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 라면 박스 너덜한 밀창문을 연다 등 굽은 노파가 사탕 오물거리며 놓지 못한 점방의 이력을 침으로 굴려 녹이고 있는 서리 맞은 달빛 게슴츠레 보다가 더듬더듬 셈 만하는
술만 취하면 삼청교육대를 박살내고 알콜에 젖은 살을 뜯는 학선이도 잘린 손가락으로 시비 거는 달수성도 석탄가루 뱉으면서 궁시렁궁시렁 탄맥 끊어진 길 타고 간 송광교통 버스도 다시 오지 않았다
바람도 비켜가는 다닥다닥한 판자 집들 가래떡처럼 석탄이 줄줄이 쏟아지던 점방 앞에서 스산함이 익숙해져버린 폐광촌을 본다 삼십 촉수가 엎드린 아스팔트 등 빨아대고 내 낡은 귀퉁이에 희미하게 돋아나는 탄 무더기 전조등이 선을 쭉쭉 그으며 어둠을 덧칠한다
삼거리 돌아 원주민이 사는 불빛 간간히 보이고 나무판으로 꼭꼭 못질한 폐광 문을 닫고 외줄 타듯 살아 온 나는 녹슨 문고리를 잡고 흔든다 떠난 사람들 그림자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떨어져 내린다 시컴해진 쓸개까지 버리고 간, 지금은 무엇을 더 버리면서 물에 뜬 노을을 바라볼까
또 다른 맥을 찾기엔 막장의 무너짐이 심각하다 내 안에 침묵하고 있는 점방을 드르륵 열고 열무김치와 막걸리 텁텁한 허기를 채운다 들 고양이 울음소리에 놀란 외딴 삼거리 점방, 갱도에 갇힌 내 문을 조금씩 연다
볼록렌즈로 모으는 시의 화점이, 적어도 민작계열 시인이라면 어디쯤이어야 할까를 다시금 뇌이게 하는 시 잘 읽었습니다. 온갖 장식으로 범벅질하는 한국시단, 그래도 호남시단에 오면 살아서 꿈틀대는 이땅의 풋풋한 생명을 느낍니다. 그래서 일러 예향이라 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마을마다 창하는 소리 낭낭하고 들녘마다 불의에 저항하는 민중의 서정이 맥맥히 흐르는 황토빛 호남을 부러워합니다./ 아직 다 못한 이야기, 조금 더 숙성시키어 좋은 시로 거듭나길 빕니다. 경북작가 박희용 올림 09.04.15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