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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낙동강 강줄기를 따라 달린 자전거 여행
-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국토 종단 여행기 -
1. 출발의 동기와 준비
언젠가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보고 싶었다. 걸어서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먼저 자전거로 국토종단을 시도하게 되었다. 교통편과 동반자와의의 만남 등을 고려하다보니 시발점인 인천 서해갑문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잠실철교 아래(한강 북쪽)에서 시작, 부산 을숙도의 낙동강하구둑까지를 목표로 정했다.
뜻을 같이 하는 동료나 친구들과 동행하려 동반자를 찾았으나 오직 한 사람, 평생지기 한 친구만 동행에 응해 주었다. 용기를 얻어 6월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국토종주한 사람을 물색했는데 만나지 못하고 작년에 동료의 아들이 다녀왔는데 고생 많았다는 간단한 말만 들었다. 그리하여, 김훈의 “자전거 여행” 1, 2 권을 모두 읽었다. 7월에는 인터넷에서 자전거 국토종주 길과 자전거 여행기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장시간의 라이딩을 위해 무더운 여름이지만 출, 퇴근시 되도록 자전거를 이용하며 근력을 길렀다. 그 다음, 체력 감당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6월말, 용인시 구성역에서 출발, 여의도를 경유하여 안양천으로 돌아오는 약 80 km에 도전했다. 또, 이틀 연속 자전거를 탈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청평에서부터 춘천 의암호까지, 왕복 92 km 달린 후, 다음날 수원 화서역에서 화성시 용주사, 독산성, 동탄, 기흥, 경희대(수원), 원천호수를 경유하여 화서역으로 돌아오는 60여 km를 달려보았다.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틀째 저녁에는 다리에 힘이 더 솟는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 여행에 평생지기로 살아온 친구가 동행해, 더욱 우의를 다지게 될 것이고, 스토리가 있는 재미있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무더위와 장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갖지 않도록 해주었다.
양평 한남강변 둑길. 가장 좋았던 자전거길. 강가 주변엔 전원주택, 또는 별장 많음
2. 여정
8월 5일(출발 첫날). 서울에서 여주로 약 80 km 주행
수원 화서역에서 자전거를 전철에 싣고 수원역에서 갈아타, 잠실역에서 하차한 후, 잠실철교 아래에서 동행할 친구를 만났다. 오전 11시에 출발. 팔당대교 직전 식당에서 열무국수로 점심. 덕소, 팔당, 양수리를 벗어나 이포보와 여주보를 지나 여주시 모텔에서 숙박.
8월 6일(이틀째). 남한강길로 약 100 km 주행
강천보, 비내섬지나 한천교 쌍다리 밑에서 빵과 복숭아로 중식, 탄금대지나 수안보 도착. 석식 및 모텔에서 2박
8월 7일(사흘째). 새재자전거길 약 90 km
이화령과 문경새재 넘어 문경 영강교 옆 식당에서 냉면으로 점심. 상풍교와 상주보를 지나 낙동면 물량리에서 민박
8월 8일(나흘째). 낙동강자전거길 약 90 km
낙단보와 구미보를 지나 숭선대교 옆 식당에서 영양탕. 칠곡보, 강정고령보, 달성보에서 지방도로 이용, 경북 청덕면 양진리 모텔에서 석식과 숙박
8월 9일(닷새째). 낙동강자전거길 약 140 km. 총 약 500 km 주행
적포교에서 박진교, 박진고개 넘어 함안보에서 햇반과 라면, 삼랑진교, 양산, 구포를 지나 낙동강하구둑(을숙도)인증센터 도착. 해운대에서 동창 만나 삼겹살로 소주. 친구집에서 숙박
8월 10일(엿새째). 부산 동백공원 산책 후 수원으로 귀가
동백공원 누리마루, APEC 하우스, 해운대, 달맞이길 산책 후 시외버스로 수원에 도착
2. 아름다운 산하
한강변에는 곳곳에 공원, 체육시설, 화장실 등, 정비를 잘 해놓았다. 한강의 수량이 많아 보기 좋았고, 강변로를 정비하여 자전거길과 공원 등을 조성해 놓아 경관이 아름다웠다.
강변이나 강둑, 고수부지에 만든 체육공원이나 생태공원 등, 많은 공원이 곳곳에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과 정자, 쉼터와 화장실, 그늘과 벤치 등을 곳곳에 만들어 놓아 선진국 수준이다. 선진국 북유럽도 화장실은 거의가 600~800 원 정도의 유료임을 생각하면 각 지방자치에서 신경을 많이 썼구나 싶다.
팔당역을 지나면 부용터널과 팔당터널 등 약 8 개 정도의 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어둡긴 하지만 그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느 가족은 그 좁은 터널에서 자리를 깔고 피서하고 있었다. 가장 시원한 피서지가 터널이었고 가다 잠시 쉬기에 적절한 곳이 다리 밑이었다. 이화령 내리막길은 이번 주행 중 너무 시원하여 몸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이른 아침이었고 숲 그늘이 있어서 그렇게 시원했던 것 같다.
양평군립미술관을 지나 남쪽 강변으로 조금 나가니 공원이 나오는데 조경이 잘 되었다. 둑에 만든 자전거 전용도로는 상행과 하행의 구분을 선명하게 도색하여 산뜻했다. 가로수가 잘 자라 그늘도 많고, 경관도 수려하여 사진이 가장 잘 나온 길이었다.
수안보 1시간 전에 나타난 수주팔봉은 바위가 일품이었고, 그 앞에 흐르는 개천 모래톱은 훌륭한 피서지였다.
문경새재를 넘어 낙동강변의 문경 중앙교를 지나니 고수부지에 만든 공원과 자전거길이 산뜻하였다, 조금 더 달리니 굵은 통나무 기둥의 아담한 정자도 있어 휴식하기 좋았다. 태봉숲 쉼터의 정자와 송림은 일품이었다. 태봉숲 정자에는 자전거 거치대조차 신경 써서 만들었는지 특이하게도 앞바퀴가 거치대 아래로 내려가 걸치도록 하여 편리했다.
충주 탄금대 가기 전, 탄금대교와 우륵대교가 잘 보이는 어느 정자 주변은 물과 산, 두 교량과 넓은 호반이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났다. 우륵대교 하얀 난간의 12줄은 가야금을 상징한다는데 공중에 떠 있어 하늘로 가는 길 같은 환상까지 갖게 했다.
구미보
상주 경천대는 생소한 지명이어서, 무식하게도 어느 대학 이름인가 했더니 낙동강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로서 옥주봉(163.5 m)을 중심으로 한 관광지였다. 낙동강 줄기 중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넓은 주차장, 인공폭포와 놀이동산, 야영장, 수영장, 조각공원, 전망대 등이 있었다. 기암절벽과 강물, 소나무 숲이 절경이었다. 이 공원 안으로 자전거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늑한 정자가 나오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내리막길을 가게 되는데 그늘이라 시원하고 나무 사이로 낙동강 줄기가 잘 보였다,
삼랑진을 지나 낙동강 하구까지는 거의가 강변길이었다. 일부 구간은 나무 데크 길인데 대부분 강물 위로 나있다. 구포부터 낙동강 하구까지는 대부분 직선 길이었고 양쪽에 가로수가 있어 그늘이 시원하고 경관 또한 아름다웠다. 자전거길 옆으로 산책자들을 위한 인도가 함께 있어 세 가닥 길이라 넓게 운용할 수 있었다.
삼랑진 낙동강변 능가사
몇 년 전 겨울, 을숙도에 왔었는데 그때는 활엽수들이 앙상하여 썰렁한 분위기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름철이라 활엽수들이 우거져 신록이 푸르렀고, 해질 무렵이라 분위기가 아늑했다. 을숙도는 문화회관과 소공연장, 공원과 광장, 각종 스포츠 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부산의 관광명소가 되었고, 특히 낙동강하구둑 자전거인증센터가 있어 자전거 라이더들에게는 국토종단의 시발점이거나 종착점으로서의 그 의의가 크다. 10 분만 걸어가면 지하철 하단역이 있어서 부산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어 대중교통도 편리했다.
인증센터 주변에 라이더 서너 명이 보였지만 특이하게도 모두 싱글로 온 사람들이었다. 곁에 있던 라이더는 40세 전후의 남자였는데 키가 크고 준수한 멋진 남자였다. 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정성스레 여러 장을 촬영해 주었다.
조금 일찍 을숙도에 도착했다면 한나절은 족히 돌아보아야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동창들이 기다리고 있어 서둘러 해운대로 가야 했다.
4대강을 개발하면서 보를 여러 개 만들었기 때문인지 4대강에는 강물이 풍성했고, 강물이 많아서인지 보트, 수상스키, 수상오토바이 등의 레저 시설도 많았다. 이번 자전거 여행 중 만난 라이더와 국토종단 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이라며 치하했다. 그렇지만 많은 예산이 들어갔고, 물의 녹조현상과 수질의 저하, 생태계의 저해 등으로 환경 단체와 환경 학자들의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풍성한 물과 숲으로 조국 산하의 경치가 아름다워진 것은 사실이다. 강물 따라, 공원과 자전거길이 잘 만들어져 있고, 주변에는 숲과 꽃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여름철이라 배롱나무꽃, 능소화, 달맞이꽃 등, 아름다운 꽃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했다.
여행 종료 후, 가장 클라이 막스가 된 한 장면은 어떤 것이냐고 어느 친구가 물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내세울 만큼 절정의 쾌감을 주는 장면은 생각나지 않았다. 여행은 클래식 음악처럼 잔잔한 감동일 뿐 영화나 가요처럼 격렬한 감동을 주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쨍 울리는 폭발적 감동이나 솟구치는 감정, 그 뒤에는 허탈감이 오기 쉽다. 세계명작이나 고전을 읽고 얻는 감동이 은근하여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과 비슷하다. 자연을 감상하는 여행도 그런 게 아닐까? 어쨌든 이번 자전거 여행은 내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기억날 것이다.
낙동강철교
3. 여행 중 만난 사람들
이번 나의 여행은 기록을 세우거나 목적지에 빨리 가야만하는 경주가 아니었다. 발견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즐기고자 했다. 라이더들은 서울서 부산까지 대부분 4박 5일에 주파한다. 6일 걸려서 가는 사람도 있고 이틀에 갔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전문가나 매니아가 아니라서 5일 안에 못 가더라도 여유로운 여행을 꿈꾸었다. 힘들면 관광을 하면서 쉬고, 아름다운 곳에서는 좀 놀다 가려고 1주일을 여행 기간으로 잡았다.
출발할 때까지 자전거길 지도도 구하지 못했고, 휴대폰에 자전거 길찾기 앱을 깔았으나 활용하지도 못했다. 국토 종단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자세한 정보도 얻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겨우 국토종단 자전거길을 검색해 보았고, 국토종단 여행기를 두어 편 읽어 본 것이 정보의 전부였다.
이포보 인증센터 옆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몇 라이더를 만났다. 혼자 여의도에서 왔다는 20대 청년은 몇 마디 나누더니 홀연히 가버렸다, 혼자서 군산에서 출발했다는 30대 젊은이는 금강을 거쳐 여기까지 왔단다. 군산에서 사는 사람인가 해서 반가운 마음에 내가 군산 출신이라 했더니, 자신은 서울에서 사는데 버스로 군산에 갔다가 그곳에서 출발, 서울에서 마친다는 거였다.
여주에 도착하여, 강변유원지 입구에서 식당과 숙소를 찾다가 부산에서 온 두 라이더를 만났다. 그들은 여대생으로 보였는데 식당과 숙소를 찾는 중이었다. , 부산까지 가는 동안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얻고자 식사를 함께 하자고 부탁했다. 그런데 우리가 영양탕을 먹을 거라 하니 두 여자는 기가 질렸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아쉬운 일이었다. 간신히 영양탕 식당을 찾아갔으나 고기가 떨어져 삼겹살로 대신했다.
다음날은 비내 쉼터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세 젊은이를 만났다. 그들도 부산까지 간다 했다.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처음 하는지 매우 힘들어 보였다. 쉬는 시간이 길었고, 주행 속도도 느렸으며 길도 잘 몰랐다. 그 뒤로 스쳐 지나가듯 한두 번 본 것 같은데 우리와 속도가 달라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충주 우륵대교 1 km 앞 정자에서 쉬다가 몇 사람을 만났다. 충주시에 살지만 그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50대 후반의 남자는 매우 친절하게 여러 가지를 설명을 해주었다. 4대강을 개발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치적이라 했다. 이곳을 지나가던 외국 라이더들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이라고 칭찬하더란다. 이 대통령의 정책에 지지하지 않았지만 4대강은 잘한 것 같다는 어느 호남 사람 이야기도 했다.
우륵대교 난간의 디자인은 가야금을 상징한다는 설명, 이곳 강물은 부동호라 겨울에 얼지 않는다는 것, 이 길이 더 좋아지려면 곳곳에 음료나 식사를 할 수 있는 휴게 시설과 편의 시설이 필요하다는 등,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더니 기분이 좋았는지 자기 차에 가서 방울토마토를 두어 줌 비닐봉투에 담아왔다. 노지 재배라 맛이 좋다하여 먹어보니 고소하다. 대추모양이었는데 약간 누르스름해서 익은 것 같지 않은데도 시중에서 먹는 빨간 토마토보다는 훨씬 맛이 좋았다.
잠시 후에 온 50대의 라이더에게도 토마토를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몇 개 먹으면서 몇 가지 정보를 주었다. 가다가 상주보 부근에 민박이 있는데, 방을 빌려주고 빨래까지 해주며 석식, 조식까지 할 수 있는데 1인당 3만원이란다. 여주인이 친절하고 경비가 저렴해서 라이더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했다. 자신은 청주까지 버스로 왔는데 서울까지 올라갈 거라며 가다가 음식을 먹을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몇 곳 있다고 알려주고 작별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인데도 친절하고 정답다.
수안보에 도착하니 물탕축제라는 지역 축제가 시작 직전이었다. 노래자랑에 나갈 한 사람만 접수를 받는다기에 망설이다가 재미를 만들 기회다 싶어 신청했다.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 전 관객들의 참여 분위기를 높이고자 하는 출연인데, 나는 세 사람 중 두 번째 순서였다. ‘해후’를 열창하고 나니 관객의 반응이 좋았다.
사회자는 축제가 끝나기 직전, 세 사람을 불러 무대에 세우고 제일 잘 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달라며 순위를 정했다. 내가 가장 박수가 많이 나왔다고 나에게 먼저 세 가지 상품 중 하나를 고르는 기회를 주었다. 표고버섯 한 상자가 가장 좋다고 했지만 가져갈 수 없어 식권 3만원짜리를 받아왔다. 다음날 아침 그 상품으로 양평에서 혼자 온 라이더와 셋이서 올갱이국과 두부김치로 포식을 했다.
이화령 고개에서 많은 라이더들을 볼 수 있었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가 있었고 여러 기념비들이 있었다. 남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라 명소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영강을 지나다 얕으막한 야산의 소나무 숲에 소금강이란 간판이 보였는데 식당의 이름었나 보다. 그 옆 산기슭에 자전거 전용의 데크 길이 있는 데 잠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어느 40대 라이더 남녀가 쉬고 있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서울에서 버스로 충주에 와, 이 길로 들어왔는데 부산까지 갈 거란다. 그 부부가 떠나고 30분 쯤 뒤에 가다보니 상주보 쉼터에서 그들이 다정스레 앉아 있었다. 보기에 아름다워 지나가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새들도 짝을 지어 날아가는 게 보기 좋듯이 부부가 다정스레 라이딩을 하는 모습을 보니, 보는 사람도 흐뭇하다.
낙단보에서 구미보로 가던 중, 인천 서해갑문의 국토종단 시발점에서 온 두 여자 라이더를 만났다. 어디로 가야 부산으로 갈 수 있느냐고 나에게 길을 물었다. 김해에서 사는데 버스로 인천에 갔다가 서해갑문에서부터 자전거로 부산까지 가려 한다는 것이다.
한 분은 자전거 경력이 10년, 다른 분은 5년이라 했는데 자전거 동호회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인지 자전거와 복장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자전거를 타는 동작이 상당히 익숙해 있었다. 따로 떨어져 주행하다가 다시 구미보에서 만났다. 에어컨으로 시원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먹으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미보에서 출발하여 강변을 달리다 점심때가 지났는데 식당이 나오지 않아 걱정을 했다. 다행이 1시쯤 구미시 예강리의 숭선대교 옆에 모텔과 식당이 있었다. 마침 영양탕 식당도 있었다. 출발하던 날부터 친구가 원하였는데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여자들은 한식당으로 갔다. 친구와 나는 식당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두시쯤 출발했다.
가던 중, 그 두 여자가 어느 정자에 앉아 여유롭게 쉬는 것을 보았다. 맞다. 저렇게 경관이 좋은 곳에서 쉬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내가 이번 여행에 바라던 점이었다. 그런데 친구는 그런 휴식보다 목적지로 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 같아 나도 여유 있는 주행을 하기 어려웠다.
달성보에 다다르니 비가 내렸다. 달성보에서 쉬고 있는 50세 전후의 라이더가 혼자 있어 길을 물었다. 그분은 동탄에 사는데 밀양에 갔다가 거기서 자전거로 올라왔다기에 길 형편을 물었다. 고개 세 개 넘는데 매우 힘들었다 한다.
잠시 후에 도착한 그 여자들도 다음 길을 찾는데, 편의점 여자가 인근 지도를 가져와서 설명해 주었다. 경상도 말씨인데 워낙 빨라 알아듣기 어려웠다. 부산까지 국토종단길로 가려면 힘든 고개 셋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도로로 가면 수월하다며, 여기서 7~8 km 현풍으로 가면 모텔 주인이 와서 트럭으로 픽업해 주니 거기서 자고 지방도로로 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또 내일 그 모텔 주인이 함안보까지 트럭으로 데려다 주면 부산 가는 일정을 하루 앞당길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두 여자와 우리는 지방도로를 타고 현풍으로 가서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어렵게 모텔 주인을 만났다. 트럭을 타고 창녕보를 거쳐 합천군 청덕면 양진리 모텔로 갔다. 가는 동안 다른 라이더들도 모텔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픽업을 요청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와 두 여자는 내일은 트럭을 타고 함안보로 가, 거기서부터 자전거로 부산에 직행하여 라이딩을 종료하겠다고 했다. 나는 부산에서 동창들을 내일 모레 만나기로 한 달 전부터 약속했기 때문에 이곳 적포교에서부터 자전거길로 들어가 함안보를 경유하여 천천히 부산에 가겠다고 했다.
다음날 친구와 두 여자는 트럭에 자전거를 실었고, 나는 친구와 두 여자에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적포교 옆 국토종단 길로 들어가 달렸다.
20여 분 달리니 예정대로 가파른 고갯길이 나와 자전거를 끌고 올랐다. 그 뒤로도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를 넘느라 더위에 상당히 힘들었다. 그 세 곳에서는 경사가 심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고, 두어 번 씩 쉬면서 올랐다.
함안교에 도착하니 정오였다. 편의점에서 햇반과 사발면으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휴식을 하는데, 옆 자리에 70세 전후의 노부부가 와서 쉬었다. 색상과 디자인이 같은 옷을 입어 보기 좋았다. 부산까지 소요 시간을 물으니 6시간 조금 더 걸린단다.
내가 먼저 출발해서 20 분쯤 갔는데, 그 노부부가 나를 앞질러 갔다. 나보다 10 년은 나이가 더 들었는데도 나를 앞지르다니, 그 체력이 놀랍다. 두 분이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 정겨워 보여 부러웠다. 나도 친구와 저렇게 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우리는 대체로 따로 달렸다. 더구나 오늘은 각기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나의 기대와 달리 친구와 나란히 달린 시간이 별로 없어 아쉬웠다.
낙동강을 따라 기분 좋게 달리다보니 구포에 다다랐다. 잠시 쉬면서 부산에서 기다리는 동창에게 1시간 뒤 을숙도에 도착한다고 전화로 알려 주었다. 달리다 보니 80세 전후의 노인이 나를 앞질러 가는데 경광등, 경적소리가 세련되었다. 아니 저 나이에도 저런 체력을 가질 수 있을까? 놀랍다. 가까이 다가가서, “저는 서울서 왔는데 을숙도까지 갑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립니까?”고 여쭈었다.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상당히 주행속도가 빨라 약간 무리하면서 따라갔다. 그분은 자전거 경력이 많은지 사람들을 잘 피하면서 요령 있게 잘 달렸다.
을숙도 500여 m 남은 위치의 횡단보도 앞에서 내리더니, 내게 길을 알려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작별했다. 연락처를 물어 훗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고 있을 친구 때문에 곧장 을숙도로 달려갔다. 80대의 노인이 저리 건강한 건 자전거 운동 덕이었을 거라 짐작했다.
장산역(해운대)에 도착한 것은 약속 시각보다 거의 한 시간이 늦었는데 대학 동창(노금우 김두만)이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려운 도전을 했다고 환영한다며 도착할 시간도 불확실한데 꿋꿋하게 기다려 주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더구나,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데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했다. 친구 부인에게 면목 없는 짓이지만 용기를 내서 들어갔다. 그래야만 친구도 부인도 나를 평생 기억할 테니까. 대신, 친구가 내려는 저녁 식사비와 술값을 친구가 모르게 얼른 내가 계산했다. 그래도 숙박비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다음날 아침. 그 친구와 동백섬을 산책하며 누리마루 아펙 회의장을 지나 달맞이길에서 해운대를 조망했다. 아름다운 경치다. 그러나, 보고 싶은 사람 보는 것만은 못하다. 이 곳은 네 번째 와 본 곳이었다.
부산 달맞이길에서 본 해운대와 광안대교
4. 라이딩 중의 깨달음과 묘미
여행 중, 이포보와 여주보 등 여러 개의 보는 라이더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휴식처였다. 간단한 식사와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고, 화장실도 청결하였다. 특히 실내에 가동한 에어컨은 정말 훌륭한 피서지였다. 또한 수많은 다리를 지나거나 건너야 했는데 다리 밑에는 대부분 쉴만한 벤치가 있었고, 벤치에 앉으면 시원한 강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동료 의식을 가지기 때문인지 반가워했고 친절하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폭서기라서 더위에 고생 많았겠다고 걱정해 주었지만 자전거 평균 시속 20 마일로 달리면 맞바람이 있어서 그리 덥지 않았다. 가로수 그늘이나 산길의 숲 그늘이 자주 나왔고, 곳곳에 휴식터가 있었다.
물론 가로수도 없는 둑길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달릴 때는 어깨가 따가웠고, 시멘트나 포장된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올 때는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 더위를 이기고 나니 올 여름의 무더위가 그리 두렵지 않았다. 더위를 무릅쓰고 무더위를 이겨낸 승자였기 때문이리라.
오르막에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오르더라도 내리막길은 저절로 굴러갔다. 인생도 고난의 길을 오르면 평탄한 내리막길이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달리는 동안 조국의 숲과 강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다. 공원에서 숱하게 본 배롱나무꽃, 고수부지나 둑길 옆에 지천으로 핀 달맞이꽃, 언제부터 그렇게 퍼졌는지 유럽에서 온 벌노랑이꽃, 마을길 민가 옆에서 화려하게 핀 능소화, 산고개에서 우람하게 자란 청청한 소나무 등, 그림 같은 장면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하천 길을 달리며 흔히 볼 수 있는 백로와 왜가리, 강물 위를 달리는 보트와 수상스키 등도 10~20년 전에는 보지 못하던 장관이었다.
장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며 안장과 핸들, 쇼바를 몇 차례 조정하면서 나에게 알맞도록 서너 차례 조절했다. 출발 전에 가지랑이가 헐었던 상처도 아물 수 있었고 어깨와 고개의 통증도 풀어낼 수 있었다.
또, 친구가 탄 로드형의 자전거와 내가 탄 MTB 자전거의 장단점을 알았다. 로드형은 속도를 내기 좋지만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신속하게 잡기가 어렵고 MTB의 유압식 브레이크는 작동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혹시 몰라 가져간 물품 중에 30 % 가량은 불필요한 짐이었다. 펑크를 대비해 튜브와 연장을 챙겼고, 여벌 옷도 몇 벌 넣었으나 대부분 시용하지 않았다.
또, 둘이 동행하면 든든함도 있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관심이 달라 불편한 점도 있었다. 실제로 장거리를 혼자서 라이딩 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시 국토종단 라이딩을 한다면 이제 별 걱정이 없다. 그런 부담은 이번의 절반 이하가 될 것 같다. 아직도 못 가본 영산강과 금강, 안동댐 등의 자전거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직장에서 은퇴하면 1년 쯤 전국 라이딩을 하고 싶다. 희망이 꿈이요, 간절한 꿈은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이번 여행에서 도전과 성취, 그런 체험이 삶에 활력과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랫동안 그런 기억을 회상하며 내 스스로 기쁨을 음미하게 되리라.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것이다.
부산 오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