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 와서 단체(그래야 5명이였지만)로 답사를 가는것은 처음이였다.
원래 스케즐은 진천 종박물관 > 법천사지 > 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였는데 종박물관에 9시경 도착을 했는데
10시부터 개관을 한다고 해서 근처에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이 유명하다고 하여 그곳에 먼저 가기로 했다.
박가범전(대웅전)
주불당 이름이 박가범전이라는 현판을 사용하는 절은 처음봤다.
범어(梵語) 바가바(bhagavat.婆伽婆)는 부처의 지위를 증득한 이를 칭하는 호칭 중 하나로 박가범(薄伽梵), 박아범(薄阿梵), 바가범(婆伽梵), 바가반(婆伽伴), 박가발제(薄伽跋帝), 바아부저, 바아부제로 음역하며, 세존(世尊), 중우(衆祐), 파정지(破淨地)로 번역한다.
그러므로 "박가범전"이라는 전각명은 여래의 열 가지 호칭[如來十號] 가운데 하나인 세존이 계시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내문답(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홍완의님글에서 가져옴
박가범전안으로 들어가면 세분의 부처님이 계시는데 가운데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사진으로 봤을때 왼쪽은 보현보살님 오른쪽은 문수보살님이시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면 보통 대웅전이라고 현판을 거는데 박가범전이라는 현판이 독특하다.
닫집
불단이나 어좌 위에 목조건물의 처마구조물처럼 만든 조형물을 말하는데 이곳의 닫집은 굉장히 화려해 보였다.
부처를 중앙에 모셨던 고대 불전에서는 금당이 부처님 집이었으므로 닫집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예불의례가 금당 바깥을 도는 요잡(繞匝)중심이었다가 차츰 금당 안으로 들어가 절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마루가 깔리고 불단이 뒤로 밀리면서 금당 안에 부처님의 집을 별도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닫집으로 정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닫집은 불국정토의 궁전을 가리키는 적멸궁, 칠보궁, 만월궁 등을 상징하는데, 이들은 각각 석가, 아미타, 약사를 모시는 궁전이다.
닫집은 모양에 따라 보궁형(寶宮形), 운궁형(雲宮形), 보개형(寶蓋形)이 있다. 보궁형은 공포를 짜 올려 건물처럼 만든 화려한 닫집으로 가장 많다. 공포 아래에는 짧은 기둥이 달려 있는데 이를 헛기둥[虛柱]이라고 한다. 운궁형은 앞쪽에 장식판재인 염우판(廉遇板)이나 적첩판(赤貼板)만을 건너지르고 안쪽에 구름, 용, 봉, 비천 등으로 장식한 천장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개심사 대웅전, 봉선사 금당에서 볼 수 있다. 보개형은 천장 일부를 감실처럼 속으로 밀어 넣은 형태인데 고대 불전에서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무위사 극락전과 봉정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 보개형은 닫집이라고 하기보다는 보개천장으로 불리며 천장의 한 종류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미와 역할은 닫집과 같다. 인정전에서는 닫집과 보개천장이 동시에 설치된 사례도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따라서 용화사의 닫집은 보궁형으로 보면 될듯 싶다.
용화사에사 가장 유명한 석조여래입상
석조란 돌로만든 여래란 부처님 입상은 서있다라는 뜻이다.
불상을 처음본순간 고려시대때 만들어졌으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불상보다 더 정교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교하지 못하고
크기만 엄청커서,
내 개인적으로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후 고려가 세워지고 고려가 처음 개국을 하였을때 왕권이 약하여 왕권강화를 위하여
호족세력을 척결하려고 한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일것이다.
따라서 이 석조여래입상이 산속이 아닌 도심에 가까운곳에 세워졌고 하여 태조왕건을 뜻하는것이 아닐까?
왕의 위업을 나타내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 김유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상이라 하여 송덕불상, 또는 만덕불상이라
불리운다고도 한다.
적병이 쳐들어왔다가 이 불상을 보고 거구의 장군이 서 있는것으로 알고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도한다.
이것이 석조여래입상 안내판에 써져 있는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도 조금은 설득력 있어보이지 않나?
부처님 이마에 구슬같은 것이 박혀 있는데 불교에서는 깨달으면 빛이 난다. 그 빛은 이마에서 광선이 나온다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마에 진짜 보석을 박았는데 현재에는 진짜 보석을 박으면 도난의 위험 등등하여 진짜는 아니라고 하고
이름은 백호라고 한다.
백호란 부처님의 형상을 나타낸 32상 80종호 중 하나, 즉 부처님을 나타낼때 작게는 32가지, 세세하게는 80가지가 있다는 특징 중의 하나로 양쪽 눈썹 사이에 난 흰 털을 말합니다. 한가닥의 하얀 털을 오른쪽으로 둥글게 소라고동 모양으로 말려있습니다. 말려있는 맑고 환희 빛나는 흰털을 펼치면 한길하고도 5자라 한다. 즉 3.9~4.5m가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백호는 부처님의 광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방세계를 비추며 복덕을 이룬 부처에게만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죠.
백호의 표현은 이마에서 내려온 3지(指), 눈썹사이 중간 보다 약간 위에 표현합니다. 인도 마투라 박물관에 소장된 2세기 중기의 불상은 이마에서 3분의 1 지점에 정확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마의 중심에 묘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인도에서는 이마에 붉은색, 흰색, 노란색 등의 물감으로 점을 그리거나 이마에 구슬을 붙이는데 이를 티카라 합니다. 이는 BC.1~AD.1세기 때의 조각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불상이 조성되면서 부처의 이마에 자비광명을 나타내는 백호로 상징화 되었다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출처 불교미술 알아보기)
모양을 보는것이 미술사학적으로 제일 기초라고 한다.
다른 부처님과 형태가 다른데 이런 형태는 고려전기에만 나온다고 한다. 갓은 고려전기에 했는지 안했는지는 정확이 모르는데
비슷한 형태가 미륵사에 가면 비슷한것이 있다고 한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용미리 석불입상도 갓을 쓰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용미리 석불입상 사진. 이것은 내가 직접 답사하여 찍은것이고 더 자세한것을 알고 싶으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람
시인 박선영과 같이 걷는 길 | 소를 찾아가자 보광사 및 공양왕릉, 최영장군묘, 용미리석불입상 - Daum 카페
그리고 석조여래입상 옆에 입상이 (아주 낡아 보이는듯한?) 하나 더 있는데 그것도 석조여래입상과 같은시기에
제작이 되었을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근처 논산에 가면 개태사라는 절이 있는데 태조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쫓아 개태사에 자리한 황산에 진을 치자 신검이 항복하여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황산에서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제압하게 되었다하여 만세 태평의 시대를 연다는 뜻으로 세운 사찰이 개태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불상이 개태사 석가여래삼존입상이라고 한다.
참고사진
개태사 석가여래 삼존입상
보통 불상을 크게 웅장하게 만든곳은 주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만들고 부처님이긴 하지만 사람을 압도하게 만들었다고 하고 그 시대의 최고 지도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신라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배세력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의도로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사상적으로 이제는 우리모두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만든 의미였다고 한다.
만약에 이런 불상들이 각국 길목마다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즉 나는 고구려인이야, 나는 신라인이야
나는 백제인이야 이렇게 생각했을 사람들을 부처님을 통하여 고려인의 불자로 만드는 역할 또한 했을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 하나는 왕이 곧 부처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을 통하여 왕을 떠올리게 되고
왕도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자비로 백성을 다스려야 된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요 길목마다 부처님을 모셨고 조선개국전까지(즉 고려말)까지 그랬다고 한다.
조선 개국하고 나서도 이런 것들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왜 고려시대에 제작되었음에도 삼국시대보다 예술성이 떨어졌을까? 라는 질문에 정교한것 보다는 웅장한것이 더 중요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고려시대 전기때 나온 불상들은 정교함보다 웅장함을 드러내는것들이 대부분이였다고 한다.
단, 예외가 딱 하나 있는데 신라계열의 불상이 그 뒤에 만들어지는데 법천사지와 강릉 심복사지, 월정사 등 에 있는 불상은
신라의 영향을 받아서 예술적으로도 훌륭하다고 한다.(장명사 자엄스님의 해설중에서)
이름은 없지만 이불상 또한 고려초기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한다.
여래전
여래란 부처님을 뜻하므로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이다.
보통의 절에서는 주불전에 부처님을 모시며 산신각을 모신다거나 하는데 이곳에는 산신각이 없는 작은 부처님을 모시는
여래전이 있는것이 또한 특색이기도 하다.
용화사 위치안내
지장전에도 잠깐 들러보고 싶었는데 다음 일정이 있어서 여기서 답사를 마치고...종박물관으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