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문수원(114)
妙法蓮華經 卷 第六
隨喜功德品 第十八
오늘 <법화경>··· 제 18품(品).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이 되겠습니다. 수희공덕(隨喜功德)이라. ‘따라서[隨] 기뻐하는[喜] 공덕[功德]···’, 이런 말입니다. 따라서 기뻐하는 공덕. 이게 상당히 대단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따라서 기뻐하는 게 참 어려운 게 바로 이 점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경전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따라 기뻐하고 또 기뻐하며는 그것을 남에게 나눠줘서 같이 기뻐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들려준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려주며는 듣는 사람이 또 기뻐하고 또 좋아하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불교에는 수희공덕(隨喜功德)이라고 하는 말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말인데. 또 혹은. 다른 사람의 공덕을 내가 또 따라서 기뻐한다, 이런 의미도 또 있어요. 수희공덕(隨喜功德), 할 때, 딴 사람이 공덕 지은 것을 우리는 대개 배 아파하고 좀 이렇게 시기심, 질투심… 이런 게 나기 마련인데. 그걸 이제, 마음을 비우고 다른 사람이 잘한 거, 다른 사람이 참 훌륭한 거, 다른 사람이 지은 공덕, 내지 선행··· 이것을 질투하고 시기하기에 앞서, 정말 순수하게 같이 기뻐해 줄 줄 알면 그 공덕도 또한 대단하거든요. 그거 참, 마음 쓰기 어려운 거여. 어떻게 보면 간단한 거 같으면서도 또 상당히 어려운 점이 그 점이라.
<열반경>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 공양을 누가 올릴 것인가? 부처님, 병들어서 이제, 다시는 더 이상 탁발하러 나갈 그런 처지는 아니고··· 해서. 저녁에 이제, 열반에 들죠. 그런데 그날 낮에. 하루 한 끼 자시니까 낮에 공양을 올려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양 준비를 해 왔죠. 부처님의 처음 공양, 마지막 공양, 이런 것을 상당히 의미 있게 생각을 합니다. 또 안 그렇겠습니까? 중간에야 공양도 여러 번 있을 수 있으니까. 여러 번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의미가 적고. 그, 마지막이라든지, 처음이라든지··· 이런 것을 사람들은 상당히 의미 있어 하니까. 그래서 부처님의. 비록 육신의 부처님이긴 하지마는 부처님의 마지막 공양을 누가 올릴 것인가? 또 누구의 공양을. 올리는 사람이야 많겠지마는 누구의 공양을 부처님이 자실까? 이런 상당한 기대감. 슬픔 속에서도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장장이 순타라고 하던가요? 춘다라고도 하고 순타라고도 하는데. 아주 평범한 신도죠, 뭐. 뭐, 신도회장도 아니구요. 무슨 재벌도 아니고. 또 무슨 국가의 아주, 명성 있는 관료도 아니고. 왕은 더구나 아니고. 아주 정말 평범한 대장장이. ‘대장간한다’며는 대개 천민에 속하죠. 그렇지만 부처님에게는 천민이니, 그런 게 없잖습니까?
인도에는 지금도 사성계급(四姓階級)이 있습니다마는. 부처님 당시, 이전부터 사람을 분별해 왔습니다, 네 가지로요. 사실은 다섯 가진데. 그 밑에 또 있어요. 불가촉 천민이라 해서 아예, 그냥 상대도 안 하는 계급이 또 있기는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옛날에 상인·노예가 있었죠. 양반과 상놈, 해 가지고··· 상인이죠, 상놈이 아니고. 상인. 보통 사람, 그런 말입니다. 양인과 상인. 그런 뜻인데. 양반·상놈, 그렇게 나눠 가지고 보았습니다마는. 부처님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가치, 이것을 꿰뚫어보신 분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사람이, 자기 부모가 누구다, 라는 것 때문에 그런 걸 나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크~게 잘못됐다는 거예요. 그 당시로서는 보통 큰~ 주장이 아니예요. 그래서 그게 인도 사회에서 문제가 많았고. 인도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또 역시 그 점이다, 하는 그런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앞에서야 그런 게 이제, 없으니까 누구든지 다 불법(佛法)에 귀의하고 부처님 가족이 된다며는. 그 앞에서는 무슨 뭐, 양반도 상놈도 따로 없고. 무슨 바라문이다·찰제리다·무슨 왕족이다·무슨 상인이다·무슨 천민이다··· 이런 것이 아예 없습니다. 그게 사실은 옳은 생각이예요. 바른 견해고. 그래, 순타라고 하는 사람이 공양을 올린 것을 부처님은 받았어요. 그거 인연이야 두 분의 인연이니까 우리가 깊이 헤아릴 수는 없는 문제고. 그러니까 정말 옆에서 기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내 공양을 받지는 않을까?·혹시나 내 공양을 받지는 않을까?··· 오늘 누구의 공양을 바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려는가? 이런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건 사람들이. 순타의 공양을 부처님이 받으시니까. 그 당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부처님도 잘 가르쳤지마는 상당히 참, 수준이 높고 마음이 순화가 돼서 질투는커녕 정~말, 따라서 기뻐할 줄 아는 그런 마음가짐을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순타. 아! 순타 공양을 부처님이 받았다.” 이렇게 하니까 옆에 큰 뭐, 수백만이 모였다고 그랬죠. 경전에서는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순타·순타·순타 공양을 받았다, 라고 한 말이 전해지기 시작하면서 순타라고 부르짖기 시작하는 거여. 그야말로 순타·순타를 외치게 되는 거여. 요즘 뭐, 무슨 발표회 같은데 가며는 기립박수 하면서 “앙콜” 계~속 부르듯이··· 그런 식으로 “순타”를 부르짖기 시작한 거여. 그래서 온~ 대중들이, 그 많은 대중들이 그냥 부처님 열반은 잊어버리고 순타를 같이 따라서 기뻐하는, 순타의 영광을 같이 따라서 기뻐하는, 순타를 부르는 그런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이러한 광경이 <열반경>에 나오는데 그게 참 좋은 모습이라고 아주··· 경전을 보는 사람들은 많이 이야기하는 그런 대목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공덕을 질투하지 않고 따라서 기뻐한다, 이게 보통 이제 수희공덕(隨喜功德), 수희공덕(隨喜功德), 그렇게도 말하고. 여기서 수희공덕(隨喜功德)이라고 말하는 것은 ‘따라서 기뻐하는 공덕’, 이런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는 것도 좋고. 또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며는 또 따르는 공덕이 상당하다. 따라서 기뻐하는 사람의 공덕, 그런 뜻이죠, 여기서는. 그래서 <법화경>의 내용을 듣고 마음이 참 흡족하고 기쁜 나머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또 기뻐서 다른 사람에게 또 전하고··· 여기 따른 공덕이 또 얼마나 큰가? 늘 그렇듯이 부처님이 한번 자랑할려고 하며는 무량(無量). 무한(無限).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 무슨 아승지··· 이렇게 그 공덕이 표현됩니다. 최소한도 그런 게 아니면 부처님은 입을 떼지 않애요. 뭐, 공덕이 아이구 뭐, “금정산”만하다. 이 정도 가지고는 부처님, 아예 말씀 안 하시거든요. 무량(無量),하고 무한(無限)해야 말씀을 하신다고요.
그러니 여기서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며는. <법화경>을 우리가 공부하는 공덕. 또 한번 듣고··· 앞 시간에도 있었습니다마는. 일념수희(一念隨喜)라 그랬죠? 한 순간만이라도 따라서 기뻐하는 것. 그게 전부 연결된 겁니다. 앞에서 뭐,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이나 여기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이나 그 다음 또,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이게 주~욱 이제, 세 가지 공덕품(功德品)이 연결된 그런 이야긴데. 그래서 따라서 기뻐하는 그 공덕이 일념수희(一念隨喜)만 하더라도 그 공덕이 한량이 없다,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얼마만치 한량이 없느냐? 여긴 이제 헤아려요. 거기, 격량공덕(格量功德)이라. 어려운 말로는 그러는데. 다른 공덕과 비교를 해 가지고 그것을 계산을 해 본다, 헤아려 본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선 이제. 한 사람이 듣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 들은 사람이 또 전하고 또 전하고 또 전하고··· 해서, 50명까지 전했다, 이랬을 때의 그 공덕하고. 그러니까 많이 희석이 됐겠죠.
예를 들어서 오늘. 여기서 <법화경>을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을 들었다. 그 나름대로 여러분들이 이해를 잘 하셨다고요. 해 가지고 집에 가서 식구들 앉혀 놓고 뭐, 이야기한다든지 친구들··· 들어가는 사이에 친구를 잠깐 만나서 오늘 내가 들은 이야기를 좀 해야 되겠다, 하고 이야기를 한다든지, 이렇게 하며는. 뭐, 아무리 말재주가 있고 기억력이 좋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법화경> 원본하고는 좀 차이가 있을 거라. 어느 정도 희석이 됐을 거란 말이예요. 저도 지금 <법화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또, 거기에는 제 나름의 이해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좀, 문제가 있을 수가 있듯이. 그럼, 50명이 말하자면 흘러가면서 전했다, 라고 하며는 그건 상~당히 감소가 돼도 많~이 감소가 됐을 거에요.
TV에 가끔 보면 그런 거 있더라구요. 이 쪽에서 “뭐라고” 일러 줬는데 그 다음 사람에게 “뭐라고” 일러 주면. 입 모양만 보고 일러주는 건데 정!반대로 하는 거야. 전혀 딴 소리 하는 거야. 다섯 명인가, 그리 전해 가면 전혀 딴 소리 하는 거라. 그렇듯이. 영 딴 소리를 하는 그런 입장이 설사 되더라도, 이런 뜻이 돼요, 여기서는. 50명까지 전해 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법화경>을 가지고 이야기 했을 때는 거기에 따른 공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이렇게 공덕이 많다는 소리 듣고도 이 <법화경>을 여러분들이 좀, 관심있게 보고, 또 남에게 전하는데 대해서 인색하다며는. 뭐라고 할까? 사람도 아니라고 할까 하여튼··· (웃음) 집에 식구들한테라도 좀 자랑하세요. <법화경> 자랑을 좀 하시라구요. 그래야 전해지지. 자꾸 과거 사람들이 전해 왔기 때문에 3천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도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거 따라서 좋아해 가지고 전한 사람이 있는 그 덕택에 오늘날 우리가 공부하게 된 겁니다. 그거 없이는 전해지지가 않애요. 그래서 그런게 이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의 준된 내용입니다.
本門, 流通分
一, 明弘經功德深勸流通
1, 明初品因功德勸流通
⑵ 明滅後五品
② 格量初品因功德
가, 彌勒問(1,長行 2,偈頌)
爾時 彌勒菩薩摩訶薩이 白佛言하사대
이시 미륵보살마하살 백불언
미륵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고해 말하사대
世尊하 若有善男子善女人이 聞是法華經하고 隨喜者는 得幾所福이닛고
세존 약유선남자선여인 문시법화경 수희자 득기소복
세존이시여! 만약에 선남자선여인이 이 <법화경> 강의를 듣고. 이 <법화경> 설법을 듣고. 따라서 기뻐하는 사람은 얼마만한 복이 됩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이제. <법화경>이 사실 중요한 내용은 끝났구요. 그래, 이 <법화경>이 어쨌든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되겠는데. 전해질려면 뭔가 소득이 있어야 누가 전하지, 소득없는 일을 왜 합니까?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복덕이 돌아오느냐? 소득이 대체 뭐냐? 얼마만치 소득이 있느냐? 이걸 이제, 미륵 보살이 물은 거예요.
而說偈言하니라
이설게언
또 이렇게 물어 놓고. 이 물음은 신중한 물음이기 때문에 게송으로 또, 이야기를 합니다.
世尊滅度後에 其有聞是經하고
세존멸도후 기유문시경
세존이 열반에 드신 뒤에 그 어떤 이가 이 경을 듣고.
若能隨喜者면 爲得幾所福이닛고
약능수희자 위득기소복
만약 능히 따라서 기뻐하는 자는 기소복(幾所福)이라는 거는 얼마만한 복. 얼마정도의 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얼마나 되는 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게송으로서 다시 반복해서 묻습니다.
나, 如來答
㈎ 長行
㉮ 明內心隨喜人(1,敍隨喜展轉敎, 2,明格量本 3,如來問 4,彌勒答 5,正格量)
爾時 佛告彌勒菩薩摩訶薩하사대
이시 불고미륵보살마하살
부처님이 미륵 보살마하살한테 이제 고합니다. 미륵 보살, 점잖은 분이 처~억, 물어 왔으니까 부처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을 하시죠. 정말 이 <법화경>의 공덕이야말로 대단하다~. 그걸 이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려는 참입니다. 그, 대단한 이유는요. 우리는. 예를 들어서 기껏 우리의 상식은. 이 육신의 생명정도. 그리고 내가 지금 금생에 누리고 있는, 현재에 내가 뭐, 타고난 팔자, 내 분(分), 내 위치···, 이것만 가지고 ‘나’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조금만 더 깊이 알고 보며는 내 생명이라든지 내 능력이라든지···, 이것은 정~말 무한하다. 그걸 아니까 얼마나 큰 부잡니까?, 사실은. 그걸 제대로 우리가 알면요, 거기에 눈 뜨면 정~말 진짜 부자예요. 지금. 뭐, 금생에 내 팔자가. 운명이 기구하고 팔자가 기구해서 비록,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 볼 때. 그것도 위로 비교, 대개 하지. 자기가 불행하고 싶어가지고 자꾸 윗사람하고··· 나은 사람하고 비교한다구요, 습관이. 참 그거··· 중생의 못된 습관이라. 자기보다 못한 사람하고 비교해 가지고 기분이 좋은 길이 있는데도 그 기분좋을 길은 버려 버리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자꾸 생각하는 거야. 그래 가지고 자기가 기분나빠하는 거라. 이 중생 노릇하는 것도 팔잔가봐, 그러니까··· (웃음) 그런 습관, 이제 버려야 돼요, 자꾸··· 긍정적으로··· 이 불교만치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주는, 그리고 삶에 어떤 빛을 던져 주는 가르침은 사실, 없습니다. 그건 뭐, 우정,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원리가 그리 돼 있는 걸 부처님이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에 당신 깨달음대로 말씀 하시는 거예요. 원리가 그리 돼 있어요, 윈리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정~말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다는 거, 제가 가끔 예를 잘 들잖습니까? 실질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런 일들. 정~말 상상치도 못할 그런 일들··· 전번에 두 손가락으로 피아노 쳐 가지고 대회에서 1등 했다고 하는 그런 경우. 그거 뭐, 봐 줘서 1등 한 게 아니더라구요. 제가 여러 기사를 한 번 살펴보니까. 봐 줘서 1등 한 게 결코 아니야. 그런 능력이 가능해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요.
그래서 ‘무한하다’고 하는 것을 정말 제대로 우리가 이해를 하게 되며는 정~말 우리 팔자가 아무리 설사 기구하다 하더라도 정~말 기구할 것이 아니고 정말 부자고 풍요롭고 정말 영원하구요 정말 행복하다고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생명의 가르침이고 빛의 가르침이고 환희의 가르침이고 풍요의 가르침입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은 당당하게 이 <법화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 하며는 이런 공덕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것도 한두번 말하는 게 아니죠. 저 앞에서부터 계속 공덕 이야깁니다, 계속··· 당당하게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이걸 뭐, 한두살 먹은 아이 꼬실려고 하는 소리가 절대 아니예요. 절대 그런 게 아니라구요. 그런데 그 의미를 모르고 덮어 놓고 이 공덕만 가지고 자꾸 이야기해 가지고 삿된 데로 또 이끌고 가는 그런 경향이 또 있습니다. 몇 번, 제가 지적하지마는 <법화경> 가지고 사사~하게 좀, 어떤 사기(邪氣)가 있도록 그런 쪽으로 이야길 해 가는 그런 경향도 사실은, 없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덕 이야기 보면 기가 막히거든요. “왜 공덕이 그렇게 많은가?”를 우리는 알아야 돼요. “왜 공덕이 많은가?”는 <법화경> 전편에 흐르고 있는 주된 내용이 되겠습니다마는. 그래서 부처님이 이제. 미륵 보살에게 그 설명을 합니다. 얼마나 되는가? “왜?”가 아니구요,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죠.
阿逸多야! 如來滅後에
아일다 여래멸후
아일다는 미륵 보살의 이름이죠.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
若比 丘比丘尼와 優婆塞 優婆夷와 及餘智者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급여지자
비구·비구니, 또는 우바새·우바이. 그리고 다른 혹시 또 지혜로운 사람.
若長若幼가
약장약유
그리고 장(長)은. 어른이거나. 아니면 유(幼)는. 젊은이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젊은이거나 불문하고.
聞是經隨喜已에
문시경수희이
이 경전을 듣고 나서 기뻐하고. 따라서 기뻐하고 나서. ‘이[已]’자(字)는 기뻐하고 나서. 자기가 공부하고 나서 참~ 기쁘다, 이거여. 좋다··· 정말 아! <법화경>이야말로 훌륭한 경이다. 하는 것을 듣고 나서.
從法會出하야 至於餘處하대 若在僧坊커나
종법회출 지어여처 약재승방
이제 이 시간 이후 이야기예요. 법회로부터 나가는 거죠. 이제, 법회 끝나면 가야 되니까. 뭐, 친구 만나러 다방에 가든지. 스님 같으면 자기 개인방으로, 승방(僧坊)에 돌아 가겠죠.
若空閑地어나
약공한지
혹은 또. 뭐, 저기 <범어사> 숲 속에 가서 한참 앉았다가 뜻을 마음속에, 몸속에 푸~욱 배게 한다, 그런 뜻에서 딴 사람하고 만나지도 않고 이야기도 안 하고 한~참, 한가하게 있다고요. 그런 시간이 또 중요해요, 사실은. 실컷 공부 잘 하고 막 돌아서자마자 막 히히덕거리고 떠들어 버리며는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아무래도 날아가겠죠, 좀. 그래서 좀, 가만히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 공한지(空閑地)에 있다는 것은 그런 시간을 갖는 거예요. 마음 속에 몸 속에 푸욱 젖어들게, 뜸 들게. 말하자면. 뜸 들다고 하는 게 제일 좋겠네요, 아주. 공부한 게 아주 뜸이 들어야지. 밥이 푸르륵 끓었다고 밥, 다 됐습니까? 뜸이 들어야 그게 먹을 만 하듯이··· 이게, 뜸이 들어야 자기 것이 되는 거야, 공부도.
그래 법회에서부터 나와 가지고 다른 곳에 갔다든지. 아니면 스님들같으면 승방(僧坊)에 갔다든지. 혹은 공한지(空閑地). 다시 고요한 곳에서 잠깐, 시간을 보낸다든지···
若城邑 巷陌 聚落 田里에
약성읍 항맥 취락 전리
또, 성(城)이나 읍(邑)이나 항맥(巷陌). 골목이나 길거리. 우리가 다아 걸어 다니는 길거리가 전부 항맥(巷陌)이예요. 취락(聚落)은 작은 마을들. 저기 시골이라든지 도시 변두리라든지. 전리(田里). 농장이라든지. 전리(田里)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시골··· 작은 마을을 전리(田里)라고 하고 쪼끔 큰 마을을 취락(聚落)이라 하고, 그래요. 그런 곳에서
如其所聞하야 爲父母宗親과
여기소문 위부모종친
그 들은 바와 같이. <법화경>에서 공부한 대로. 지금은 일러 주기가 참 좋죠. 옛날에는 자꾸 듣는다·듣는다···. 왜 듣는다는 말을 많이 했는고 하면. 책이 그렇게 돌아갑니까? 책은 법사나 가지고 있고. 부처님 당시때는 더구나 책이 없었고. 법사 혼자만 하는 거죠. 기억한 대로만 하는 겁니다. 부처님은 당신 말씀이라 더 말할 것도 없고. 만약 그 뒤의 법사라며는 외워 가지고 하는 거예요. 자기 들은 대로 이야기하지, 책이, 나눠 줄만한 책이 없었어요. 그럼, 혼자 이야기하고 듣는 거예요. 우리나라 법회도. 이런 데서는 교재를 가지고 하니까 정말 천만다행인데. 대~개 법회 때. 그냥 입 하나만 들고 와서 하고 귀 하나만 들고 와서 듣잖아요. 그거 뿐이라고요. 지금도 그런 데가 많다고요. 쪼끔 성의있게 할라면 그걸 좀, 프린트라도 해 가지고 부처님 말씀을 간결하게라도 그 줄거리를 적어와서 나눠주고 하며는 아주, 쪼끔 좋은 법회가 될 텐데. 뭐, 그렇게 하는 데도 요즘은 이제 많아졌어요. 근데 그건 요즘 일이지 옛날에는 그렇지도 못했어요. 거의 그냥, 귀만 가져와서 듣고 입만 가져와서 하고···, 그런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듣는다는 말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그 들은 바대로 해 가지고. 부모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종친(宗親)들. 뭐, 처자권속들. 형제자매들. 뭐, 도반들, 친구들··· 누구든지 간에 자기가 만난 모든 사람들.
善友知識하야
선우지식
좋은 벗. 나에게 뭔가 일깨워주는 선지식들. 이런 이들을 위해서
隨力演說하니
수력연설
이게 중요한 거야, 수력연설(隨力演說). 뭐, <법화경>, 누가 다하라고 합니까? 누가. 다 할 사람, 세상에 부처님 말고 누가 있습니까? 자기 힘 따라 하면 되는 거예요. 자기 힘 따라··· 또 자기 이해되는 것만 하면 되는 거고. 뭐, 괜히 어려운 거 시작해 놓고 한참 이야기 하다가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잊어 먹었다···’ 이러지 말고. (웃음) 이해되는 거만 해요. 할 만한 거만 해. 수력연설(隨力演說)이라 그랬잖아요? 힘 따라서 하는 거여, 힘 따라서. 자기 납득이 가는 걸 해야지 뭐할라고 어려운 거, 유식하다는 소리 들을라고 하는가··· 어려운 거 꺼내놓고 감당도 못하는 거 하지 말고. (웃음) 쉬운 이야기, 그냥 납득이 가는 것만 하라구요, 납득이 가는 거··· 납득이 가는 거, 제일 쉬운 거, 저 뒤에 가면 <보문품>이 있어, <보문품>. ‘아이구. 관세음보살 부르면 모든 문제 다 해결이란다.’ 그것도 좋은 거예요. 제일 쉽지, 뭐. 또 잘 하고 있는 거고 또. 그래, 수력연설(隨力演說)이 좋아요. 또 맨날 그 소리만 하지 말고 또··· (웃음) 좀 깊이 있고 뜻있는 거. 여기 “이야기”도 많고 “비유”도 많잖아요? <법화경>이 정~말··· ‘<법화경> 공부하고 또 <법화경>할까?’ 이 생각을 제가 가끔 한다구요. 공부 해 보니 하도 좋아가지고. 저도 <법화경> 할 때마다 뜻이 깊어지고 다르구요. 또 여기서 공부할 게 무궁무진합니다, 사실. 이 안에서. 그래서 수력연설(隨力演說)이라. 힘 따라서 연설한다. 이야기해 준다, 이거여. 힘 따라서 이야기해 준다.
是諸人等이 聞已隨喜하고
시제인등 문이수희
이 여러 사람이. 경우에 따라서 뭐, 남편이 될 수도 있고·자식이 될 수도 있고·아내가 될 수도 있고·형제, 자매, 친구··· 뭐, 심지어 뭐, 보기 싫은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보기 싫은 사람, 어쩔 수 없이 만나가지고 시원찮은 소리 하지 말고 “내 이야기나 한마디 들어라”하고 해 줄 수도 있고. 그런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듣고 나서 따라서 기뻐하고.
復行轉敎하며
부행전교
다시 전교(轉敎). 가르침을 또, 전하는 거예요. 굴려준다[轉]하는 말은 전법륜(轉法輪)이라고 해서. 바퀴가 굴러가듯이, 하는 그런 뜻에서 자꾸 법의 바퀴. 법을 하나의 바퀴로 생각하면. <법화경>을 하나의 바퀴라고 생각하면 자꾸 굴려간다, 이거여. 저한테서 여러분들에게로, 여러분들에게서 또 여러분들 아는 사람에게로 굴려가고 굴려가고··· 그렇게 하는 걸 전교(轉敎)라 그래요. 교(敎) 전(轉)[轉敎]하는 것을 행하며
餘人聞已에 亦隨喜轉敎하야
여인문이 역수희전교
또 다른 사람이 듣고 남에. 또 따라서 기뻐하고 전교(轉敎)를 해서. 교(交)를 굴리고 굴리고 자꾸··· 교(交)의 바퀴를 굴린다. 그래 불교 마크가 뭐죠? 법륜(法輪) 마크 아닙니까, 법륜(法輪). ‘만[卍]자(字)’가 아니예요. 법륜(法輪) 마크··· ‘만[卍]자(字)’도 물론 불교 마크로 쓰지마는. 법륜(法輪) 마크를 제일 잘 써요, 근래에 와서는. 옛날에는 ‘만[卍]자(字)’를 쓰기도 했습니다마는 그건, 가슴에, 부처님 길상을 뜻하는 것이라서 좋은 거예요. 그런데 법륜(法輪) 마크를 요즘 잘 써요. 어디든지 법륜(法輪) 마크를 쓰거든요. 그래, 전교(轉敎)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자~꾸 굴려 가가지고. 바퀴처럼 굴려 가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라는 뜻에서요.
如是展轉하야
여시전전
이와 같이 전전(展轉)히. 자꾸 펴 가고 굴려가고·펴 가고 굴려간다··· 이거여.
至第五十하니
지제오십
그래서 50인(人). 아까 이야기했듯이 50인(人)째까지 흘러간다.
阿逸多야! 其第五十인
아일다 기제오십
그 제 50인(人). 50인(人)까지 굴러 갈라면 상당하겠죠. 굴러 가서.
善男子善女人의 隨喜功德을
선남자선여인 수희공덕
선남자선여인의 따라서 기뻐하는 그 공덕을.
我今說之호리니 汝當善聽하라
아금설지 여당선청
내가 지금 설명하겠다, 이거여. 너는 마땅히 잘 들으라. 잘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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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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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一念隨喜.......가을햇살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
一念隨喜,,,隨喜同參,,,隨喜功德,,,格量功德,,,空閑地,,,隨力演說,,,法輪,,,轉敎
염화실은 역시나 곳곳이 보배 창고이네요 .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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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님 수고 하셨습니다 성불하세요~~()
다른 사람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한다.. 고맙습니다. _()()()_
수력연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공부잘 햇습니다, 성불하세요~~()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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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一念隨喜.............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주는, 삶에 어떤 빛을 던져 주는 가르침은 불교외에는사실 없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하고 비교해서 기분좋아질 일이 있는 있는 데 중생의 못된 습관은 불행해지려고 항상 자기 위의 사람과 비교한다
隨力演說;능력껏 법을 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