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웅이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길 빌어 쑥 한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우리나라 건국신화가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건국신화에도 쑥과 마늘 같은(당시의 마늘은 지금의 마늘과 다르다) 나물이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나물과 뗄 수 없는 민족이다.
조선 후기 한글 어휘집인 《명물기략》에는 채소를 라물로 기록하면서 풀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것 중 비단과 같은 물건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나물의 사전적 의미는 풀이나 어린 나뭇잎, 뿌리ㆍ줄기 및 채소로 만든 반찬이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야생의 풀이나 어린 나뭇잎 따위를 총칭하고 있다. 따라서 나물은 채소를 포함하는 식용 가능한 식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나물은 우리나라 어느 가정에서나 먹거리 재료 중 큰 비중을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황식품으로도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에는 쌀 수탈정책으로 넉넉지 못한 일반 서민들이 이용한 산야초가 300여종에 달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9살까지 33가지 나물이름을 익혔고 결혼을 앞둔 여자의 신부 수업 중 하나가 나물종류를 알고 요리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었다.
‘99가지나물 타령을 부를 줄 알면 3년 가뭄을 이길 수 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19세기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 나오는 나물 종류만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1월의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신하여 오신채를 부러하랴.’ 2월령의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로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3월령의 ‘울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 심고, 담 근처에 동아 심어 가자하여 올려보세. 무 · 배추 · 아욱 · 상추 · 고추 · 가지 · 파 · 마늘을 색색이 분별하여 빈 땅 없이 심어놓고ㆍㆍㆍㆍㆍㆍ. 삽주 · 두릅 · 고사리며 고비 · 도랏 · 어아리를 일분은 엮어 달고 이분은 무쳐 먹세.’
산과 들에 나오는 나물을 이렇게 다양하게 이용하고 섭취한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물을 다양하게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보여 지며 상품화된 농산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후기이다.
물론 외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채소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나물을 많이 섭취하는 나라이다.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중국 다음으로 많고 일본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경제수준의 향상과 식생활의 변화로 고급화되고 다양화 되면서 식물성 식품의 소비는 줄어들고 동물성 식품의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식물성과 동물성 식품 소비 구성비가 9:1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7:3으로 변화되었다.
나물은 영양적으로 보더라도 다양한 비타민과 섬유소 그리고 기능성 성분도 여러 종류 함유하고 있다.
나물이 사라진 우리 식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인류를 먹여 살린 것은 7000여종의 생물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30여종의 작물이 90%의 칼로리를 공급하고 있다. 쌀ㆍ밀ㆍ옥수수가 이 칼로리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과 균형식단 측면 그리고 안정적 영양공급 측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족들의 식재료 공급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산과 들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윤두서가 그린 조선 중기의 ‘채애도’는 먹거리를 조달하기 위해 쑥을 캐는 여인들의 고달픈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여인은 허리를 굽혀 나물을 뜯고 또 다른 여인은 아픈 허리를 피면서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고 있다.
머리에 두른 수건과 허리춤 까지 걷어 올린 피마 폭을 보면 필자의 어린 시절 산나물을 채취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우리 농촌에서는 ‘산나물서리’도 있었다. 가난한 집 아낙네가 산나물을 뜯어 부잣집 마당에 풀어 놓으면 안주인이 보고 밥상을 대접하거나 쌀이나 보리를 내어 주면 가지고 돌아간다.
중국에서는 네발 달린 것이면 책상, 하늘을 나는 것은 비행기만 빼놓고 무엇이든 요리할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한국 사람은 풀이름에 ‘나물’자만 붙이면 못 먹는 것이 없다.
서양에서는 독초로 분류되어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사리도 우리나라에서는 나물중의 으뜸이 되고 콩이 시루 속으로 들어가면 콩나물이 된다. 물론 콩잎까지도 먹는다. 물로 씻고 우려내고 데치고 무치고 지지고 볶는 요리방법도 다양하다. ‘국어대사전’에서 ‘나물’자가 붙은 낱말을 검색해 보면 무려 300여종 가까이 나온다. 그 중에서 못 먹는 것도 섞여 있지만 가히 우리를 ‘나물민족’이라고 불러도 시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물론 먹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대적 아픔도 한 몫 했겠지만 말이다.
어느 지방의 나물타령을 예를 들어보자.
한푼 두푼 돈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꾸부렁 활나물/ 동동 말아 고비나물/ 줄까말까 달래나물/ 칭칭 감아 감돌레/ 집어 뜯어 꽃다지/ 쑥쑥 뽑아 나생이/ 사흘 굶어 말랭이/ 안주나보게 도라지/ 시집살이 씀바귀/ 입 맞추어 쪽나물/ 잔칫집에 취나물…….
나물 종류만도 36가지나 나오는 이 타령을 들으면 익살스러운 가사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나물을 채취하면서 느꼈을 노동의 어려움을 잠시라도 잊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하면 씁쓸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정월보름날에는 말려두었던 나물들을 꺼내어 깨끗이 씻은 다음 기름에 볶아내고 또 일부는 물이나 고깃국 물을 조금 넣어 푹 끓여서 부드럽게 하여 먹었는데 이를 ‘진채식’이라 하였는데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다양한 서양 채소류가 등장하면서 전통적으로 우리가 이용하여 오던 산나물, 들나물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일부 품목이 비닐하우스 또는 인공적 집단재배를 통하여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향과 식감이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고추장으로 버무린 취나물과 홑잎나물 무침, 고비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 맛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원추리나물, 벼룩나물, 다래순나물, 병풍나물, 삽주나물, 참죽순나물, 비름나물............
나물아 ! 네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