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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의 화
1987 성령의 은총에는 우리를 의롭게 하는 힘이 있다. 곧,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마 3,22)를 누리게 해준다.”39)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8-11).
1988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고, 새 생명으로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 우리는 교회인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이며,40) 참 포도나무 곧 그리스도 자신의 가지들이다.41)
성령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머물러 계시는 사람들은 거룩하게 됩니다. (……).42)
1989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다. 복음서의 첫 대목에 나오는,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고 하신 예수님의 선포에 따라,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준다.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 위로부터 오는 의화와 용서를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43)
1990 의화는 하느님 사랑을 거스르는 죄에서 인간을 멀어지게 하고,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의화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스스로 베풀어 주신 용서에 뒤이어 이루어진다. 의화는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죄의 예속에서 해방시키고 치유해 준다.
1991 이와 동시에, 의화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하느님 사랑의 공정함을 가리킨다. 의화로써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우리의 마음 안에 스며들고, 우리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게 된다.
1992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뜻에 맞는 살아 있는 거룩한 제물로 당신을 바치셨으며,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속죄의 도구가 되었다. 의화는 신앙의 성사인 세례로 주어진다. 의화는 당신 자비의 능력으로 우리를 내적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우리를 부합하게 한다. 의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주는 것이다.44)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 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 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로마 3,21-26).
1993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협력 관계를 이룬다. 인간 편에서, 의화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동의 안에서 그리고 그 동의에 앞서고 그것을 보전하시는 성령의 이끎에 사랑으로 협력하는 실행 안에서 표현된다.
하느님께서 성령의 비춤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실 때, 인간은 거절할 수도 있는 이 감동을 아무런 반응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인간은 그의 자유 의지로써 하느님 앞에서 의화되는 채비를 할 수 없다.45)
1994 의화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나며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에 따르면 “불경한 사람의 의화는 하늘과 땅의 창조보다도 더 위대한 일”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지겠지만, 선택된 사람들의 구원과 의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46)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또한 죄인들의 의화는 천사들을 의롭게 창조한 일을 능가하며, 그것은 죄인의 의화가 더 큰 자비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995 성령은 내적 생활의 스승이시다. “내적 인간”47)을 태어나게 하는 의화는 인간 존재 전체의 성화에까지 미친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로마 6,19.22).
II. 은 총
1996 우리는 하느님 은총으로 의화된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48) 곧 양자가 되고49) 신성(神性)50)과 영원한 생명51)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1997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이다. 곧 은총은 우리를 성삼위의 내적 생활 안으로 이끌어 준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나누어 받는다. 그는 '양자'로서, 외아들과 결합되어, 이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에게 사랑을 불어넣어 주시고 교회를 이루시는 성령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1998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러한 부름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 부름은 스스로 거저 베푸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느님만이 당신을 드러내시고 당신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름은 인간 지성의 능력과 의지의 힘을 초월하며, 어떤 피조물의 능력과 힘도 초월한다.52)
1999 그리스도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당신의 무상 생명이다. 이 은총은 세례로써 받는 성화 은총(gratia santificans) 또는 신화 은총(gratia Deificans)이다. 이 은총은 우리 안에서 성화 활동의 샘이 된다.53)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하느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2고린 5,17-18).
2000 성화 은총은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살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완전하게 하는 상존 은총(gratia habitualis)이며, 지속적이고 초자연적인 성향이다. 이 성화 은총, 곧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자 하는 변함없는 마음가짐인 상존 은총은, 회개의 시작이나 성화 활동의 과정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가리키는 현행 은총(gratia actialis)과는 구별된다.
2001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은 은총이 이미 작용한 결과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해주는 데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에 이르게 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기를) 원하는 의지를 일으키심으로써 세상에서의 일을 시작하시며, 이미 회개한 우리의 의지를 자극시켜 협력케 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54)
우리도 일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일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일할 뿐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에 앞서 있고, 일단 치유가 된 후에는 활기를 주기 위해 우리의 뒤를 따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부름을 받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원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55)
2002 스스로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시고, 그에게 자유와 더불어, 당신을 알고 사랑할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에만 사랑의 친교를 이룰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직접 감동시켜 주시고 직접 움직이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진리와 선에 대한 갈망을 인간 안에 심어 주셨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은, 모든 기대 이상으로 그 갈망을 충족시킨다.
당신은 (……) 매우 좋은 그 일을 끝내신 후에 이렛날에 안식을 취하셨고 성서의 말씀이 말해 주는 것은, 당신이 주셨기에 '매우 좋은 일들'을 한 후에 우리도 영원한 생명의 안식을 당신 안에서 누리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56)
2003 은총은 먼저, 그리고 주로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선물이다. 그러나 은총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당신 사업에 참여시키고, 우리를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선물들도 포함된다. 이 선물들 중에는 각 성사의 고유한 은혜인 성사의 은총도 있고, 성 바오로가 사용한 그리스 말을 따라서 카리스마(charisma)라고 부르기도 하는 특은들도 있다. '카리스마'라는 말은 호의, 무상의 선물, 은혜를 의미한다.57) 기적이나 이상한 언어의 은사와 같이 때로는 예외적인 은사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카리스마는 성화의 은총을 위해 있는 것이며, 또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한다. 카리스마는 교회를 건설하는 사랑에 이바지하는 것이다.58)
2004 특은들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책임을 완수하고 교회 안에서 성직을 수행하는 데 따르는 직분의 은총을 언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은 각각 다릅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라면 자기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써야 하고 그것이 봉사하는 일이라면 봉사하는 데 써야 하고 가르치는 일이라면 가르치는 데 써야 하고 격려하는 일이라면 격려하는 데 써야 합니다. 희사하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하고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을 다해서 해야 하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로마 12,6-8).
2005 은총은 초자연적인 것이므로 우리의 감각 기관에 감지되지 않으며, 신앙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업적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다고 추론할 수 없다.59) 그러나 "너희는 그 행위를 보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마태 7,20)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우리 삶과 성인들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은총이 우리 안에 활동하고 있다는 보장도 받고, 우리가 갈수록 더 커져 가는 신앙과 확고한 청빈의 태도를 지니도록 자극도 받는다.
이러한 영혼의 기질의 가장 아름다운 예는 교회의 재판관들이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질문에 대해 성녀 쟌 다르크가 한 답변에서 볼 수 있다. "쟌 다르크는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있음을 아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제가 은총 중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저를 은총의 상태에 두시기를 바라며, 만일 제가 은총 중에 있다면 저를 그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60)
III. 공로(meritum)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61)
2006 일반적으로, '공로'라는 말은 공동체나 사회가 그 구성원의 행실에 대해 마땅히 주는 보상을 가리킨다. 그 행실이 선행일 때는 상이 주어지고, 악행일 때는 벌이 주어진다. '공로'는 정의의 덕과 관계되며 정의의 원리인 평등에 상응하는 것이다.
2007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창조주께 받았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 사이의 차이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2008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공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은총에 협력하도록 자유로이 안배하셨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느님의 자부적(慈父的) 행적은 인간을 감도하심으로써 시작되며, 반면에 협력을 통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실은 그뒤를 잇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려야 하고, 그 다음으로 신앙인에게 돌려져야 한다. 실제로 인간의 공로 자체도 당연히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것이니, 인간의 선행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감도와 도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9 천주성에 참여시켜 주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거저 베푸시는 의로움의 결과로 참된 공로를 베풀어 주실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된 유산”62)을 받게 하는 은총에 의한 권리, 사랑의 완전한 권리이다. 우리 선행의 공로는 하느님 선의의 선물이다.63) “먼저 은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려야 합니다. (……) 공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64)
2010 은총의 영역에서는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행사하신다. 그러므로 회개와 용서와 의화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은총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초의 은총을 받은 뒤 우리는 성령과 사랑의 인도를 받아,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의 성화를 위해, 은총과 사랑의 성장을 위해,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필요한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공로를 세울 수 있다. 지혜로우신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우리는 건강이나 우정과 같은 현세적 선익까지도 받게 하는 공로가 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은총과 선익들은 그리스도인이 기도로써 청하는 것이다. 기도는 공로가 되는 행실에 필요한 은총을 얻게 해준다.
2011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세우는 모든 공로의 근원이 된다. 은총은 적극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킴으로써 우리 행위에 초자연적 특성을 부여하여 결과적으로 하느님과 인간들 앞에서 공로가 되게 해준다. 성인들은 항상 그들의 공로가 순수한 은총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세상의 귀양살이가 끝난 다음,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주님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를 위한 공로를 쌓기를 바라지 않고, 주님의 사랑만을 위해 힘쓰기를 바랍니다. (……) 이 생명이 끝날 때, 저는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서겠습니다. 저는 주님께 제 업적을 평가해 주시기를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모든 의로움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께서 주님의 바로 그 의로움으로 저를 꾸며 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합니다.65)
IV. 그리스도인의 성덕(sanctitas)
2012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로마 8,28-30).
2013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성을 실현하도록 불린다.”66) 인간은 모두가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갖가지 은총에 따라 힘을 다해야 하며, (……) 모든 일에서 성부의 뜻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봉사에 헌신해야 하겠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의 성덕은 교회사에서 많은 성인 성녀들의 생활이 빛나는 증거를 보여준 것처럼 풍부한 결실을 맺을 것이다.67)
2014 영적 진보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더욱더 밀접하게 결합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이 결합을 '신비적'이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신비들', 곧 성사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과 친밀히 결합하도록 부르신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거저 주신다는 사실을 드러나게 하시려고,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특은이나 이 신비 생활의 특별한 표징들을 주시는 일도 있다.
2015 완덕의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이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이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68) 영적 진보는 참행복의 평화와 기쁨 안에서 살도록 점차적으로 인도하는 고행과 극기를 내포한다.
올라가는 이는 아무리 ‘산너머 산’이라 해도 끝없이 새로운 고개를 하나씩 넘어갑니다. 올라가는 이는 이미 아는 것을 차지하려는 갈망을 버리지 않습니다.69)
2016 어머니이신 거룩한 교회의 자녀들은 당연히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은총'을 바라며,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으로 예수님과 일치하는 가운데 실천한 선행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을 바란다.70) 신자들은 같은 생활 규범을 지켜,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묵시 21,2) 안에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다시 모이는 사람들의 '복된 희망'을 나누어 가진다.
요 약
2017 성령의 은총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을 준다. 성령께서는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결합시키심으로써, 우리를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
2018 회개와 마찬가지로 의화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은총의 자극을 받아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럼으로써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받는 것이다.
2019 의화는 죄의 용서와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
2020 의화는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은총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의롭게 된다. 의화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로움에 일치시킨다. 의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이다. 의화는 하느님 자비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2021 은총은 하느님의 양자가 되어야 할 소명에 우리가 응답하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이다. 은총은 우리를 성삼위의 내적 생활 안으로 이끌어 준다.
2022 은총의 활동 안에서 하느님께서 먼저 자진하여 인간을 준비시키시어, 인간이 자유롭게 은총에 따르도록 하신다. 은총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심오한 갈망을 충족시킨다. 은총은 인간의 자유가 자유롭게 은총에 협력하도록 초대하고, 그의 자유를 완성시켜 준다.
2023 성화 은총은 우리를 당신의 생명에 참여시키려고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고 성화시키려고, 성령을 통해 우리 영혼 안에 이 선물을 부어 주신다.
2024 성화 은총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특은인 카리스마는 성화 은총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며,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현행 은총으로써도 보살피시는데, 이 은총들은 우리 안에 항상 머물러 있는 상존 은총과는 구별된다.
2025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쌓는 공로는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의 활동에 인간을 참여시키려는 자유로운 계획에 따르는 것뿐이다. 공로는 우선 하느님의 은총에 속하고, 그 다음으로 인간의 협력에 속한다. 인간의 공로 역시 하느님께 속한 것이다.
2026 성령의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의로움의 결과로 참된 공로를 세울 수 있게 한다.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세우는 공로의 근원이다.
2027 회개의 기원이 되는 첫 은총을 받을 만한 공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령의 이끎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위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데 유용한 모든 은총뿐 아니라, 필요한 물질적 재화까지도 얻게 해주는 공로를 쌓을 수 있다.
2028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성을 실현하도록 불린다."71) "그리스도인의 완덕에는 한계가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완덕에 전혀 한계점이 없다는 바로 그 점이다."72)
2029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39) 로마 6,3-4 참조.
40) 1고린 12 참조.
41) 요한 15,1-4 참조.
42)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 「세라피온에게 보낸 서간」, 1,24: PG 26,585-588.
43) 트리엔트 공의회, 6회기, [의화에 대한 교령], c.7 : DS 1528.
44) 트리엔트 공의회, 6회기, [의화에 대한 교령], c.7 : DS 1529 참조.
45) 트리엔트 공의회, 6회기, [의화에 대한 교령], c.5 : DS 1525.
46) 성 아우구스티노, 「요한복음 강해」, 72,3: CCL 36,508(PL 35,1823).
47) 로마 7,22; 에페 3,16 참조.
48) 요한 1,12-18 참조.
49) 로마 8,14-17 참조.
50) 2베드 1,3-4 참조.
51) 요한 17,3 참조.
52) 1고린 2,7-9 참조.
53) 요하 4,14; 7,38-39 참조
54) 성 아우구스티노, 「은총과 자유 의지론」, 17,33: PL 44,901.
55) 성 아우구스티노, 「자연과 은총」, 31,35: CSEL 49,258-259(PL 44,264).
56)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13.36.51: CCL 27,272(PL 32,868).
57) 교회헌장, 12항 참조.
58) 1고린 12 참조.
59) 트리엔트공의회, 6회기, [의화에 대한 교령], c.9 : DS 1533-1534 참조.
60) [성녀 쟌 다르크의 재판 기록]: Procès de condamnation, P. Tisset 편(파리 1960) 62 면.
61) 로마 미사 전례서, 성인 감사송. 1, 표준판(바티칸 1970) 428면; "은총의 박사", 성 아우 구스티노, 「시편 강해」, 102,7: CCL 40,1457(PL 37,1321) 참조 .
62) 트리엔트 공의회, 6회기, [의화에 대한 교령], c.16 : DS 1546 참조.
63) 트리엔트 공의회, 6회기, [의화에 대한 교령], c.16 : DS 1548 참조.
64)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298,4-5: SPM 1,98-99(PL 38,1367).
65)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에 바치는 봉헌 기도」(파리 1992) 514-515면.
66) 교회헌장, 40항.
67) 교회헌장, 40항.
68) 2디모 4 참조.
69)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아가 강론」, 8: Gregorii Nysseni opera, W. Jaeger-H. Langerbeck 편 6권(라이덴 1960) 247면(PG 44,941).
70) 트리엔트 공의회, 6회기, [의화에 대한 교령], c.26 : DS 1576 참조.
71) 교회헌장, 40항 참조.
72)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모세의 생애」, 1,5: M. Simonetti 편(비첸자 1984) 10면(PG 4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