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과다니니 등은 연주자들에게는 꿈의 악기로 여겨지는 명기들이다.
명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1644~1737)가 만든 현악기들. 악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기후인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제작자 니콜로 아마티의 견습공을 지낸 후 자립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가문이 원래부터 악기제조로 유명했지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안토니오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완벽한 공명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업을 이어간 두 명의 자식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는 제작비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간의 피를 발랐다는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설정처럼 도료가 특이했다는 주장도 있고 재질이나 형태가 특이하다는 등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소리뿐 아니다. 내부를뜯어보면은 마감이 단정하고 수리를 해도 정교하게 처리해 겉면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악기에 자신의 라틴어 이름을 새겨 놓았으며 ‘셀베’ ‘루비’ ‘문츠’ ‘헬리어’ 등 개별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도 특징.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남긴 작품 수는 바이올린 540개, 비올라 12개, 첼로 50개 등 최소 1,116개로 추정되며 이중 700여 개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악기는 만들어진 연대에 따라 품질이 모두 다르고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지만 최저 경매가가 10억원을 넘는다. 최고가로 팔린 기록은 98년 크리스티의 런던 경매장에서 팔린 90만2,000파운드(약 150만 달러). 베토벤이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헌정했던 루돌프 크로이체르가 소유했던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쌍벽을 이루는 과르네리 델 제수(1698~1744) 역시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있는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가문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활동시기가 엇비슷하고 같은 지역 출신이어서 자주 비교되곤 하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완벽주의자였다면 과르네리 델 제수의 작품의 수준은 기복이 심한 편이다. 술을 좋아하고 성격도 특이해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고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악기제작을 하지 못하는 공백기간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과르네리 델 제수가 빛을 보게 된 것은 파가니니에 의해서다. 연주회 전날 도박에서 지는 바람에 자신이 사용하던 ‘아마티’ 바이올린을 잃게된 그는 후견인으로부터 델 제수를 빌렸다. 그날 연주에 감명을 받은 후견인은 이 악기를 파가니니에게 선물했고 이 악기는 ‘파가니니 캐논’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파가니니를 통해서 연주자들이 과르네리 델 제수의 악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악기에 대한 연주자와 일반인들의 관심은 크지만 진짜 명품은 극소수의 연주자들이나 콜렉터, 협회 또는 대기업에서 보유하고 있다. 국내 연주자들 중에서도 해외파 연주자들이 주로 가지고 있으며 개인이 구입한 것보다는 기증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는 70년대 초 스트라디바리우스 해리슨을 구입했고 첼리스트 양성식은 과르네리 델 제수를 쓴다. 장한나는 첼리스트 하인리히 쉬프가 쓰던 1757년 산 과다니니를 쓰고 있는데 95년 동아그룹이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를 통해 기증한 것으로 당시 악기 가격은 7억원을 호가했다.
장영주는 1998년 오스트리아 ‘프리마 라 뮤지카’ 콩쿠르에서 1위 입상한 것을 계기로 ‘마코울드사’로부터 1705년산 아마티 바이올린을 대여받았었다.
★명연주 뒤에는 명품이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는 과연 명품 악기가 있을까? 지난해 8월 서울공연을 가졌던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 정현희는 북한이 자랑하는 명품을 들고 나와 연주를 했는데 40만 달러 상당의 이탈리아산이라고 한다.
악기 가격이 만만치 않다보니 악기를 대여해서 쓰는 경우도 많다. 바인 앤 푸시사는 스트라디바리우스 협회를 운영하면서 소장 또는 위탁받은 명기를 연주자들에게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막심 벵게로프, 니콜라스 슈나이더, 장영주, 엘리사 리, 제니퍼 고 등이 악기를 대여 받은 바 있다.
국내는 금호문화재단이나 삼성문화재단이 메세나활동(기업의 예술지원)을 하고 있다. 금호문화재단은 92년부터 악기임대를 해주고 있으며 리비아 손, 줄리엣 강 등에게 과다니니, 몬타냐 등 세계적인 명품이 대여됐다.
삼성문화재단은 1997년부터 악기은행사업을 펼치고 있다. 재단이 보유한악기는 1725년산 과르네리 바이올린과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가스파로 다살로 비올라, 마테오 고프릴러 첼로 등. 10여 억원이 넘는 악기들을 재능있는 연주자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있다.
★명품의 상징성★
명품이 연주자의 음악성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음악을 전하는 도구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87년 타계한 바이올린의 거장 야사 하이페츠는 후견인에게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연주자에게 활을 물려주라는 말을 남겼다. 후견인은 6년 동안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는데 벵게로프의 뉴욕 데뷔공연을 보고 활의 주인임을 직감했다. 벵게로프는 이 활을 받는 동시에 하이페츠의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벵게로프는 1723년 스트라디바리우스 엑스 키에제베터를 영구임대 받아 사용하고 있으며 하이페츠가 남겨준 활은 조금 무거운 편이어서 요즘에는 자주 쓰지 않고 있다.
이작 펄만의 사용하고 있는 ‘소일’이란 이름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유태인들간의 끈끈한 동포애가 담겨 있다. 이 악기는 메뉴힌이 이작 펄만에게 직접 물려준 것. 하이페츠, 후벌만, 메뉴힌, 이작 펄만, 핀커스 쥬커만 등 유태 패밀리가 세계 바이올린계를 이어가는 것도 이런동포애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음악가의 집안인 경우 대를 이어 명품이 전달되기도 한다.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로비 라카토시는 정확하고 빠른 기교로 유명했던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과르네리를 쓰고 있다. 라카토시는 유명한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야노슈 비하리의 7대손으로 비하리는 베토벤이 존경의 뜻을 표했던 연주자다.
★인터넷 경매로 만나는 명품★
세계적인 명품 악기들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악기 수집가들이나 연주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다. 하지만 인터넷 경매를 통하면 명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에 비하면 신생 업체라고 할 수 있는 타리시오 옥션(www.tarisio.com)은 뉴욕과 보스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전문 인터넷 경매회사. 유명한 악기 수집가였던 타리시오의 이름을 딴 이 업체는 현악기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경매를 하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이 참가하기 쉽다는 것이 장점. 악기 상태와 실물 사진 등을 홈페이지에 올려 놓고 있다.
해외에서는 명품경매가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전무한 상태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경매를 열었지만 참여자들이 극히 적어 경매가 무산됐다. 당시 국내에서 보기 힘든 바이올린 90여 개와 활 40여 개가 3일간 전시되었는데 바이올린 중에는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루게리와 카밀리오 카밀리, 발레스트리에리 등이, 활은 사토리와 파죠, 라미 등이 포함돼 있다.
악기의 가격대는 바이올린 정식 사이즈의 경우 최저 예정가가 5,000달러(550만원)부터 1745년산 파올로 안토니오 테스토레는 9만달러(9,900만원), 루게리 1690년산은 12만달러(1억3,200만원), 카밀리 1737년산은 15만달러(1억6,500만원)를 호가했다. 활 역시 최저 예상가는 2000달러(약 220만원)에서 2만2,000달러(약 2,400만원)에 달했지만 경매는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