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의 상처 치료
글·그림 _ 나용준 (서울대학교 식물병원 명예교수)
가로수와 공원수를 비롯한 우리 주변의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줄기 위아래에 나무껍질이 벗겨져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잘 자란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나 줄기 밑동의 수피가 크게 벗겨져 나가 속살(목질부)이 휑하니 드러나 있는 커다란 상처는 나무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정말 애처롭다.
이러한 상처들은 낙뢰(落雷), 적설(積雪), 피소(皮燒), 상렬(霜裂, 凍烈이라고도 함) 등과 같은 기상적인 피해와 자동차, 중장비, 잔디 깎는 기계, 예초기 등에 의한 충돌, 나무의 운반, 이식, 가지치기 등 일련의 조경수 관리 작업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계적 상처 등과 같은 인위적 피해로 인해 생기는데, 근래에는 특히 도로공사 등 각종 건설공사 과정에서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해 생기는 인재(人災)가 많이 늘고 있다.
수세가 좋으면 웬만한 작은 상처는 그대로 두어도 대부분 스스로 잘 아물지만, 큰 상처는 완전히 아무는데 수년∼10년 이상 걸리기도 하며 장기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상처가 더 악화되고 아물기 전에 상처 부위로 병원균이 침입해서 나무가 썩어 공동(空洞)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나무에 상처가 났을 때에는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되도록 일찍이 적절한 치료를 통해 나무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며, 이는 중요한 조경수 관리 작업에 속한다.
수피 상처의 원인
1. 인위적 원인
1) 차량, 중장비, 잔디 깎는 기계, 예초기 등에 의한 충돌 또는 접촉으로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그림 1).
2) 큰 나무를 운반하는 과정에 기계적 마찰로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
3) 큰 나무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밧줄을 잘못 감거나, 부적절한 지주와 당김줄 설치 등으로 인해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
4) 도로공사 등 각종 건설공사 과정에서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상처를 내는 경우(그림 2).
5) 인간이 의도적으로 나무껍질을 벗기는 행위(vandalism)
2. 기상적 원인
1) 피소(皮燒, sunscald) 현상으로 인해 나무줄기(樹幹)의 남서쪽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그림 3-A)
2) 상렬(霜裂, 凍裂, frost crack) 현상으로 인해 수피와 목질부가 종축 방향으로 길게 갈라지면서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그림 3-B)
3) 강풍(强風)으로 인해 굵은 가지가 부러지면서 줄기의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
4) 적설(積雪)로 인해 굵은 가지가 부러지면서 줄기의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
5) 낙뢰(落雷)를 맞아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그림 3-C)
3. 생물적인 원인
들쥐, 토끼, 노루, 멧돼지 등 야생동물에 의해 수피가 벗겨지는 경우
수피의 구조와 역할
우리가 흔히 나무껍질이라고 부르는 수피(樹皮, bark)는 바깥쪽에 있는 외수피(外樹皮)와 안쪽에 있는 내수피(內樹皮)로 구성되어 있다. 견고한 코르크층으로 구성된 외수피는 그 안쪽에 있는 내수피를 보호하고, 각종 기상적, 인위적 피해와 병원균의 침입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그림 4). 한편, 내수피에 있는 사부(篩部)는 잎에서 만들어진 광합성 산물을 뿌리를 비롯해 형성층 등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나무 곳곳에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내수피 밑에 있는 형성층은 평상시에는 나무의 비대생장(肥大生長, 直徑生長) 역할을 하지만, 수피가 벗겨졌을 때에는 유합조직(癒合組織, callus)을 형성하여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수피가 손상될 경우, 사부와 형성층이 파괴되어 나무의 생장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노출된 상처 부위를 통해 병원균이 침입하여 나무를 썩게 한다.
나무의 상처는 어떻게 아무는가?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 피부에 상처가 나면 상처 부위에서 자체적으로 새살(피부조직)이 재생되면서 상처가 아문다. 그러나 나무의 경우는 수피가 벗겨져 노출된 목질부 자체에서 새살(조직)이 재생되어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니라 상처 가장자리의 수피 밑에 있는 형성층에서 자라나온 유합조직이 상처 부위를 감싸는 방식으로 상처가 아문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나무는 수피가 벗겨지거나 목질부가 손상되면 먼저 상처 가장자리의 수피 밑에 있는 형성층에서 세포분열에 의해 미분화(未分化)된 분열조직(分裂組織)인 유합조직이 자라나와 상처로 노출된 목질부 표면을 감싸기 시작한다(그림 6). 초기의 유합조직은 상처가 난 후 수주~수개월 동안 지속되다 차츰 수피조직과 목질부조직을 모두 갖춘 손상유합재(損傷癒合材, woundwood, cicatrix)로 바뀌며, 손상유합재는 여러 해에 걸쳐 수세에 따라 빠르게 또는 더디 자라면서 상처 부위를 완전히 덮어 마침내 상처가 아물게 된다(그림 7). 따라서 나무의 경우는 ‘상처의 치유(傷處治癒, wound healing)’라기보다는 손상유합재에 의한 ‘상처닫기(傷口閉塞, wound closure)’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또한, 상처 가장자리에 오래전(1년 이상)에 형성된 흔히 칼루스(callus)라고 부르는 조직은 사실은 이미 수피와 목질부로 분화된 조직이기 때문에 이것을 ‘칼루스’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다소 생소한 명칭이지만 최근에는 ‘손상유합재’라고 부른다. 상처 가장자리에 유합조직이나 손상유합재가 잘 발달되어 있다면 상처가 잘 아물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무의 생장기에 상처가 나면 상처 부위에 곧 유합조직이 형성되면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지만, 휴면기에 상처가 나면 나무의 생장이 시작되는 봄에 유합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상처도포제(傷處塗布劑)
수피가 벗겨져 목질부가 노출된 상처 부위에는 티오파네이트메틸 도포제(톱신페스트) 또는 테부코나졸 도포제(실바코 도포제)와 같은 검증된 상처도포제(그림 5)를 발라서 상처를 통해 병원균이 침입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목재의 방부용으로 사용하는 페인트, 콜타르(coal tar), 크레오소트(creosote) 등을, 살아 있는 나무(生立木)의 노출된 상처 부위에 바를 경우, 목질부의 살아 있는 유세포(柔細胞)와 상처 가장자리의 수피 밑에 있는 형성층 세포를 모두 죽이므로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상처도포제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살아 있는 나무의 목질부에 해로운 아스팔트를 주성분으로 한 상처도포제(모두 6종)를 사용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 유럽에서 사용되던 랙 발삼(Lac Balsam)이라는 라텍스 유제(latex emulsion)는 시험 결과 목질부에 해가 없고 유일하게 유합조직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사과나무를 비롯한 각종 과수의 상처 치료에 티오파네이트메틸 도포제를 수십 년째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줄기와 가지의 상처를 비롯해 단근된 뿌리의 상처 보호에 테부코나졸 도포제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상처도포제는 제품에 따라 그 효능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확실히 검증된 제품을 잘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설공사 과정에서 부주의로 인해 수피가 크게 벗겨져 목질부가 드러난 모습
차량 충돌로 심하게 파손된 줄기의 수피
기상적 피해로 인해 벗겨지거나 갈라진 수피
나무줄기의 횡단면
상처도포제
첫댓글 말하자면 외과전문의 네요..