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우중한담(雨中閑談)(09-27)
-나로 우주센터를 다녀와서-
오늘은 입추(立秋),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섰다.
아직 말복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면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는 절기다.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로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대로, 이날부터 立冬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하지만, 밤이 되면 비교적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여름의 흙일도 끝나, 서서히 가을채비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였으니,
농촌에서는 참깨, 옥수수를 수확하고, 일찍 거두어들인 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도 한다.
태풍과 장마가 자주 발생해 논에서는 병충해 방제가 한창이고,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느라 분주한,
이 무렵부터 논의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1년 벼농사의 마지막 성패가 이때의 날씨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아직 남아 있는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벼가 누렇게 익어야 하는,
이때부터 처서(處暑)무렵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바다에서는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밀물과 썰물의 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사리 현상이 발생해
서남해안 지역의 저지대가 침수, 농작물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 무렵의 풍속으로는 “기청제(祈晴祭)”가 있는데,
벼가 한창 여무는 시기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을 가장 큰 재앙으로 여겼고,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늘에 기청제를 지냈다.
즉 비가 닷새 또는 보름 동안 계속해서 내리면 조정이나 고을에서 비가 멈추게 해 달라고 제를 올렸던 것이다.
(기우제의 반대개념)
입추인 오늘 반갑지 않는 태풍소식이 있지만,
태국어로 “에메랄드”를 뜻한다는 8호 태풍 모라꼿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도 있었고,
수확의 계절 가을에 접어들면서 애써 가꾼 농작물이 피해를 보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스럽다.
올해는 긴 장마 때문에 여름이 실종되어버렸다.
여름의 속살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가장자리에서 맴돌다 지루해 가버릴 것만 같은 요즘.
오늘은 고흥군 두원면, 포두면경계에 있는 운암山을 산행하는 날이다,
7월 셋째 주 山行때도 비 때문에 취소되었던 山으로, 어머니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는 山,
山이 높이 솟아있어 구름 같은 기운이 山을 감싸고 있다하여 雲岩산이라했다,
출발지인 광주의 날씨는 괜찮은 날씨였고,
화순을 지나 주암호 호안도로로 접어 들 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하늘은 무표정하니 우리를 내려다보기만 했는데,
댐 상류를 벗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면, 앞창 윈도어부러시는 신이 나서 트위스트를 치고 있고,
뿌연 창밖으로 보이는 계곡으론 붉은 황토물이 콸콸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우리산행이사님 어색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첫 번째 산행취소를 선언했다.
“오늘 운암山 산행은 비 때문에 곤란하니, 대신 나로 우주센터 견문으로 대신합니다.”
요즘하느님은 오지랖이 좁아 자신도 통제가 안 되는지, 계곡하나를 지나가면 해가 나와 한쪽 눈을 찡긋하고,
산모퉁이 하나 지나면 언제 그래야는 듯 비가 쏟아지고 있고,
그럴 때마다 죄 없는 산행이사님 뒤통수 긁으면서, 취소와 강행을 반복하더니,
산행버스는 순천, 벌교를 거쳐 고흥읍에 도착했고,
15번 국도를 따라 나로1대교와 나로2대교를 지나 이정표를 따라 직진하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포근하게만 느껴진다는 운암산은 우리를 포용하기를 거부하고 두 번씩이나 되돌아서게 했지만,
그래도 우리에 농촌풍경은 잘 그려진 수체畵처럼 선과 색상이 뚜렷하게 내 시야 속으로 들어오고,
윤기 잘잘 흐르는 초록양탄자처럼 벼가 자라고 있는 논, 비 맞은 앞산과 樹木은 정겹게 손을 내밀고 있고,
도로변 가로수로 심어진 배롱나무가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계곡을 타고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사이로 용이 승천을 하고,
그 용을 쫒아가는 벌거숭이 아이들의 시클 벅적하는 소리,
옷 버린다고 나무라는 엄마목소리가 들리는 농촌마을이 있었다.
열두시가 조금 지나서 산행버스는 나로 우주센터주차장에 도착했고, 얄밉게도 고흥의 하늘은 맑게 개어있었다.
나로 우주센터(羅老 宇宙Center)는
전남도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하반마을(外나로도)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우주 센터로,
인공위성 로켓 및 각종 우주 발사체 발사장으로, 2009년 6월 11일에 준공식을 가졌으며,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13번째 우주기지 보유국이 됐다.
발사대, 추진 기관시험棟, 조립시험시설, 추적레이더棟, 광학장비棟, 발사통제棟, 발전소동, 우주과학관,
제주추적所, 기상관측소 등이 있지만, 보안통제지역으로 출입이 불가했고,
일반인 관람이 가능한 우주과학관을 돌아보았다.
軍馬나 관아에서 쓰이는 말들을 나라에 바치는 섬이라는 뜻에서 나라 섬으로 불렸으나
일제강점기에 우리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음을 따서 나로도(羅老島)로 개칭되었다.
이에 따라 육지와 가까운 나로도는 내나로도, 내나로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건너간 섬은 外나로도라 불렀지만,
지금은 나로1대교, 2대교로 연도, 연륙되어 버스로 통행이 가능해졌으며,
섬 전체가 多島海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다.
우주과학관 앞은 조경과 로켓조형물이 실제크기로 설치되어 있었고, 정원 끝이 바다로 연결되어있었다.
해변에는 조약돌이 군집을 이룬 곳도 있었고, 모래가 백사장으로 널려있기도 했다.
우리는 해변 가장자리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을 먹었지만,
산행을 책임지고 있는 산행이사님의 마음고생이 큰 날이었다.
오후일정은 산행이 취소된 만큼,
인근에 있는 소록도를 구경하고 귀가하겠다는 산행이사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성회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해수욕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오늘 아니면 언제 물에 들어 갈수가 있나?”
물이차서 수영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설명은 약발이 없었다.
“아니 매씨들이 미스코리아나 되는 줄 알아요, 아무도 몸매 봐줄 사람 없어요.”라고 농담도 했지만
세월을 넘어선 매씨들의 불같은 청춘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산행버스는 나로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장마철이고, 오전에 비가 온 탓인지, 해수욕장은 한산했고, 민박집이나 주차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로도해수욕장에는 250∼300년 된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어 자연경관이 아름다웠다.
수영시간은 오후4시까지로 설정됐고,
아내가 현임 대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는 회원과 시간에 맞춰 해수욕장 뒷산을 산행하고 왔다.
하산酒는 오리 탕이었는데, 모두들 맛이 일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보성군 문덕면 주암댐상류에 있는,
이 고장 출신인 서재필 박사의 유물전시관과 생가 등을 복원한 서재필선생기념공원에 들렸다.
할 매
-팡팡-
허리 굽은 할 매가 혼자서 걸어간다.
“ㄱ" 기역자
굽은 허리를 하고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간다.
손수레를 잡고 있는 두 팔이
뒤로 처져서
언 듯 엎어지려는
“ㅊ" 치읓자처럼 보인다.
할 매 허리 굽은 것은
순전히 할 애비 책임이다
할 매 혼자 두고
세상 떠난 잘못 때문이다
“할 매!”
그냥 걷기도 힘 버거운데
삶에 고달픈 짐마저 끌고 가시나요.
오늘, 못가시거든
짐은 놔두고 가소서
뒤에 오는 젊은이 있거든
가져 달라하게요
해는 중천에 떠있어
하루가 지루하다
할 일없는 사람들 바뿐 척하고
모두들 차를 타고 스쳐지나간다
저 할 매 돌아가시면
굽은 허리
누가 펴서 염해줄까?
(2009년 8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