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실전 모드...
내가 하는 일 중에, 연습인 건 없다. 실패와 성공, 이렇게 구분되지, 연습은 없다.
15년 가량 대학원 수업을 했었는데, 올해가 대학원 수업을 접은 첫 해이다. 일단 대학원에, 학문을 하겠다는 학생이 없다. 전업 학생은 거의 없고, 직장인들이 진학용으로 학위 받으러 온 게 거의 대부분이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다.
어차피 차비 빼고, 학생들하고 먹는 술값 같은 거 빼고 계산하면, 내 수업은 내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누구라도 가르치고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좀 있었는데, 학위를 무슨 우표 수집 정도로 생각하는 대학원생들과 더 이상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게, 수업을 접은 이유이다. 도저히 수업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올해 대학원 수업을 접었다.
학부수업은 작년에 접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경기대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 된 셈이다. 나름 재밌었다만. 재미를 위해서 내가 치루어야 할 비용이 너무 높다. 일종의 기회 비용 개념인데, 난 공간을 잘게 쪼개고, 더 작게 나누는, 다음 단계 연구로 넘어가야 하는데, 학부 수업 하면서 그렇게 묶여있을 여유가 없다.
습작당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모여서 이것저것 해보기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가까워진다. 어떤 식으로 끌고 갈지, 아직도 좀 고민이 있다. 바늘 허리에 꿰서 바느질 할 수 없다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하는 때도 없다.
어쨌든 몇 명이라도, 데뷔시키기 위해서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는 중인데, 진도는 느리기만 하다.
김영사에서, 책 한 권은 내주겠다고 하신다. 파격적인 제안이다.
단독 저술을 아무래도 어려울 테니, 여러 사람 글을 모아서 준비하면, 한 권은 내준다고 하신다.
물론 하는 게 좋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인데, 여러 가지 당장 걸리는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다.
글이야 나누어서 쓰면 되기는 하지만, 일관성과 품질 관리, 이런 아주 골 아픈 문제들이 있는데, 그거야 일반 시민들하고 뭘 할 때는 당연히 생기는 문제이고.
제일 큰 문제는, 돈을 나누는 문제이다. 학생들하고 할 때에는, 수업으로 한 거라서 그걸로 돈을 나눠주는 건, 내 교육 양심상 아닌 것 같아서, 모일 때 밥 사주고 그런 걸 했고.
학생들 몫으로 갈 돈은, 내가 학과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했다. 인세의 일부를 그렇게 기증했다.
일단, 여러 사람 글을 모아서 내는 책은 잘 안 팔린다. 그래서 사람 수로 인세를 나누면, 정말 푼돈 밖에 안 된다. 5천부 팔린다고 하면, 엄청 팔리는 건데, 인세는 대략 500만원. 10명이 한다고 하면, 50만원… 그 정도가 맥시멈으로 보인다. 물론 10만부쯤 팔리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이제 얘기가 좀 다르다. 1억원 정도 되는 인세를 10명으로 나누면 천 만원… 요건 얘기가 전혀 다르지만, 이건 도둑놈 계산이다. 그냥 기술적으로는, 천 권 넘기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출판사는 이것저것 손익분기점 못 넘기는 책이지만, 내준다고 말하는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이럴 때 쓰는 방식이, 원고료 방식이다. 엄청 팔려도 더 받지는 않지만, 수 십만원 정도는 받는다. 사회과학에서 많이 쓴다.
원고료도 사람에 따라 차등이 있다. 나는 특A급 원고료를 받는다. 물론 그래도 나는 절대로 원고료를 받지는 않고, 반드시 인세로 계약한다. 원고료 받을 때에는, 학술 차원에서 공동집필하는 경우. 이건 맨 후배로서 이래라 저래라 했다가는, 나중에 돌 맞는 수가 있으니까.
사정은 그런데, 이 경우에는 잘 모르겠다. 결국 조직에서 문제가 되는 건, 나중에 돈 문제이다. 특히 돈이 별로 크지 않을 때가 그렇다. 아예 크면, 서로 손해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많이 남으니까… 작은 돈이 오고갈 때, 사람이 치사한 본성을 가장 크게 노출시키는.
원칙적으로는, 저자들에게 개별 원고료 지급은 없다, 그렇게 하고 습작당에 모으는 게 맞기는 한데, 여기는 또 워낙 생활이 어려우신 분들도 많으니, 그렇게 원칙만을 고집하는 것도 좀 이상하고.
하여간 그런 기술적인 문제가 있고.
누가 쓸 거냐?
이건 간단하다. 쓰고 싶은 사람.
품질은 어떻게 보증하는가?
이런 경우, 나는 원고 고쳐주지 않고, 손대지 않는다. 내가 에디터도 아니고, 빨간펜 선생도 아니고.
만족할 때까지 끝없이 다시 쓰게 하는 게 내가 주로 쓰는 방식이다. 주제도 바꾸고, 틀도 바꾸고… 그렇게 수 십번 새로 쓰는 게, 조금씩 고치는 것보다는 글 자체가 늘고, 생각도 커지는 방식이다.
오케이 할 때까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학생글들이 그런 과정을 거친 글들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처음 글보다는 정말들 많이 좋아졌다.
대체적으로는 출판사에서는 연말까지 원고가 완성되는 시점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생각도 그렇다.
하는 김에 해야지, 한 번 김 빠지면 다시 추스리기가 쉽지 않다.
다음달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진짜 몇 달 안 남았다.
주제는?
이게 아주 애매하다. 하고 싶은 거와 할 수 있는 게 일치하면 좋은데, 이 경우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예산 제약인 셈이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주제라야 하는데, 너무 어려우면 아예 불가능하고, 너무 뻔한 거면, 피차 시간낭비일 거고.
빈곤 같은 주제가 그렇다.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게 뻔한 넋두리가 아닌 것으로 만들기는 아주 힘들다.
나는 촛불시민에 관한 걸 해보고 싶은데,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분석 같은 것을 할 수가 있을지, 영 자신이 없다.
당분간은, 뭘 할지, 좀 서로 고민을 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고.
하여…
습작당 최초의 본격 출간 작업이 시작될 것인데.
첫댓글 우왕~ 비장감마저 감도는 것이....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걸요.
다만, 이 부분이 가슴 아픕니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분석 같은 것을 할 수가 있을지, 영 자신이 없다.'---> ㅎㅎ 흑.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어서 늘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엔 제대로 한번 붙어볼랍니다. 물 주전자 나르는 거 말고, 주전으로. 원고를 백 번 돌려주시믄 백 한 번 다시 들이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헤헤
자, 쓰고 싶은 사람 붙어보세요.
와 진짜 비장감이 재밌을 듯! 당근 붙어야죠 문제는 민폐가 되면 어쩌나인데 밑바닥은 진작에 들어났으니 저도 백한번 고칠 각오로 ㅜㅜ ^^
몇명이서 쓰는 건가요? 각자 분량은 얼마 정도 되려나요? ^^
우박사님 믿고 김영사에서 힘 쓰니 카페 회원은 더욱 잘 써야 겠군요. 잘 되기를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