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년(연산군 12년)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이 주도한 반정이 일어나,
이들에 의해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이 옹립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중종반정이라고 합니다.
연산군은 무오·갑자사화로 선비를 제거하고 경연 폐지, 신언패 실시, 성균관
연락화, 도성 밖 30리 민가 철거, 언문 도서 폐기 등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채홍·채청으로 미녀를 모아 흥청을 궁중에 기거시키고 사냥을 위해 민가를
철거하는 등 학정이 극심했습니다.
성희안·박원종·유순정 등이 거사를 모의해 9월 2일 훈련원에서 무사를
규합하고 신수근·신수영·임사홍 등 측근을 제거한 뒤 경복궁에 들어가
대비의 윤허로 연산군을 폐위해 강화 교동에 안치했습니다.
호남의 거사 격문이 서울에 전해지며 당초 계획을 강행했습니다.
반정은 신하 주도로 왕을 교체해 왕위세습제에 변화를 가져왔고,
중종은 공신 세력에 눌려 초기 권력이 신하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중종은 연산군대의 폐정을 개혁하고 홍문관을 강화하며 문신월과·
춘추과시·사가독서 등을 시행했습니다.
이후 사림파를 등용해 조광조 등과 현량과를 실시하는 등 유교적 개혁을
추진했으나, 급진 개혁은 훈구 세력의 반발로 좌절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