성판 통닭구이... 무서웠습니다.. 그런 고문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조악한 복사물 사진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나게 했습니다..그것이 비굴한 굴복을 불러왔었습니다.
발길질 몇번에 벌벌 떨면서 내게 가장 잘해주었던..따뜻했던 선배들의 이름을 줄줄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풀려나온 몇달 뒤 뒤도 안 돌아보고 군대로 도망쳤습니다.
김영삼의 선심으로 해외 여행에 결격사유 없는 신분으로 사면 복권 되었습니다. 기름진 안주를 식도로 밀어 넣으며, 금박두른 명함을 돌리며, 입사 7년차에 어느덧 4000만원에 육박하게 될 연봉을 이야기하며, 안락하게 몰고 다니는 승용차의 배기량을 이야기 합니다.
경상도 사람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입을 다뭅니다. 김대중이 그 십새끼가 나라 다 말아먹는다고 목소리 높이는 어떤 고귀한 분을 모시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주억주억 고개를 끄덕이는 체하며 할 수 없다..내 밥그릇은 챙겨야지.. 그러면서 고단백질을 입속에서 씹어 돌립니다. 그러다가..그렇게 참담하게 술취한 저녁, 택시를 타고 서울특별시 안특별한 상계동 제 아파트로 향합니다.
아...저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과연 잘 살고 있었던가요?
그렇게 들어온 날 김근태 후보가 사퇴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넋을 놓고 뉴스를 보다가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그 사람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이봐요 김근태씨.. 당신도 나처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았으면 됐잖습니까? 적당히 배반하고 적당히 챙기고 눈치 빠르고 약삭빠르게 살아남으면 좋지 않습니까? 왜 이제 다 잊고 살려는 사람의 속을 그따위로 긁어 놓는 겁니까?
선거권이 생기고 난 뒤 여태껏 살면서 몇번의 대통령 선거를 했고 국회의원선거도 했고 시장 선거를 했고..구청장 선거까지 한번도 선거를 빼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찍은 사람은 구의원 한 명 조차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딱 한명 당선 됐군요.. 제가 고등학교다닐때까지만 하더라도 빨갱인줄 알았던 그 사람입니다.
대구 두류산 공원에 선거유세를 온다고 하길래 계란을 주머니에 숨기고..가는 길마다 붙어 있던 포스터에 "대구는 빨갱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두고보지는 않겠다..'는 스프레이를 뿌렸던 바로 그사람..두류산 공원에서 그 얼굴을 겨냥해 계란을 던졌던 그 사람입니다..
두번이나 표를 주었지만 번번이 낙선했던 그 절름발이 양반이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라고 마음을 다잡았던 그사람..제가 찍은 후보 중 처음으로 그 사람이 당선 되던 날.. 이문동 자취방에서 저와 같이 대구에서 올라온 룸메이트와 밤새 축배를 들며 기뻐했었지요..
그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었습니다. 선거때마다 동쪽과 서쪽이 명확하게 갈라진 색깔로 표시 되는 화면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성이 마비된 지역주의의 광풍에.. 정책도 정강도 실종이 되버린 이 말도 안되는 선거판에서 그래도 희망 하나 건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애써 당신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김근태..바보같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만큼 노무현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저는 김근태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당신이 겪었던 그 고통을...복사한 A4용지에 휘날리던 스무살의 그 봄을 온통 뒤덮어 버렸던 그 잔혹한 야만을 딛고 일어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겟습니까?
그러나 저는 노무현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이 상처받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마음아프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당신이라도 저였다면 저와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것을.. 당신을 사랑합니다..그러나 당신을 배신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