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달란트의 이야기이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
우리가 흔히...달란트를 영어의 "talent" 로 오인하여..."재능"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러한 설교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달란트는 당시의 "화폐단위" 이지 재능이 아니다..
달란트가 "재능이나 은사"가 아닌 이유는...한 달란트를 받은 무익한 종이...
나중에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기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데...
이는 분명하게 "구원 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성경의 표현이다.
그렇다면...재능과 은사를 발휘하지 못하면 구원을 잃게 되는가?
재능과 은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신자들이 모두 슬피 울며 지옥간다고 예수께서 말씀하고 있는가?
설사 받은 은사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가?...그렇지 않다.
본문 서두에 언급된..."각각 그 재능대로.."라는 표현때문에...더욱 더 오해하게 되었는데...
사실은...원어 자체의 의미는 재능이 아니라 "능력"으로 해석되어야 옳다.
개개인의 재능이 아니라..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능력과 은혜의 분량"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원은...은사활용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기 때문이다.
달란트의 비유는..."천국을 소개하는 비유"들 속에 한 비유로 등장한다.
달란트의 비유를 중심으로...바로 전 비유가... "열 처녀의 비유"이고...
달란트의 비유...다음 비유가... "양과 염소의 비유"인데...모두 "천국"에 관한 비유이다.
그러므로...세가지 비유 모두 동일하게 일관된 주제인 "천국"을 예수님이 비유하신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는..."어떤 처녀들이 천국백성 인가?" 이고...
양과 염소의 비유도..."누가 천국백성 인가?"이다.
연결된 예수님의 비유들은 "한 페케지"로써...같은 주제의 비유들이 나열된 것이지...
천국비유를 말하다가 갑자기...재능이나 은사와 같은 "다른 비유"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열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모두는 같은 주제인 "천국"의 비유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비유는...결국 "천국백성"과 "멸망으로 가는 백성"을 대조하고 있다.
열처녀의 비유는 항상 깨어있는 신앙을 설명하는 준비된 신앙을...
달란트의 비유에 와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가는 모습으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그리고 있는데...
다시 주인이 돌아왔을 때...그들을 만나서 그들을 판단함으로...
"예수의 재림을 통한 구원과 심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은...우리의 재능과 은사가 아닌...
"장사"의 유무로 표현된..."천국백성의 삶"의 유무로 갈리게 된다.
그러므로...예수의 부활과 승천...그리고 재림...구원...멸망...
이러한 단어들이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비유가 달란트의 비유이다.
결국... 받은 달란트로 "장사"를 했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여 재림의 날을 사모하며 살아가는..."천국백성의 삶"을 말한 것이요...
한 달란트를 묻어 버린 자는...게으름 피우다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더 근본적인 문제인...
주인(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배척과 두려움" 때문에...
고의로 주인에게 불순종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리고...
자기 멋대로의 삶을 산 불신자의 대표가 된 셈이다.
당연히 밖으로 쫓겨나 이를 갊이 마땅한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달란트의 비유를 "충성과 게으름"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믿음과 불신"이라고 해야.. 전후 문맥과 연결되는 해석이 된다.
그 증거로...누가복음 19;14절이 이 부분의 병행구절인데..살펴보자...
편의상 말씀을 요약해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날 때...
종 열명을 불러서 은 열 므나를 주고서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장사할 것을 명령하였다는데...
14절에...“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
여기서 분명히 주인에 대한 무서운 음모가 시작이되고...
이 비유의 마지막 절을 보면...주인이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종에게 이렇게 명한다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를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
결국..."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는 이 종은...
주인에게 므나를 분배받을 때부터...주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주인을 왕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분명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이 “악하고 게으른 종들”은 결국 단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왕(그리스도)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다시 달란트의 비유로 돌아와서 적용해 보면...
한 달란트를 받은 게으른 종 역시...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보고 있고...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그런 신뢰할 수 없는 대상으로 여겼으며...
결국 그 결과로...자신을 해할 수 있는 "겁나고 두려운자"로 주인을 오해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는 오류를 범한 것인데...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철저한 "불신"이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한 만큼 보상하고 안 한 만큼 벌 주시는 "인과응보"의 하나님인가?
더 잘 한 놈에게 더 많이주고 더 못 한 놈의 것은 다 빼앗아 버리는...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원리가 적용되는 그런 하나님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우리가 죄인이 었을 때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고...
아브라함에게 준 복 보다 더 큰... 아니 비교도 할 수 없는...
독생자를 죽게하여 우리를 살리려 한 그런 분이다.
만약에 우리의 행위가 미비하다는 이유로...구원이 취소될 것이라 누군가 말한다면...
그는...나의 죄를 위해 달리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끌어 내릴수 있는 최초의 사람이 될 것이다..^^
너무나 당연히...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자라면...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이다.
그러나...만약에 등 뒤에서 채찍을 들고 우리의 행위를 촉구하는 하나님으로 오해 한다면...
우리는 달란트를 땅에 묻고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두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천국은 한마디로... "관계"이다.
주인이신 하나님과 종들인 우리의 관계...
천국은...선한 주인이... 믿음직한 종들을 위해 마련하신 "천국 잔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국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셋째 종은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린 패역한 종이다.
그는 비록 주인의 종으로서 주인의 집에서 살았지만...
끝내 그는 주인을 악하다 평가하고 버림받게 된 자식의 대표이다.
이러한 셋째 종은...당시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을 말씀하셨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에 셋째 종은 누구인가?
앞서 밝혔듯이...달란트는 재능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재능이라면...많은 재능을 남길수록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달란트를 얼마나 남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말씀에서도...첫째 종과 둘째 종은 서로 다른 양의 달란트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동일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이루었고...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루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선한 행실과 믿음으로...
그 소명과 직무에 맞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달란트가...개인의 재능이라면...개인에 따른 "일의 성과나 결과"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천국은 성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얼마나...“하나님께 선하고 믿음직한 사람인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가끔은...그 놈의 "성과"나 "열매(결과)"에 도취되어...
성도로써의 "선함"과 "믿음"을 저버리는 일들을 교회에서 종종 보는데...
교회는 성경을 바로 가르침으로 "성도를 성도되게" 해야 하며...
"천국을 천국되게"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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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의 비유는 개인의 "재능"을 살리라는 말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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