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국(我的祖國)>, 6·25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하다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의 대표적인 애국가요 <나의 조국(我的祖國)>을 아시는지요?
이 노래는 ’제2의 국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데요,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검색이 됩니다.
<나의 조국>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탄생했습니다.
6 25 전쟁을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지요.
6월은 6·25 전쟁이 일어난 날이 들어있는 달이고, 올해는 6·25 전쟁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중국은 6·25 전쟁 때 대규모의 병력을 한반도에 보냈습니다.
이들의 정식 이름은 ‘중국인민지원군’인데 우리는 보통 ‘중공군’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1950년 10월 25일에 압록강을 건너 참전했는데 북한에서는 이 날을 ‘중국인민지원군 참전 기념일’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올해는 70년이 되는 해이니까 기념식의 규모가 클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6·25 전쟁 때 중공군이 참전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6·25를 맞이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가운데 하나이지요.
저는 6·25 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처음에는 피난을 가지 못했습니다.
서울이 너무 빨리 함락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우리 정부가 한강다리를 폭파해서 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인민군 치하의 서울 생활 3개월, 참 힘이 들었습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서울을 그들에게 내 준 1·4후 때는 서둘러 아버지와 둘이서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일곱이었는데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가족이 함께 떠났다가 얼어죽거나 굶어죽기 쉬운데, 집안은 이어야 한다며 나만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고생,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공군을 참 많이 원망했지요.
자, 다시 <나의 조국> 이야기입니다.
강원도 김화에 가면 오성산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1952년 10월, 중공군은 오성산의 고개 가운데 하나인 상감령(上甘嶺)에서 미군과 국군을 상대로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중공군은 상감령에 지하 토굴을 파놓고 미국의 폭격을 견디며 밤에는 튀어나와 야습전(夜襲戰)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들은 이 터널을 ‘지하 만리장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중국은 이 싸움을 ‘상감령 전역(戰役)’이라고 부르는데, ‘전역’은 전투와 전쟁 중간 정도의 싸움을 두고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싸움을 ‘저격능선 전투’라고 부릅니다.
중국은 지금도 이 싸움을 미국에 대대적으로 승전한 전역이라며 크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삼감령전역을 기념하는 기념관도 짓고 영화도 제작했습니다.
영화는 1956년에 제작되었는데 제목이 <상감령(上甘嶺)>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곡이 바로 <나의 조국>인데, 영화에서는 토굴의 병사들 틈에서 미모의 여가수 곽란영(郭蘭英)이 불렀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丽媛) 여사도 군복차림으로 이 노래를 부른 일이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조국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상감령> 영화와 <나의 조국>은 지금도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상감령’이라는 말이 불굴의 인내, 저항정신 용기, 애국심 같은 것을 상징하는 말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맞서야 할 일이 생길 때는 이 영화와 이 노래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고 하는데 하는데, 작년에,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심해지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내년에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면 그들을 이끌고 상감령으로 진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발원지 문제를 놓고 험한 말이 오가고 있는 지금은 더 그럴 것입니다.
<나의 조국>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一条大河波浪宽, 风吹稻花香两岸, 我家就在岸上住, 听惯了艄公的号子, 看惯了船上的白帆.
这是美丽的祖国, 是我生长的地方, 在这片辽阔的土地上, 到处都有明媚的风光.
姑娘好像花儿一样, 小伙儿心胸多宽广, 为了开辟新天地, 唤醒了沉睡的高山, 让那河流改变了模样.
这是英雄的祖国, 是我生长的地方, 在这片古老的土地上, 到处都有青春的力量.
好山好水好地方, 条条大路都宽畅. 朋友来了有好酒, 若是那豺狼来了, 迎接它的有猎枪.
这是强大的祖国, 是我生长的地方, 在这片温暖的土地上, 到处都有平和的阳光
한 줄기 큰 강에 큰 파도가 이네. 바람에 벼꽃 향기 양쪽 언덕으로 퍼지네
우리 집은 강가에 있네. 언제나 뱃사람의 노래 소리 들리고 배의 흰돛 언제나 보네.
참으로 아름다운 조국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이 넓은 땅 어다든지 아름다운 경치라네.
아가씨들은 꽃같고 총각들은 마음이 얼마나 넓은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잠든 높은 산을 깨우고 강의 모습을 바꾸었다네.
참으로 영웅의 조국 내가 나고 자란 곳 오래된 토지 어디든지 청춘의 힘이 넘치네
산 좋고 물 좋은 좋은 지방 큰 길은 모두 넓직하게 뚤려 있고 친구가 오면 좋은 술을 대접하네 만일 승냥이나 이리가 오면 엽총으로 맞이해야지
참으로 강대한 조국 내가 나고 자란 곳 이 따뜻한 땅 어디든지 평화의 햇살 비치네
이 가사에서 승냥이나 이리“는 미국을 말합니다.
2011년에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국빈방문 했을 때 중국 가수가 백악관 만찬에서 이 노래를 불러 외교상의 결례 논란이 일었던 일이 있습니다.
중국, 그 이상을 이뤘나?
6·25와 중국에 대해 글을 쓸 일이 있어서 인터넷 이곳저곳을 검색하다가 오래간만에 <나의 조국>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아, 이 노래에는 중국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담겨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사를 잘 음미해보면 제 생각이 틀렸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문득 ‘이 노래가 나온 것은 64년 전의 일인데 중국은 그 이상을 이루었는가? 아니라면, 이루어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쉽게 ‘그렇다!’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국의 국력이 놀랍게 강성해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 때문에 조금 손상되었다고는 하지만, G2 국가로서 중국의 위상은 이제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적인 나라는 군사력, 경제력,, 이런 외형적인 것들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신의, 도덕, 이런 것들이 반드시 들어가야 <나의 조국>이 묘사하고 있는 모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국가를 이루는 데는 신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차원이 가장 높은 가치이고 살기 좋은 나라로 향해 가는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문제에 대한 중국의 행태가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사실도 ”그렇다‘는 답을 가로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나의 조국>을 검색하면 가사의 끝부분이 “到处都有革命的阳光(어디든지 혁명의 밝은 빛 비치네)으로 나옵니다.
이번에 영화 <상감령>을 보다가 영화에는, 그러니까 원래의 가사에는 ”到处都有平和的阳光“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 ‘平和’가 ‘革命’으로 바뀌었는지, 왜 바꿨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것이 “到处都有信愛的阳光(어디든지 믿음과 사랑의 밝은 빛 비치네)‘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허욕이기만 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롬 4: 18)을 생각하며, 중국 사역의 자세를 <중주 가족> 여러분과 함께 다시 한 번 가다듬고 싶어졌습니다.
코로나 시태 이후 중국사역의 방략이 현안 문제가 되어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목회전반이나 통일선교 분야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코로나 이후 중국사역에 참고가 되는 단편적인 글들을 실었는데, 가닥이 잡히는대로 특집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올해의 상반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기습적인 강습을 받아 휘청이는 가운데 보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중주>가 흔들림없이 정해진 때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이 담긴 기도 때문이었음을 고백하며. 머리를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謝謝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